아버지의 편지
정민.박동욱 엮음 / 김영사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 현대인들의 자녀교육은 철처하게 엄마 몫이다. 

엄마의 선택에 의해 자녀가 다녀야 할 유치원과 학교가 결정되고,

배워야 할 과목과 학원, 받아야 할 레슨과 과외, 풀어야 할 문제집과 학습지가  결정된다.

엄마는 자녀의 훌륭한(?) 학습매니저이고 입시정보요원이며, 학습독려원이자 성적길라잡이다.

아버지는 이에 상응하는 막대한 비용을 마련해주면 능력있는 가장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자녀는 공부만 잘 하면 어지간한 건 용서가 된다.

물론 현대인들의 가정이 다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이 이런 모양세로 살아간다.

 

 

우리 조상들의 자녀교육은 어떠했을까?

옛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그네들의 자녀교육을 만나게 된다.

옛사람들은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자녀를 교육했다.

우선 아버지가 자녀교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은 자녀의 나이와 능력에 맞는 책을 권해서 순차적으로 읽도록 했다.

아버지가 직접 글을 가르치거나 글방이나 향교를 정했으며 스승을 붙여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공부하는 방법이나 시작(詩作)과 작문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때론 따끔한 충고로 나무라기도 하고 부드럽게 훈시하기도 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인과 학자, 예술가들이 자식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한자리에 공개했다.

모두 이름이 알려진 걸출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뛰어난 학자나 대선비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아버지로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아버지의 화려한 업적과 치적도 그닥 중요하지 않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자식을 향한 애비의 마음에 초첨을 맞춰 조명했다.

때문에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과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다소 엉뚱하고 우습고 의외인 모습은 오히려 더 인간적이어서 좋다.

높고 높아서 정복할 수 없는 고지의 선비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아버지의 모습이고 마음이다.

 

 

 

아버지의 편지를 읽다 보면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수능에 비교되는 과거제도가 연결고리가 되어 한 마음으로 묶어준다.

공부에 대한 편지가 제일 많은 것이 이를  말해준다.

여러해 처가살이를 하는 아들이 과거 날짜가 이미 정해졌는데도 공부를 접어두고 먹고사는 문제로 바쁜 것을 나무라며

마음을 다잡아 공부에 힘쓸 것을 간곡히 당부하는 이황의 편지는

벼슬하는 아비나 처가살이하는 아들이나 다같이 빈궁하게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이 배우는 것은 남을 업신여기는 태도와 남의 허물을 즐겨 말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백광훈의 가르침은

공부하는 목적을 분명하게 제시해준다.

남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있는 아들을 따끔하게 야단치는 편지다.

그렇게 해서 출세를  한들 그런 사람을 어디에 쓰겠냐고 다그친 뒤,

이 버릇을 딱 끊어 고치지 않는다면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하면서 죽고만 싶다고 말한다.

학자다운, 삼당시인으로 불리는 문인다운 가르침이다.

3년 후 아들이 과거에 낙방한 소식을 듣고 낙담한 백광훈의 마음이 안쓰럽다.

도토리를 주워 가루를 내어 밥에 섞어 먹는 가난한 살림에 병든 아내까지 있으니 가장의 마음이 오죽 답답했을까.

 

 

집안의 우환과 전란으로 공부할 시기를 놓친 자식들에게 경전 공부로 바탕을 다질 것을 당부하는

유성룡의 편지는 오늘날 부모들과 학생들에게 교훈하는 바가 크다.

바탕 공부를 소홀히 하고 잔재주와 쪽집게 과외로 입시에 합격하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잔재주나 요령으로는 나랏일에 크게 쓰임받지 못하며 언젠가는 그 한계에 도달할 것을 말해준다.

공부의 우선 순위와 기본기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병자호란으로 성 안에 갇힌 택당 이식은 노모와 자식들의 안부에 노심초사하며 기약 없는 편지를 보낸다.

택당은 다른 편지에서 독서와 작문에 대한 요령을 알려 주고, 과거에 응시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도 가족의 생계조차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은 이황과 마찬가지였다.

가난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시절이었다.

이밖에도 먹거리의 해결을 위해 풋앵두를 따서 시장에 내놓는 박세당,

언행과 몸가짐, 벗을 사귀는 도리와 공부방법을 꼼꼼하게 일러주는 안정복,

자신의 제사 때 술을 올리지 말라는 강세황의 편지가 있다.

 

 

연암의 편지는 의외 중 의외였다.

큰 덩치와 매서운 눈빛에 어울리지 않게 고추장을 직접 담그고 먹거리를 챙겨서 아들에게 보냈다니,

게다가 육포와 고기를 볶아서 서울 집으로도 올려 보냈다니 의외일 수 밖에.

연암의 새로운 모습은 읽는이에게 즐거움을 준다.

유배지의 생활을 일일이 적어보낸 박제가의 편지와

그림과 글씨 쓰는 법을 설명하는 천상 예술가 김정희까지 모두 열 사람의 편지를 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가난했다.

그리고 한결같이 쟁쟁한 아버지들이었다.

그들은 똑같이 자식의 공부를 염려했다.

그렇다고 공부만 강조하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예절과 도리에 대해서도 준열하게 가르쳤다.

비록 가난했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맑고 곧았다.

쟁쟁한 실력자들이었지만 자신들의 권력을 자식과 나누지 않았다.

그들의 가르침에 힘이 실리고, 빛이 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엄마들의 자녀교육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x 2008-12-0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읽고 좋은글 접하고감니다. 감동임니다
ㅡ행복이 가득한집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