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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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5권 시리즈 도서 중 ‘좀머 씨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책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로 저자가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 아이가 두려웠다.

p.39

주인공 장바티스트 그르누이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악취가 도시를 짓누르던 때,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도시 파리에서도 가장 악취가 심한 페르거리에서 생선 장수를 하던 여인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것도 생선 내장과 잘린 생선 대가리들로 온통 파리 떼에 뒤덮여 있던 그곳에서 버림받다시피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존재를 소리로 알려야 했던 그는 그 누구보다도 천재적인 후각을 가지고 태어나 냄새로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파악했고, 장소의 냄새를 통해서 눈을 감고도 그곳을 활보하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향기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 냄새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래서였을까? 본능적으로 끝을 잴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풍요로운, 이 지구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향기를 만들어 내려고 했던 향에 대한 그의 집착이 시작된 이유가! 그리고 그 집착이 인간의 체취를 액으로 소유하기에 이르게 하고 죄의식 없는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향기는

다른 모든 향기를 정리할 수 있는 열쇠일 것만 같았다.

이 향기를 알아내지 못하면 향기에 대해서는

영영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이 냄새를 붙잡는데 실패한다면

그르누이 자신의 인생은 실패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도

그는 향기를 차지해야만 했다.

p.65

왕위 계승일을 기리는 불꽃놀이가 있던 날, 화려하게 번쩍이며 불꽃이 튀면서 내는 냄새가 별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바람에 미세하게 그가 지금까지 맡아 본 적이 없는 향기가 실려온다. 그 미세한 향기를 맡는 순간 그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해 심장이 아플 정도로 괴로움을 느낀 그르누이는 그 향기를 추적하게 되고 그 끝에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게 된다. 그녀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그의 첫 살인이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아니, 다시 태어난 정도가 아니라 이제 처음으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p.72

예민한 코, 비상한 기억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마레 거리의 그 소녀한테서 빼앗아 깊이 각인해 놓은 그 향기가 있었다. 그 속에는 위대한 향기, 향수를 구성하는 모든 것, 즉 부드러움, 힘, 지속성, 다양함, 놀라우면서도 뿌리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주문처럼 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이끌어 줄 나침반을 발견한 것이다.<중략> 자신이 이를 악물고 그토록 끈질기게 생에 집착해 온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는 향기의 창조자가 되어야 했다. 그것도 그저 그런 정도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향수 제조인이.

p.73





발디니의 밑에서 향수 제조법을 배우며 도제의 과정을 밟던 그가 한계를 느끼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그리스로 떠나는 과정에서 자신이 빠져나오고 싶어 했던 것이 세상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악취로 가득했던 도시와 사람들로부터 멀어질수록 맑아졌던 정신, 깨끗한 공기에 익숙해질수록 인간 냄새에는 예민해져 결국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동굴에서 7년을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취의 안개가 자신을 질식시키려는 악몽을 꾸게 되고 수 마일씩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 냄새도 맡는 본인이 정작 자신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에게선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꺼려 하고 그를 전혀 인식 못 하고 지나쳤던 이유가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주변에 냄새의 공간을 형성하지도, 파동을 일으키지도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어떠한 향도 알아낼 수 있었던 그가 정작 본인은 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향을 만들기 위해 25명의 여인을 살해했던 그르누이, 그는 단 한 번 꼭 한 번만이라도 그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는 인생에서 <단 한 번 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고 단 한 번 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는 이 향수를 통해 세상에 신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향수를 느낄 수가 없으니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세상과 자신, 그리고 향수를 비웃었다.

p.384



크게 4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던 <향수> 이야기는 그의 탄생부터 그가 향기로 인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자의 치밀한 문장력에 더해진 특유의 분위기와 느낌으로 흡입력 있게 작품의 세계 속으로 끌어당긴다. 악취가 풍기는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쓰인 파트리크 쥐스킨트 장편소설 <향수>를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랑스 향수의 유래가 생각나며 왜 제목이 '향수'였고, 부제가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였는지 알것만 같았다.

향수 본고장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프랑스 그라스, 초반에는 페스트 등 각종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향료가 동물 가죽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외관과 달리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어 당시 귀족들이 주변 정원에서 볼일을 봐야 했으니 여기저기 오물 천지였다. 그래서 그때 유행한 게 그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한 하이힐과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완화시킬 향수였단다.

