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아이브 -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
리앤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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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감가는 얼굴에 정면을 응시하면서 끌려들어갈 것 같은 눈동자로 미소짓고 있는 모습,  단순한 면티를 입고 수염도 깍지 않았는데도 근사하게 다가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나도 너무 잘났다.  한 사람의 역사, 어찌보면 이 남자의 전기를 읽고 있는데, 누구 말데로 '금 숫가락 물고 태어난'사람마냥 빠지는 것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 '학습 장애 난독증 진단'을 받은 것을 시련이라 해야할까?  소년 시절 부터 사물의 작동 원리에 호기심을 드러내고, 소년이 드러내는 호기심을 여지없이 받아주고 밀어주는 대단한 아버지를 두고 성장한 조너선 아이브.  부러우면 지는거라 했는데, 책장을 몇장 넘기지도 않고 져버렸다.  마음에 들지 않은 전기문이라 하면서 이 남자가 궁금한 것 역시 사실이고, 이 남자의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리앤더 카니가 주변인들과 조니에게서 들은 내용들로 엮은 이야기를 읽어 내려갔다.

 

 

"마이크 아이브는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진정한 열정가였습니다.  늘 활력이 넘쳤으며 아들의 성공을 간절히 열망했어요.  조니가 디자이너로 성공하기 위한 최상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돕는 그런 아버지였지요."(p. 27)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연구실을 과감하게 열어주고, 아들의 진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아버지 마이크 아이브.  아들이 잘하는 디자인을 정식수업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이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경력을 만들어 주기 위해 언제나 힘을 쓰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럴 수 있는 아버지가 얼마나 될까 싶으면서 부럽다.  재능을 알아봐주고 그 재능을 꽃피우게 하기 위해서 혼신을 다해 도와주는 부모가 옆에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아이브는 마이크 아이브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 못지 않은 천재다.  천재라고 밖에 이야기 할 수가 없다.  대학시절 만든 TX2펜을 시작으로 그가 만들어 낸 것들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보통의 디자이너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은 드로잉 실력과 작동원리까지 꽤뚫고 프리젠테이션에서 디자인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분해를 함으로써 내부까지 보여준다는 글을 읽고 못하는게 있기는 할까 싶었다.

 

