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나서영 지음 / 젊은작가들의모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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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을때마다 나는 주변에 포스트잇과 필기구를 준비해둔다. 리뷰를 쓸때 도움이 되기도 하고, 읽다가 다른 생각이 겹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포스트잇은 거의 필수 도구처럼 책과 함께 한다.  『환상』은 오랜만에 포스트잇이 필요없는 작품이었다.  생각을 하지 않는것이 아니라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표시해 둘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읽어 내렸다.  어... 어.... 하다가 보니 책의 뒷장을 덮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달콤한 초코렛같은 동화속 이야기를 꿈꾸면서 넋놓고 읽다가 강하게 뒷통수를 맞는 것 처럼 어디에도 동화속 사랑은 없는 이야기.  이 예쁜 사랑이 이렇게 엉망으로 변해버리면 안되잖아.  그냥 대놓고 작가한테 욕할 수 있는 책이 『환상』이다.  자신의 이름을 욕하고 싶은 인물에게 덜커덕 심어놓은 나서영 작가.. 이 작가 도대체 뭔가?

 

 

 

  책장에 있는 작가의 모습이 굉장히 준수하다.  준수한 외모만큼 이름도 '나서영'이다. 곱다. 이 젋은 청년은 1989년 생으로 이십대 청년이다.  책 두권이 한꺼번에 나와서 이 청년 능력자네하고 책을 읽다가 책 표지의 나 와있는 작가 소개를 보니 정말로 고개 숙여지는 능력자다. 「젊은 작가들의 모임」의 대표로 굿네이버스와 국내 빈곤가정아동지원, 백혈병어린이재단과 소아암 어린이 지원을 위한 목적으로 사회공헌 협액을 맺고, 자신의 소설로 국내 빈곤아동과 소아암 어린이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단다. 소설로 빈곤아동을 돕는 "나눔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진정한 능력자 나서영 작가. 이 젊은 작가는 사회적 기준으로, 아니 양심의 기준으로 악한이에게는 가쁜하게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욕하게 만들고 있다. 욕하면서도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묘한 작가가 나서영 작가다.

 

  이야기의 시작은 넓적한 얼굴에 낮은 코를 가지고, 작고 처진 눈이 더해져 불품없이 못난 아이, 다섯 살 주인수가 있는 햇빛고아원에서 시작된다. 왼쪽 다리를 땅에 딛지 못한 채 서있는 이아이는 고아원에서 조차도 '다리병신, 고아새끼'라고 불리지만, 함께있는 다섯 살 ,이아영으로 인해 햇빛고아원은 살만한 곳이었다.  함께 비밀장소에서 아영이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인수.  아영이의 입양은 인수의 인생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아니 행복하지 않게 만들었다.  입양후 아영이는 '이나래'라는 이름으로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 어린 것들의 마음속의 사랑은 다섯살에 멈춰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커가면서 사랑도 함께 자라기 시작한다.  다섯살 이후 한번도 만나지 않은 아이들의 사랑이 세월과 함께 자라고 있었다.

 

  세월의 무게만큼 아이들이 자라고, 무용을 할수 없게 된 나래와 공장을 뛰쳐나와 서울로 올라온 인수, 나래의 친구 현숙과 태어날떄부터 그림을 그려야만 했던 나서영이 이제 주 무대에 서기 시작한다. 어린시절부터 인망있는 아버지의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던 서영. 일곱살에 프랑스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서영은 당연히 그림으로 성공할수 있다 생각했지만, 그의 재능은 뛰어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돌아와 바닷가에서 단 한번 만난 나래는 그에게 베아트리체로 다가 왔지만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인수를 찾기 위해 햇빛고아원으로 향한 나래와 현숙은 인수를 찾지 못하고 나래는 의식을 놓아버리면서 자신을 가둬버린다.  현숙은 나래를 위해 인수를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서영은 인수의 그림속에서 나래를 만나고 천재적인 인수의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동화는 인수와 나래가 만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끝나야만 한다.  하지만 나서영 작가의 동화는 이 해피엔딩을 꿈꾸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인수의 이름으로 현숙앞에 나타나 의식을 잃은 나래 앞에 선 서영.  서영을 믿으며 자신의 천재적인 능력을 펼치기 시작하는 인수. 이제 천재의 그림의 빛을 발하기 시작하지만, 천재는 자신의 작품을 그저 말도 안되는 돈으로 생각하고 그저 그림을 그릴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천재의 그림으로 천재로 불리는 서영은 의식을 놓아버린 나래를 통해 성욕을 분출한다.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 나래와 서영을 보면서도 현숙은 입을 다물고 나래의 의식 회복을 기원한다. 그녀는 그를 인수로 알고 있었으니까.   사라져버린 서영과 의식이 돌아온 나래. 그림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수.  이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야기는 그저 돌고 돌아 인수의 생모 이야기를 전해준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해야 한단 말인가?

