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말'을 읽기 전까지 제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뭐지?  어떤때엔 '타과'로 읽고, 어떤때엔 '타파'로 읽다가 '파타'로 읽기도 하고 내멋데로 읽으면서 이게 뭘까하면서 의아했다.  이젠 파과(破果)가 아닌 청춘기를 의미하는 파과(破瓜) 마저도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내 어휘력이 이정도로 딸렸구나.  작가가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까지 대출혈 자폭 서비스.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p.336). 작가의 자폭이 아니라 내가 자폭할 일이다.  간신히 하나 알아들었더니 이젠 오이瓜까지 이해를 하라고 말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냉장고 속 한 개의 과일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하게는 하나의 과일이었던 것. 수명이 다한 것. 분해되어 형태와 본질을 잃고 일부 흔적만이 자기가 왕년에는 그 무엇 또는 그 누구였음을 강력히 그러나 사뭇 안쓰럽게 주장하는 유기화합물에 대한 시선의 발아는.'(p.334)
 

 
  <위저드 베이커리>, <피그말리온 아이들>, <아가미>. 그 어떤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구병모'라고 커버에서 읽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어처구니 없지만 우타노 쇼고에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속 '세쓰코'가 떠올랐다.  물록 <파과>속 주인공이 훨씬 강인하고, '세쓰코'보다는 헐리우드의 액션영화 속 여배우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말이다.  노부인이 사라지고 사내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지하철에서 무릎에 성경을 펼쳐놓고 루페를 그 위에 올려 글을 읽는 노부인의 모습은 이질적이거나 신선한 광경이 아니었다. 겉모습은 평범한 60대 노부인이지만 실상은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여자, 한때는 '손톱'으로 불렸던 여인, ‘조각(爪角)’.
 
  수많은 표적을 40년 동안 단숨에 처리하며 어느덧 업계에선 대모님으로 불릴정도의 위치에 있지만, 그녀의 이런 삶은 열다섯 살에 더부살이하던 당숙의 집에서 쫓기듯 나와 ‘류’를 만나게 된 이후부터 시작이었다.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던 류.  어린 조각이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는 외국인병사의 목을 꼬챙이로 정확하게 관통시키는 것을 본 류는 조각을 거두고, 자신을 거두어 방역업자로 키운 류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조각은, 류가 가족이 잔혹하게 살해된 이후 그녀에게 더 이상 삶에서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자’라는 다짐을 내놓은 후, 그와 함께 철저히 지킬 것 없는 ‘혼자’의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렇게 무정하고 냉혹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온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삶의 희로애락에 무감각했으며, 여성으로서의 행복 역시 남의 이야기로 치부했다. 그렇게 철저한 단절과 고독으로 유지되던 황량한 삶에 변화가 다가온다.
 
  생각과 다른 신체적 노화로 은퇴의 시기를 고민하던 조각은 자신의 방역 인생의 오점을 남기게 되고, 방역업자들이 찾는 내과에서 자신의 비밀을 덮어준 강 박사와 그의 가족에게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라'하였건만, 몇번 본적도 없는 이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니 조각은 스스로도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제 와서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고 생겨나는 이 연민이라니, 살과 뼈에 대한 새삼스러운 이해라니. 노화와 쇠잔의 표지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관성 없음이라니.'  (p.177)  아홉 달 반을 배 속에서 키운 아이를 탯줄이 떨어지기도 전에 해외 입양 브로커에 손에 넘겼을때도 느끼지 못했던 연민을 타인에게서 느끼다니 조각에게 찾아온 노화는 이런것이 었을까?
 
  조각과 함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인물. 늘 푸제아 향을 흔적처럼 풍기고 다니면서 '자기 집 할머니 대하듯' 조각에게 깐죽거리는 '투우'.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가정부의 뒷모습을 기억하던 소년. 알약을 먹지 못하는 어린 그에게 꼼꼼하게 가루약을 챙겨주던 그녀가 마지막 남긴 말, 바로 '잊어버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살면서 방역업계까지 흘러든 투우는 그렇게 '손톱'이었던 조각을 만난다.  그렇게 그들의 운명은 줄 하나에 달려있었다. '대부분의 방역은 이런 식이다. 누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 누가 왜 누군가의 안에서 구제(驅除)해야 할 해충이나 소탕해야 할 쥐새끼가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또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된 데에 대해 카프카적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p.118).  이해할 수 없었던 일. 왜 투우가 강 박사를 통해 자신을 노리는지 알수 없었던 조각. 이유가 필요 없었다.  그저 살아야 하는 것이 이유였다.  아니, 그것이 이유였을까?  
 
'거기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p.222)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p.332 ~ 333)
 
  모호 했던 제목의 의미를 리뷰를 정리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작가가 흘려놓은 문장으로 다가 온 제목의 의미가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독자에게 준 수수께끼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제야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청춘의 파릇함이 터질 것 같은 육체 위에 새겨진 파과.  작가의 말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풋풋했던 과일이 냉장고 속에서 물컹거림으로 다가오는 것보다는 파릇파릇한 청춘이 좋으니 그냥 '破瓜네요.' 하고 이야기 하려다가도 또 다시 조각이 생각나면서 '破果일까?'하고 갸우뚱 거리다가 조각의 손톱을 보면서 또 다시 '破瓜였군'하고 되네이게 만드는 이 책은 구병모의 <파과>다.
  '작가의 말'을 읽기 전까지 제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뭐지?  어떤때엔 '타과'로 읽고, 어떤때엔 '타파'로 읽다가 '파타'로 읽기도 하고 내멋데로 읽으면서 이게 뭘까하면서 의아했다.  이젠 파과(破果)가 아닌 청춘기를 의미하는 파과(破瓜) 마저도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내 어휘력이 이정도로 딸렸구나.  작가가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까지 대출혈 자폭 서비스.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p.336). 작가의 자폭이 아니라 내가 자폭할 일이다.  간신히 하나 알아들었더니 이젠 오이瓜까지 이해를 하라고 말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냉장고 속 한 개의 과일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하게는 하나의 과일이었던 것. 수명이 다한 것. 분해되어 형태와 본질을 잃고 일부 흔적만이 자기가 왕년에는 그 무엇 또는 그 누구였음을 강력히 그러나 사뭇 안쓰럽게 주장하는 유기화합물에 대한 시선의 발아는.'(p.334)
 

