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0월 4주

  언제부터인가 외국인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잘 나가는 미국도, 아니면 유럽도 아니다. 과거 40-50년 전의 한국 살림살이를 아직 유지하는 나라에서 온, 가난한 국가들 출신들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한국의 허드렛일을 하고, 저렴한 일에 종사한다. 한국에선 작은 돈이 그들에겐 매우 큰 돈이기에 그들은 한국사람들에 비해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에 대해 마냥 한국사람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다. 착취는 예사고, 구타와 모욕적인 말들이 남발하는 그런 곳에서 그들은 살고 있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것은 한국의 어두운 장면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 그들의 숫자는, 한국민들의 인구위기가 늘고 있는 요즘, 최근 늘고 있고, 미래에 한국의 새로운 인구의 주축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거스를 수 없는 그들과의 공존에 대해, 한국인들의 생활자세가 바뀔 것을 요구하고 있고, 비록 독립영화가 대다수지만, 영화 역시 그런 요구를 화면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다만 영화가 제시하는 것은, 사실적이기에, 매우 거칠고 폭력적이다. 그리고 시작은 언제나 몰이해로부터 시작한다. 다행히 마지막으로 가는 부분에선 Happy Ending으로 끝나지만 말이다. 이런 영화들 중 ‘방가?방가!,’ ‘로니를 찾아서,’ 그리고 ‘반두비’가 있다.  


 

  뛰어난 연기력을 갖췄지만 사실 외모로 인해 주인공을 찾기 힘들었던 ‘김인권’이란 배우가 자신의 매력과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이야기에 한국의 불행한 젊은이를 덧붙였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갖고 있다. 한국사람들 중에서도 취직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 영화는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이들 간의 공존의 문제를 다소 낭만적이지만, 재미있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영화다.  


 

  현재 한국에선 능력 없는 한국남자가 여자 사귀기는 별따기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외국인 근로자 남성이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런 동화가 일어났다. 비록 거짓으로부터 시작됐고, 다소 황당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영화 속의 한국인 여고생은 자립심은 강하지만 세상에 살아가기에는 좀 힘들어 보인다. 한국의 Loser에는 남녀 가릴 것이 없나 보다. 하지만 희한한 일로 얽히면서도 즐거운 구도로 영화를 끌고 가고 있으며, 현실엔 없겠지만 재미있게 상상할 수 있는 것들로 넘친다.  




 

  남의 고생이 나의 행복의 원천이라면? 아니면 다른 사람의 밥상을 엎어야 내가 생존할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이나 질문은 특이한 것도 아니고, 세상을 살면서 당연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밀어닥친 생활고는 이런 고민조차도 사치스럽게 만들고 있다.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들을 핍박해야만 살아가는 정글의 시대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쩌면 가난한 한국인들에게 공격대상일 뿐이리라. 하지만 그 공격은 언제나 희생이 따르고, 자신의 행실로 인해 벌어진 것에 대한 보복으로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른 한국인의 모습은 한국인들의 자성을 이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루어지고 있는 사과와 화해의 내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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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0-10-2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두비~~ 아,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물론 다른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저의 늦어지만 올해의 발견, 그리고 백진희의 놀라운 연기, 잘 보고 갑니다..

novio 2010-10-27 00:38   좋아요 0 | URL
반두비는 정말 많은 분들이 칭찬하지만 대중성을 목표로 하지 않아서인지 아시는 분들만 아시더군요. 참 유감입니다.
 