 

  그저 한줄의 에필로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 환상, 에필로그.  '그 후의 이야기를 나는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것이 비극적으로 끝이 났다는 사실만을 소문으로 얼핏 들었을 뿐이다.' (p.287)  그래. 그저 환상일 뿐이다.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는 환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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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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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만인에게 무슨일이 있었나 라고 의문을 품고 있는데, '흰둥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우리에게 '흰둥이'는 서양인이다.  서양인이 쓴 글 속에 '흰둥이 야만인'이라는 표현이 달려 있으니 이게 어떤 의미일까?  나뭇잎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흰 표지가 인상적인 책이다.  '2012 공쿠르상 수상작'이라는 글귀가 들어오고,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문명과 야만, 이성과 광기의 눈부신 고찰이라고 쓰여진 띠지가 눈길을 사로잡니다.  장지오노상, 아메리고 베스푸치 상 등 8개 문학상을 석권했단다.  요란하게 떠들고 있는 책들은 눈이 가긴 하지만, 썩 내켜서 읽지는 않는 편인데, '현대판 로빈슨 크로소'라고 하니 궁금했다.  요즘 작은 아이가 읽고있는 '~에서 살아남기' 시리즈가 '로빈슨 크로소'의 현대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이 책은 어떤 살아남기 방법을 알려주나 하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나르시스 펠티에! 생폴 스쿠너 선 선원이다!"

 

