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8월1주

탐욕은 언제나 문제죠. 그래서 괜한 것에 목숨을 걸어서 범죄자의 길을 걷기도 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을 지닌 영화야 무척 많지만 무척 대조적인 영화 두 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아직 두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매우 관심이 있어 이번 주 제가 정복하고자 하는 영화랍니다. 그런데 두 영화 무척 대조적인 모습 같지만 소재는 탐욕이란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험에 처해 있는 것도 그런 것 같고.  



영화 둘은 바로 ‘퍼블릭 에너미’ (한국어론 공공의 적)와 ‘10억’이 그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하실 것 같은데 그냥 제 생각입니다. 둘 다 공통점은 우선 죽음의 기로에 선 위험한 상황입니다. 이름 모를 호주의 사막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10억’은 지금 한참 하고 있죠. 본격적으로 서평이 올라올 때라 좀 그렇지만 그래도 돈을 위해 사투를 벌이게 될 그들은 위험과 탐욕이 동시에 공존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퍼블릭 에너미’는 이미 어떻게 될지 알고 있을 실화를 다룬 것입니다. 새로운 사실 하나 더 추가하기 위해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았음을 모두 경험으로 알고 계실 것입니다. 사회적 불만과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 은행만을 털 뿐 개인의 돈은 강탈하지 않는 어느 강도의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서 돈에 대한 탐욕도 있지만 도리어 탐욕에 빠진 자본주의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표출한 영화입니다.  



두 영화는 또 하나의 유사성이 있네요. 자기들을 함부로 대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는 억지로 표현하면 분노의 대상들을 극복하려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단 것입니다. 10억에선 억지로 끌려왔단 설정이 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면 그 이후 어떻든 극복하려는 위험을 감수한 도전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네요.
이런 것들은 결국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도 이런 이야기하고 나서 과연 옳은지 저도 잘 몰라 함부로 이야기한 것 같지만 영화는 보기 전엔 모르는 위험한(?) 예술이니 꼭 보고 확인을 하고 싶습니다. 탐욕, 자신들의 상황을 만든 자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에 따른 위험, 이 세 가지를 꼭 확인하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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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8-08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다 보고 싶은 영화에요.
페이퍼 참 좋으네요.
10억은 내일 볼 것 같고.. 조니뎁의 저 표정 멋져요.
 
썸머워즈 - Summer War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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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의 능력을 한껏 보여준 작품. 도시인들이 보고 싶은 모든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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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8월1주



 

솔직히 보기 전에 이 영화가 그다지 흥미있을 것 같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고 난 후 난 많은 것들을 생각했어요. 도시 속에서 인간의 정에 매마른 분들이 있다면 가족이나 친구, 혹은 어쩌다 만난 그이나 혹은 그녀들과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도시에 없는 그런 것들이 다 있어요. 대가족, 정 깊은 시골, 엄하지만 자상한 할머니, 귀여운 조카들, 그리고 우리 같은 활달한 여자, 기죽어 사는 우리같은 남자 아이. 여기에 가상공간에서 악당이 나오고 힘을 합쳐 해결하는 그들이 있습니다. 

  