검우강호 - Reign of Assasin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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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협, 한때는 나에겐 동화였고, 신화였고, 이상향이었다. 무협의 이야기 속엔 화려한 무술이 보였고, 또한 원초적인 인간관계와 사랑이 있었다. 부모와 가족에 대한 복수, 그리고 현재에선 도저히 믿기 힘든 우정과 믿음, 그리고 끝없기만 한 사랑이야기가 있었다. 이런 모습은 현대의 영화와 소설에선 사라진 지 오래다. 철들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험한 세상은 냉정하고, 종종 냉혹하기만 했다. 그 속에서 기본적인 가치를 담은 인간관계의 핵심인 가족까지도 무너지는 것까지 현대의 세상은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검우강호’란 영화는 반갑기만 하다.
  뻔한 구성이지만 진보한 무협영화란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복수 속에서도 새로운 인연은 시작됐다. 그것이 작위적이고 거짓된 시작이었지만 말이다. 어느 고승의 시체를 갖고 최고가 고수가 된다는 믿음이 사실이 되는 순간, 그에 대한 희생이 벌어졌고, 갈등은 그렇게 시작됐다. 죽고 죽이는 인연 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 속에서 결코 희망이나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한계는 인간이면 항상 느끼는 감정일지 모른다. 그를 피해 도망하지만 인연은 그리 쉽게 깨지지 않은, 아니 더욱 집요하게 한 인간의 인생을 옥죈다. 그리고 과거의 인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결국 다시 원점으로 가게 된다는 설정은 인간사의 근본적인 철칙일 것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든 인간관계는 삶이 어느 순간 수단이 되어버린 비극을 이야기한다. 희망을 품고, 그리고 행복해야만 할 인생은 과거의 질곡 속에서 헤매면서, 과거의 악연을 끊으려는 행동이 도리어 과거에 얽매이는 상황만이 연출된다.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간관계로 진화하는 상황 앞에 한 인간의 선택은 양자택일이 될 뿐이며, 어떤 선택도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기에 주저하게 되며, 도리어 인간적이 고뇌로 파멸되어 갈 뿐이다.
  과거의 무협영화가 좀 단순했다고 할까? 그 무협영화들의 후손은 좀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워졌다. 어떤 선택이든 가볍거나 획일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현재의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액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고민이 될 수 있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그래서 고전적인 재미와 현대적인 재미가 현대의 무협영화라 할 ‘검우강호’에 존재한다. 구성에서, 혹은 영화의 흐름에서 다소 미진한 것이 있지만 전체적으론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지저분한 인간관계가 아닌 단순하면서도 고민스런 구성을 갖고, 그에 대해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풀어간 것은 무척 좋아 보였다. 괜히 오우삼이 아닌 것 같다. 가을에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얻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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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우강호 - Reign of Assas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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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영화의 새로운 기원,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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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 The Rec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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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정말 화려하네요. 그런데 된장이란 제목, 참 묘하게 끌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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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2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루 밑 아리에티 - The Borrower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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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감독 ‘미야자끼 하야호’의 작품엔 이젠 없는 것들로 가득 차있다. 깨끗한 마음,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함께 있으면 좋다라는 동료애. 이런 것들은 경쟁이 격화된 이 세상에선 사실 찾기 힘든 멸종생물과도 같이 참 보기 힘든 것들이다. 그래서일까? ‘미야자끼 하야호’와 많은 공동작품을 한, 그의 수제자인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첫 작품은 자신의 스승이 갔던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창조성에 대해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런 비슷함이 너무 반갑기만 하다. 그가 보여주는 세상은 지금은 보기 힘든, 그러나 보고 싶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동화에 대한 강한 갈증이 있다. 잠시 동안의 행복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 사라지겠지만, 동화로 가득한 내용을 통해 풍부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이 영화는 그래서, 매력 덩어리로만 느껴졌다.
  작은 인간인 소인들, 진부한 소재다. 분명 과거의 어느 이야기책에 등장해서이겠지만, 진부하다고 외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고 또한, 그런 진부함 속에서 도시인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 이색적인 볼거리로만 치장된 S/F 공상영화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공포물은 기이한 모습을 통해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도시인의 정서엔 결코 부합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차라리 이미 어디선가 봤던, 미지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정서적이고 행복감을 준다.이 모양새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있던 인간의 욕망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들과 함께 은밀하게 산다는 설정은 현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즐거운 이야기 거리다. 동화에 나오는 설정이 바로 우리 옆에 있다는 환상을 주며, 다른 종류와의 더불어 살기에 대한 이야기를 즐거우면서도 동화처럼 이야기한다. 
  그런 즐거운 시간을 만끽할 주인공인 ‘쇼우’가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느 외딴 집으로 온다. 이미 육체는 물론 정신적인 아픔까지 갖고 있는 듯한 주인공은 부모의 외면 아닌 외면 속에서 그들과 멀리 떨어진 채, 현실로부터 벗어난 동화의 한 고장으로 들어간 것이다. 마치 도시 속에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상처입은 도시인처럼 말이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된 미지의 존재인 소녀 ‘아라에티’는 이제 그녀가 맞이할 세상을 보게 된, 그래서 성장통을 앓게 될 소녀다. 처음이기에 망설였지만 묘한 신비감에 이끌려 평범(?)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으로 들어온 10cm의 작은 소녀는 위험으로 가득 찬 곳에서 자신이 꿈꿔온 낭만과 이국을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둘은 어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설레임 역시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고, 길들여져 있으며, 그래서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만남은 평범하면서도 낯설다.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은 있지만 간접적으로 맺은 관계에 대한 편견으로 그들의 만남은 언제나 주저를 먼저 하게 되고, 그리고 묘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혼재해있다. 다른 세상의 것을 훔친다고 생각하기에 만남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갖고 있는 ‘아리에티’는 가난한 자들의 속마음일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런 소녀 앞에서 자신의 거친 목숨 앞에 마지막일지 모르는 동경의 세상에 대해 그가 하고 싶은 만남과 그를 위한 친절에 최선을 다하는 쇼우는 마지막이란 운명 앞에 마지막 소원을 빌고 있는 불행한 어느 소년의 모습이다. 그들 주변에 산재한 어른들의 삶의 방식은 그런 그들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간절하게 기다려온 소중한 인간관계와 우정은 그런 것들을 기우로 만들고, 자신들만의 멋진 인간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자신들의 세상에서도 이젠 흔하지 않은 좋은 인간관계를 구성하며, 상대의 행복을 진지하게 기원한다. 이것 역시 우리들에게 흔한 것이 아니다.
  부러웠다. 그들의 이색적인 만남도 부럽지만, 지금의 현대인에게 없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모습도 그랬다. 휴머니즘을 발산하는 그들의 만남과 위험 속에 생성된 타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점점 잃어버린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질타로 보인다. 이젠 흔하지 않은 것들로 변한 인간의 우아함을 이젠 동화로밖엔 볼 수 없는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은 정말 안타깝기조차 하다. 경쟁으로 인해 서로 공유할 것들은 사라졌고, 과시를 위한 것들을 얻기 위해 애쓰는 우리들의 모습은 동화의 주인공들이 보기엔 역시 낯설 것이다. 어서 빨리 그들의 세상에서 지배하는 가치가 우리들의 가치로 어서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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