  책을 읽기 전에 '조니 아이브'를 찾아보니 그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세계최초로 컴퓨터를 둥글게 만들고, 속이 보이는 컴퓨터를 만들었다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지만, 일괄적으로 나오는 것은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라는 말이었고, 그가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지 구입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실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인터뷰어가 다음엔 어떤 걸 만들예정이냐고 묻고, 조니가 컵이라고 답하는 부분이었는데, 컵이라는 말에 인터뷰어가 의아해 하지만, 결론은 '그가 어떤 컵을 만들던 우리는 그 컵을 사게 될 것이다'.라고 쓰여있는 부분을 읽고는 이 남자가 굉장한 디자이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1967년에 태어났으니 우리나이로 쉰도 안된 이 남자의 이야기는 책 소개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디자이너이자 영국 디자인 교육 정책가였던 아버지 마이클 아이브가 미친 영향부터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심어 준 뉴캐슬 과학 기술 대학의 교육, 로버츠 위버 그룹과 탠저린에서의 다양한 경험, 그리고 아이브를 애플에 영입하기 위한 로버트 브러너의 노력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애플 입사 이전의 조너선 아이브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애플 입사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내 불과 4년 만에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 책임자가 되는 과정, 1997년 복귀한 잡스와의 창조적 파트너십, 애플의 디자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분투, 아이맥과 아이폰, 아이패드 등이 개발되는 과정도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잡스가 죽은 후, 잡스의 파트너들의 이야기가 속속 들려오고 있다.  잡스가 단순한 디자이너가 아닌 자신의 "영혼의 파트너"라고 이야기를 한 조니의 이야기부터, '가장 신뢰한 애플의 조력자'라 일컬었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켄 시걸까지, 이제 잡스 이후에 많은 이들의 이야기들이 애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줄 것이다.  워낙에 대단한 회사인 애플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쪽 관련으로 무지하기에 역시 나는 책으로 통해서 만난 그들의 이야기가 전부로 다가온다.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나 만났던 천재를 이렇게 만나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드라마를 보면서 천재들의 모습은 현실감 없게 다가오는데,  조너선 아이브는 내 세계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지 드라마보다 훨씬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이디어가 넘쳐나서 한번에 5~6개의 아이디어가 쏟아져 내고, 만들면 히트를 치고, 학창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을 뿐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마다 몇년후엔 세상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이니 이게 어디 현실적인가?  그럼에도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궁금한 건 이들로 인해서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함, 집중, 디테일'이라는 애플의 혁식을 낳은 이 천재의 이야기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애플의 디자인. 애플 스튜디어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던 천재 조너선 아이브. 21세기의 혁신의 키워드인 그의 철학이 애플의 철학으로 변화되어 펼쳐지고 있고, 그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으니 너무 잘나서 마음에 들지 않은 이 남자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책 한권 읽고 나니, '조너선 아이브'를 '조니'라는 애칭으로 불러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니 그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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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더 리턴드 The Returned
제이슨 모트 지음, 안종설 옮김 / 맥스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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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부활이외에 부활을 믿지 않는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죽어 나가고, 그 아이들 중 한명이라도 살아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이 또한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 이성으로는 분명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주검을 확인하고 품에서 가슴에서 놓아버린 아이가 다시 '엄마~'하면서 품으로 돌아온다면 어떻게 할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강풀 작품 중 『이웃사람』이라는 웹툰이 있다.  '죽은 딸이 매일 집으로 돌아온다'로 시작하는 웹툰은 두려움으로 시작되지만 새엄마와 죽은 아이가 서로간의 이해를 하고 죽은 아이를 내 아이로 받아들이는 순간 두려움이 아닌, 기쁨과 안쓰러움으로 변화된다.  웹툰을 읽으면서 '나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것도 아닌, 오늘 아침에도 보고, 얼굴 쓰다듬고 '사랑한다'이야기하던 내 새끼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떻게 할까?  분명 아이의 환영만이라도 붙들고 싶고 주검 일찌라도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니까.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반세기 전에 가슴에 묻어버린 자식이 그 모습 그대로 나를 찾는다면...?  내 아이 뿐 아니라 죽음으로 안식에 들어간 이들이 세상을 활보한다면 어떨까?  사랑했던 가족일 수도 있고, 전쟁을 일으켰던 전쟁광일 수도, 살인마 였을 수도 있는 그런 이들이 내 주의를 돌아다니고, 그들의 가족을 찾는 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사랑하는 이였다면 가슴 절절함으로 다가올것이고 무서움에 떨었던 이라면 또 다시 찾아오는 두려움에 몸서리 치게 될 것이다.  『더 리턴드 The RETURNED』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같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해럴드와 루실 부부의 아들 제이콥은 1966년 여덟 살 생일에 집 주변 강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제이콥이 없는 삶에 익숙해져 갔고 그들의 상처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악마예요."..."그들은 우리를 죽이려고 온 거예요.  아니면 우리를 유혹하거나! 정말 말세라니까요. '죽은 자들이 땅 위를 걸으리라.' 성경에도 나오잖아요!" (p.19)

 

  귀환자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적으로 죽은 이들이 살아 돌아오고 있다는 보도에도 루실의 반응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오히려 루실보다는 해럴드가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니까요."라는 루실의 반응에 "음, 사람이 아니면 뭐야? 식물인가? 아니면 광물?"(p.18) 이라고 답을 하면서 이성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 부부앞에 반세기 전에 죽은 아들, 제이콥이 피로 범벅이 된 모습으로 문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귀환자들이 땅위를 걸어다니는 악마라고 생각했던 루실일지라도 '제이콥'이 반백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모든 이성은 사라지고 루실에겐 모성만이 남아 제이콥을 지키기에 급급해 진다.  오히려 루실과 다른 관점에 있던 헤럴드가 다시 살아 돌아온 '제이콥'의 존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해 하지만, 헤럴드 역시 따뜻한 손과 심장이 뛰는 제이콥으로 인해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알게 된다.

