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얼굴을 때리는 햇살 때문에 눈을 뜬다. 쓰다듬는단 표현을 쓰고 싶었지만, 미련이 남은 여름은 심술을 가득 담아 아직도 햇살을 휘두르는 중이다. 화끈함에 벼락같이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캣타워 해먹 안에서 나를 살피는 눈과 마주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오래 같이 지내다 보니 고양이의 눈도 똑같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일어날 거냐? 기대와 의문이 눈을 통해 철철 흘러나오고 있다. 그래, 일어난다. 물을 마시고 사람 화장실 갔다가 고양이 화장실로. 어느새 뒤따라온 고양이는 부지런히 앞서 달려가더니 빗이 있는 곳에 멈춘다. 이번에 눈에 담긴 감정은 조급함. 빨리 빗질하고 간식 내놔라. 고양이 너도 내 나이 되면 알겠지만,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땐 온몸이 뻣뻣하거든. 좀 천천히 하자, 응?


아침 일과를 무사히 마쳤다. 청소를 끝내고 고양이 식기 다 닦고 간식 급여까지. 간식 먹은 침을 열심히 얼굴에 펴 바르던 녀석이 갑자기 마루 베란다 안쪽으로 자취를 감춘다. 따라가 보니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수납공간 앞에 앉아 있다. 수납공간 문을 열어보란다. 양쪽 문을 하나씩 천천히 연다. 안에 쟁여뒀던 빈 상자를 하나씩 꺼내 썼더니 지금은 제법 틈이 보인다. 녀석도 그걸 안다. 그래서 틈 너머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문이 열리자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녀석. 문에 찍힌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지 두 눈엔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여 있다. 하지만 박스를 두 발로 짚고 우뚝 선 녀석의 눈엔 호기심과 의지만 한가득이다. 나 역시 사심 가득한 눈빛을 쏘아 보내며 녀석의 머리통에 뽀뽀를 날린다. 안 그러면 녀석은 점프해서 박스 너머로 들어갈 거다.


뱃살을 만지작거리는 내 손과 머리통을 짓누르는 내 입술에 진저리를 치며 녀석이 물러난다. 슬쩍 뒤돌아보는 녀석의 눈에 짜증과 체념이 담겨 있다. 덤벼라, 고양이. 언제든 상대해 주마. 내 눈엔 아마도 자신감과 의지가 넘쳐흐르다 못해 광기가 엿보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교훈. 마음을 열고, 빈틈을 보이고, 어떤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방적이거나 과도하다면, 관계는 실패한다. 하지만, 머리통에 갈기는 뽀뽀는 내가 참을 수가 없지. 흐흐흐.


꼬리말) 딱 일주일 전에 썼던 글이다. 이번 주 아침 햇살은 기세가 많이 꺾였다. 갈수록 여름의 흔적을 가을이 지워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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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화에 실패하고 나서 월이는 나 빼고 모든 사람을 무서워한다. 손님이 오면 어딘가 숨어서 절대 나오지 않고, 인터폰에서 벨 소리만 울려도 낮은 포복 자세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해도 도망, 관리실에서 방송이 나와도 도망, 어떤 기계에서든 목소리만 들려도 줄행랑을 쳤다. 그나마 요즘은 핸드폰이나 방송에선 실제 사람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자리를 지킨다. ***


(초겨울 어느 날)


(벽에 부착된 스피커 관찰 중) 내가 말이지, 눈에 보이거나 기척이 느껴지는 귀신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이 집구석은 어떻게 된 게 보이지도, 냄새가 나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귀신이 있단 말이지. 저 위쪽 벽에 붙어있는 네모났고 구멍 숭숭 뚫린 거! 가끔 관리사무소 어쩌고 하면서 느닷없이 뭐라고 하는데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제 날이 제법 춥네. 보일러를 켜야겠다.”


내가 둔해졌나? 고양이 체면이 말이 아닌데...


(기계음) “보일러 설정이 완료됐습니다.”


아이, 깜짝이야! (후다닥) 뭐냐, 뭐냐? 이 여자는 또 누구냐? 어디야, 어디?


“야, 겨울에 한두 번씩 나오는 보일러 언니잖아? 뭐가 무섭다고 소파 밑으로 들어가냐? 아우, 쫄보 자슥.”


(여름 어느 날)


“새 에어컨이 좋긴 좋구나. 바깥에서 핸드폰으로 조작할 수도 있고, 전기요금도 덜 나오고.”


