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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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코는 다작을 하는 작가중에 하나다.  그 많은 작품들을 쏟아내는 데도, 이야기에 빠지게 만드는 필력이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갈릴레오 시리즈와 가가 시리즈는 나올 때 마다 히가시노 게이코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흔들어 놓지만, 그러기에 조금은 식상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갈릴레오나 가가 시리즈보다는 다른 탐정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고, 게이코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본 독자들은 절반정도 읽으면 뒷 이야기를 추리할 수 있을 정도까지 온것도 사실이다.

 

"왜 니혼바시로 왔는지도 확실치 않아요. 이 동네에서는 수수께끼의 신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형사님과 마찬가지군요." p.52

 

  신참자.  책이 나오자 마자 읽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저 그런 이야기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 게이코의 탐정 소설 하나가 나온거겠지.  잔인함이 책 전체를 물들이고 읽고 중간 중간 깜짝 놀라기도 하겠지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리뷰어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뜨거운게 아닌가.  뭔가 다른 이야기가 있나?  도서관에 책을 신청해 놓고, 들어오자마자 대여를 해왔다.  네시간.  책을 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네 시간.  가가 시리즈의 최고봉을 만났다.

 

 

  호러와 공포가 숨막히게 조여오는 것을 반기는 여름이 다가왔다.  책을 읽는 중에도 땀이 줄줄 흐르니 이런 날엔 오싹거리는 책들을 찾는 것도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런데, 왜 그것과는 상관없는 <신참자>에 빠져드는 걸까?   도쿄 니혼바시의 홀로 살아가는 40대 이혼 여성 미쓰이가 죽은 시체로 발견됐다.  니혼바시의 경찰서에 새로 부임한 형사 가가 교이치로.  갑자기 가가가 튀어나오니 황당하긴 한데, 분명 뭔가를 풀어낼 것 같다.  9개의 단편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하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스치듯 지나가는 단서들. 내눈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가의 눈속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단서는 극히 일부분이었다.  하지만, 각 단편마다 나오고 있는 단서들을 해결해나가는 가가를 보면서 왜 가가시리즈의 최고봉이라고 하는지를 알게 된다.  가가가 가는 곳 마다 석연치 않은 단서들이 나타난다.  알리바이가 맞지 않은 보험회사 직원, 다쿠라.  주인의 부탁으로 몰래 닌교야키를 사는 슈헤이. 서로 싸우기에 바쁜 것처럼 보이는 사기그릇 가게의 스즈에 할머니와 며느리 마키, 매일 개를 산책시키는 데라다씨, 임신 6개월에 접어든 케이크 가게 점원 미유키, 친구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다미코, 죽은 미쓰이의 남편인 나오히로와 그녀의 아들 고우키, 나오히로의 오랜 친구이자 세무사인 기시다, 그리고 니혼바시의 형사,우에스기.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p.278

 

  온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온갖 가계를 기웃거리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 가가. 이 하나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지면서, 가가의 말을 생각하게 한다.  미쓰이의 죽음과 함께 그가 풀어내는 것은 비밀과 거짓말로 숨겨둔 애정이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에 대한 사랑이었다.  서로 아니라고 등 돌리고 있는 사람들의 숨겨진 사랑을 가가는 슬쩍 슬쩍 건드려 주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있다.

 

