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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미스터리
J.M. 에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단숨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홈스와 왓슨이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했으며, 존 H.왓슨이 셜록 홈스에 대해 쓴 이야기들을 동료이자 저작권 대리인인 아서 코넌 도일 경의 이름으로 발표하게 허용했다는 완곡한 가설을 불멸의 사실로 만들고자 한다. -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달린 셜록 홈즈』
홈스학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셜록 홈스의 일면은 바로 그가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소설 속에서 그는 103번 미소 지었고, 65번 웃었으며, 31번 키득거렸고, 58번의 농담과 59번의 위트를 구사했다. - 앙드레 프랑수아 뤼오 & 그자비에 모메장, 『셜록 홈스의 인생』

책 좋아하고 추리소설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이라면 셜록 홈스를 제쳐두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탐정 소설이나 탐정을 주제로한 만화도 근간은 셜록인 경우가 대다수다. 기본적인 지식이야 셜록 홈스가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을때 저자 아서 코난도일이 셜록을 소설속에서 사라지게했다가 엄청난 독자들의 컴플레인으로 3년만에 다시 살려낸 일은 셜록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셜록 홈스의 이야기들 중 가장 복잡하고, 가장 헤아릴 수 없고, 가장 흥미로운 불가사의는 셜록 홈스 자신이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립탐정. 그러나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여기 당대 최고의 셜로키언이라는 11명이 모였다. 셜록 홈스의 모든것을 경전처럼 바라바로 있는 이들에게 셜록은 어떤 의미일까?
'모든 일이 그렇듯, 운명은 전혀 다른 결과를 예비해두고 있었다.' (p.17)
5월 4일 금요일, 스위스 마이링겐 주의 라이헨바흐 폭포 근처에 위치한 작은 산장 호텔인 베이커 스트리트 호텔에 프랑스의 홈스학자들이 모여든다. 홈스 학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이보다 근사한 장소가 있을까? 주말 동안 이들은 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홈스학회를 열기로 한 것것인데, 바로 소르본 대학에서 신설될 예정인 홈스학과 최초의 정교수 자리를 결정하는 학회가 이곳에서 진행이 된다. 최연장자 보보 교수,무리의 우두머리 맥고나한, 홈스의 목소리를 듣는 코카인 중독자 페르슈아, 성형 미녀 에바, 짐승 로드리게스, 제멋대로 돌로레스, 카멜레온 클룩, 풋내기 오스카, 인조인간 뒤리외와 대학원생 뤼퓌스. 10명의 홈스학자들과 홈스학자들을 취재하고 있는 오드리 마르무쟁. 바야흐로 본격전인 쇼가 시작되었다.
그날 밤, 갑작스러운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고 호텔은 정면으로 눈사태를 맞아 건물 자체가 파묻히는 사고를 당한다. 전기와 전화와 인터넷이 끊기고 탈출은커녕 창문조차 열 수 없게 된 상황.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호텔은 거대한 밀실처럼 변해버렸다. 그리고 나흘이 지나 5월 8일 화요일, 출동한 소방관들이 쌓인 눈들을 치우고 굳게 잠긴 베이커 스트리트 호텔의 출입문을 열자 끔찍한 광경이 나타났다. 처참히 부서진 건물 내부와 싸늘한 시체로 변해버린 10여 명의 홈스학자들. 왜 모두 죽어 있는 걸까. 대체 이들을 죽인 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장 마지막으로 살해당한 오스카가 죽기 직전 보낸 구조 요청을 받고 온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이 기괴한 연쇄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죽은 홈스학자들의 기록물을 하나씩 읽어가기 시작한다.
밀실 살인은 추리 소설에서 가장 관심을 갖게 되는 사건 중 하나이다. 어느곳도 열려있지 않은 닫힌 장소, 그곳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파일은 존재하지만, 그 속에 범인의 윤곽은 드러나지 않는다. 최고의 셜로키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연구 주제와 발표는 헛웃음만 나게 만들고, 도대체 이들이 홈스학과 정교수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만 일게 만든다. 홈스를 실제 인물로 당연시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홈스와 관련된 문제들은 사이비종교처럼 다가오지만, 자신의 주장만을 이야기하고 다른이들의 주장은 무조건 묵살하는 최고의 셜로키언들. 어쩌면 홈스학자라고 주장하는 이들보다 그들을 조사하고 있는 오드리가 더욱더 홈스학자같지만 밀실에선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오드리의 기록과 육성파일, 홈스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페르슈아의 기록과 신부에게 전하는 돌로레스의 서신은 더욱 그들의 얼토당토한 모임을 어처구니 없게 만들고, 타인의 말에 귀를 닫은 이들을 보면서 소설 속 홈스가 그리워진다. 내가 읽었던 홈스의 에피소드는 행복한 재미였는데, 이들이 읽은 홈스는 경전이었다. 그러기에 재미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밀실 속에 갇힌 셜로키언들 만큼 대단한 셜로키언인 J.M.에르는 홈스학회 정교수를 두고 벌어진는 셜로키언들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오만과 자기애를 보여준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오직 자신만 살면 그만인 사람들. 보보교수 조차 제정신이 아닌 이들에게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찾아 낼 수는 있는 것일까? 작가의 결론은 결론일 뿐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러기에 추리소설이다. 폴리포 소방사의 의견에 동의한다. 아니, 셜로키언이 아닌것에 안도의 표정을 지어보낸다. 난 도통 알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런 젠장, 내가 결코 책을 펼쳐들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야! 독서가 위험하다는 걸 진즉 알고 있었거든!" (p.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