  드라마를 보면 전쟁중에 어린 동생과 헤어지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아이의 이름과 부모, 형제의 이름을 잊지 말라고 매일 외워야한다고 하는 부분들이 꽤나 많이 나온다.  과거를 배경으로 하던지, 현재가 배경이 되던지 자신을 아는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드라마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쓰고 외치면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려고 애를 쓴다.  여기 현대판 '로빈슨 크로소'라 불리는 나르시스는 자신의 이름을 쓸수도 말할수도 없는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아주 어린 아이도 아닌 열 여덟의 표류를 당한 이 남자는 어째서 '흰둥이 야만인'이라는 이름으로 19세기 중반, 오스트레일라의 시드니에 출현하게 되어진것일까?  프랑스어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까지 까맣게 잊어버린,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전혀 유럽인 같지 않은 이 남자가 지리학자 옥타브 드 발롬브룅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픽션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도 꽤나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들고 있다고 생각 했었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스 크로소』를 생각하면서 읽고 있는 내게 나르시스의 이야기와 발롬브룅가 학회장앞으로 보내는 서한이 교차하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버린다. 17년전 사라져버린 나르시스의 출현이 유럽사회에 미친 파장을 발롬브룅은 서한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고, 나르시스는 17년 전 시점으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생폴 스쿠너 선에서 식수를 찾기위해 하선한 나르시느는 다시 배로 상선하지 못하고 홀로 떨어진다.  자신을 찾기 위해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던 배는 돌아오지 않고, 그는 낯선 야만인들 틈에서 살아 남기 위해 그들의 삶을 따르기 시작한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로빈슨'처럼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말도 의식주 생활도 어느것 하나 통하는 것이 없는 곳에서 군중속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18세 소년은 어른도 청소년도 아닌 이방인의 모습으로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어떻게 그들을 만났는지는 알수 없으니 그가 야만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중의 노파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고, 여인들과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바라보고 살기위해 남은 음식을 먹고 마시고 그들을 따라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살고 있는 곳만이 문명이라 생각했던 소년이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문명과 만났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린 소년에게 새로운 문화는 감당하기 힘든 모습으로 다가온다.  옥타브 드 발롬브룅에게 나르시스는 새로운 인류였을 것이다.  지리학자인 이 남자는 나르시스를 통해 야만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생활관을 알아 낼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었다.  어린시절 사라졌다 해도 18년 동안은 유럽 문명의 영향을 받았으니까 분명 그를 통해 미지의 사람들의 문화를 알아낼 수 있다 여겼는데, 생각처럼 쉽게 그가 다시 문명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태어나서 경험했던 모든 문명이 17년동안 모두 사라져버리고 새로운 문화를 익힌 사내. 그사내의 모습에서 18년간의 유럽 문화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이제 이 남자는 야만의 세계에서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와야 만 하는데 이게 가능한 것일까? '뭐야?'  혼자서 살아가는 길을 꾸며나가는 '로빈슨 크로소'보다 재미없어 하고 있다면 이 남자가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1857년에 14세의 나이로 견습선원된 나르시스가 배가 난파되면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인 아보리진 가족에게 발견되어 '암글로'라는 이름으로 17년 동안 아보리진 젊음이로서 살았던 이야기가 『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일이 있었나』의 실제 이야기란다. 이렇게 되면 '로빈슨 크로소'나 '십오소년 표류기'는 비교 대상이 될 수가 없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극적이라고 하던가?  누가 현실에서 나르시스와 같은 삶을 생각이나 해봤겠는가?

 

  전혀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문화로 살았던 한 젊은이와 그를 통해 '문화인류학'의 한 획을 그르려는 시도는 아닐지라도 '야만인'이라 불렸던 이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었던 지리학자.  문명으로 돌아온 나르시스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왕의 명으로 '고래등대' 3등급 창고 관리자가 되지만 그에게 이런 직책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저 타인과 함께 하고, 자신의 욕구대로 살기를 원하는 이 남자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 자신이 살고 있던 곳, 야만이라 문명인들이 이름붙여놓은 그곳에서 다시 문명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누가 그것을 원했던가?  누가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던가?  책 소개글에는 나르시스와 옥타브 사이의 교류가 깊어질수록 나르시스는 문명사회에 다시 적응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옥타브는 그간 자신이 지니고 있던 ‘문명/야만’, ‘이성/광기’, ‘진보/퇴행’ 등의 대립항이 산산이 부서져 나감을 깨닫는다라고 되어있다.

 

  허구속에서 바라보았던 '로빈슨'의 모습 속에서 나는 파라다이스를 꿈꾸어왔는지도 모른다.  집을 짓고 물고기와 과일을 채집하며 살다가 농경사회의 발달처럼 씨를 뿌리고 동물을 잡아 길을 들이기도 하고 야만인을 친구와 하인처럼 자신의 입장에서 대우하다 다시 문명으로 넘어온 남자.  저렇게 하면 살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현실은 픽션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의지와 희망처럼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사용하던 언어를 야만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들의 언어를 익히고 자신의 언어를 잊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나르시스는 희망을 품지만 그 희망은 희망을 꿈꾸지 않을때, 이제 희망이 아닐때 나타나면서 또 다른 문화와 충동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삶이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 어느 특정 문화라면 더욱이 그럴 것이다.  나르시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의 삶이 아닌 인디언 문화와 아프리카 문화의 혼돈과 파괴를 생각하는 것은 결코 나만은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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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미스터리
J.M. 에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단숨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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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홈스와 왓슨이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했으며, 존 H.왓슨이 셜록 홈스에 대해 쓴 이야기들을 동료이자 저작권 대리인인 아서 코넌 도일 경의 이름으로 발표하게 허용했다는 완곡한 가설을 불멸의 사실로 만들고자 한다.  -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달린 셜록 홈즈』