일본영화의 애니매이션은 세계 최고입니다. 감각은 물론 내용면에서도 너무 뛰어나 한국에서도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죠. 올드보이가 대표작이지만 이 말고도 많을 것입니다. 일본이란 잣대를 보면 화내시겠지만 만화라는 것을 잣대로 본다면 수준작을 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아시아인으로 점차 아시아적 문화를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고스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영화 보시고 확인하세요. 그리고 꼭 가족을 사랑하시고 시간 있으면 힘들더라도 가족을 만나러 가세요. 특히 도시 안의 어느 골방에 계신 분이라면. 그 분들은 여러분들을 차갑게 맞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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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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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는 버리는데 익숙하다. 경제위기 이후 88만원 세대들로 대표되는 20대가 버림받았고, 수많은 노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버림받고 폐휴지를 찾아 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30대, 40대, 50대는 버림받지 않았을까? 세대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자체가 버림받은 자들의 상징이 되고 있다. [국가대표]란 영화에서도 버림받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과거 버림받아 미국으로 입양된 오누이가 있고, 물의를 일으켜 받았던 메달을 박탈당하고 사회의 마이너러티로 떨어진 자들도 있고 아버지로부터 무시 받아 버림받은 자도 있었다. 그리고 올림픽 유치 상황에 따라 버려질 그들 역시 존재한다. 마치 우리처럼.
  비인기 종목 선수도 사실 버림받기 일쑤인 한국사람들일 뿐이다. 즉, 마이너러티다. 또한 대한민국 스키 점프 선수단은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스키 점프 대표팀들은 일개 실업팀 규모도 되지 않은 규모의 이들이 한국 유일의 팀이니까. 당연히 자신들끼리 하는 무슨 대회도 없고. 그냥 그들은 그렇게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이 안고 있는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는 절박함은 너무 심각해 보인다. 영화에서의 모습들은 특히 그래 보였다. 또 다른 [우생순]이겠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의 감동과 상업성을 갖추고 있다.
  [국가대표]란 영화는 현재 한국 영화가 갖고 있는 속성들을 거의 갖고 있다. 같은 동료들간의 갈등 구조와 조화를 통한 순화, 그리고 미소 짓게 만드는 캐릭터, 웃음 코드, 그리고 눈물 등,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이 영화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다만 사랑 이야기는 그다지 진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상업영화의 그 모든 것을 갖췄다. 그렇다고 영화가 수준 이하가 아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런 상업성에도 인간적인 매력을 다양하게 갖춘 영화다. 영화는 마이너러티들의 걱정의 화염 속에서 거칠게 도전하는 그들을 보여준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기 위해 잘 나가는 미국 알파인 스키 주장 자리를 때려 치고 한국에 온 미국 국적의 주장, 선수 시절의 실수로 인생 전체를 도려내야 하는 선수들, 그런 그들 중 생계를 위해 군대 갈 수 없는 자의 절박한 도전, 그리고 그냥 그런 학원의 원장이었다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작한 감독, 이들에겐 공통점은 단 하나, 몰리고 몰려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절박한 위기 속에서 도전한다. 설사 성공해도 그들에게 돌아올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아니 조만간 버림받겠지만, 그들은 그래도 도전했다. 도전하기 벅찬 금메달이라도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처지에서 싸워야 했다. 이런 그들의 연습은 비극적이기도 했고 희극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장면이 나오든 그들에겐 성공이 엄청난 것을 보장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결과가 좋다고 팬들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 잘난 경기장을 세워 줄 것 같지도 않다. 카페나 몇 개 생길까? 절박하게 한 결과치곤 너무 소소하다. 그래도 지금 그들은 아직 국가대표 선수다. 그리고 그들의 긴장과 열정들이 비록 극화를 위해 인위성이 가미됐다 하겠지만 내용 그 자체가 무척 인상 깊은 소재라 어느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모르지만 그것과 상관 없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분 좋음과 감동, 그리고 위기 소침해 있는 우리들에게 줄 수 있는 도전 의식 등을 훌륭히 느낄 수 있다. 우리도 어쩌면 마이너러티이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영화가 진화하고 있다. [해운대]에서 스케일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CG가 여기서도 사용됐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CG 역시 상당히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스키 점프의 역동성을 기막히게 형상화한 영상과 사운드는 오감을 훌륭히 자극하고 있다. CG 효과와 함께 시각의 역동성이 거친 청각과 더해지면서 스키로 타고 내려올 때의 강렬함, 그리고 점프했을 때 선수 뒤에서 본 앵글로 관중과 착지 장면을 찍을 때의 영상은 전에 본 적이 없는 화려한 영상의 백미다. 단순한 이미지만 보여줄 것 같았던 스포츠 영화가 강렬하게 역동적이고 거의 원시적인 힘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들을 격조 높게 영상에 담았다는 점에서 한국 스포츠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개인적인 평가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좋은 영화엔 필수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좋은 연기자들이 열연한 영화였다. 각자의 캐릭터에 한치의 오차 없이 무난한 연기력을 보여준 연기자들 덕분에 어설플 수도 있었던 개연성이 잘 마무리됐다고 느껴졌다. 나가노 올림픽에서 무시 받으며 입국한 그들 중 Bob (한국 명 차헌태)의 눈물 어린 고뇌에 찬 연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였다. 좋은 배우가 좋은 연기하는 것이 그렇게 회자될 것은 아니지만 자칫 잘못했다면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장면에서 그의 연기는 마지막 엔딩을 감동적으로 마무리되도록 했다.
  [해운대]에서의 소망이 여기에서도 이루어졌으면 한다.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어조와 시선이 스포츠 영화의 특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인간의 휴머니즘과 신뢰를 근간으로 한 마이너러트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 바램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리라.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의 믿음과 시선이 옳았으면 하는 바램 역시 거기에 추가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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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 Black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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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는지 난 시작부터 영화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연극적인 구성으로 영화를 구성해서인지 연기자들의 과장된 연기는 이질감이 느껴졌고, 인도적인 느낌보단 차라리 서구적인 세계로 이루어졌던 배경과 연기자들의 행동은 상습적인 인도적 성향을 생각했던 나에겐 또한 낯설었다. 그리고 배경음악 역시 과다한 감정을 전달하고 또한 거칠기에 영화로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아마 독특한 구조와 성격을 갖고 있기에 그런가 보다 생각은 했지만 영화는 내가 본 이상한 것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영화의 내부적 심리엔 바꿔야 한다는 열정이 숨쉬는 영화였다. 연극적 구성을 갖고 있는 영화의 구성 속에서 상징으로 가득한 오브제, 그리고 과장됐지만 뛰어난 연기력이 어우러진 예술성이 높은 영화란 생각이 든다. 또한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사회적 의미와 인간적 의미 두 가지를 통해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영화란 점도 고려대상이 된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난 이 영화가 인도 영화인지 몰랐다. 나에겐 거의 미지의 책을 읽는 상황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처음부터 시작된 역순행적 구성으로의 이야기는 조금은 당황스럽고 묘한 기운을 느끼기조차 했다. 아마 낯설기 방식이 나에겐 보다 좋은 집중력을 이끌었다.