 
  <위저드 베이커리>, <피그말리온 아이들>, <아가미>. 그 어떤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구병모'라고 커버에서 읽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어처구니 없지만 우타노 쇼고에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속 '세쓰코'가 떠올랐다.  물록 <파과>속 주인공이 훨씬 강인하고, '세쓰코'보다는 헐리우드의 액션영화 속 여배우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말이다.  노부인이 사라지고 사내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지하철에서 무릎에 성경을 펼쳐놓고 루페를 그 위에 올려 글을 읽는 노부인의 모습은 이질적이거나 신선한 광경이 아니었다. 겉모습은 평범한 60대 노부인이지만 실상은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여자, 한때는 '손톱'으로 불렸던 여인, ‘조각(爪角)’.
 
  수많은 표적을 40년 동안 단숨에 처리하며 어느덧 업계에선 대모님으로 불릴정도의 위치에 있지만, 그녀의 이런 삶은 열다섯 살에 더부살이하던 당숙의 집에서 쫓기듯 나와 ‘류’를 만나게 된 이후부터 시작이었다.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던 류.  어린 조각이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는 외국인병사의 목을 꼬챙이로 정확하게 관통시키는 것을 본 류는 조각을 거두고, 자신을 거두어 방역업자로 키운 류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조각은, 류가 가족이 잔혹하게 살해된 이후 그녀에게 더 이상 삶에서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자’라는 다짐을 내놓은 후, 그와 함께 철저히 지킬 것 없는 ‘혼자’의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렇게 무정하고 냉혹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온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삶의 희로애락에 무감각했으며, 여성으로서의 행복 역시 남의 이야기로 치부했다. 그렇게 철저한 단절과 고독으로 유지되던 황량한 삶에 변화가 다가온다.
 
  생각과 다른 신체적 노화로 은퇴의 시기를 고민하던 조각은 자신의 방역 인생의 오점을 남기게 되고, 방역업자들이 찾는 내과에서 자신의 비밀을 덮어준 강 박사와 그의 가족에게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라'하였건만, 몇번 본적도 없는 이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니 조각은 스스로도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제 와서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고 생겨나는 이 연민이라니, 살과 뼈에 대한 새삼스러운 이해라니. 노화와 쇠잔의 표지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관성 없음이라니.'  (p.177)  아홉 달 반을 배 속에서 키운 아이를 탯줄이 떨어지기도 전에 해외 입양 브로커에 손에 넘겼을때도 느끼지 못했던 연민을 타인에게서 느끼다니 조각에게 찾아온 노화는 이런것이 었을까?
 
  조각과 함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인물. 늘 푸제아 향을 흔적처럼 풍기고 다니면서 '자기 집 할머니 대하듯' 조각에게 깐죽거리는 '투우'.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가정부의 뒷모습을 기억하던 소년. 알약을 먹지 못하는 어린 그에게 꼼꼼하게 가루약을 챙겨주던 그녀가 마지막 남긴 말, 바로 '잊어버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살면서 방역업계까지 흘러든 투우는 그렇게 '손톱'이었던 조각을 만난다.  그렇게 그들의 운명은 줄 하나에 달려있었다. '대부분의 방역은 이런 식이다. 누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 누가 왜 누군가의 안에서 구제(驅除)해야 할 해충이나 소탕해야 할 쥐새끼가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또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된 데에 대해 카프카적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p.118).  이해할 수 없었던 일. 왜 투우가 강 박사를 통해 자신을 노리는지 알수 없었던 조각. 이유가 필요 없었다.  그저 살아야 하는 것이 이유였다.  아니, 그것이 이유였을까?  
 
'거기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p.222)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p.332 ~ 333)
 
  모호 했던 제목의 의미를 리뷰를 정리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작가가 흘려놓은 문장으로 다가 온 제목의 의미가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독자에게 준 수수께끼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제야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청춘의 파릇함이 터질 것 같은 육체 위에 새겨진 파과.  작가의 말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풋풋했던 과일이 냉장고 속에서 물컹거림으로 다가오는 것보다는 파릇파릇한 청춘이 좋으니 그냥 '破瓜네요.' 하고 이야기 하려다가도 또 다시 조각이 생각나면서 '破果일까?'하고 갸우뚱 거리다가 조각의 손톱을 보면서 또 다시 '破瓜였군'하고 되네이게 만드는 이 책은 구병모의 <파과>다.