 

홈스학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셜록 홈스의 일면은 바로 그가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소설 속에서 그는 103번 미소 지었고, 65번 웃었으며, 31번 키득거렸고, 58번의 농담과 59번의 위트를 구사했다.  - 앙드레 프랑수아 뤼오 & 그자비에 모메장, 『셜록 홈스의 인생』

 

 

  책 좋아하고 추리소설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이라면 셜록 홈스를 제쳐두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탐정 소설이나 탐정을 주제로한 만화도 근간은 셜록인 경우가 대다수다.  기본적인 지식이야 셜록 홈스가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을때 저자 아서 코난도일이 셜록을 소설속에서 사라지게했다가 엄청난 독자들의 컴플레인으로 3년만에 다시 살려낸 일은 셜록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셜록 홈스의 이야기들 중 가장 복잡하고, 가장 헤아릴 수 없고, 가장 흥미로운 불가사의는 셜록 홈스 자신이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립탐정. 그러나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여기 당대 최고의 셜로키언이라는 11명이 모였다. 셜록 홈스의 모든것을 경전처럼 바라바로 있는 이들에게 셜록은 어떤 의미일까?  

 

'모든 일이 그렇듯, 운명은 전혀 다른 결과를 예비해두고 있었다.' (p.17)

 

  5월 4일 금요일, 스위스 마이링겐 주의 라이헨바흐 폭포 근처에 위치한 작은 산장 호텔인 베이커 스트리트 호텔에 프랑스의 홈스학자들이 모여든다. 홈스 학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이보다 근사한 장소가 있을까? 주말 동안 이들은 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홈스학회를 열기로 한 것것인데, 바로 소르본 대학에서 신설될 예정인 홈스학과 최초의 정교수 자리를 결정하는 학회가 이곳에서 진행이 된다. 최연장자 보보 교수,무리의 우두머리 맥고나한, 홈스의 목소리를 듣는 코카인 중독자 페르슈아, 성형 미녀 에바, 짐승 로드리게스, 제멋대로 돌로레스, 카멜레온 클룩, 풋내기 오스카, 인조인간 뒤리외와 대학원생 뤼퓌스. 10명의 홈스학자들과 홈스학자들을 취재하고 있는 오드리 마르무쟁.  바야흐로 본격전인 쇼가 시작되었다. 

 

  그날 밤, 갑작스러운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고 호텔은 정면으로 눈사태를 맞아 건물 자체가 파묻히는 사고를 당한다. 전기와 전화와 인터넷이 끊기고 탈출은커녕 창문조차 열 수 없게 된 상황.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호텔은 거대한 밀실처럼 변해버렸다. 그리고 나흘이 지나 5월 8일 화요일, 출동한 소방관들이 쌓인 눈들을 치우고 굳게 잠긴 베이커 스트리트 호텔의 출입문을 열자 끔찍한 광경이 나타났다. 처참히 부서진 건물 내부와 싸늘한 시체로 변해버린 10여 명의 홈스학자들. 왜 모두 죽어 있는 걸까. 대체 이들을 죽인 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장 마지막으로 살해당한 오스카가 죽기 직전 보낸 구조 요청을 받고 온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이 기괴한 연쇄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죽은 홈스학자들의 기록물을 하나씩 읽어가기 시작한다.

 