 

"너는 기적이라는 것을. 모든 생명은 다 기적이라는 것을." (p.65) 

 

  피터즈 목사의 말처럼 제이콥은 루실에게 기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모두에게 귀환자가 기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다.  귀환자를 거부하는 가족으로 인해 어찌할 줄 모르는 앤젤라 존슨같은 소녀도 있고, 총상으로 몰살당했던 한가족이 함께 돌아오면서 그들의 거주지가 문제가 되기도 하고, 태평양 전쟁 당시 죽은 일본 병사가 돌아오면서 현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뿐인가?  사후에 천재화가로 이름을 드높이던 화가의 귀환은 화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이들을 열광하게 하기도 하고, 어린시절 첫 사랑의 귀환은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당혹하게 만들기도 한다.  귀환자를 관리하는 사무국 요원들은 돌아온 이들을 가족에게 인계해주는 업무를 하고 있지만, 귀환자의 무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게 되면서 정부는 귀환자들을 수용소에 가두기 시작한다.

 

  살아있는 자와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관의 대립은 이야기를 극으로 치닫게 만들어 버린다.  모든 죽은자들이 살아돌아온것이 아니니, 사랑했음에도 돌아오지 않은 가족으로 인해 가슴 아린 이도 있었을 것이고, 사랑했음에도 그들의 존재를 부인하며 침묵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산 사람을 지지합니다."(p.238) 라는 프레드에 외침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생기면서 피켓시위는 무력 시위로 변화기 시작하고, 산사람과 죽었던 자들 가운데서 어찌할 줄 몰라하는 정부와 사무국은 여실히 무능함을 보여주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다가오는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얼마나 많은 귀환자들이 이곳 아카디아로 몰려들지 알 수 없기에, 나와 다른 이들을 보면서 두려웠을 것이고 겁이 났을 것이다.

 

"제 친구 하나는 한국으로 발령이 났어요.  조그만 나라일수록 상황이 더 안 좋아요.  땅이 넓은 나라들은 어쨌건 그들을 몰아넣을 데라도 있잖아요.  하지만 한국-한국과 일본-은 그럴 수가 없죠.  사람들을 몰아 넣을 땅이 워낙 부족하니까요.  그런 데는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같은 게 있어요." (p.316)

 

  작가는 친절하게도 군인인 주니어의 입을 통해서 수용소가 되어 버린 학교에 갇혀있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읽는 대한민국 독자는 좁은 땅덩어리와 정부의 대처능력에 가슴 아파 하고 있는데, 알고는 있을까?  90년 전에 죽었던 이가 돌아오고, 반세기 전에 죽은 이가 돌아오고, 태평양 전쟁에서 죽은 군인이 돌아오고 있으니 그 끝이 어디일지 누가 알겠는가?  이제 읽는 독자 조차도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순간, 작가는 수용소에서 제이콥이 사귄 맥스의 변화를 통해 이 전대미문의 현상이 끝이 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 무슨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이 귀환자 소년의 눈알이 돌아가면서 흰자위만 남는가 싶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p.185)

 

  죽은자와 산자의 공존은 시간의 흐름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역시 죽은자였던 살아있는 자이든, 인간의 욕망은 수용소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삶에 대한 욕망 속에서 사그라 들지 않는 건 가족에 대한, 이웃에 대한 사랑임을 일깨워준다.  『더 리턴드 The RETURNED』를 읽는 내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잔인한 4월에 대한민국에 일어났던 오열 속에서 아이들이 살아나기를 바랄지는 생각해본다.  단순히 한가지만을 생각할 수 없음을 작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안되리라는 이성과 함께, 그럴지라도 단 한명이라도 라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부모이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힘없는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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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의류 수거함 -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0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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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TV화면으로 만났던 <오즈의 마법사>를 지금도 기억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보다 환상적으로 보이던 오즈는 어린 내눈에는 환상의 나라였다.  겁많은 사자,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 지혜가 필요한 허수아비와 함께하는 도로시와 토토가 가는 길에는 마녀를 만나기 전까지 언제나 꽃이 피어있는 그런 곳이었다.  얼마전에 우연히 그시절 <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내 기억속 풍경이 아닌 조악한 배경과 이야기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영상으로 만났던 <오즈의 마법사>의 실상은 그럴지언정 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오즈의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다. 