  이 작품이 언제 쓰여진 것인지 찾아보니 모두 일본 고단샤에서 발간하는 문예지 [소설 현대]에 2004년 8월호부터 5년에 걸쳐 연재된 것이란다.  5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동안  하나하나의 단편이 각기 그 자체만으로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출판사의 말처럼 작가는 각 단편에 믿을 수 없이 치밀한 복선들과, 거미줄처럼 서로 긴밀하게 얽혀드는 인간관계를 종횡으로 배치해 그것들이 종국에는 하나의 지점에서 정확하게 맞물리는 놀라운 구성력을 보여준다.  어쩌면, 가가 시리즈가 그토록 사랑을 받은 이유는 가가의 시작이 이토록 따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악을 구별하기 힘든 이때, 가가는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파헤치면서 사람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철저히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걸 밝혀내지 못하면 또 어디선가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알아낸 진상으로부터 배울 점도 많을 겁니다."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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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 양녕대군 vs 태종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3
신명호 지음, 안희숙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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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부터 차례대로 역사공화국 시리즈를 읽고 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지나, 정도전과 이방원의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부분이 <양녕대군 vs 태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가 알고 있던 양녕대군은 어땠지 하고 돌아보게 된다.  내 머릿속에 있는 양녕대군은 동생을 위해서 미친짓을 했던 인물이었다.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큰 아이는 양녕대군을 알까하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정일우의 양명대군만 안단다.<해를 품은 달>을 이야기한것인데, 책 속의 양명대군은 대군이 아닌 그냥 양명군이다.  적자가 아닌 서자였으니까. 이야기를 꺼낼까 하다가 그냥 넘어갔다. 양명대군에 빠져있는 딸아이 맘 다칠까 그냥 넘어가자.  아버지한테 버림받았다고 맘 아파하는 양녕대군의 이야기를 읽었으니 말이다.

 

 

 조선은 적통의 맏아들이 왕권을 물려받는 나라다.  하지만, 조선 왕조 5백 년의 역사 속에서 적통이며 맏아들이기까지 한 원자가 왕세자로 책봉되었던 경우는 27명의 임금 중 겨우 8명 뿐이었다.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순종의 경우가 적통의 원자였다.  그러니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조선 왕실의 규범이 무색할 정도다.  양녕대군은 조선 제 3대 왕인 태종의 맏아들이며, 한때는 조선의 왕세자 였다.  태어나자 마자 이방원에게 다가오는 위험으로 인해서 외가에서 7년을 키워졌고, 열한 살 되던 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스물두살에 '어리사건'으로 폐세자가 된후, 평생 자연을 벗 삼으며 시를 읊고 글을 쓰다 1462년, 69세에 생을 마감했다.  당시로써는 장수한 셈인데, 세종, 문종, 단종, 세조까지 무려 네명의 왕과 함께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방원에게 다가왔던 위험은 무었이었을까?  태조 7년인 1398년, 태조 이성계가 방원의 이복동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방원은 정도전을 살해하고,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방석, 방번을 귀양 보낸후 죽인다.  이때 방원은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둘째 형인 방과에게 왕세자의 자리를 넘긴후, 방과가 조선 제2대 국왕 정종이 된 후, 제 3대 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이방원은 끊임없이 신덕왕후 강씨와 정도전에게 견재를 당해서, 양녕대군이 태어나자 마자 외가로 보낸다.  드디어 이방원은 왕이 되었다.  왕이 되었으니, 첫째 아들은 왕세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궁에서 살지 않았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세자가 되어 세자였기 때문에 공부를 시작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양녕은 공부보다는 무술에 소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왕세자였기에 공부를 해야만 했다.  여덟살 때부터 자신의 재능과 적성은 무시하고 공부만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부를 했다.  물론, 그 덕분에 양녕은 태종 몰래 주색잡기에 빠졌고, 끝내, '어리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양녕의 첫 사랑이라는 어리 전에도 양녕주위에는 사랑에 빠졌던 기생이 있었지만, 어리는 곽선의 첩이었기때문에 불법이자 부도덕한 행실이었다.  법적으로까지 문제가 생긴것이다.  폐세자가 된 후, 태종은 양녕과 어리를 함께 살게 하지만, 갑갑함을 이기지 못했던 양녕으로 인해서, 어리는 자결을 하게 된다.  사랑에 목숨을 걸 수도 없었던 인물로 한국사 법정은 양녕을 평하고 있다.

