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의류 수거함 -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0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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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TV화면으로 만났던 <오즈의 마법사>를 지금도 기억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보다 환상적으로 보이던 오즈는 어린 내눈에는 환상의 나라였다.  겁많은 사자,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 지혜가 필요한 허수아비와 함께하는 도로시와 토토가 가는 길에는 마녀를 만나기 전까지 언제나 꽃이 피어있는 그런 곳이었다.  얼마전에 우연히 그시절 <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내 기억속 풍경이 아닌 조악한 배경과 이야기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영상으로 만났던 <오즈의 마법사>의 실상은 그럴지언정 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오즈의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다. 

 

 

  오즈는 환상의 세계다.  오즈의 마법사의 존재를 알아버린 순간에도 그곳엔 마녀들이 있고 양철 나무꾼과 허수아비, 사자가 말을 하고 서로를 의지하고 도울 수 있는 곳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모른다. 이런 오즈를 떠올리면 처음으로 생각나는 인물은 당연히 도로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회오리 바람에 날려 오즈로 온 소녀. 가족을 떠나 외딴곳에 떨어졌음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터무니없이 요구를 하는 동료들을 다독이면서 마법의 세계를 뚫고 나가는 도로시는 오즈라는 외딴곳에서 유토피아를 꿈꾸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소녀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밤 거리에 유영민 작가가 도로시를 살포시 데려다 놓았다. 

 

  외고 시험에 불합격하고는 자살까지 생각하는 여학생의 이름은 도로시다. 게임이나 카페 닉네임처럼 느껴지는 이 소녀의 이름은 본명이란다.  외고 시험을 준비할 정도였으니 공부도 꽤나 잘했을 로시의 눈에 어느날 부터 '의류 수거함'이 들어온다.  빨간 우체통보다 훨씬 큰 파란색의 상자. 상자의 측면에 뚫려있는 커다란 구멍으로 삐죽 나온 스키니진은 로시에게는 득템이었고, 그 순간부터 '의류 수거함'은 '헌옷 상자'가 아닌 '보물 상자'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열일곱의 소녀에게 은밀하고도 특별한 직업이 생겼다. '비밀의 헌옷 수거상! 낮에는 착실하고 선량한 여고생으로 살아가지만 밤이 되면 의류수거함을 털고, 그렇게 털은 옷들은 구제 옷가게에 넘기는 헌옷 도둑.    

 

  서울의 밤은 낮과는 또 다른 세상을 열어 놓는다.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한 일들이 유영민 작가가 만들어낸 밤에선 펼쳐지고 있다.  도로시가 헌옷을 넘기는 구제가게의 주인인 '마녀'를 필두로, '숙자'씨와 새터민인 '카스 삼촌'과 알수 없는 식당주인 '마마'까지. 도로시는 낮에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함께 '의류수거함'속 보물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의류수거함' 속 보물은 의류만이 아니다.  일기장이 나오고 사진첩이 나오고, 묶음으로 이루어진 상장이 나오는 곳이라는 그곳엔 수많은 사연들이 숨쉬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일지도 모른다.  자살을 생각했던 소녀의 눈에 비친 의류수거함 195호에서 나온 물건들은 평이한 물건이 아니었다.

 

  도로시의 눈에 비친 자살을 준비하고 있는 또래의 남자 아이 '195'. 도로시와 친구들은 '195'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어느 순간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195'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숙자 씨, 카스 삼촌, 마마, 마녀, 195 등은 자신들의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 보듬어준다. 작가의 수상자 인터뷰처럼 이렇게 '오즈의 의류수거함'을 통해 만난 이들은 외롭고 슬픈 소외된 사람들이 연대하여 치유해 나가면서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낸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괴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자기를 치료하고 타인도 구원한다.'고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처럼 '밤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있는 이들의 외로움의 연대가 만들어 내는 '치유의 힘!'은 사막한 밤을 따뜻한 온기로 채워준다.

 

"의류수거함에는 헌옷만 들어 있는게 아니란 것을. 그 속에는 만남, 고민, 즐거움 같은 것들도 함께 들어 있었어.  내게는 그것이 헌옷보다 훨씬 더 소중해." (p.157)

 

  열 일곱 소녀가 밤의 세계에서 이렇게 따뜻한 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살 대신 호주로 가기위해 '의류수거함'속 보물을 꺼내는 도로시. 삶을 버릴 수 없어 살아가는 '숙자'씨. 희망을 찾아 탈북을 했지만 또 다른 계급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던 '카스 삼촌', 자식의 죽음으로 무너졌던 '마마'와 무너지는 자존감에 자신을 놓아버렸던 '195'. 이들은 잡물 수거함처럼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내는 '의류 수거함'이라는 문을 통해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감동만으로 끝난다면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즈의 의류수거함』은 청소년 소설답게 깔끔하고 산뜻하다.  로코를 좋아하는 내게 '도로시'와 '195'의 이야기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 역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도로시'와 '195'의 결론은 알 수가 없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소품은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닌가?  극중 인물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스스로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통해서 해결책을 꺼내놓는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엔 나 일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마마'와 '195'의 이야기 처럼 말이다.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것. 그건 곧 자신에 대한 이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걸 해내는 게 쉽지는 않아.  이해는 밀착된 상태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지." (p.103)

 

"자존감은 포용이란 토양에서 자라나고 자존심은 경쟁이란 토양에서 자라나지.  자존감이 이타심이란 열매를 맺는 반면, 자존심은 이기심이란 열매를 맺어."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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