 

 

  오즈는 환상의 세계다.  오즈의 마법사의 존재를 알아버린 순간에도 그곳엔 마녀들이 있고 양철 나무꾼과 허수아비, 사자가 말을 하고 서로를 의지하고 도울 수 있는 곳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모른다. 이런 오즈를 떠올리면 처음으로 생각나는 인물은 당연히 도로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회오리 바람에 날려 오즈로 온 소녀. 가족을 떠나 외딴곳에 떨어졌음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터무니없이 요구를 하는 동료들을 다독이면서 마법의 세계를 뚫고 나가는 도로시는 오즈라는 외딴곳에서 유토피아를 꿈꾸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소녀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밤 거리에 유영민 작가가 도로시를 살포시 데려다 놓았다. 

 

  외고 시험에 불합격하고는 자살까지 생각하는 여학생의 이름은 도로시다. 게임이나 카페 닉네임처럼 느껴지는 이 소녀의 이름은 본명이란다.  외고 시험을 준비할 정도였으니 공부도 꽤나 잘했을 로시의 눈에 어느날 부터 '의류 수거함'이 들어온다.  빨간 우체통보다 훨씬 큰 파란색의 상자. 상자의 측면에 뚫려있는 커다란 구멍으로 삐죽 나온 스키니진은 로시에게는 득템이었고, 그 순간부터 '의류 수거함'은 '헌옷 상자'가 아닌 '보물 상자'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열일곱의 소녀에게 은밀하고도 특별한 직업이 생겼다. '비밀의 헌옷 수거상! 낮에는 착실하고 선량한 여고생으로 살아가지만 밤이 되면 의류수거함을 털고, 그렇게 털은 옷들은 구제 옷가게에 넘기는 헌옷 도둑.    

 

  서울의 밤은 낮과는 또 다른 세상을 열어 놓는다.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한 일들이 유영민 작가가 만들어낸 밤에선 펼쳐지고 있다.  도로시가 헌옷을 넘기는 구제가게의 주인인 '마녀'를 필두로, '숙자'씨와 새터민인 '카스 삼촌'과 알수 없는 식당주인 '마마'까지. 도로시는 낮에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함께 '의류수거함'속 보물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의류수거함' 속 보물은 의류만이 아니다.  일기장이 나오고 사진첩이 나오고, 묶음으로 이루어진 상장이 나오는 곳이라는 그곳엔 수많은 사연들이 숨쉬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일지도 모른다.  자살을 생각했던 소녀의 눈에 비친 의류수거함 195호에서 나온 물건들은 평이한 물건이 아니었다.

 

  도로시의 눈에 비친 자살을 준비하고 있는 또래의 남자 아이 '195'. 도로시와 친구들은 '195'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어느 순간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195'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숙자 씨, 카스 삼촌, 마마, 마녀, 195 등은 자신들의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 보듬어준다. 작가의 수상자 인터뷰처럼 이렇게 '오즈의 의류수거함'을 통해 만난 이들은 외롭고 슬픈 소외된 사람들이 연대하여 치유해 나가면서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낸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괴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자기를 치료하고 타인도 구원한다.'고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처럼 '밤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있는 이들의 외로움의 연대가 만들어 내는 '치유의 힘!'은 사막한 밤을 따뜻한 온기로 채워준다.