 

 무에 재능을 가지고 있고, 인간적인 양녕 대신 태종은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봉하게 된다. 분명 역사는 충녕대군을 최고의 세자라 칭하고, 그의 정치를 성군의 정치라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양녕이 충녕대군만 못했다고 이야기할수도 없다. 그가 왕이 되질 않았으니까 말이다.  태종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조선은 건국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전쟁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던 평화의 시대였다.  그리고 그 평화를 이끌어갈 국왕의 덕목은 무술이 아니라 뛰어난 학문이었다. 최고 지도자에게 요구되어지는 덕목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분명 전쟁의 시대나 혼란의 시대에는 양녕같은 지도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태종은 세종이 왕위에 오른 후, 혼란을 막기 위해 외척세력을 철저하게 제거했다. 세종이 다른곳에 힘을 쓰지 않도록 말이다.

 

 

 왕권만을 본다면 분명 양녕 보다는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어 왕위에 오른것이 다행이다 생각이 되어진다.  하지만 호랑이같은 아버지의 눈빛만을 기억하고 있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아버지에게 한번 안겨보지도 못하고, 칠삭동이였던 동생, 이도만을 사랑하셨다고 느꼈을 아이. 동생의 학문에 따라갈 수 없음을 알았기에 무술에 집착했고, 아버지에게 반항했던 아이로만 본다면, 양녕은 불쌍한 아이였다. 자신의 소질과 적성과는 상관없는 것만 했던 아이.  폐세자를 논하기 전에 양녕대군과 태종의 관계는 지금의 우리 아이들을 돌아보게 된다.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 부모였는지 말이다.  태종처럼 한 나라의 왕으로 아이를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있음에 감사해야할까?   역사의 그늘속으로 사라져 버린 양녕대군을 통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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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8 고우영 초한지 8
고우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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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초에 초한지가 영화로 상영되었었다.  이기는 자만이 천하를 가질수 있다는 싸움. 진시황 이후 최고의 패자로 올라선 항우와 큰그릇으로 세상을 담은 또다른 영웅 한나라 유방. 항우는 유방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던 홍문의 연회에서 그를 놓치고 만다.  변방에서 세력을 키운 유방은 한신, 장량 등 뛰어난 부하들과 함께 항우를 맞서며 대결전으로 나아가게 되고, 천하는 둘로 나뉘어 두 영웅의 대결전 앞에 모이게 되는 그런 내용의 영화였다.  초한지는 고우영 선생의 말처럼 상큼하고 멋진 드라마다.  압축된 인물들의 너무나 완벽한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있으니, 영화와 책을 통해서 꽤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작고하신 고우영 선생의 초한지 마지막 권을 하께 하고 있다.

 

 

 범증을 반간계로 잃어버린 항우는 마지막 전투를 앞에 두고 있다.  한 5년 12월, 초나라 군대가 해하에서 방벽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군사는 적고 군량은 다 떨어진 데다 한나라와 제후들의 군대에 겹겹으로 포위되고 말았다. 이때 밤중에 한나라 군사들이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고단했던 초나라 군졸들이 하나둘씩 이탈하고 만다.  사면초가(四面楚歌)가 이렇게 생겨났다.  사실, 한나라 군사들이라 해도, 거의 동향사람이니 초나라 노래를 몰랐을리가 없고, 가족이 그리운 이탈병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8천 병사중 8백명만 남는다.