  밀실 살인은 추리 소설에서 가장 관심을 갖게 되는 사건 중 하나이다.  어느곳도 열려있지 않은 닫힌 장소, 그곳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파일은 존재하지만, 그 속에 범인의 윤곽은 드러나지 않는다.  최고의 셜로키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연구 주제와 발표는 헛웃음만 나게 만들고, 도대체 이들이 홈스학과 정교수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만 일게 만든다. 홈스를 실제 인물로 당연시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홈스와 관련된 문제들은 사이비종교처럼 다가오지만, 자신의 주장만을 이야기하고 다른이들의 주장은 무조건 묵살하는 최고의 셜로키언들.  어쩌면 홈스학자라고 주장하는 이들보다 그들을 조사하고 있는 오드리가 더욱더 홈스학자같지만 밀실에선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오드리의 기록과 육성파일, 홈스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페르슈아의 기록과 신부에게 전하는 돌로레스의 서신은 더욱 그들의 얼토당토한 모임을 어처구니 없게 만들고, 타인의 말에 귀를 닫은 이들을 보면서 소설 속 홈스가 그리워진다.  내가 읽었던 홈스의 에피소드는 행복한 재미였는데, 이들이 읽은 홈스는 경전이었다.  그러기에 재미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밀실 속에 갇힌 셜로키언들 만큼 대단한 셜로키언인 J.M.에르는 홈스학회 정교수를 두고 벌어진는 셜로키언들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오만과 자기애를 보여준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오직 자신만 살면 그만인 사람들. 보보교수 조차 제정신이 아닌 이들에게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찾아 낼 수는 있는 것일까?  작가의 결론은 결론일 뿐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러기에 추리소설이다.  폴리포 소방사의 의견에 동의한다. 아니, 셜로키언이 아닌것에 안도의 표정을 지어보낸다.  난 도통 알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런 젠장, 내가 결코 책을 펼쳐들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야! 독서가 위험하다는 걸 진즉 알고 있었거든!"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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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원정대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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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편의 단편소설을 하나의 줄기로 만날 수 있는『조공원정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듯 하면서 결국은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들면서, 혹시 내 삶의 문제가 다른것 때문이 아닐까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가『조공원정대』다.  심각하게 읽다가 피식 웃게 만들고, 이런 문제도 이렇게 다룰 수 있구나 싶으면서도 IMF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여전히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고, 그로인해 겪게되는 청년실업, 빈곤, 물질만능주의를 겪고 있는 청년들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청년들의 모습속에서 지금의 나를 찾아보게 된다.  아... 세상은 참 살기 힘들구나.  그래도 힘내고 웃자. 슈퍼맨도 일을 하는 시대에 살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

 

 

안녕 할리 -  '가게 보증금마저 털리고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현실에 굴복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전적으로 현실에 달려 있다는 깨달음뿐이었다.' (p.33)  S만을 바라던 어머니가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S만 바라던 내가 I에 눈을 돌려도 세상은 왜이리 고단한지, 그에곁에 남아있는 유일한 '할리'도 그에 것이 아니었다.

 

조공원정대 - '뉴스에서는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충격이었다.' (p.44)  서브프라임이 뭔지도 모르는 청춘들. 소녀시대를 만나기 위한 조공원정대를 꾸리지만, 그들이 가는곳 마다 만나게 되는 서브프라임의 충격은 사라져 버려 찾을 수 없는 미선의 아이와 루왁커피 T10과 함께 서브프라임을 만들어낸 나라의 아이들인 토니, 제리, 티파니로 만 남게 만든다. 

 

어느 추운날의 스쿠터 - '약속된 이십오 분 중 벌써 이십일 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내 옆에 포탄이 터져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피자를 먼저 배달해야 될 판이었다.' (p.82) 민방위 훈련으로 인해서 배달을 못하게 된 생계형 배달원인 내가 지구대 안에서 만난 'Fuck you Korea'를 외치는 외국인들. 판매할 수 없는 피자와 온기가 남아있는 배달 박스. 서브프라임의 시작은 미국이었으니 조지와 빌이 한국에 온 것도 서브프라임 덕분일까?

 

헤드기어 맨 - '처음 철거 용역 제의를 받은 날 나는 헤드기어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초능력 인간의 맞수인 초능력 악당으로 전락하는 순간을 맛봐야 하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p.124)  철거로 어머니를 잃은 나는 아버지의 유산인 헤드기어를 쓸때만 초능력 인간이 된다. 초능력 인간이 되어도 아내도, 아이도 지킬수 없는 헤드기어 맨은 헤드기어 없이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유글레나 -  '단지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내 성기 이름을 굳이 유글레나라고 지은 것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둘 다 홀로 생식하는 것이 닮았다.' (p.139) 변변한 직장 하나 잡지 못하는 청춘에게 AV 배우 '소라'는 모든 청춘들에게 평등했다.  그녀와 이름이 같은 옛 여자친구 소라는 여전히 그를 찾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에겐 야동에 나오는 소라가 더 욱더 확실한 존재이고, 또 다시 그의 유글레나는 무성생식을 한다.