(뒹굴) 시원하네. 여기가 천국이네. 천국은 고양이별보다 더 좋나? 에라, 모르겠다. (뒹굴)


“아직 초여름이니까 밤에는 좀 끄자.”


(기계음) “AI 모드로 0.2kW를 절약했습니다.”


우와, 우와! (후다닥후다닥)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


“겁나 빠르네, 자슥. 침대 밑으로 갔냐? 이제 이 목소리 여름엔 매일 들을 거야. 에어컨 언니니까 너무 놀라지 마라.”


아니, 무슨 기척 없는 언니들이 이렇게 많아! 이러니까 아저씨가 예전에 맨날 가위눌렸지!


“3D로 사람이 튀어나오게 만들면, 저 녀석 제명대로 못 살겠네, 에휴. 옛날 <링> 영화가 무섭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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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26-09-2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오늘도 사랑스러운 월이랑 좋은 하루 보내세요~!!!^^

대굴대굴 2026-09-28 10:4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ㅋ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저것들은 맨날 져야.”


어머니는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 팬이다. 화면을 슬쩍 봤더니 1:1이다. 엄마, 동점인데. 어차피 저것들은 질 거야.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안티 팬이었을까? 겉옷을 챙겨입고 나오자, 어머니가 묻는다. 어디 가게? 동네나 한 바퀴 돌려고요. 나도 같이 가자. 야구 안 보시구요? 어차피 져. 아무래도 안티다. 옷을 챙겨입고 나오다 얼른 돌아서더니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다. 그걸 달고 가시게요? 우리 아들이 사준 거니까 달고 가야지. 배시시 웃으시며 신발을 신는다. 이날, 어버이날이었다.


아파트 단지의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어머니가 묻는다.


“너는 결혼 안 할래?”


이대로가 편한데. 사람들이 그러는데 나 요즘 얼굴이 좋아졌대요. 별말씀이 없다. 어쩌면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질문. 얼마 걷지 않았는데 숨이 차는지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무뚝뚝한 아들내미는 옆에 함께 앉았을 뿐 별말이 없다. 다시 산책 시작. 오르막을 올랐으니 이젠 내리막이다. 아파트 뒤편 한적한 곳에 계단이 있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난간을 붙잡은 채 힘겹게 걸음을 옮긴다. 그저 타박타박. 세월에 겨워 힘겨운 발걸음 소리와 숨이 찬 호흡소리를 들으며 나란히 길을 걷는다. 그 목걸이는 항상 걸고 있어야. 엄마는 그 꽃 왜 달고 나왔는데?


“우리 아들이 사준 거니까.”

“나도 엄마가 해준 거니까.”


한동안 저 길을 다시 걸을 수 없었다. 혼자가 되고 나서 저 길을 걸으면 너무 아플 거 같았다. 그러다 수년이 지난 후, 이젠 웃음으로 다른 감정들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거닐었다. 오르막과 벤치와 계단과 공원을. 계단이 좀 더 길었더라면, 어머니 손을 더 오래 잡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살가웠다면, 사람 없는 공원에서 어머니와 알콩달콩 이야기를 오래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어서려는데 문득 옷깃이 무겁다. 어머니의 손길이 끝으로 머물렀던 곳.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다. 툴툴 일을 털어내고 오랜만에 아파트 단지 안을 돌아봤다. 일부러 산책길도 다시 찾았다. 아파트 뒤로 들어가는 길 초입은 비둘기 똥으로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고,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둑어둑했다. 계단은 무척이나, 생각보다 많이 짧았다. 공원은... 뭔가 삥뜯기 좋은... 하아. 살찐 고양이 한 마리가 슬쩍 얼굴을 내밀더니 나를 살폈다. 너구나, 여기서 삥뜯고 사는 게. 주변을 둘러보다 걸음을 옮겼는데 반대편 문이 잠겨있어 다시 되돌아 나와야만 했다. 오지 말아야 했나? 이 정도면 다시 쓰인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길인데?


AI가 제시한 문장 : 길은 걸을 때마다 다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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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쯤 침대에 누워 전자책을 읽는다. 자기 전 패턴인데 그럴 때면 고양이는 침대 바로 옆 창틀에 놓아둔 원목 받침대에 자리 잡고 바깥 구경을 하거나 나를 구경한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 녀석과 눈높이가 딱 맞아서 간혹 눈이 마주치곤 하는데 솔직히 이 녀석 무슨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날도 책을 보다 고양이 한번 보다, 창밖을 보다 나를 한번보다 그러고 있었다. 자야지 싶어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는데, 다른 때보다 묘하게 은은한 빛이 눈꺼풀 너머로 감지됐다. 뭐지?