'향기는 기억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듯 나 또한 나 자신에게서 좋은 향이 나길 바라는 마음에 향수를 사용한다. 후각은 인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뇌의 기관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다른 감각에 비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정보를 기억하고, 그 당시의 감정까지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즉 그 사람이 가진 향이 그 사람을 각인시키게 하는 효과와 그를 기억하게 하고 감정을 끌어내 변화시키는 것이다. 증오를 원했던 거라고 외쳤던 그르누이도 어쩌면 자신 그대로를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했던 건지 모르겠다.

그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

즉 아주 드물지만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람들의 냄새였다.

그 사람들이 바로 그의 제물이었다.

p.291

ps. <향수>를 읽으며 파리 도시의 냄새는 냄새는 다 맡은 기분, 정말 향이 이렇게 다양할 수도 있구나 새삼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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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이트 오브 유
홀리 밀러 지음, 이성옥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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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래를

꿈에서 봐요.

<더 사이트 오브 유>는 슬픈 비밀 때문에 사랑을 거부해온 남자에게 찾아온 평생 단 한 번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 소설이다. 크게 4PART로 나뉘어 그들이 처음 만나고, 연인이 되고, 비밀을 공유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PART 시작 전 매번 캘리의 편지로 시작이 되는데 그 편지가 마음을 사로잡으며 울림을 준다. 그래서 더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 로맨스 소설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보셔요~!

7살 때부터 예지몽을 꿨던 남자 주인공 조엘. 실제인 듯 너무나도 생생한 그 꿈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대상이 되어 정확한 날짜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준다.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했던 미래의 꿈에는 좋은 꿈도 있지만 사고, 병 같은 나쁜 꿈일 경우도 있었다.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면 자신이 개입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멀리 여행 한번 못 가고 늘 긴장과 초조함에 시달리면서 사랑하는 사람들 근처에서만 살아가는 그. 몇 번의 연애 경험이 있었지만 항상 예지몽 때문에 헤어졌고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깊은 관계를 피해왔던 조엘에게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오는데...

가끔은 악몽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걸 봐야만 한다.

p.26

캘리와 눈이 마주치자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자신을 보며 웃는 그녀를 보며 미친 듯이 날뛰는 심정을 애써 외면도 해보고 밀어도 보지만 캘리 또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결국 그는 사랑 앞에 항복을 선언한다.


캘리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싶다. 캘리를 웃게 해주고 싶고, 캘리의 하루에 자그마한 기쁨을 심어주고 싶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캘리를 처음 만난 후로 늘 그런 마음이 들었다.

p.117

집에서나 카페에서나 캘리를 보면 행복하다. 캘리와의 만남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 캘리와 함게 있으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나의 모습이 살아나는 기분이다.

p.124

우리는 태양계를 맴도는 위성처럼 틈날 때마다 눈으로 서로를 찾으며, 어쩌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성운을 통과하는 것처럼 가슴 떨림을 느낀다.

p.191

조엘은 자신의 비밀에 대해 모든 것을 캘리에게 털어놓고, 캘리는 그 비밀을 포함해 그를 받아들인다. 서로에게 서서히 빠져들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그들의 사랑을 보며 연애가 막 시작된 연인들의 풋풋한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캘리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 꿈속에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될까 두려워 사랑한다는 말조차 못 했던 조엘,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캘리의 꿈을 꾸게 되었을 땐 이 커플의 앞날이 혹여나 잘못될까 봐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과학이니 치료제니 하는 건 다 잊어. 잊고 그냥 네 삶을 살아. 캘리와 함께 그냥 최선을 다해 살아.”

“하지만 그게 어떻게 살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p.320

“당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어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캘리. 그런데 불가능하더라고요. 당신은…… 당신이니까”

p.367

그 끝을 알고서 선택을 해야 했던 조엘, 그리고 그걸 받아들여야 했던 캘리.

서서히 진행되는 이야기에 몰입해서 읽으며 그들이 행복할 땐 함께 행복해했고 그들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와 힘들어할 땐 함께 아파하면서 같이 울었다. 캘리가 세상 밖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응원해 줬던 그였기에, 그의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알려주었던 그녀였기에 이들이 조엘의 예지몽으로 힘들어하지 않고 잘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날 밤 캘 리가 꿈에 나타났다.

캘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다가

잠에서 깨어난다.

