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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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5권 시리즈 도서 중 ‘좀머 씨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책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로 저자가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 아이가 두려웠다.

p.39

주인공 장바티스트 그르누이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악취가 도시를 짓누르던 때,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도시 파리에서도 가장 악취가 심한 페르거리에서 생선 장수를 하던 여인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것도 생선 내장과 잘린 생선 대가리들로 온통 파리 떼에 뒤덮여 있던 그곳에서 버림받다시피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존재를 소리로 알려야 했던 그는 그 누구보다도 천재적인 후각을 가지고 태어나 냄새로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파악했고, 장소의 냄새를 통해서 눈을 감고도 그곳을 활보하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향기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 냄새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래서였을까? 본능적으로 끝을 잴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풍요로운, 이 지구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향기를 만들어 내려고 했던 향에 대한 그의 집착이 시작된 이유가! 그리고 그 집착이 인간의 체취를 액으로 소유하기에 이르게 하고 죄의식 없는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향기는

다른 모든 향기를 정리할 수 있는 열쇠일 것만 같았다.

이 향기를 알아내지 못하면 향기에 대해서는

영영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이 냄새를 붙잡는데 실패한다면

그르누이 자신의 인생은 실패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도

그는 향기를 차지해야만 했다.

p.65

왕위 계승일을 기리는 불꽃놀이가 있던 날, 화려하게 번쩍이며 불꽃이 튀면서 내는 냄새가 별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바람에 미세하게 그가 지금까지 맡아 본 적이 없는 향기가 실려온다. 그 미세한 향기를 맡는 순간 그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해 심장이 아플 정도로 괴로움을 느낀 그르누이는 그 향기를 추적하게 되고 그 끝에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게 된다. 그녀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그의 첫 살인이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아니, 다시 태어난 정도가 아니라 이제 처음으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p.72

예민한 코, 비상한 기억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마레 거리의 그 소녀한테서 빼앗아 깊이 각인해 놓은 그 향기가 있었다. 그 속에는 위대한 향기, 향수를 구성하는 모든 것, 즉 부드러움, 힘, 지속성, 다양함, 놀라우면서도 뿌리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주문처럼 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이끌어 줄 나침반을 발견한 것이다.<중략> 자신이 이를 악물고 그토록 끈질기게 생에 집착해 온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는 향기의 창조자가 되어야 했다. 그것도 그저 그런 정도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향수 제조인이.

p.73





발디니의 밑에서 향수 제조법을 배우며 도제의 과정을 밟던 그가 한계를 느끼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그리스로 떠나는 과정에서 자신이 빠져나오고 싶어 했던 것이 세상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악취로 가득했던 도시와 사람들로부터 멀어질수록 맑아졌던 정신, 깨끗한 공기에 익숙해질수록 인간 냄새에는 예민해져 결국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동굴에서 7년을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취의 안개가 자신을 질식시키려는 악몽을 꾸게 되고 수 마일씩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 냄새도 맡는 본인이 정작 자신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에게선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꺼려 하고 그를 전혀 인식 못 하고 지나쳤던 이유가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주변에 냄새의 공간을 형성하지도, 파동을 일으키지도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어떠한 향도 알아낼 수 있었던 그가 정작 본인은 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향을 만들기 위해 25명의 여인을 살해했던 그르누이, 그는 단 한 번 꼭 한 번만이라도 그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는 인생에서 <단 한 번 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고 단 한 번 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는 이 향수를 통해 세상에 신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향수를 느낄 수가 없으니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세상과 자신, 그리고 향수를 비웃었다.

p.384



크게 4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던 <향수> 이야기는 그의 탄생부터 그가 향기로 인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자의 치밀한 문장력에 더해진 특유의 분위기와 느낌으로 흡입력 있게 작품의 세계 속으로 끌어당긴다. 악취가 풍기는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쓰인 파트리크 쥐스킨트 장편소설 <향수>를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랑스 향수의 유래가 생각나며 왜 제목이 '향수'였고, 부제가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였는지 알것만 같았다.

향수 본고장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프랑스 그라스, 초반에는 페스트 등 각종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향료가 동물 가죽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외관과 달리 베르사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어 당시 귀족들이 주변 정원에서 볼일을 봐야 했으니 여기저기 오물 천지였다. 그래서 그때 유행한 게 그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한 하이힐과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완화시킬 향수였단다.

'향기는 기억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듯 나 또한 나 자신에게서 좋은 향이 나길 바라는 마음에 향수를 사용한다. 후각은 인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뇌의 기관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다른 감각에 비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정보를 기억하고, 그 당시의 감정까지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즉 그 사람이 가진 향이 그 사람을 각인시키게 하는 효과와 그를 기억하게 하고 감정을 끌어내 변화시키는 것이다. 증오를 원했던 거라고 외쳤던 그르누이도 어쩌면 자신 그대로를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했던 건지 모르겠다.

그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

즉 아주 드물지만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람들의 냄새였다.

그 사람들이 바로 그의 제물이었다.

p.291

ps. <향수>를 읽으며 파리 도시의 냄새는 냄새는 다 맡은 기분, 정말 향이 이렇게 다양할 수도 있구나 새삼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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