 

미운 고릴라 새끼  - '원숭이도 그렇게 사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뭐 있어요? 당신이 생각만 바꾼다면 가능해요'(p.184) 보노보노 원숭이처럼 살기를 원하는 두목의 여인. 계란 장수였던 아버지.  보노보노 원숭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어머니.  최고의 계란을 찾기 위해 아버지를 찾은 그가 알게 된것은 자기 영역과 암컷을 지키는 일이 전부인 고릴라들 틈에서 자랐기 때문에 스스로를 고릴라라고 믿었왔음을 알게 된다.

 

악당의 탄생 - '오히려 자신의 목숨 값을 내고 그 가격에 맞는 서비스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죠.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것. 그것이 정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돈 없는 분들은 경찰이나 응급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그런 서비스는 공짜잖아요.' (p.197) 슈퍼맨이 구조서비스 맨이 되었다. 슈퍼맨과 함께 동업을 하는 히어로들.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하지만, 왜 슈퍼맨은 석탄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들지 않고 돈을 받고 구조를 할까? 

 

아담의 배꼽 - '하지만 배꼽을 가진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나의 자식들에게 절대로 보여주지 않을 작정이다' (p.241) 에덴에서 쫒겨난 아담과 하와의 아이들.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배꼽이 있는 아담과의 사이는 불화를 맞게된다. 카인과 아벨, 그리고 실라. 순결한 혈통이 목적이 아닌 루빌을 지키기 위한 아담의 계획을 모두 알게 된 후에도 아담과 하와의 문제를 덮어버리고 신의 혈통을 주장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난 어떻게 해야하나?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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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넘브라의 24시 서점
로빈 슬로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떡하니 책 겉표지에 <로빈 슬로언 장편소설>이라고 되어있는데, 내겐 너무 작은 글씨였다. 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읽으면서 당연하게도 페넘브라라는 서점의 이야기라고 철떡같이 믿었다.  요즘 워낙 서점에 관한 글들이 많이 나와서 이기도 하지만, 읽으면서 이 서점 이렇게 장사가 안되니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까지 하면서 읽었다.  이렇게 장사도 안되면서 24시간 문을 열고, 사람을 쓰고 있는 서점이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미국은 '구글'을 정말 굉장한 회사로 여기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읽고 있었으니 난 뭘까?  어처구니 없게도 서점 성공기라면 이제 좀 괜찮아지거나 실업자였다 서점에 간신히 취업한 클레이가 뛰어난 홍보로 다 죽어가는 서점이 살아나는 이야길 기대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되는가?  분명 500년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던 서점에 불이 꺼졌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끝까지 서점 성공기로 읽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부러지지 않은 책등'이나 계속해서 나오는 '용의 노래 연대기'를 찾아볼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소설이란것을 인지하고 24시간 책방이 있나 궁금했다. 인터넷 책방이야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24시간 이지만, 오프라인에서 24시간은 결코 쉬운일이 아닐것이다. 찾아보니 일본 록본기에 24시간 여는 책방이 있다고는 하는데 책방만 하는 것은 아니다. 카페와 DVD대여를 함께 하는것 같다.  작가는 어떻게 24시간 여는 책방을 생각해 냈을까?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한 줄의 트윗으로 책을 구상하게 되었단다. 문제의 트윗은 "이런, 방금 24시간 도서 반환통(book drop)을 24시간 서점(book shop)으로 잘못 읽었네"라는 문구였다라고 하는데, 단 한줄의 문장으로 펼쳐지는 상상의 세상이 활자로 되어 펼쳐지게 만드는 사람들은 분명 현실속의 마법사들이다.  마법사 로빈 슬로언스가 만들어난 이야기. 중간부까지 서점 성공기를 외치며 읽었던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평생 <용의 노래 연대기>만을 읽어봤을 뿐인 클레이는 웹디자이너로 다니넌 도넛회사가 망하면서 실업자가 된다. 그리고 그의 눈에 서점같지 않은 24시간 서점의 야간 알바가 눈에 들어온다. 서점이라고 하지만 사다리만 잘타면 되는 곳에 직원이 된 직원 클레이의 눈에 페넘브라의 서점을 방문하는 단골 손님들은 괴상하게 느껴진다. 새벽이고 한밤중이고 가리지 않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책을 찾고는 다시 번개처럼 사라지는 사람들, 이들은 외출도 하지 않고 밤에 잠도 자지 않으며 평생을 종이와 씨름하며 살아온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다면 클레이는 긴밤을 어떻게 지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책방 점원에게 책을 읽지 말라는 금기가 있는 서점이라니, 이상한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룸메이트의 도움으로 업무일지를 보게 된 클레이는 이 괴상한 나이 든 단골 들이‘부러지지 않은 책등’이라는 비밀 단체의 일원이고, 책 속에 숨겨 진 암호를 풀기 위해 500년 동안 끙끙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로운 기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 페넘브라의 밤시간을 책임지던 클레이의 노트북이 업무일지 속 비밀을 보여준다.  어떻게 된것인지는 모르겠다.  타이핑만 할 수 있는 컴맹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마시길... 문제 해결은 웹디자이너였던 클레이와 구글신에 다니는 캣에게 넘겨야 한다.  오래된 지식을 문서화 해서 컴퓨터가 알아서 처리를 해주니까 어떤 마법을 펼쳤는지는 알 수 없다.  금기는 깨지기 마련이지만, 금기를 깨면서 업무일지 속 암호를 풀어낸 클레이에게 일어난 일은 '페넘브라 서점'의 불이 꺼진 것이다.  서점이 어둠에 잠기자 클레이는 손님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또 자신의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겁 없이 500년의 미스터리에 뛰어든다.

