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20대 중반의 어느 토요일로 기억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에 잠을 깬 것 같았다.

창문을 두둘기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망설이던 나는 무작정 떠났다.

동행을 구하지 않고 혼자서.

일박이일 일정으로 화장품 몇개와 세면도구를 급하게 가방에 쑤셔넣고 그대로 떠났다.

그렇게해서 찾아간 곳은 경춘선의 어느 간이역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처럼 그렇게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이 가끔씩 인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가서 머리를 식히며 아무 생각 없이 며칠 머물다 돌아오고 싶다.

가족의 틈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고픈 것이다.

소박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이 바램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늘 다음을 기약한 채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타에코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녀의 도피행에 보낸 박수이다.

남편과 두 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쏟은 타에코는 남편의 냉대와 두 딸의 무시에 외로움을 느낀다.

타에코의 남편은 그녀가 마흔이 되었을  때에 자신의 부하 직원 앞에서  아내를 고물 취급하며 대놓고 무시했다.

상처 받은 아내의 마음 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이다.

병든 50대의 타에코는 남편에겐 완전한 퇴물이었다.

남편의 냉대 하나만으로도 서러운 중년기 이건만,

남편의 무시 못지 않게 그녀를 외롭게 하는 것은 딸들의 행동이다.

그녀의 딸들은 남편보다 더 심한 말투로 엄마의 마음에 가시를 박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애완견 포포가 옆집 아이를 물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포포를 안락사 시키자는 가족들을 피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포포와의 도피행이었다.

포포를 보호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결국 아주 먼 여행이 되고 말았지만.

그녀는 가족들보다 포포가 자신을 더 이해한다고 믿고 있다.

가족에게 느끼지 못하는 사랑을 포포에게 받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포포를 보호할 이유와 의무는 분명한 것이다.

동시에 그녀의 가출은 행복을 찾고 고독을 떨구어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여행은 갖은 고생과 포포가 일으킨 사건, 낯선 사람들의 도움 등으로 이어진다.

순탄치 않은 여행길에 포포는 타에코를 끝까지 지켰다.

포포를 향한 그녀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포포의 자리에 그녀의 가족들이 있었더라면,

포포를 믿은 것처럼 그녀가 가족들을 믿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타에코는 결국 포포의 곁에서 눈을 감고 포포도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의 외롭고 쓸쓸한 죽음은 가족의 의미와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작가의 외침이다.

작가의 아픈 외침에 나는 좀 전에 그녀에게 보낸 박수를 거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