 부하 장졸 8백여명과 함께 포위망을 뚫고 남쪽으로 질주하였으나 음릉에 이르러 길을 잃어 버렸다. 여기서 항우는 한 농부에게 길을 물었으나 그 농부가 일부러 항우에게 길을 잘못 가르쳐 줌으로써 항우는 다시 유방군의 추격을 당하다, 결국은 기마병 26명만 남게된다. 강동 땅이 보이는 오강 나루까지 왔음에도 강을 건너지 않은 항우.  싸움중에 자신의 휘하 병사들이 죽고, 그토록 애지중지 하던 우미인까지 죽었으니, 어쩜 항우는 아무것도 바라는 거시 없었는지도 모른다.  항우와 함께했던 용이 변한 말이라는 오추마저 물에 빠져 죽은 후 자신의 휘하였던 여마통에게 목숨을 내준다.  이렇게 초한의 싸움은 끝이났다.  완벽한 한의 승리, 유방의 승리였다.  유방은 항우와 같은 인물이 아니었다.  초한의 싸움이 끝나자마자 유방이 한 것은 항우를 배신하고 자신에게 온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힘이있고 지략이 뛰어난 자는 이제 필요가 없어졌을까? 한신을 비롯한 많은 공신들이 유방의 말 한마디에 죽어나가면서 초한지는 끝이 난다.

 

 분명 돈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유방은 인격이나 전쟁 능력 면에서 항우보다 훨씬 못했다.  객관적인 전략에서도 항우가 늘 앞섰다.  하지만 외후 승리자는 항우가 아니라 유방이었다.  유방은 이야기 한다. "군막 안에서 작전을 짜 천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능력은 장자방이 나보다 뛰어나다.  나라를 어루만지며 백성들을 위로하고, 군량을 공급하며 운송로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능력은 소하가 나보다 뛰어나다.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싸울 때마다 승리하여 공격할 때 마다 성공하는 능력은 한신이 나보다 뛰어나다.  이 세사람은 모두 뛰어난 인재인데 내가 그들을 능히 썼기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항우에게는 범증이 있었지만 그 범증 하나도 능히 쓰지 못해 나에게 사로 잡혔던 것이다"라고 말이다.  초한의 싸움은 이렇게 끝났다.  이랬음에도 장자방을 제외한 모두를 죽인 유방.  '초한지'는 인간사 덧없음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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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7 고우영 초한지 7
고우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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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우영 선생의 초한지를 지난달 초엔가 읽고는 리뷰를 쓰지 않았다.  초한지의 내용은 이제 감을 잡겠는데, 쓰질 않으니, 7권과 8권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게다가 끝을 맺지 않아서 그런지 여간 찜찜한것이 아니다.  그래서 7권과 8권을 다시 읽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져버리는 내 머릿속 이야기들. 어디갔을까?  다시 읽어야 기억을 되살리니, 리뷰를 써야 한다.  리뷰는 그 기억의 저장공간을 대신하고 있으니 말이다.

 

 

 능소능대라 했던가?  자신이 유리해지면 아무 생각없이 자기 맘데로 하는 유방의 성격이 그대로 나와서, 항우에게 쫓기는 것으로 6권은 마무리지어졌다.   유방의 노부모를 지키기위해서 자신의 노모를 지키지 못했던 왕장군, 왕릉.  항우가 왕장군의 노모를 이용해서 왕릉을 빼올생각을 하게된다.  왕릉이 자신의 곁으로만 와서 충성을 맹세한다면 왕릉을 중하게 사용하려 하지만, 그 어미의 그 아들인지라, 왕릉의 노모가 자결을 하고 만다. 어찌 그리 자신의 뜻데로 되지 않을까?

 

 끝으로 갈수록 싸움은 치열해 진다. 한신은 초나라를 치기 위해서 조나라와 연나라를 공격하고, 조나라와의 싸움에서 처음으로 배수진(背水陳)을 사용한다.  강을 등지구 구축한 진.  강변에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으니 조나라 입장에서 미쳤다고 봐야한는데, 이 병법이 기가 차다.  뒤에는 깊은 강물인 배수진.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살아나갈 길은 적을 무찌르는 방법뿐이다. 쥐도 도망갈수 없는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일부러 불리한 지형을 택해 결사로 싸워 이긴 전법.