 

"의류수거함에는 헌옷만 들어 있는게 아니란 것을. 그 속에는 만남, 고민, 즐거움 같은 것들도 함께 들어 있었어.  내게는 그것이 헌옷보다 훨씬 더 소중해." (p.157)

 

  열 일곱 소녀가 밤의 세계에서 이렇게 따뜻한 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살 대신 호주로 가기위해 '의류수거함'속 보물을 꺼내는 도로시. 삶을 버릴 수 없어 살아가는 '숙자'씨. 희망을 찾아 탈북을 했지만 또 다른 계급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던 '카스 삼촌', 자식의 죽음으로 무너졌던 '마마'와 무너지는 자존감에 자신을 놓아버렸던 '195'. 이들은 잡물 수거함처럼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내는 '의류 수거함'이라는 문을 통해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감동만으로 끝난다면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즈의 의류수거함』은 청소년 소설답게 깔끔하고 산뜻하다.  로코를 좋아하는 내게 '도로시'와 '195'의 이야기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 역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도로시'와 '195'의 결론은 알 수가 없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소품은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닌가?  극중 인물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스스로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통해서 해결책을 꺼내놓는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엔 나 일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마마'와 '195'의 이야기 처럼 말이다.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것. 그건 곧 자신에 대한 이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걸 해내는 게 쉽지는 않아.  이해는 밀착된 상태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지." (p.103)

 

"자존감은 포용이란 토양에서 자라나고 자존심은 경쟁이란 토양에서 자라나지.  자존감이 이타심이란 열매를 맺는 반면, 자존심은 이기심이란 열매를 맺어."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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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를 구한 개 - 버림받은 그레이하운드가 나를 구하다
스티븐 D. 울프.리넷 파드와 지음, 이혁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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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받자마자 아이가 '개가 늑대도 구하나봐'하면서 호기심을 표했다. 그런가하고 책표지를 보니 저자 이름이 울프다.  원 제목은 'Comet's Tale: How the Dog I Rescued Saved My Life'로 되어있는데, 울프라는 저자의 이름을 연관지어서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유발시키기 위해서 『늑대를 구한 개』로 지은 것 같다.  아이가 먼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니 호기심 유발 작전이었다면 성공이다.  읽는 중에도 카밋이 어떻게 늑대를 구했는지 나와있고, 원 제목인'개가 어떻게 내 인생을 구했을까'보다는 심플한 것 같다. 어쨌든 저자 이름이 폭스였으면 '여우를 구한 개'가 될 뻔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에세이다.  그러기에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전에 읽은 동물관련 실화들처럼 체루성 강한 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저자는 깔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인 스티븐 울프는 전직 변호사로서 알 수 업는 후유증 때문에 혼자 걷지도 못하게 된다. 직장도 잃고 가족과도 떨어지게 된 울프는 어느 날 구조센터에서 경주견이었던 그레이하운드, 카밋을 입양하게 된다.  허리 통증 때문에 혼자 걷지도 못하게 된 변호사, 경견장에서 쫓겨나 버림 받은 그레이하운드의 이야기는 1998년 가을부터 2006년 10월까지 사람과 반려견과의 우정과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반려견 종류를 몰라서 그레이하운드가 어떤 녀석인지 몰랐었다. 책 표지를 보고 이런 녀석이구나 하고 알았는데, 이 녀석들은 보통의 반려견과는 다르단다. 그레이하운드는 경주견으로 태어난지 넉달이면 크레이트에 갇혀서 훈련이나 경주할때 빼곤 전혀 보살핌을 받지 못한단다.  보통은 일이 년 정도만 경주에 나가는데 빨리 승수를 올리지 못하면 주인은 더 이상 사료값 등에 한푼도 쓰려하지 않아,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리면서 도살되거나 버려진단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조련사가 아니면 어울리지도 못해서 노는 방법이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단다.  크레이트와 경견장 안에서만 살고 훈련받았기에 계단도 잘 못 올라간다니 주인에게 사랑받는 보통의 반려견과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 놓여있는 녀석들이다.