  '작가의 말'을 읽기 전까지 제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뭐지?  어떤때엔 '타과'로 읽고, 어떤때엔 '타파'로 읽다가 '파타'로 읽기도 하고 내멋데로 읽으면서 이게 뭘까하면서 의아했다.  이젠 파과(破果)가 아닌 청춘기를 의미하는 파과(破瓜) 마저도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내 어휘력이 이정도로 딸렸구나.  작가가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까지 대출혈 자폭 서비스.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p.336). 작가의 자폭이 아니라 내가 자폭할 일이다.  간신히 하나 알아들었더니 이젠 오이瓜까지 이해를 하라고 말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냉장고 속 한 개의 과일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하게는 하나의 과일이었던 것. 수명이 다한 것. 분해되어 형태와 본질을 잃고 일부 흔적만이 자기가 왕년에는 그 무엇 또는 그 누구였음을 강력히 그러나 사뭇 안쓰럽게 주장하는 유기화합물에 대한 시선의 발아는.'(p.334)
 

 
  <위저드 베이커리>, <피그말리온 아이들>, <아가미>. 그 어떤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구병모'라고 커버에서 읽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어처구니 없지만 우타노 쇼고에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속 '세쓰코'가 떠올랐다.  물록 <파과>속 주인공이 훨씬 강인하고, '세쓰코'보다는 헐리우드의 액션영화 속 여배우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말이다.  노부인이 사라지고 사내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지하철에서 무릎에 성경을 펼쳐놓고 루페를 그 위에 올려 글을 읽는 노부인의 모습은 이질적이거나 신선한 광경이 아니었다. 겉모습은 평범한 60대 노부인이지만 실상은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여자, 한때는 '손톱'으로 불렸던 여인, ‘조각(爪角)’.
 
  수많은 표적을 40년 동안 단숨에 처리하며 어느덧 업계에선 대모님으로 불릴정도의 위치에 있지만, 그녀의 이런 삶은 열다섯 살에 더부살이하던 당숙의 집에서 쫓기듯 나와 ‘류’를 만나게 된 이후부터 시작이었다.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던 류.  어린 조각이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는 외국인병사의 목을 꼬챙이로 정확하게 관통시키는 것을 본 류는 조각을 거두고, 자신을 거두어 방역업자로 키운 류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조각은, 류가 가족이 잔혹하게 살해된 이후 그녀에게 더 이상 삶에서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자’라는 다짐을 내놓은 후, 그와 함께 철저히 지킬 것 없는 ‘혼자’의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렇게 무정하고 냉혹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온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삶의 희로애락에 무감각했으며, 여성으로서의 행복 역시 남의 이야기로 치부했다. 그렇게 철저한 단절과 고독으로 유지되던 황량한 삶에 변화가 다가온다.
 
  생각과 다른 신체적 노화로 은퇴의 시기를 고민하던 조각은 자신의 방역 인생의 오점을 남기게 되고, 방역업자들이 찾는 내과에서 자신의 비밀을 덮어준 강 박사와 그의 가족에게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라'하였건만, 몇번 본적도 없는 이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니 조각은 스스로도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제 와서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고 생겨나는 이 연민이라니, 살과 뼈에 대한 새삼스러운 이해라니. 노화와 쇠잔의 표지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관성 없음이라니.'  (p.177)  아홉 달 반을 배 속에서 키운 아이를 탯줄이 떨어지기도 전에 해외 입양 브로커에 손에 넘겼을때도 느끼지 못했던 연민을 타인에게서 느끼다니 조각에게 찾아온 노화는 이런것이 었을까?
 
  조각과 함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인물. 늘 푸제아 향을 흔적처럼 풍기고 다니면서 '자기 집 할머니 대하듯' 조각에게 깐죽거리는 '투우'.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가정부의 뒷모습을 기억하던 소년. 알약을 먹지 못하는 어린 그에게 꼼꼼하게 가루약을 챙겨주던 그녀가 마지막 남긴 말, 바로 '잊어버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살면서 방역업계까지 흘러든 투우는 그렇게 '손톱'이었던 조각을 만난다.  그렇게 그들의 운명은 줄 하나에 달려있었다. '대부분의 방역은 이런 식이다. 누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 누가 왜 누군가의 안에서 구제(驅除)해야 할 해충이나 소탕해야 할 쥐새끼가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또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된 데에 대해 카프카적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p.118).  이해할 수 없었던 일. 왜 투우가 강 박사를 통해 자신을 노리는지 알수 없었던 조각. 이유가 필요 없었다.  그저 살아야 하는 것이 이유였다.  아니, 그것이 이유였을까?  
 
'거기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p.222)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p.332 ~ 333)
 
  모호 했던 제목의 의미를 리뷰를 정리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작가가 흘려놓은 문장으로 다가 온 제목의 의미가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독자에게 준 수수께끼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제야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청춘의 파릇함이 터질 것 같은 육체 위에 새겨진 파과.  작가의 말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풋풋했던 과일이 냉장고 속에서 물컹거림으로 다가오는 것보다는 파릇파릇한 청춘이 좋으니 그냥 '破瓜네요.' 하고 이야기 하려다가도 또 다시 조각이 생각나면서 '破果일까?'하고 갸우뚱 거리다가 조각의 손톱을 보면서 또 다시 '破瓜였군'하고 되네이게 만드는 이 책은 구병모의 <파과>다.
  '작가의 말'을 읽기 전까지 제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뭐지?  어떤때엔 '타과'로 읽고, 어떤때엔 '타파'로 읽다가 '파타'로 읽기도 하고 내멋데로 읽으면서 이게 뭘까하면서 의아했다.  이젠 파과(破果)가 아닌 청춘기를 의미하는 파과(破瓜) 마저도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내 어휘력이 이정도로 딸렸구나.  작가가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까지 대출혈 자폭 서비스.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p.336). 작가의 자폭이 아니라 내가 자폭할 일이다.  간신히 하나 알아들었더니 이젠 오이瓜까지 이해를 하라고 말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냉장고 속 한 개의 과일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하게는 하나의 과일이었던 것. 수명이 다한 것. 분해되어 형태와 본질을 잃고 일부 흔적만이 자기가 왕년에는 그 무엇 또는 그 누구였음을 강력히 그러나 사뭇 안쓰럽게 주장하는 유기화합물에 대한 시선의 발아는.'(p.334)
 