인도라는 사회의 암담함과 그것을 지양하고 새로운 문명사회로 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는 듯이 보였다. 영화는 시초부터 단순한 서사이지만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암시한다. 눈과 입이 문제인 여자아이는 사회성의 부족으로 미래의 자립의 위기를 안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좀 거친 선생이 찾아온다. 그의 철학은 오늘날의 언어학에서도 다루는 이야기이다. 언어를 알아야 소통을 하게 되면 그를 통해 사회성은 물론 자립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아마도 언어문화와 관련된 그의 생각은 어쩌면 계몽주의에 대한 의지로도 비쳐질 수 있다. 그의 수업 방식은 철저히 사회화를 추구하게 된다. 그의 방식은 분명 사회의 폭력성을 느낄 만큼 폭력적이었다. 어쩌면 강제적이라도 뭔가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감독이나 인도인 전체에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어를 알아야 소통한다는 의미는 거꾸로 언어를 모른다면 야만의 사회를 헤맬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인식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 점이 감독이 지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야만의 시대 속에서 살고 있기에 계몽을 통해 개발의 시대로 가야 한다는 무언의 강조점이 그것일 것이다.

감독의 그런 의도가 지향하는 사회는 서구이지 동양은 아니었다. 영화의 오브제들은 거의 모두가 서구를 상징하고 있었다. 인도인의 의상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집과 거실의 오브제들은 거의 서구를 상징했다. 인도의 종교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집안에서 믿는 종교가 십자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모습에서도 오브제를 통한 인도인의 묘한 모습을 던져준다. 대학 총장과의 첫 대면이 재즈 음악이 흐르는 파티장이었다는 것은 서구적 인도 만들기의 대표적인 구성이었을 것이다. 감독의 의도에 따른 공간의 상징성은 대학에서도 느낄 수 있고 집에서도 느낄 수 있고 재즈 음악이 흐르는 파티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생 결혼식에서 볼 수 있는 모습 역시 인도적인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인도에 대한 무지가 크지만 그래도 인도 같지는 않았다.

마지막의 엔딩 장면에서 가장 분명했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스승이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과 함께 촛불을 키며 주인공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밤에 향한 곳은 성당이었다. 힌두교도 불교도 아닌 성당으로 가는 많은 인도인의 모습에서 감독은 계몽적 근대화로의 강한 진출을 주장한다. 아마도 춘원 이광수의 ‘무정’을 영화로 보는 것만 같았다.

이런 사회적 맥락 속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적 측면에서도 영화에서 흐르고 있는 보편적인 내용은 우릴 감동시킨다. 바로 인간의 신뢰와 도전, 그리고 역경을 뛰어넘는 성공이다. 이에 더하며 타인을 위한 노력 역시 이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시작부터 헬런 켈러 재단과의 연계를 드러낸 진술에서 잠깐이나마 연상되긴 했지만 좋은 스토리와 인간적 휴머니즘을 구현하는 내용은 아무리 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일 것이다. 인간이 패배하지 않는 모습을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감정이입과 그에 따른 신화를 계속 재생산함으로써 보다 우아하고 의욕적인 삶을 살려는 우리들의 낭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영화의 아름다움은 무척 즐겁기도 하다. 무엇보다 12년 만에 대학을 졸업해서 지적인 인도인이 된 제자와 알츠하이머 병으로 인해 자신의 과거를 모두 잊게 된 스승을 위해 그를 가르치려는 제자의 마음가짐은 주고 받는 교환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도전이자 인간적 내면의 아름다움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다의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즐거움이다. 다양한 상상과 다양한 의미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창작자가 창조한 작품에 대해 독자들의 자의적 해석이 있기에 그 예술작품의 가치는 계속 유지된다. 이런 방식이 진부하고 과다한 의미 만들기, 더 나아가서 창작가의 의도완 다른 방향으로 갈지라도 그런 것에 구속되지 않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효용론적 관점에서도 정당화된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런 작품들이야말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아마도 ‘B.L.A.C.K’은 많은 다의성으로 인해 좋은 인상과 즐거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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