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부부란 무엇인가?

그리고

결혼 생활은 어때야 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을 남기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뭔지 모르고 하고 나중에 알고 나서는 으악 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너무 무거운 은밀한 생의 깊은 비밀이고 상처이므로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러나 누군가가 말을 꺼내면 모두 그래그래 하면서 정말 하지 못할 말들은 꼭꼭 숨긴 채 말해도 될 것들만 한다고.

아니, 말해도 될 것들을 하기보다 남들과 비슷한 것들만 골라서 말하게 되는 것이 결혼이라고 한다.

 

정말 결혼은 다들 비슷한가보다.

싸우다 어르고 달래고, 삐치고 미워하다 안쓰러워하고, 꼴도 보기 싫다가도 불쌍해지는 것이 정말 비슷하다.

 

이 책은 시인 신달자의 화려한 삶 뒤에 감추어진 처절한 고통을 솔직한 언어로 담아낸 책이다.
9년간 환자로 누워 계신 시어머니와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병수발하며 얻은 깨달음을

시인 어머니가 소설가인 딸에게 말하는 형태로 쓰여진 에세이다.

 

 

내가 만난 시인은 후회 없는 삶의 전형이었다.

주관적이지만, 그녀의 남편은 필요악 같은 존재였다.

많은 부부들이 그렇듯 시인의 결혼 생활도  사랑해서 만나 서로를 증오하는 관계로 변해 있었다.

나무와 개를 좋아하는 남편은 시인을 모르고

모짜르트와 그림과 영화를 좋아하는 시인은 남편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로 '후화하지?' 라는 물음을 담고 있으면서 내뱉지 않는 그런 부부 생활이었다.

마치 철길 위의 레일처럼 평행선을 그으며 좀처럼 간격을 좁힐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관계가 엄청난 시련을 기점으로 사선으로 기울면서 맞점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 과정이 눈물겹다.

온몸이 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매질을 당하면서도 환자를 불쌍해하고,

남편의 갖은 짜증을 다 받아주며 안쓰러워하고,

온갖 비위를 다 맞춰주면서 남편을 달랜다.

무려 24년간이나.

얼마나 지루했을까, 정말 지루할 만큼 지루했을 것이다.

처절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고 자기 몸을 부셔가면서

남편을 뒷바라지한 시인의 그 고집스럼움이 나는 답답했다.

 

자존심이 뭐길래. 자식이 뭐길래.

하지만 그녀도 사람인지라 소리 없는 총으로 남편의 심장을 수없이 겨누었단다.

증오심이 끓어서 남편의 마지막 시간이 언제인지 하나님께 질문하려다 입을 닫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니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까지 9년간이나 환자로 누워 있는 상황에서도,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는 상황에서도.

아쉬움 없이, 한 점 후회 없이 남편에게 전심전력했다.

자기 자신에게도.

그녀는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돈을 빌려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박사학위와 집필, 그리고 교수 생활까지 이 모든것을 수행해 냈다.

위대하다고, 장하다고 뜨거운 갈채를 보내고 싶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10년 이상 살고나면 그냥 그렇게, 덤덤하게 산다.

애틋함 없이 건조하게, 대화 없이 심심하게 산다.

이렇듯 무미건조한 자신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일탈을 꿈꾸기도 하고, 기웃거리기도 하고, 삐딱선을 타다가 마음을 다잡기도 하는 것 아닐까?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사는 모습일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 들어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아니, 보더라도 행복의 조건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그러다가 불행한 일을 겪게 되면 그때 비로소 일상의 행복에 눈 뜨게 된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하고 아쉬워하는게 우리네 모습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말처럼 쉬웠다면 이 세상은 지금 행복하다는 아우성으로 귀를 막아야할지도....

사람들이 남의 불행을 보며 자신의 행복을 체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삶을 사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너무 눈부시지 않은 인생은 빛을 만들어 낼 가능성 있는 것이기에 소망찬 삶인 것이다.

혹시

재미 없는 배우자, 섭섭한 아내, 미운 남편과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배우자를 '원소'로 생각하자.

상대를 미워하고 섭섭해하고 싸우면서 나를 숨 쉬게 하고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원소로 말이다.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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