 
  <위저드 베이커리>, <피그말리온 아이들>, <아가미>. 그 어떤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구병모'라고 커버에서 읽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어처구니 없지만 우타노 쇼고에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속 '세쓰코'가 떠올랐다.  물록 <파과>속 주인공이 훨씬 강인하고, '세쓰코'보다는 헐리우드의 액션영화 속 여배우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말이다.  노부인이 사라지고 사내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지하철에서 무릎에 성경을 펼쳐놓고 루페를 그 위에 올려 글을 읽는 노부인의 모습은 이질적이거나 신선한 광경이 아니었다. 겉모습은 평범한 60대 노부인이지만 실상은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여자, 한때는 '손톱'으로 불렸던 여인, ‘조각(爪角)’.
 
  수많은 표적을 40년 동안 단숨에 처리하며 어느덧 업계에선 대모님으로 불릴정도의 위치에 있지만, 그녀의 이런 삶은 열다섯 살에 더부살이하던 당숙의 집에서 쫓기듯 나와 ‘류’를 만나게 된 이후부터 시작이었다.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던 류.  어린 조각이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는 외국인병사의 목을 꼬챙이로 정확하게 관통시키는 것을 본 류는 조각을 거두고, 자신을 거두어 방역업자로 키운 류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조각은, 류가 가족이 잔혹하게 살해된 이후 그녀에게 더 이상 삶에서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자’라는 다짐을 내놓은 후, 그와 함께 철저히 지킬 것 없는 ‘혼자’의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렇게 무정하고 냉혹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온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삶의 희로애락에 무감각했으며, 여성으로서의 행복 역시 남의 이야기로 치부했다. 그렇게 철저한 단절과 고독으로 유지되던 황량한 삶에 변화가 다가온다.
 
  생각과 다른 신체적 노화로 은퇴의 시기를 고민하던 조각은 자신의 방역 인생의 오점을 남기게 되고, 방역업자들이 찾는 내과에서 자신의 비밀을 덮어준 강 박사와 그의 가족에게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라'하였건만, 몇번 본적도 없는 이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니 조각은 스스로도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제 와서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고 생겨나는 이 연민이라니, 살과 뼈에 대한 새삼스러운 이해라니. 노화와 쇠잔의 표지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관성 없음이라니.'  (p.177)  아홉 달 반을 배 속에서 키운 아이를 탯줄이 떨어지기도 전에 해외 입양 브로커에 손에 넘겼을때도 느끼지 못했던 연민을 타인에게서 느끼다니 조각에게 찾아온 노화는 이런것이 었을까?
 
  조각과 함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인물. 늘 푸제아 향을 흔적처럼 풍기고 다니면서 '자기 집 할머니 대하듯' 조각에게 깐죽거리는 '투우'.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가정부의 뒷모습을 기억하던 소년. 알약을 먹지 못하는 어린 그에게 꼼꼼하게 가루약을 챙겨주던 그녀가 마지막 남긴 말, 바로 '잊어버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살면서 방역업계까지 흘러든 투우는 그렇게 '손톱'이었던 조각을 만난다.  그렇게 그들의 운명은 줄 하나에 달려있었다. '대부분의 방역은 이런 식이다. 누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 누가 왜 누군가의 안에서 구제(驅除)해야 할 해충이나 소탕해야 할 쥐새끼가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또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된 데에 대해 카프카적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p.118).  이해할 수 없었던 일. 왜 투우가 강 박사를 통해 자신을 노리는지 알수 없었던 조각. 이유가 필요 없었다.  그저 살아야 하는 것이 이유였다.  아니, 그것이 이유였을까?  
 
'거기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p.222)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p.332 ~ 333)
 
  모호 했던 제목의 의미를 리뷰를 정리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작가가 흘려놓은 문장으로 다가 온 제목의 의미가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독자에게 준 수수께끼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제야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청춘의 파릇함이 터질 것 같은 육체 위에 새겨진 파과.  작가의 말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풋풋했던 과일이 냉장고 속에서 물컹거림으로 다가오는 것보다는 파릇파릇한 청춘이 좋으니 그냥 '破瓜네요.' 하고 이야기 하려다가도 또 다시 조각이 생각나면서 '破果일까?'하고 갸우뚱 거리다가 조각의 손톱을 보면서 또 다시 '破瓜였군'하고 되네이게 만드는 이 책은 구병모의 <파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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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신 정이 2 -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원작 소설
권순규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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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조화가 오행에서 비롯되었고 인간의 삶 또한 오행이 결정짓는다 하였으니 그릇을 빚는 것 또한 오행에서 비롯되는 법이리라.  태토는 흙土, 유약은 물水, 안료는 금金, 가마는 불火, 장작은 나무木, 하여 오행五行이라. (p.7)

 

  흙을 빚어 내는 것이 오행임을 스승 문사승을 통해 배우면서 정이는 아이에서 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비의 뒤를 따라 분원에 들어가기를 꿈꾸는 정이.  분원에 들어갈때까지 정이는 문사승을 통해서 아비를 만나고 흙과 그릇을 만났다.  남에 시간은 어찌 그리도 빨리 지나가는지...  아비는 조선의 최고 사기장이였기에 죽었고, 아비를 죽인이는 정이가 아비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찾아온다 했다. 그를 만나려면 아비만한 실력이 있어야만 한다.  그를 만나고 분원에 들어가려면 배우고 또 배워야만 한다.  정이에겐 무엇이 남아있는걸까?  태도도 광해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선의 흙으로 빚은 그릇으로 아비를 떠올릴 뿐이었다.

