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이덕일은 불운한 천재나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인물들을 복원하는,

왕과 선비들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파헤쳐 그들의 신원을 풀어주는 대중역사서 저술가다.

이덕일의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풍부한 사료에 빠져서 그의 다른 책을 뒤지다 [광해군]을 발견했다.

이덕일의 책은 아니지만, 패자 혹은 폭군으로 인식된 광해군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한명기 교수의 재해석이 궁금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광해군을 폭군으로 배웠다.

친형인 임해군과  8살의 어린 영창대군을 죽인 폭군으로,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패륜아로.

그러나 조선의 국왕들 중에서 친인척이나 형제들을 죽인 왕이 어디 한둘인가?

포학하거나 방탕했던 정도로 치면 광해군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했던 연산군은

'그냥 쫓겨 날만 하니까 쫓겨났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더 이상의 고의적인 격하나 매도를 당하지는 않았다.
광해군에게만은 달랐다.

쫓겨난 뒤에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되고 철저하게 외면되었다.

조선후기의 역사책이나 개인 문집에서 찾을 수 있는 '혼군'이나 '폐주'라는 명칭은 예외없이 광해군을 가리킨다.

죽은 뒤에도 의도적인 격하가 계속되었던 것이다.

혹자는 쫓겨난 세 사람 가운데 광해군이 가장 문제가 많은 임금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죽은 뒤에도 의도적인 격하를 계속 당했다면 살았을 때의 업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의 반증일 수도 있다.

아니면 광해군을 쫓아내고 정권을 잡은 사람들의 치적이 형편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한명기 교수의 시각이다.

 

 

태종은 1,2차 왕자의 난 뒤에(형인 정종을 내치고 동생을 죽임) 왕이 되었으며, 세조는 조카와 동생들을 죽였고,

영조는 자신의 아들까지 죽였다.

이러한 임금 가운데 유독 광해군만 폐위되었고

폭군이라는 꼬리표가 사후에도 그를 끄질기게 따라 다닌다.

무덤 역시 왕의 무덤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초라하다고 한다.

역사란 승자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역사는 승자에 의해 충분히,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영민하지 못했던 선조는 임란이 나자 서둘러 궁을 버리고 도망을 갔고, 급한 마음에 후궁 소생의 관해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왕위 계승자로서의 전통성 결여로, 또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 세력들 때문에 광해군은 늘 전전긍긍했다.

게다가 툭하면 세자 책봉을 백지화 하려는 선조 때문에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내정과 대외정책에서 남긴 치적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일선에서 전쟁을 직접 겪었고, 그것이 남긴 참상을  직접 보았으며, 

또 분조를 이끌고 전란을 전란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그이기에 국왕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전란 뒤에는 대대적인 복구대책사업을 폈으며,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동법을 시행하고,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편찬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뛰어난 외교정책을 펼쳤다.

그는 탁월한 외교능력을 지닌 외교정책가였다.

그는  자주적인 실리외교로 국제정세에 민감하게 대처했다.

명의 요청을 들어주는 듯 척면서도 청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그의 외교전술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광해군 스타일의 외교정책인  것이다.

이것은 당시 조선이 양대국 사이에서 조선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궁궐 재건창과 실리외교로 인해 그가 폐위되긴 했지만,

광해군으로선 최상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광해군 곁에 그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슬프고 안쓰러웠다.

 

작가는 조선의 군주들 가운데 주변국의 동향과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을 들라면

단연 그를 첫 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분명 탁월하고 일관성 있는 대외정책가라는 저자의 주장에 백번 공감하는 바이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 중국이 그대로 있고, 일본이 여전하며,

세계 최강 미국의 입김이 무시무시한 오늘의 한반도 상황을 광해군 시대와 대비시키며 결론을 맺는다.

오늘의 우리는 주변 열강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되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경제적 실력, 문화적 역량, 군사적 잠재력 등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377년 전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광해군에게서 가장 확실하게 배워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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