 

  자신의 몸도 제대로 거두지 못한 남자가 사회성 제로인 그레이하운드를 반려견으로 만났으니 앞날이 캄캄할법도 한데, 이 녀석이 묘하다.  울프가 카밋이라는 그레이하운드를 입양한것이 아니라, 카밋이 울프를 선택한 것 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 카밋. 체지방이 낮아서 더위나 추위에 극도로 민감하고 주기적으로 뛰어다녀야만 한다니,도통 허리 아픈 주인과는 맞출래야 맞출수 없을것 같은데, 카밋은 '가축'에서 '애완동물'로 받아들여 준 주인이 고마워서 인지, 말도 안되는 행동을 펼친다.  보조견으로서는 결코 적합하지 않은 카밋이 울프의 보조견이 되고, 2010년 4월 네브래스카 동물보호단체는 카밋을 '올해의 보조견'으로 선정했으니 카밋으로 인해서 도살될 수 밖에 없는 그레이하운드의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카밋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로도 성공을 했는데, 2014년 현재 그레이하운드 후원 그룹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오마하, 네브라스카, 애리조나를 옮겨 다니며 활동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카밋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울프와 그의 가족까지 구원해준 카밋.  출판사 평처럼 만약 소설이었다면 카밋은 다시 경견장으로 돌아가, 멋지게 마지막 경기를 치렀을 것이고, 울프는 건강을 완벽하게 되찾아 변호사로 활동을 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해피엔딩이라고 좋아했겠지만, 인생은 소설이 아니다.  작가 인터뷰를 보니 카밋은 책이 출판된 후 14살의 노령으로 죽었고, 지금은 공주같은 카밋이 아닌 골목대장 같은 파이퍼와 함께 한단다. 

 

  경주견으로 작은 철장이 세상에 전부였던 개가 자신을 구해준 주인을 돕는다는 것은 미담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게 인생이다.  분명 울프의 노력도 상당했겠지만, 아무도 없는 외로움을 분명 심장이 뛰고 따스함을 간직한 카밋으로 인해 극복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울프가 본 카밋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기에, 모든 그레이하운드가 본능을 억제하면서 주인을 돌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울프는 카밋으로 인해 건강을 회복하고 구원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눈물샘 자극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도, 잔잔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울컥할때가 있는 것처럼 울프와 카밋은 인간에게 가장 좋은 친구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반려견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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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셜록 홈즈의 귀환 : 최신 원전 완역본 - 셜록 홈즈 전집 07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바른번역 옮김 / 코너스톤 / 2014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더 이상의 홈즈 이야기는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었을 것이다.  워낙에 유명한 일화 이지만 아서 코난 도일이 홈즈 시리즈를 발표 순서를 보면 『셜록 홈즈의 회고록』에서 홈즈가 죽은 후, 홈스 전집의 3편격인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를 발표할 때까지 8년이 걸렸고, 단편인'빈집'으로 죽은 홈즈가 돌아오기까지는 꼬박 10년이 걸렸으니, 길어도 정말 긴 시간이 흘렀다.  홈즈의 죽음 때문에 며칠 동안 런던 시민들이 상장을 달았다는 유명한 일화는 홈즈 시리즈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함을 알 수가 있다.  홈즈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었던 코난 도일이 홈즈를 살려내라는 협박편지와 테러의 위험까지 받고 결국 10여 년만에 살려낸 홈즈는 오랜 시간 동안 홈즈를 기다려 온 이들의 마음을 달래 줄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무장해서 돌아왔다.

 

 

  작가의 능력은 확실히 대단하다.  어떻게 죽은 홈즈를 부활시켰는지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모리아티 교수와의 전무후무한 결투후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홈즈가『셜록 홈즈의 귀환』에서 3년 만에 홀연히 나타나 왓슨 박사를 놀라게 한다. 이 책에는 런던 암흑가를 주름잡고 있던 모리어티의 부하들을 소탕하며 멋지게 귀환한 첫 번째 에피소드 '빈집'을 비롯한 13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데, 홈즈만큼 성장한 왓슨의 면목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홈즈가 사라진 후 병원을 운영하며 평범한 의사로 살고 있던 왓슨은 신문에 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에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추리를 해 보며 지내고 있다. 그러나 ‘로널드 아데어 살인 사건’의 결론이 실망스럽게 맺어지자 직접 사건 현장을 방문하게 된다. 젊은 귀족 청년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홀로 풀어 보고자 찾아간 현장에서 왓슨은 뜻밖의 인사와 마주치게 되면서『셜록 홈즈의 귀환』의 첫 이야기부터 반전을 풀어내고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쪽 책장을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다시 앞을 바라보자, 내 친구 셜록 홈즈가 나를 향해 빙긋이 웃고 서 있었다..."이봐, 왓슨." 생생한 목소리라 울렸다. "참 미안하게 됐네. 자네가 이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어." (p.14 / '빈집' 중)