 

 

  역당이든 아니든 한 뜻으로 무리를 지어 움직인다면 역적이라고 하였다.  정여립이 역당도 역적도 아님을 알기에 태도는 정여립곁에 있고 싶었다. 태도가 가진 칼과 활은 정여립을 따라 조선 땅으로 넘어오는 왜구에게 검날을 보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가 않는다.  태도가 믿고 의지할 이가 생겨 목숨을 바치고 싶었는데, 역당이요, 역적이란다.  아닌걸 알면서도 선조에 지시로 사찰을 온 광해가 태도를 막아서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만 해결될 문제.  분명 백성이 먼저여야만 할 사람들이 사리사욕에 앞서 백성은 보이지도 않는 사실이 가슴이 무너지게 아팠다.  그렇게 태도는 효수된 정여립의 목을 올려다 보며, 정여립 앞에 무릅 꿇는 광해를 주군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조선의 왕은 명나라 사신에게도 벌벌 기어야하는 존재였던가?  사신의 차완 트짐은 변덕이 죽끓듯 하는 선조를 자극했고, 중국에서 가지고 온 차완과 똑같이 만들겠다는 호언은 불똥이 되어 광해에게 날아왔다.  그만한 실력을 가진이.  을담이 죽고 을담의 스승 이었던 문사승은 그렇게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정이가 문사승을 대신해 분원으로 들어오게 된다. 여인이 들어설 수 없는 곳 분원. 지 어미를 닮고 아비를 닮아 어찌되었던 흘러 들어왔을 곳이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곳이라 해도 말이다.  텃세뿐이면 괜찮겠지만, 분원사람들에게 정이는 어디서 왔는지 알수 없는 돌이었다.  아무리 을담의 여식이라 해도 여인은 여인이었다.  왕명이 있고 왕자가 명을 내려도 가마를 여인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생 그들은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으니까.

 

  사건은 절정을 행해 나아간다.  과연 정이는 명나라 차완과 똑같은 차완을 만들 수 있을까?  모양은 같게 만든다 해도 온도의 변화는 어떻게 찾아내야만 하는 것일까?  모두들 앞다투어 정이를 막고 있는 곳. 절대 여인은 들어설수 없다고 외치는 곳.  같은 것은 한배에서 나왔다고 했던가?  명나라 가마와 같은 가마를 만들어라... 어떻게?  가능할까?  발조차 들이지 못하는 곳에서...  해결은 된다.  주인공이니까.  기가 막히게 해결을 한다. 이제 절정을 찍었으니 내리막으로 내려와야하건만 절대 그럴수가 없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야 하니까.  <불의 여신 정이 1.2>권이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사건이 터지고 그속에 정이가 들어가 있으니 이게 뭔가 싶었다.  하나를 해결하고 나니 세자 책봉문제로 트집을 잡는 사신이 보이고, 그것을 해결하니 이번엔 선조에 허언이 또 발목을 잡는다. 어떻게든 되겠ㅈ 했건만, 강천이 도기들을 박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타난 자색자기.

 

  십여년전 초선이 만들어낸 반자색 자기가 아닌 자색자기가 정이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자기가 이들 모녀에 손에서는 왜이리 자연스럽게 만들어 지는지... 그러니 픽션이다.  드라마 원작 소설이다.  몇부까지 나올지도 모르겠고, 드라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찾아 보지 않는 덕에 드라마의 전개 내용도 잘 모른다.  어쨌든, 이야기의 흐름은 이책이 꽤나 여러권 나올 듯 싶다. 두권으로 딱 끝냈으면 좋았을텐데, 이어지는 책이라 맥이 풀리는 감도 있지만,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것 역시 사실이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지?  백파선에 관련된 다른 책들도 드라마와 함께 나왔던데, 어떻게 일본까지 건너가게 된것인지 궁금해져서 다음권을 또 읽게 생겼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다음권을 말이다.  몇줄에 역사적 사실에 뼈를 붙이고 살을 채우는 작가의 능력에 또 한번 감탄하면서 궁금증만 하늘을 찌르고 있는 그런 밤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해주고있는 백파선의 역사적 기록 :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임진왜란 중에 남편과 함께 일본에 끌려와 도자기를 만들었으며, 1618년에 남편인 심해종전(여기서 심해는 김해를 의미한다)이 사망하자 자신의 아이와 함께 아리타로 옮겨와 백자기를 생산한다. 1656년 사망하였으며, 1705년에 증손자가 그녀를 기리는 법탑을 세웠다. 기록에 따르면 온화하고 느긋한 인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960명이나 되는 도공들의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아리타 도예의 어머니로 불릴 만큼 자기 생산에 전 생애를 바쳤다고 한다. 저명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소설 『용비어천가(龍秘御天歌)』가 그녀의 삶을 다루고 있으며, 이는 다시 극단 뮤지컬 「백파」로 제작되어 일본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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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 유자광 vs 김일손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9
김경수 지음, 고영미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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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공화국을 연달아 읽었다. '연산군 vs 박원종'에 법정 싸움을 읽은 후 읽은 내용이 '유자광 vs 김일손'이 벌이는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이야기다.  앞에서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한 '조의제문'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었었는데,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들이 교집합을 이루면서도 글을 쓴 작가가 달라서 새로운 관점으로 사건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역사공화국>의 매력이다.  한 두권만 읽어도 다각면으로 하나의 사건을 보게 되니 말이다.  이번호는 조선시대에 정치가 이뤄지는 모든 자리에 참석해서 직필을 목숨처럼 여겨던 사관에 대한 이야기다.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쓰는 직필과 강한 윤리성, 비판 정신을 두루 갖춘 사관을 통해 막중한 역사적 책임이 붓 끝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들에 이야기 중 가장 굵직한 것이 김일손과 '무오사화'일 것이다.