나는 슬픔에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로 얼굴을 적신다.

p.437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의 꿈에 계속 나오던 캘리를 보며 우는 그의 모습으로 나도 모르게 함께 울었던 부분이다. 엉엉 이 남자 어떡하면 좋니...ㅠㅠ




나도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현재 생활하는 장소와 사람들이 나오는 꿈을 꾸다 보니 가끔은 그 꿈이 너무 리얼해 이게 정말 현실에서 겪었던 일이었는지 꿈이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만약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래를 보는 꿈을 꾸게 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을 강제로 봐야 한다면?! 조엘과 캘리처럼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삶과 죽음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단 한 번의 사랑 <더 사이트 오브 유>, 오랜 여운이 남는 로맨스 소설이었다. 캘리와 조엘과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이 책,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강추!! 또 강추!! 한다.

ps. 할리우드 영화화로 예정된 <더 사이트 오브 유>, 개인적으로 슬픈 영화는 보지 않는데, 이건 안 볼 수가 없습니다. 그의 단 한 번의 사랑을, 그의 멋진 모습을, 조엘을 보러 가야겠어요!

괜찮아요? 조엘이 묻는다.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은요?

조엘 역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머뭇거린다. 행복해요?

나는 눈물을 삼키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중략)

볼펜으로 급하게 갈겨쓴 세 단어가 보인다.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게요.

p.464~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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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아르볼 N클래식
제인 오스틴 지음, 앨리스 패툴로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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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로 손꼽히는 제인 오스틴, 그녀의 재치 있는 문체가 녹여있는 고전문학 <오만과 편견>을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으로 만나보았다. 첫 장부터 그려져 있는 지도와 등장인물 소개가 고전에서 느껴지는 무거움을 낮추는 효과를 발휘해 가벼운 마음으로 묘하게 매력적이면서 특색 있는 일러스트와 함께 즐겁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오만이란 아주 흔한 단점이지.

오만은 정말 흔하고, 우리의 본성은

그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어.

실제로 가지고 있건 아니면 가졌다고 상상하건,

자신의 어떤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

p.28

상당한 재산을 지닌 독신 남자에게 반드시 아내가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중략) 이 진리는 그 일대 사람들의 마음속에 워낙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어 사람들은 그 남자를 자기네 딸들 중 하나가 마땅히 차지해야 할 재산쯤으로 여긴다.

p.7

베넷 부부에게는 다섯 명의 딸(제인, 엘리자베스, 메리, 캐서린, 리디아)이 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딸들을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하는 베넷 부인이 네더필드로 새로 이사오는 이웃이 엄청난 재산을 지닌 미혼 남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다섯 딸들에게 잘 된 일이라며 그 사람이 이사를 오면 바로 찾아가 보라고 남편을 설득하기 바쁜 베넷 부인, 결혼 이야기로 시작된 이야기가 결혼 이야기로 끝날 때까지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인물로 나중에는 웃음만 나왔다. 참으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베넷 부인의 바람대로 첫 무도회에서 제인과 새로 이사 온 재력가 미혼 남자 빙리 씨가 잘 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그의 친구로 온 다아시 씨는 친절하지도 않고 오만해 보인다며 여럿 여자에게 잘못 보인다. 여럿 여자 중 한 명이 엘리자베스였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서로의 겉모습에 따른 ‘오만과 편견’으로 잘못된 길을 가다, 서로 부딪치며 알아가고, '오만과 편견'을 뛰어넘어 상대방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해 서로를 사랑하게 되니 말이다.




이 시대에는 장자만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한정상속 제도가 있다. 그로 인해 장자가 아닌 자녀들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었고 직업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아녔으니 자신이 살아가려면 경제력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자신의 재산을 자신의 자식들에게 주지 못하고 남에게 넘겨야 했으니 베넷 부인의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 시절 그 시대 배경을 알지 못했더라면 오직 딸들을 좋은 집으로 시집보내려고 했던 욕심 많은 엄마라며 베넷 부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끝났을 것이다. 하긴 처음에 한정상속 제도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뭐 이런 엄마가 다 있냐며 속으로 엄청 욕하며 보긴 했다. ㅎㅎㅎㅎ

누구 하나 나쁘게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좋은 점만 보던 제인과 제인만을 위해주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배려심 넘쳤던 빙리 씨, 이 커플은 조용조용 아기자기해서 볼 때마다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들었고, 지혜롭고 당찬 엘리자베스와 오만하던 다아시 씨가 그녀의 당찬 매력에 빠져 서로 티키타카 하던 이 커플은 유쾌하고 즐거웠다. 다아시 씨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매력미를 뽐내는데,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며 능력자 연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정말 멋졌다.