 

  3년동안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노인의 모습으로 왓슨 앞에 나타나 노인처럼 행동하다가 변신로봇 마냥 셜록으로 변해있는데, 놀라지 않을 이가 몇이나 될까?  그나마 워낙에 셜록에게 익숙한 왓슨이니 기절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빈집'은 모리아티 교수의 부하와의 전면전을 다루고 있는데, 현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트릭을 사용하는 점에서 그당시 독자들을 놀라게했을것이다.  우선은 홈즈의 부활 소식에 이미 놀랐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에피소드들은 3년이라는 시간이 홈즈의  실력을 녹슬게 만들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셜록 홈즈의 귀환』에는 '빈집'으로 홈즈의 귀환을 알린 후 노우드의 건축업자 / 춤추는 사람들 / 홀로 자전거 타는 사람 / 프라이어리 스쿨 / 블랙 피터 / 찰스 오거스터스 밀버턴 / 여섯 개의 나폴레옹 석고상 / 세 학생 / 금테 코안경 / 실종된 스리쿼터백 /  애비 농장 저택 / 제2의 얼룩등 열 세편의 단편들을 보여준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홈즈와 왓슨의 역활을 톡톡히 보여주고 재미면에서 부족함이 없지만, 내겐 '여섯 개의 나폴레옹 석고상'과 '제2의 얼룩'이 인상깊게 남는다.  어쩌면 언제가 읽었던 작품이기에 더 흥미로왔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읽고 결론까지 알고 있었을텐데, 또 다시 읽다보면 결론이 기억이 나지 않는것이 이런 탐정물의 특징이다.  한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속에 빠져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섯 개의 나폴레옹 석고상'은 런던 경시청의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홈즈에게 기묘한 사건을 소개해 준다며 찾아온다. 다른 물건은 그냥 두고 나폴레옹 흉상 복제품만 훔쳐서 깨뜨리는 정신병적인 사건이라고 소개하는 그에게 왓슨은 의사로서 편집증, 강박 관념 등의 자문을 한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홈즈는 경감의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를 갖는다.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여 살인 사건까지 번지게 되는 이야기로, 홈즈이기에 사건을 해결해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제2의 얼룩'은 전편인『셜록 홈즈의 회고록』에서도 스치듯 언급되어진적이 있다. '노란 얼굴' 에 대해 왓슨이 언급하면서 미스테리한 이야기가 해결되는 부분에서 '제2의 얼룩'을 언급한다.  홈즈와 왓슨의 집에 영국 수상과 장관이 방문해 심각한 외교적 문제가 담긴 외국 국왕이 보낸 편지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하는데, 장관이 보안 문제를 염려해 집에 가져온 편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홈즈는 의뢰인들에게는 편지를 못 찾을 때의 문제까지 대비하라고 일러두고 수사를 시작한다. 한편 런던 경시청의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홈즈에게 흥미로운 사건을 소개한다며 연락을 해 오는데, 공교롭게도 홈즈가 추적하고 있던 용의자의 집이었다. 미궁으로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홈즈. 이번엔 어떻게 해결을 할까? 모든 미스테리는 읽어봐야 한다. 그냥 알아버리기에 고통을 감내하며 홈즈를 살린 아서코난 도일에게 미안해지니 말이다.

 

"자, 왓슨. 최후의 막이 오르고 있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고, 트렐로니 호프 장관은 빛나는 경력에 오점을 남기지 않을 걸세.  경솔한 군주는 경솔했던 것에 대해 벌을 받지 않을테고, 총리는 유럽 분쟁을 해결하느라 진땀을 빼지 않아도 될거야. 우리가 조금만 요령 있게 해결한다면 아주 위험했을지도 모를 이 사건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거야." (p.446 / '제2의 얼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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