 

 배수진으로 조나라를 이긴 한신은 조나라의 책사 이좌거와 연나라의 책사 괴철을 만나게 한다.  조나라 대부와 연나라 대부로 전부터 친한 사이였던 이들은 세상 사는 일들을 이야기 하다가, 연왕 장도가 대부 괴철의 말대로 한나라에 기원전 204년에 항복을 한다. 이제 한을 막을 자는 어디에도 없는 것 처럼 보인다. 항우의 부하 중에서 가장 무서운 자가 누구일까? 범증과 종리매 장군. 이들을 항우와 이간질 시켜 자중지란을 일으킬 일이 조금씩 사선위로 보이기 시작한다.

 

 장사꾼으로 가장하고 항우가 있는 팽성으로 들어가는 심복들.  한을 치기위해 출정준비에 바쁜 팽성에 언제 어디서인지 모르게 '너 알고 있어?' '범 승상이 말이지... 종리매 장군도 함께라며...?'하는 이야기들이 퍼지기 시작한다.  항우의 귀에 들려오는 이야기. 범증 승상과 종리매가 나라를 팔아먹겠다는 이야기.  일이 성공되면 범승상은 연나라의 왕으로 종리매는 제나라의 왕좌를 주기로 내정되었다니... 과격하고 급한 항우. 난리가 났다.  반간계에 넘어가 범증을 고향으로 보내 버린다. 항우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던 인물.  억울함에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던 범증은 71세로 죽음을 맞는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로 넘어가야 겠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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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도전은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을까? - 정도전 vs 이방원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2
문철영 지음, 배연오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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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에 관한 책을 올초에 읽었던 것 같다.  봉화백이라 불리고, 조선경국전을 만들어 조선을 법치국가의 근간을 세우고, 임금이 머무는 곳을  어진 이를 구하는데는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임명하는 데는 빨라야 한다면서, 근정전이라 이름을 붙였던 인물.  초에 읽었던 책은 이수광 작가가 쓴 정도전이었다.  그 책에서 만났던 정도전은 요순의 태평성대를 꿈꾸고, 신민정책을 쓰고자 했던 그런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역사공화국 한국사 법정 22권을 통해서 다시 정도전을 만났다. 

 

 

 몇 일전에 읽었던 책이 고려의 최영과 태조 이성계에 관한 글이었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이 그만의 힘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니었으니, 다시 그들의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시리즈임에도 작가가 틀려서,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 해주고 있어서 한번 더 이성계가 주장하던 '역성혁명'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시리즈에서 내가 처음 만난 인물은 역사공화국의 '박구자'변호사 이다.  역사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한국사를 바로 세우고자 혼신의 힘을 쏟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우선, 이번 시리즈에 원고와 피고를 알아보자. 

 

원고 정도전 (1342년~1398년) 나는 스승과 친구들과 결별하면서까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방원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지요. 내가 아니었다면 조선은 결코 정비될 수 없었는데 말입니다.  나는 이성계의 오른팔이었습니다.  나는 나를 죽인 이방원의 죄를 입증하여 내 억울함을 풀어야겠습니다. 
피고 이방원 (1367년~1422년, 재위: 1400년~1418년)  나는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조선의 제3대 태종입니다.  내가 두번에 걸친 왕자의 난을 통하여 왕위에 오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도전이 먼저 우리 왕자들을 없애려 하였고, 힘없는 동생을 꼭두각시 왕으로 세워 놓고 자신의 나라를 만들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에 나는 정도전을 처단하고 역사에 길이 남은 왕이 되었지요. 

 

 정도전은 한손에는 붓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었던 인물이다.  역사속에서 문무를 겸비한 지식인은 드문데, 정도전은 그런 인물이었다.  붓으로는 개혁의 좌표를 세웠고, 다른 한 손에 쥐었던 칼로는 썩은 고려 왕조를 도내렸던 인물.  태조 이성계가 그렇게 신임했던 인물을 태조의 아들, 이방원은 왜 적으로 돌리려 했을까?  