 

 

 

 

  태종이 사냥을 나갔다.  왕의 사냥 놀이인 만큼 고위 관료는 물론이고 궁녀와 내시까지 대규모 인원이 사냥터에 동행했다.  그런데 태종이 사냥터에 도착해서 말에서 내리다가 떨어지고 말았다.  말에서 떨어진 태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곳 사냥터에 사관이 따라 왔는가.  내가 말에서 떨어진 것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다.   - 태종실록 중에서

 

 

 사관은 태종이 말에서 떨어진 사실은 물론, 그걸 기록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까지 낱낱이 사초에 기록했으니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하늘과 사관뿐이다'라는 태종의 고백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록에는 국왕이 행한 정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무슨일을 했는지 소상히 알 수 있다.  거기에 사관의 역사적인 평가까지 들어 있어서 정선의 정치와 경제, 여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책이다.  실록은 조선 역사를 꿰뚫어 보고, 양반 관료들의 글쓰기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 낙타나 있었는지, 안경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도 실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번 화는 유자광대 김일손의 공방을 통해서 오늘날의 정치가들, 신문사와 기자의 역할을 생각하게 만들면서 그들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사관은 어떻게 뽑을까?   사관은 문관에 급제한 인물로 역사를 께뚫어 보는 눈과 역사를 서술하는 능력,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판단 능려이 있어야 했으면 기본적으로 본인은 물론 친가와 처가 모두 문제가 없어야 사관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사관을 뽑을 때는 가문의 이력까지 낱낱이 훑은 후 조상 중에 불법으로 재산을 모았거나 서자 출신이 있으면 임명되지 못했고, 미혼자는 결혼한 뒤 처가 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기에 뽑지 않았다.  물론 요행으로 사관으로 뽑힌 사람도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정직하지 않은 이는 사관이 될 수 없었다.  사관은 입시와 사초의 작성, 시정기의 작성을 주요 하게 다뤘는데, 입시란 사관이 정치가 벌어지는 모든 자리에 참석하여 관련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고, 사초는 실록의 초안으로 사관의 비평까지 들어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정기는 관청의 정치 일기로 볼 수 있는데, 사초와 달리 사관의 개인적인 판단이나 평가가 없는 자료로 당시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열 쇠 중 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실록'이라고 약칭하기도 하는데, <연산군일기>나 <광해군일기>도 모두 실록이다.  연산군, 광해군처럼 왕위에서 쫓겨난 왕들의 실록에는 정식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일기'라는 이름을 붙인다.  <조선왕조실록>은 거의 5백년 가까운 왕조의 기록이 하나의 체계 아래 기록된 사실은 세계 역사상 드문 일이다.  뿐만 나니라 세종 이후부터 금속 활자나 목활자로 된 인쇄물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  동아시아 대부분의 실록은 한두 질에 그쳤으므로 필사본으로 만족했는데, 유독 <조선왕조실록>만 후세에 영구히 전하려는 의식 아래 네다섯 곳에 나누어 보관했기 때문에 활자 인쇄를 했다.   조선 왕조 5백년 역사 동안 얼마나 많은 사관들이 있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것이다.  그런데 그 분들중 개인적인 이득을 챙기려고 사초를 누출한 사관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은 열리 정치를 지향하고 제 몫을 올곧이 해 내려는 위대한 사관들이 있었다는 증거다.  제 목숨만큼인 귀중하게 여겼던 사초, 이것을 통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이 탄생했다고 하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의 경우이지만 왕조의 정당성이나 당파의 이해 관계에 따라 역사적인 사실이 왜곡되기도 했다.  조선 건국기의 사실이나, 중기 이후 당쟁이 전개되던 시기에 편찬된 것들이 그런데, 집권 당파의 잏관계에 따라 서술 내용이 달라지거나 이미 편찬된 것을 고치면서 '수정 실록', '개수 실록', '보수 실록'의 예도 있지만, 실록 편찬은 현재군주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대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는 사업이었다.  따라서 굳건한 의지 없이는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실록에는 서놩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정치권의 힘 있는 인사들 모두 상세하게 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편찬에 참여해서 직필을 견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오사화'는 김일손이 사초에 자신의 스승이 지은 '조의제문'을 실은 것으로 야기되어졌는데, 사관의 우두머리였던 이극돈이 자신의 비리와 '조의제문'이 실린 사초를 보고 유자광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비롯되기 시작했다.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 임금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글이라는 '조의제문'.  세조 임금을 비난하고 국가를 위태롭게 한 반역자 일당이라며 연산군은 김일손을 죽이게 되는 '무오사화'.  이번 화에서 다루는 문제는 연산군의 폭정이 아닌, 봐서는 안되는 '사초'에 글을 임금에게 보였다는 것에서 부터 시작될 것이다.  열린 정치를 위한 길은 정도를 지키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역사 속에서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 총 1,893권 888책에 수록된 실록이 명맥을 유지한것은 임금과 사관이 함께 정도를 지켰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 올곧은 가치관과 신념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존경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그들에 글에 칼을 들이밀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역사가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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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신 정이 1 -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원작 소설
권순규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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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타의 은인이시여, 수호신이시여, 도자기가 번성하도록 지켜주소서! - 일본 백파선을 기린 법탑의 주지가 매일 읊는 독경 중-

 

  책 띠지에 적혀 있는 글이다. 백파선이 누구이길래 아리타의 은인, 수호신이라고 하는 것일까?  책 소개글을 읽어보니 일본 내 명품 도자기 생산 지역인 아리타는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에서 잡혀온 수백 명의 도공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이들을 이끌고 이곳에 정착한 이가 바로 여성 도공인 백파선이다. 최근 호온지에 그녀를 기리는 법탑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96세까지 장수했으며, 백발이 성성함에도 활달하고 리더십이 강하며 명품 백자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그녀의 이름을 '백파선'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본명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전, 조선에서의 삶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이자 일본 도자기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불의 여신임에는 틀림이 없다.  권순규 작가는 이 미지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MBC 월화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와 함께 기획되어졌다고 이야기 한다.  드라마와 함께 보고 읽는 이야기, 어떤 이야기들이 풀어져 나올까?

