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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신 정이 1 -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원작 소설
권순규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6월
평점 :
아리타의 은인이시여, 수호신이시여, 도자기가 번성하도록 지켜주소서! - 일본 백파선을 기린 법탑의 주지가 매일 읊는 독경 중-
책 띠지에 적혀 있는 글이다. 백파선이 누구이길래 아리타의 은인, 수호신이라고 하는 것일까? 책 소개글을 읽어보니 일본 내 명품 도자기 생산 지역인 아리타는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에서 잡혀온 수백 명의 도공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이들을 이끌고 이곳에 정착한 이가 바로 여성 도공인 백파선이다. 최근 호온지에 그녀를 기리는 법탑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96세까지 장수했으며, 백발이 성성함에도 활달하고 리더십이 강하며 명품 백자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그녀의 이름을 '백파선'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본명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전, 조선에서의 삶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이자 일본 도자기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불의 여신임에는 틀림이 없다. 권순규 작가는 이 미지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MBC 월화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와 함께 기획되어졌다고 이야기 한다. 드라마와 함께 보고 읽는 이야기, 어떤 이야기들이 풀어져 나올까?

끊임없는 악몽으로 힘들어하는 선조에게 옛부터 명물로 알려진 자색 자기가 올려졌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다는 자색자기를 만든 이는 분원을 책임지는 변수도 사기장도 아닌 여인이었다. 게다가 온전한 자색이 아닌 반자색. 진귀한 명물이라 여겨지다가도 두려운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자기가 명물인지 흉물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계속되는 선조의 악몽은, 이 모든것에 근원이 반자색 자기 때문이라는 국무에 말에 비밀리에 자기를 만든 여인, 초선을 죽일 것을 명한다. 그리고 분원의 수토감관을 뽑기 위해 두 변수가 경합을 벌리게 된다. 수토감관의 자리에 자신의 사람이 오르기를 바라는 사옹원 제조 최충헌은 변수 이강천을 불러, 선조가 총애하는 공빈의 병이 매화꽃에 나쁜 반응을 일으키니 이를 이용하라고 알려주면서 을담을 사모하는 초선에게 매화꽃을 넣은 유약을 알려준다.
초선이 강천에 아이를 가진것을 알기 전까지는 사모하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화려한 자기와 수수한 자기를 내놓는 강천과 을담. 공빈의 손이 을담의 자기를 들어올리고 찻물이 우러나면서 승부는 을담에서 강천으로 뒤바껴 버렸다. '낭천 어른'이라는 호칭을 듣기 위해, 자신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을담이 강천은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기에 을담을 사모하는 초선을 그냥 둘수가 없었다. 야심이 있는 사내에게 사기장이가 될수 없는 여인이 자색자기를 만든것을 허용할 수가 없었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줄 알았다. 초선이 강천에 눈에서 사라져 버렸음에 감사할 뿐이었는데, 초선의 아이가 을담을 아비라 부르며 자라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어디에도 초선은 없었으니까. 초선이 아이를 낳았으리라 생각도 못했으니까. 언제까지 초선의 아이를 을담의 아이로 여기게 될지는 알수가 없다.
을담의 아이로 자란 아이, 정이. 어미를 닮고 아비의 재주를 어깨너머로 배운 아이는 어미처럼 고왔다. 그 아이가 선조에 아들을 만나게 된다. 공빈의 죽음을 은연중에 광해에 탓으로 돌리는 선조. 어미에 사랑도 아비에 사랑도 항상 배고프기만 한 왕자에게 따뜻한 아이의 손길은, 자신을 믿어주고, 어미를 찾아달라는 아이의 외침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제향소에 있는 태조발원문자기가 임해에 시샘으로 산산히 부서졌을 때, 그냥 있었어야 했다. 산산히 부서진 사금파리를 들고 을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광해는 을담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쳤던 아이, 정이를 만난다. 깬것도 복원하는 것도 죄가되어 버리는 그릇. 그 그릇이 어미를 그리워하는 정이에 맘으로 인해서 복원이 되었다. 감쪽같이 복원이 된 자기.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광해가 을담을 찾아간 것을 안 강천은 파자된 자기의 복원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얻은 '낭청'의 자리이고 분원의 수장의 자리였던가.
픽션이다. 전란을 앞둔 조선의 정치적 상황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어 촘촘하게 묘사하고 있고 임해군과 광해군, 신성군의 세자 책봉을 둘러싼 왕위 다툼과 신료들간의 비열한 암투, 선조의 기행과 명국의 견제 등에 정사가 보여지고 있지만 조선시대 사기제조장인 분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권순규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픽션이다. 조선 최고에 사기장이었기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을담. 아비에 뒤를 잇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아비의 스승에 제자가 된 정이. 자신을 거두어준 을담에 은혜를 갚기 위해서 어린누이를 지키고자 하는 태도, 그리고 어느새 가슴에 정이가 들어와 버린 광해.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드라마에선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책은 먼저 풀어내고 있어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지만 그 또한 드라마에 매력일 것이다. 책과 드라마중 어떤것이 더 짜릿하게 다가올지는 조금더 기다려봐야 할것이다. 아직은 이야기에 간만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다음 이야기... 을담에 죽음 이후 홀로 남은 정이에 이야기는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