 

 고려말은 몰락 양인과 부곡민과 같은 하층민조차도 권력 투쟁에 관여함으로써 사회는 정치 체제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외치던 '최영'장군조차도 왕의 장인으로서 권력의 중심의 있었고, 이러한 정형적인 위기상황에서 정도전은 자기의 사상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해 나가면서 함주에서 이성계를 만나 그와 개혁을 도모한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의 '사불가론'은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서 틀린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승자의 기록'이라는 역사는 이성계 편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서있는 인물이 정도전이다.  역사만 놓고 보자면, 정도전과 이성계의 조선 건국의 성공으로 이방원이 조선의 3대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방원은 정도전의 성공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에 있어서 모든 것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아 버리는 그의 행동을 문제삼고 있다. 이방원이 이야기하는 것은 정도전이라는 인물은 그가 섬겨야 했던 왕까지도 도구로 전락시켜고자 계획한 것이 바로 그가 원했던 재상 중심의 정치 체제라는 말이다.  삼봉 정도전. 올초에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속 정도전의 정치 철학을 이렇게 만난다. (물론, 드라마는 책과는 달랐지만 말이다).

 

 

 제왕이 부덕하여 민심을 잃는다는 것은 곧 하늘을 거역한다는 것이 '역성혁명'에서 주장하는 것이었다.  덕이 있는 다른 사람이 천명을 받아 왕조를 바꾸는 것이 하늘의 뜻을 따르는 길이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이런 의미에서 스스로 왕위를 찬탈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민심의 추대와 천명의 허락을 받고 이루어졌다는 '역성혁명'.  다시 말하면 이 왕이 하늘을 거스르면 또 다른 왕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최초의 헌법이라는 '조선경국전'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  사람에 의한 통치가 아닌 법에 의한 통치.  경국대전의 다음 조항을 보면 확실히 알수 있다.   '국왕의 자질에는 어리석음도 있고 현명함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재상은 국왕의 좋은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일은 막아 서, 백성들이 임금을 존경하고 떠받들게 해야 한다.' (p.84 / 조선경국전 중)

 

 재상정치를 꿈꾸웠던 인물인 정도전 입장에서는 강한 힘을 가진 이방원이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태조의 막내아들 방간을 세자로 세워서 자신의 위치를 좌지우지하려 했고, 태조가 나라의 기틀을 세울때 가장 많이 힘을 썼던 인물인 방원은 그의 세력을 억눌러야 했다.  '조선왕조실록'속에 나오는 정도전은 스승과 친구를 배신하는 배신자에, 역모를 꾸몄던 자다.  그로인해 '제1차 왕자의 난'때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죽은자는 말이 없으니, 역사는 이방원의 입장에서 쓰여졌다.  그런 정도전이 역적에 누명에서 벗어난 것은 그가 죽은지 500년 후인 고종때이다. '유종공종(儒宗功宗)'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 132호로 지정된 삼봉집 목판에 있는 말이다.  유교 학문의 최고 학자이며 나라를 세운 공적이 최고라는 정도전. 정치란 도덕에서 독립된 존재라고 주장한 마키아벨리의 '마키아벨리즘'에 딱 맞았던 인물 정도전.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역사일까?  '조선왕조실록'속 역사는 삼봉을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 속에서 주자학 이념에 바탕을 둔 조선 개국의 계획을 가지고, 그것을 위한 권력에의 의지가 강렬했던 삼봉을 찾기는 힘들다. 고려 때 백작의 작위를 받아 봉화백이라 불렸던 인물. 그의 진실은 무엇일까?  모르기에 우리는 역사를 찾아야 한다. 작가의 말처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우리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속의 '나'를 찾아갈수 있도록, 과거의 '우리'에 대한 기억이라 할 수 있는 역사와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미래의 꿈을 키워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마틴 루터킹이 키웠던 꿈이 흑인 외톨이 소년이었던 버락 오바마의 비전이 되었던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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