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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변신
피에레트 플뢰티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여왕의 변신> 저자_피에레트 플뢰티오 / 역자_이상해 / 레모
저자는 어렸을 때 읽은 동화를 많이 힘들었던 시기에 다시 꺼내 읽고 느낀 환대에 못지않은 거부감으로 인해 동화를 다시 써보고 싶은, 고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여왕의 변신>에는 샤를 페로가 쓴 동화를 페미니즘 관점으로 다시 쓴 여섯 편의 단편들과 새롭게 창작된 하나의 단편을 담고 있다. 현대 독자의 시점에 맞추어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가 피에레트 플뢰티오 저자에 의해서 어떻게 새롭게 쓰였을지 기대감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식인귀의 아내는 살코기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식인귀의 아내가 살코기를 좋아하지 않는 모습이라니 처음부터 의아했다. 그리고 '왜?'라는 의문과 함께 뒷장을 계속 넘기게 만들었던 <여왕의 변신> 첫 번째 동화 '식인귀의 아내'는 페로가 쓴 ‘엄지 동자’를 다시 쓴 단편이다. 원작에서는 엄지 동자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하지만 아주 잠깐 등장만 했다고 하는 식인귀의 아내는 버려졌던 아이였고 식인귀에게 성적 착취를 당하며 끔찍한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들 사이에 있는 식인귀 아이들 또한 가끔 자신의 엄마를 보며 군침을 삼키기도 하니 홀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식인귀의 아내이다. 엄지 동자를 만나 식인거인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식인귀 부인은 엄지 동자를 통해 진정한 쾌락을 느끼게 되는데, 첫 이야기부터 수위가 높고 파격적이다.
<여왕의 변신>의 두 번째 동화는 '신데렐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여성 주인공을 남성으로 바꾸어 진행되는 동화이다. 왕자와 이어졌던 신데렐라와 달리 신데렐로 공주가 아닌 자신보다 나이 많은 왕비와 이어진다. 둘이 함께 지식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부분이 가장 좋았으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주를 범하고 싶다든지 궁궐의 어떤 여자하고도 자지 못해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하는 신데렐로 인해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여성, 빼앗긴 동화를 되찾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그려진듯해 마음이 불편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모티브를 한 <여왕의 변신> 세 번째 동화, ‘도대체 사랑은 언제 하나’와 여섯 번째 동화 ‘잠자는 숲속의 왕비’
도대체 사랑은 언제 하나는 정말 제목 그대로 사랑은 언제 하나이다. 사랑에 빠진 공주와 왕자가 결혼을 하지만 궁중의 대소사로 인해 정사를 벌이기 직전에 계속 어긋나 정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왕비는 끊임없이 아이를 낳으니... 절로 물음표가 가득해진다. ㅎㅎㅎ 더 놀라운 건 죽음을 앞둔 왕비가 마지막에 딸을 낳는 대목! 다시 살아난 왕비가 저주를 내리려는 마녀를 보고 외친 이 대사가 이 동화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왕비님, 언제 백 년 동안 잠들었었나요????
"당신의 예언은 옛날 거예요. 내가 백 년 동안 잤으니 그걸로 됐어요. 가세요, 당신하고는 더 이상 볼일이 없으니."
……
"바늘에 손이 찔린다고 해서 잠이 들지도 않고 왕자를 본다고 해서 깨어나지도 않아요. 반면에 왕자를 보는 바람에 바늘로 자기 손을 찔러 백 년 동안 잠이 들 위험은 분명히 있죠."
가장 여성의 목소리를 강하게 낸 이야기, 그리고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여왕의 변신> 네 번째 동화 ‘빨간 바지, 푸른 수염, 그리고 주석’과 다섯 번째 동화 '일곱 여자 거인'이었다. '빨간 바지, 푸른 수염, 그리고 주석'에서 빨간 바지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밑에서 그들이 준 물건을 이용해 늑대와 놀기도 하고 늑대를 타고 다니기까지 할 정도로 강하게 자란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를 연속으로 죽인 푸른 수염을 만났을 때도 도망치지 않고 그 상황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갇혀 지내던 아내들을 풀어주고 자신의 길을 떠나는 빨간 바지, 뒷이야기도 사뭇 궁금하다.
"아주 오랫동안 지하 벽장에 갇혀 있다보니 우리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고, 여자들이 행복하기 위해 남자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고."
'백설공주'를 다시 쓴 '일곱 여자 거인'의 주인공은 새 왕비이다. 기존의 새 왕비와 다르게 이 왕비는 짧은 머리에 기사와 같은 복장의 바지를 입고 독서와 학문을 추구하는 멋진 여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시대의 요구가 표현된 일곱 개의 거울로 인해 점차 자신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궁으로부터 벗어나 여섯 여자 거인과 함께 지내게 된다. 그들과 지내며 본래의 자신을 찾으면서 일곱 번째 여자 거인이 된 새 왕비와 여섯 여자 거인이 일곱 개의 거울을 깨트렸을 땐 통쾌하기까지 했다.
마지막 창작 동화 <여왕의 궁궐>은 큰 틀을 가지고 진행되던 앞 동화들과 달리 여왕의 내면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읽기 쉽지 않았다. 뒤에 수록된 해설을 보고서야 '아~'하며 그나마 정리가 되는듯했지만 중간중간 끊어지는 듯한 이야기로 인해 여러번 다시 읽기를 반복하게 되고 나중에는 내가 저자에게 묻고 싶었다.
신데렐로에 마차 대신 캐딜락으로, 빨간 바지 푸른 수염 그리고 주석에서는 레이저와 호르몬 치료,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아나운서 등 중간중간 나오는 현대 문물들이 동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보는 재미가 있었던 <여왕의 변신>, 빼앗긴 동화를 찾다가 만 느낌이지만 원작을 새롭게 쓴 점에서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으로 쓰여진 동화를 기대해 본다.^^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꿈과 희망이 가득했던 동화가 커서는 원작을 접하게 되고, 그 동화가 잔혹 동화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기도 하겠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성장이자 추억이고 재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