눈을 뜨고 창밖을 보니 둥근 달이 보인다. 음력 보름이 아니니 보름달은 아닐 텐데 왜 하필 오늘 내 감각을 자극했을까? 고양이는 아직도 창틀에 있다. 나와 달리 달엔 관심도 없다. 대각선 방향에 있는 아파트 불빛 사이 움직임과, 간혹 외부 창에 들러붙는 벌레와, 배수구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시커먼 녀석, 낭만이라곤 몸 구석 어디에도 없는 모양이다. 달을 올려보다 문득 소원을 빌어본다. 우리 어둑어둑한 고양이, 착하게 건강하게 살다가 고양이별로 가게 해주세요. 고양이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더니 나를 가로질러 자기 잠자리를 찾아간다. 야, 너도 소원 빌고 가라. 퉁, 퉁, 퉁. 발판을 순서대로 밟고서 삼층장 꼭대기로 올라간다. 발판 밟는 소리가 흥, 칫, 뿡으로 들리는 건 내 착각이었을 거다.


다시 달을 본다. 생각해 보니 보름달이 아니라 내가 빈 소원은 안 들어줄 거 같다. 이렇게 사람들이 바라는 소원으로 둥글게 차오르다가 완벽한 둥근 달이 될 때 그 순간 도달한 온전한 문장만이 달의 기운을 다 가져가는 건지도 모른다. 바로 그다음에 도달한 소원으로 둥근 달이 터지면서 기운을 독식한 문장이 세상에 뛰쳐나와 그 대상을 찾아가는 걸 수도. 적어도 누군가 한 명은 한 달에 한 번 소원을 이루겠네. 치사하게 정월 대보름과 추석에만 들어주려나? 흥, 칫, 뿡이다. 꿈속에서 커다란 고양이나 되어서 저 녀석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봐야지.


꼬리말) 8월 31일에 쓴 글인데 최근 쓴 글들에 이래저래 밀리다 이제야 올린다. 어제는 반가운 사람들을 보느라 달을 볼 생각을 못했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달이 안 보일 수도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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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서 고양이 화장실 치우고 까까를 챙겨준 후 소파에 드러눕는다. 솔솔 부는 선풍기 바람에 잠이 기웃거리다 스쳐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에 놀라 그대로 멈칫한다. 고양이가 캣타워 중간쯤 선반에 뛰어올라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중이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까까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저기 앉은 고양이 뒤태는 영락없는 코끼리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꼬리가 아니고 코를 흔들흔들. 나도 모르게 동요 한 구절을 마음속으로 흥얼거린다. 고양이를 보니 이번엔 자세를 바꿔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 노랫소리가 들렸나? 고양이, 화장실 갔다 와라. 이따 아침에 괜히 뛰어다니면서 나 깨우지 말고. 속으로 생각한 말이었는데, 알아들었는지 툭 뛰어내리더니 화장실로 향한다. 착한 녀석. 귀신 같은 녀석.


자세를 돌려 옆으로 눕자, 소파의 등받이가 바로 코앞에 있다. 밝은 베이지색. 내가 밤마다 누워 자는 자리는 어두운 베이지색으로 변하지 않을까? 그러면 안 되는데. 침이라도 흘리면 얼룩 생기지 않을까? 그러면 안 되는데. 내 발이 닿는 부분은 까매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고양이가 캣타워에서 소파로 뛰어내리면서 딛는 부분은 벌써 거뭇거뭇해졌구나. 참, 걱정도 팔자다. 이렇게 걱정을 머리에 이고 몸에 덮고 등에 지고 살아서 살이 안 찌는 건지도 몰라. 고양이가 야옹 하고 크게 한 번 부른다. 어이구, 쉬야 했어. 자알 했어. 내가 깨어있는데 자기가 화장실 다녀온 걸 알은체해주지 않으면 꼭 저렇게 한 번씩 광고를 한다. 낮에는 고양이와 아저씨의 한바탕 뜀박질이 있었겠지만, 새벽엔 이 정도로 마무리.


다시 똑바로 누워 자세를 잡는데 고양이가 캣타워 상단 아크릴 해먹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한 다리는 모서리에 걸쳐서 바깥쪽으로 뺀다. 건방진 녀석. 내가 잘못 교육을 했어. 어디 가서 욕먹지 말아야 하는데. 또 무슨 걱정거리가 있던가? 멈칫거리던 잠이 고양이를 피해 다시 달려든다.


걱정은 내일 아침에 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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