이웃으로 오게 되는 빙리 씨에게 제일 빨리 인사를 하러 가라는 부인의 말을 듣고 "내 몇 줄 적어줄 테니 가져가도록 해요. 우리 딸과의 결혼을 진심으로 허락한다, 누구를 선택하더라도 상관없다, 이렇게 말이오."라며 익살스럽게 받아치던 베넷 씨, 정말 어디서도 못 보던 캐릭터였다. 막내딸 리디아는 크게 사고를 쳐서 나에게 '대박대박 사건'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더니 편지로 펀치 한번, 돌아와서도 펀치 한번 아주 정나미 똑! 떨어지게 했던 철없는 딸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었다. 이외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각자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어느 한 명 캐릭터가 겹치는 인물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진 작가의 세련된 풍자가 웃음을 더했으니 책이 끝나고 나서는 '아~ 재미있었다.'라는 만족감 넘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왜 셰익스피어와 쌍벽을 이루는 영국의 대표 작가 제인 오스틴의 명작이라고 불리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세계문학 필독서! <오만과 편견>, 그저 딱딱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해 손이 가지 않아 미루고 있었다면 아르볼N클래식 시리즈로 일러스트가 더해진 <오만과 편견>으로 시작해보시라고 권해본다.^^

인상 깊은 구절

오만과 편견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그럴 겁니다." 그는 묵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에 대한 평가들은 천차만별 일 거예요. 베넷 양, 바라건대 저의 성격을 지금 당장 그리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쪽의 평판으로도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오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p.133

"불쌍한 선택이 네 앞에 놓여 있구나, 엘리자베스. 오늘부터 너는 우리 둘 중 한 명과 인연을 끊어야 해. 네 어머니는 네가 콜린스 씨와 결혼하지 않으면 너를 두 번 다시 안 볼 테고, 나는 네가 결혼을 하면 안 볼테니까."

p.155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재산은 많지 않은 젊은 여자에게 결혼은 유일하게 명예로운 생계 수단이었고,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는 확신은 없더라도 궁핍을 예방하는 최선의 대책인 건 틀림없었다.

p.168

"안간힘을 써 봤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래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요. 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당신을 얼마나 열렬히 사모하고 사랑하는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p.255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이렇게 달라졌다는 사실은 놀라움뿐만 아니라 감사의 마음까지 자아냈다. 그 힘은 사랑, 열렬한 사랑인 게 틀림없었다.

p.349

“제 미모에는 처음부터 아랑곳하지 않았고, 제 태도, 당신에 대한 제 태도는 줄잡아 말하더라도 거의 무례한 수준이었죠. 당신에게 말을 할 때면 늘 고통을 주려고 했고요.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 보세요. 제가 건방져서 좋아진 건가요?”

“발랄한 마음이 좋았습니다.”

p.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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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1~2 세트 - 전2권 - 셜록 홈즈 130주년 기념 BBC 드라마 [셜록] 특별판 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마크 게티스 외 엮음, 바른번역 옮김, 박광규 감수 / 코너스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셜록홈즈인데 그것도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를 모은 특별기념판이라뇨!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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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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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서 만났던 ‘드가’를 클래식 클라우드라는 책으로 만날 수 있어 반가웠고, 발레리나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화가로만 기억되었던 그를 조금 더 확장하여 제대로 알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좋았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작품의 영감을 얻었던 파리 곳곳의 장소를 보다 보니 드가와 함께 파리 예술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고, 그의 삶과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살았던 사회문화적 배경도 함께 알게 됨으로써 그 당시 파리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인상주의적이지 않은 인상주의 화가 드가