 

  분필과 석판, 종이와 잉크를 사용해 책 한 권 한 권을 읽으며 암호를 풀어온 ‘부러지지 않은 책등’과, 모든 걸 컴퓨터 명령키 몇 개와 인터넷, 불법 스캐너로 해결해온 디지털 괴짜의 승부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아이러니 하게도 클레이가 유일하게 읽은 <용의 노래 연대기>가 숨어 있다.  그들이 원하는 비밀은 무엇일까?  어떤 위험하고 중요한 비밀이 숨어있기에 이렇게 숨죽이면서 모든것을 바쳐서 비밀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일까?  유일하게 읽었지만 몇 번을 읽은 책이 비밀을 밝혀낸다니 어찌보면 어린아이적 발상 같지만, 왠지 그럴수 밖에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페넘브라의 24시 서점』은 펼쳐내고 있다.  '부러지지 않는 책등'의 창립자의 '코덱스 비테'속 비밀을 찾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문명을 거부하는 사람들.  책을 통해 비밀을 풀어내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광신도들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들의 비밀을 찾는 행위보다는 클레이가 풀어내는 것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박스로 스캐너를 만들어 내다니... 그런게 있긴 한건가? 불법을 사랑하는 클레이니 가능할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게다가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을때는 더하다.  '부러지지 않는 책등'의 '코덱스 비테'뿐 아니라 구글에 다니는 캣을 통해 만나는 구글의 제도들. 사실여부는 알수가 없지만 재미있다.  수 많은 직원들의 말을 듣기 위한 방법인 PM제도도 흥미롭고, 박물관 시스템들도 흥미롭다.  『페넘브라의 24시 서점』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정독을 하자다.  달랑 책 한권 읽었는데, 얼마나 정독을 했으면 음성파일에 슬쩍 넣어든 표현을 찾아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 여러 방면으로 친구를 사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떤 친구가 어떤 도움을 주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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