 

 

 

  끊임없는 악몽으로 힘들어하는 선조에게 옛부터 명물로 알려진 자색 자기가 올려졌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다는 자색자기를 만든 이는 분원을 책임지는 변수도 사기장도 아닌 여인이었다.  게다가 온전한 자색이 아닌 반자색.  진귀한 명물이라 여겨지다가도 두려운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자기가 명물인지 흉물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계속되는 선조의 악몽은, 이 모든것에 근원이 반자색 자기 때문이라는 국무에 말에 비밀리에 자기를 만든 여인, 초선을 죽일 것을 명한다. 그리고 분원의 수토감관을 뽑기 위해 두 변수가 경합을 벌리게 된다.  수토감관의 자리에 자신의 사람이 오르기를 바라는 사옹원 제조 최충헌은 변수 이강천을 불러, 선조가 총애하는 공빈의 병이 매화꽃에 나쁜 반응을 일으키니 이를 이용하라고 알려주면서 을담을 사모하는 초선에게 매화꽃을 넣은 유약을 알려준다.

 

 초선이 강천에 아이를 가진것을 알기 전까지는 사모하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화려한 자기와 수수한 자기를 내놓는 강천과 을담. 공빈의 손이 을담의 자기를 들어올리고 찻물이 우러나면서 승부는 을담에서 강천으로 뒤바껴 버렸다.  '낭천 어른'이라는 호칭을 듣기 위해, 자신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을담이 강천은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기에 을담을 사모하는 초선을 그냥 둘수가 없었다.  야심이 있는 사내에게 사기장이가 될수 없는 여인이 자색자기를 만든것을 허용할 수가 없었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줄 알았다.  초선이 강천에 눈에서 사라져 버렸음에 감사할 뿐이었는데, 초선의 아이가 을담을 아비라 부르며 자라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어디에도 초선은 없었으니까. 초선이 아이를 낳았으리라 생각도 못했으니까.  언제까지 초선의 아이를 을담의 아이로 여기게 될지는 알수가 없다.

 

 을담의 아이로 자란 아이, 정이.  어미를 닮고 아비의 재주를 어깨너머로 배운 아이는 어미처럼 고왔다.  그 아이가 선조에 아들을 만나게 된다. 공빈의 죽음을 은연중에 광해에 탓으로 돌리는 선조.  어미에 사랑도 아비에 사랑도 항상 배고프기만 한 왕자에게 따뜻한 아이의 손길은, 자신을 믿어주고, 어미를 찾아달라는 아이의 외침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제향소에 있는 태조발원문자기가 임해에 시샘으로 산산히 부서졌을 때, 그냥 있었어야 했다.  산산히 부서진 사금파리를 들고 을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광해는 을담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쳤던 아이, 정이를 만난다.  깬것도 복원하는 것도 죄가되어 버리는 그릇.  그 그릇이 어미를 그리워하는 정이에 맘으로 인해서 복원이 되었다.  감쪽같이 복원이 된 자기.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광해가 을담을 찾아간 것을 안 강천은 파자된 자기의 복원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얻은 '낭청'의 자리이고 분원의 수장의 자리였던가.

 

  픽션이다.  전란을 앞둔 조선의 정치적 상황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어 촘촘하게 묘사하고 있고 임해군과 광해군, 신성군의 세자 책봉을 둘러싼 왕위 다툼과 신료들간의 비열한 암투, 선조의 기행과 명국의 견제 등에 정사가 보여지고 있지만 조선시대 사기제조장인 분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권순규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픽션이다.  조선 최고에 사기장이었기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을담.  아비에 뒤를 잇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아비의 스승에 제자가 된 정이.  자신을 거두어준 을담에 은혜를 갚기 위해서 어린누이를 지키고자 하는 태도, 그리고 어느새 가슴에 정이가 들어와 버린 광해.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드라마에선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책은 먼저 풀어내고 있어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지만 그 또한 드라마에 매력일 것이다.  책과 드라마중 어떤것이 더 짜릿하게 다가올지는 조금더 기다려봐야 할것이다.  아직은 이야기에 간만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다음 이야기... 을담에 죽음 이후 홀로 남은 정이에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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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소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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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 아마존 최장기 베스트 셀러. '절대로 독자를 지루하게 하면 안 된다'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는 독일작가, 얀 제거스가 선사하는 스럴러. 2005년 프랑크푸르트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라 지금까지도 읽히는 스테디셀러다.  스릴러를 집필하기 전부터 에세이와 문학비평으로 많은 팬을 확보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그에 말처럼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제목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너무 예쁜 소녀>이지만, 읽다보면 소녀보다는 고독한 수사관 마탈러가 더 눈에 들어오고, 이 주인공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마탈러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선보이며 스릴러 문학의 새로운 거장이 되었단다.

