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 양녕대군 vs 태종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3
신명호 지음, 안희숙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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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부터 차례대로 역사공화국 시리즈를 읽고 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지나, 정도전과 이방원의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부분이 <양녕대군 vs 태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가 알고 있던 양녕대군은 어땠지 하고 돌아보게 된다.  내 머릿속에 있는 양녕대군은 동생을 위해서 미친짓을 했던 인물이었다.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큰 아이는 양녕대군을 알까하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정일우의 양명대군만 안단다.<해를 품은 달>을 이야기한것인데, 책 속의 양명대군은 대군이 아닌 그냥 양명군이다.  적자가 아닌 서자였으니까. 이야기를 꺼낼까 하다가 그냥 넘어갔다. 양명대군에 빠져있는 딸아이 맘 다칠까 그냥 넘어가자.  아버지한테 버림받았다고 맘 아파하는 양녕대군의 이야기를 읽었으니 말이다.

 

 

 조선은 적통의 맏아들이 왕권을 물려받는 나라다.  하지만, 조선 왕조 5백 년의 역사 속에서 적통이며 맏아들이기까지 한 원자가 왕세자로 책봉되었던 경우는 27명의 임금 중 겨우 8명 뿐이었다.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순종의 경우가 적통의 원자였다.  그러니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조선 왕실의 규범이 무색할 정도다.  양녕대군은 조선 제 3대 왕인 태종의 맏아들이며, 한때는 조선의 왕세자 였다.  태어나자 마자 이방원에게 다가오는 위험으로 인해서 외가에서 7년을 키워졌고, 열한 살 되던 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스물두살에 '어리사건'으로 폐세자가 된후, 평생 자연을 벗 삼으며 시를 읊고 글을 쓰다 1462년, 69세에 생을 마감했다.  당시로써는 장수한 셈인데, 세종, 문종, 단종, 세조까지 무려 네명의 왕과 함께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방원에게 다가왔던 위험은 무었이었을까?  태조 7년인 1398년, 태조 이성계가 방원의 이복동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방원은 정도전을 살해하고,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방석, 방번을 귀양 보낸후 죽인다.  이때 방원은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둘째 형인 방과에게 왕세자의 자리를 넘긴후, 방과가 조선 제2대 국왕 정종이 된 후, 제 3대 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이방원은 끊임없이 신덕왕후 강씨와 정도전에게 견재를 당해서, 양녕대군이 태어나자 마자 외가로 보낸다.  드디어 이방원은 왕이 되었다.  왕이 되었으니, 첫째 아들은 왕세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궁에서 살지 않았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세자가 되어 세자였기 때문에 공부를 시작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양녕은 공부보다는 무술에 소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왕세자였기에 공부를 해야만 했다.  여덟살 때부터 자신의 재능과 적성은 무시하고 공부만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부를 했다.  물론, 그 덕분에 양녕은 태종 몰래 주색잡기에 빠졌고, 끝내, '어리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양녕의 첫 사랑이라는 어리 전에도 양녕주위에는 사랑에 빠졌던 기생이 있었지만, 어리는 곽선의 첩이었기때문에 불법이자 부도덕한 행실이었다.  법적으로까지 문제가 생긴것이다.  폐세자가 된 후, 태종은 양녕과 어리를 함께 살게 하지만, 갑갑함을 이기지 못했던 양녕으로 인해서, 어리는 자결을 하게 된다.  사랑에 목숨을 걸 수도 없었던 인물로 한국사 법정은 양녕을 평하고 있다.

 

 무에 재능을 가지고 있고, 인간적인 양녕 대신 태종은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봉하게 된다. 분명 역사는 충녕대군을 최고의 세자라 칭하고, 그의 정치를 성군의 정치라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양녕이 충녕대군만 못했다고 이야기할수도 없다. 그가 왕이 되질 않았으니까 말이다.  태종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조선은 건국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전쟁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던 평화의 시대였다.  그리고 그 평화를 이끌어갈 국왕의 덕목은 무술이 아니라 뛰어난 학문이었다. 최고 지도자에게 요구되어지는 덕목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분명 전쟁의 시대나 혼란의 시대에는 양녕같은 지도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태종은 세종이 왕위에 오른 후, 혼란을 막기 위해 외척세력을 철저하게 제거했다. 세종이 다른곳에 힘을 쓰지 않도록 말이다.

 

 

 왕권만을 본다면 분명 양녕 보다는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어 왕위에 오른것이 다행이다 생각이 되어진다.  하지만 호랑이같은 아버지의 눈빛만을 기억하고 있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아버지에게 한번 안겨보지도 못하고, 칠삭동이였던 동생, 이도만을 사랑하셨다고 느꼈을 아이. 동생의 학문에 따라갈 수 없음을 알았기에 무술에 집착했고, 아버지에게 반항했던 아이로만 본다면, 양녕은 불쌍한 아이였다. 자신의 소질과 적성과는 상관없는 것만 했던 아이.  폐세자를 논하기 전에 양녕대군과 태종의 관계는 지금의 우리 아이들을 돌아보게 된다.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 부모였는지 말이다.  태종처럼 한 나라의 왕으로 아이를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있음에 감사해야할까?   역사의 그늘속으로 사라져 버린 양녕대군을 통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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