드가가 살았던 19세기 프랑스는 여러 차례의 혁명과 소요와 전쟁으로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갈등을 경험했던 시기로 예술을 둘러싼 기준과 유행 역시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전쟁과 내전을 겪으면서 경제적으로 위축되었던 살롱이 더욱 보수적인 취향과 기준을 고수할 거라 생각했던 예술가들은 살롱의 권위주의적인 심사 위원들의 손에 작품의 생사여탈권을 맡기지 않기 위해 독립적인 전시회를 열게 된다. 그렇게 1873년 ‘무명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 협회’가 출범하게 되고 이들에게 ‘인상주의’라는 이름이 부여된다.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풍경을 주된 주제로 삼으며 야외에서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 드가는 온갖 모순과 악덕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도시에 관심을 가졌고, 당시 프랑스 고전주의 미술의 대가인 앵그르로부터 들은 “선을 그려요, 많은 선을, 기억에 의해서이건, 자연에 의해서이건” 이 말을 평생의 지침으로 삼으며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인물과 사물의 윤곽선을 흐트러뜨렸던 것과 달리 그는 평생토록 선명한 윤곽선을 고수했다. 과거 어느 사조보다도 고객의 성향과 필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했던 인상주의와 달리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드가는 당장 작품을 팔지 않아도 되었기에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면서 자신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존재감을 높여 갔다.

19세기 오스만 남작이 주도한 급진적인 도시 계획으로 파리 대개조가 일어나고, 대개조 이후 경제적으로 넉넉해 유유자적 대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 플라뇌르가 출현한다. 인상주의는 플라뇌르의 예술이고, 바뀐 파리의 모습을 보며 달라진 도시의 이면을 예리하게 파고들면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던 드가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인상주의적인’ 화가였다.

인상주의 그룹의 핵심이었지만

가장 인상주의적이지 않은 그림을 그렸다.

혁신의 편에 있으면서도 전통적이었고,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전통과 갈등을 빚었다.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체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본능적이고 직관적이었다.

p.17

좋았던 점

드가의 묘부터 시작된 장소가 오페가라르니에, 롱상 경마장, 그리고 오르세미술관 루브르박물관, 콩코르드광장 등 여러 장소로 이어져 소개된다. 파리에서 태어난 드가의 생애와 함께 보는 파리 예술공간을 지도와 함께 더 나아가 QR코드로 직접 그 장소를 보게 해둔 점이 색다르면서도 좋았다. 정말로 직접 지도를 보며 그 건물을 찾아다니면서 파리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역시나 알고 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박스석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는 그림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 <에투알>, 수석 발레리나가 풋라이트를 받으며 나오는 모습 뒤쪽으로 무대 배경막 사이에 서있는 정장 차림을 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려웠던 경제생활로 인해 후원자를 두었던 발레리나들의 비참한 현실이 몽황적인 아름다움과 대비되며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드가는 화면 속의 인물과 사물을 자르는데 뛰어났다. 19세기 회화에 이런 식으로 곧잘 나타나는 절단은 프랑스 혁명이래 자아가 파괴되고 사회체제가 해제되는 양상이 미술에 반영된 것으로 작품들이 시대의 징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아쉬웠던 점

항상 그림과 글이 함께하는 책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흐름의 끊김. 한참 집중해서 빠져들며 다음 장을 넘기는데 글이 아닌 그림이 나올 때의 당황함이란, 재빠르게 다음 장으로 넘겨보지만 이미 끊어진 흐름, 다시 앞으로 가서 읽으며 그림을 건너 띄고 이어 읽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읽기를 반복한다. 가끔은 설명과 나와있는 그림이 서로 안 맞을 때도 있다. 앞에서 설명하고 뒤에 그림이 나오는 구조, 그 그림이 옆에 있었더라면 설명의 글이 더 잘 다가왔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림과 함께 보려면 어쩔 수 없는 건가?!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드가

1839년 등장했던 사진 앞에서 화가들이 초상화의 고객 대부분을 잃으며 사진에 거부감을 가진 것과 달리 드가는 직접 사진을 찍으며 활용했다. 재료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무시하고 조소 작업을 한 <열네 살의 어린 발레리나>는 얇은 천의 발레 의상을 입히고 토슈즈를 신기고 리본까지 단다. 끊임없이 일관되게 세상을 무대처럼 바라보며 새로운 구도로 대상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구사해 나갔던 드가, 시간을 그림에 담으려고 했던 그를 눈으로 담아보며 그와 함께 한 시간을 이렇게 기록해본다.

노년의 드가는 파리를 배회했다. 소변을 자주 봐야 했기에 오늘날의 버스처럼 운행되었던 승합마차를 타고 다니지 못했다. 홀로 파리 여기저기를 비척거리며 돌아다녔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때로는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젊었을 적에는 감각을 탐하며 도시를 집어삼킬 듯했던 그가 이제는 방향도 목적도 없이 다녔다. 오로지 돌아다니는 존재인 플라뇌르가 드가의 마지막 정체성이었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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