 

 

 

  단편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가족의 자동차 사고와 사라져 버린 딸, 기억을 잃은 소녀에 등장. 소녀를 돌보던 미망인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린 소녀, 소녀를 태운 자동차. 드문드문 드러나는 이야기와 함께 십년전에 죽은 배우자를 그리고 있는 인물이 나온다.  너무나 사랑하다 사고사로 죽은 배우자와 그 후에 인생.  '마탈러'라는 이름을 '마틸라'로 읽고는 새로운 여형사 시리즈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니다.  한 남자에 순애보다.  남자에 이야기 뒤에 드문드문 보여뒀던 소녀에 이야기가 또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  소녀에 이름은 알수 없지만, 농장에선 마농이라고 불렸던 이 소녀가 숨이 막힐 정도로 예쁘단다.  17세.  그렇지 않았도 청춘에 아우라로 숨막히게 고운 그 나이에 소녀가 예쁘기까지 하단다.  그래서 제목이 <너무 예쁜 소녀>다.  '너무'라는 단어는 어떤 단어에 수식어로 쓰여지느냐에 따라 어감이 달라지지만,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뜻이 예쁘다는 단어와 함쳐지니 묘한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너무 예쁜 소녀.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미국 대통령의 방문으로 도시 전체가 삼엄한 프랑크푸르트 도시 숲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됐다.  난리가 아닐 수 없다.  미국대통령이 온다고 검문 검색이 도를 넘고 있는데, 잔인한 살인이라니 윗선에서 얼마나 압박을 했겠는가?  죽은남자의 신분을 밝혀내야하는데, 쉬운일이 아니다. 도대체 누군인지 알수가 없다.  그런데 이 남자 결혼하기 전에 총각파티를 떠난 사람이란다. 게다가 성관계를 한 흔적까지 나왔다.  결혼을 바로 앞둔 사람이 이게 말이 될까 하지만, 유럽 스릴러 뿐 아니라 일반적인 유럽 소설들에 이런 내용이 비일비재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그들에 가치관이 우리와는 다른 것 같다.  어쨌든 이 남자가 친구둘과 함께 나갔다는데, 다른이들은 알 수가 없다.  미궁일까 하고 있는 찰라에, 또 한명이 사건 현장 근처 호수에서 발견된다. 자동차 트렁크안에 시체역시 잔인하기가 이를데 없다.  점점 미궁에 빠지는 사건이 주유소 영수증과 함께 풀리는 것 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남자 세 명과 너무 예쁜 소녀가 타고 있던 차에 주유를 했다는 주유소를 찾아낸 마탈러. 뭘하고 다니는걸까 싶을 정도로 빠릿빠릿하거나 열정적인것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이는 마탈러는 몇번의 움직임과 전화만으로도 사건에 중심으로 한발 한발 다가서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남자의 순애보는 고독한 수사관의 전형을 보여주는것 같다가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린 친구에게 자신의 감정을 확립하지도 못한 상태로 빠져있다.  몇번이나 봤다고 매일 눈뜰때마다 죽은 아내를 기억해내려고 애쓰던 남자가 어느 순간부터 카페에서 몇번 만난 테레자를 떠올리고 있으니, 이걸 참 뭐라 해야할까?  십여년을 죽은 아내만 기억하려 노력하는 것도 이상하기 하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뀌니 그 또안 배신을 당한것 처럼 느껴진다. 난 십여년 이상 마탈러를 본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저 몇일전에 만난 마탈러였고, 마탈러에 순애보에 빠져있다 책 몇장 넘기고는 마탈러에 움직이는 사랑을 목격하게 된 사람이니까 어쩔 수가 없다.

 

  작가에 호언처럼 절대 지루하지 않다.  지루하지는 않는데 읽으면서 도통 알수가 없다. 마농의 정신세계는 어린시절부터 이상하긴 했지만 말이다.  누구의 말이 옳다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막연한 소문들만이 안개처럼 퍼져있을 뿐이다.  이런식이다.  '친부가 어린딸을 성폭행 했데요' 정말?  소문인지 진실인지 알수가 없다.  다만, 소녀에 행동이 그런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할 뿐이다. '미녀 살인자가 연쇄살인을 저질렀어요.'  이것도 사실인가?  소녀에 미모에 반해 등장하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내. 단지 미모가 월등하다는 것만으로 이럴 수 있다는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세상엔 이상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니 그들에 세계를 내가 알수 있겠는가?  <너무 예쁜 소녀>는 . 자브뤼겐에서 일어났던 교통사고 현장에서 사라진 소녀 마리 루이제 가이슬러라는 한 소녀를 통해서 드러내놓고 피를 낭자하거나 살인을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스물스물 오싹한 공포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끔찍한 시체에 발견과 함께 그와 함께 했던 인물들이 용의 선상에 올랐었다.  그 인물 역시 주검으로 나타나면서 또 다른 인물이 용의 선상에 오른다.  끊임없이 다른 인물들을 이야기하다가 마농이라 불리던 마리 루이제 가이슬러까지 나오게 되지만, 마농이 잡히자 마자 또 다른 인물이 자신이 범인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처음엔 제목부터 이 소녀를 지목하고 있어서 마농을 의심하고 있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인물에 출현에 안심을 하고 있는걸 발견을 하고 말았다.  모든 내용을 들여다 보고 있는 독자 조차도 순수하고 여린 모습으로 다가오는 이 소녀에게서 악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마탈러처럼 소녀가 범인이 아니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스릴러의 새로운 거장이라 불리고 있는 얀 제거스가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는 소녀가 아니라 소녀를 보고 있는 눈들일지도 모르겠다.  동경이 호기심이 되고 공포가 되는 그런 눈들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마농이 만나게 되는 새로운 세계와 마탈러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인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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