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미술여행 - 루벤스에서 마그리트까지 유럽 미술의 정수를 품은 벨기에를 거닐다
최상운 지음 / 샘터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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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플랑드르라는 지역은 역사적으로 이 지역을 얻기 위해 수많은 갈등이 있던 지역이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마치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이쪽저쪽으로 넘어간 루우르 지역 정도로 알고 있었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통해 망국의 한을 되새겼던 기분을 키웠는데 플랑드르란 지역 역시 비슷한 역사적 맥락이 있다고 생각했고, 좋은 땅이 갖고 있는 불운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나라가 벨기에란 나라의 땅이란 것은 몰랐다. 몰라도 사는데 불편하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좀 알았다면 유럽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물론 혹시 모를 벨기에 여행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 덕분에 더욱 즐거운 여행일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는 느끼지 않을까 생각됐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 최상운 저 ‘플랑드르 미술여행’란 책은 경상도 크기의 이 작은 나라의 예술적 매력을 촘촘히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적 자원이 많고 깊다는 것은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의 질과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드러내는 척도다. 이런 점에서 벨기에의 수준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 상상 이상이었다. 뛰어난 미술가들의 업적들은 다양한 과거의 매력들을 담고 있었고, 벨기에의 위대한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많이도 갖고 있는 ‘브뤼셀 마그리트 미술관’은 마그리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특별한 장소라는 점에 이의를 달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다. 이러기에 벨기에는 반드시 가봐야 할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다. 우선 여행기다. 특별할 것은 없는 여행기란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저자의 예리한 감각으로 드러난 벨기에의 브뤼헤, 겐트, 안트베르펜, 브뤼셀 도시들의 뛰어난 예술적 매력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예술 작품들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유지하고 가꾸는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한국처럼 버림받은 그 무수한 예술작품들을 갖고 있는 나라들의 문제가 뭔지를 벨기에는 역으로 보여준다. 결국 어떻게 소장하고 가꾸는지, 그리고 그 저변에 있는 예술적 감각과 마인드를 갖고 있는 국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반면교사, 정말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한국 같은 나라 때문에 벨기에 국민들이 각성한지 모르겠다.
  또 다른 특성은 바로 예술작품들에 대한 촘촘한 분석이다. 예술적 안목을 지닌 저자 덕분에 그간 몰랐거나 혹은 잘 알지 못했던 작품들 이면의 매력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일일이 이야기하는 저자의 수고 덕분에 작품의 매력을 한층 높아졌고, 왜 이런 작품들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 관람 시간이 자칫 무의미한 시간이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예쁘니까 보거나 괴이해서 볼 뿐, 더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파악할 수 없을 때, 그 작품들을 위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건 도시 한 가운데를 의미 없이 걷는 그런 류의 과소비일 뿐이다. 작품을 보는 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작품 이면을 확인하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조금 더 알고 작품을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것이 관람이라면 이 작품은 플랑드르 지역 작품들의 이면을 촘촘히 보여주고 있고, 후일 그 작품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저자에게 감사함을 느낄 것이다.
  큰 축복, 플랑드르는 그것이 있다. 과거의 비극이 무엇이든, 현재의 이곳은 참 부러운 것들 것 많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이 지역 사람들의 착한 모습들은 참 부럽기만 하다. 문화라는 공통의 속성을 지녔기에 예술 작품이 착하니 사람도 착한 것 같다. 모든 것이 그런 것 같다. 착한 것들은 전염성이 있나 보다. 미술, 그리고 예술의 좋은 점이 확산되고 모든 이들이 다 갖게 될 때, 모두가 행복해질 것 같다. 어서 가고 싶어진다. 플랑드르.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도 보고 싶다. 그럼 좀 나도 착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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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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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시 하나로만 알려진 시인일 것 같다. 국민의 시가 된 ‘사평역에서’의 작가 곽재구 시인 말이다. 시인에게 국민적인 사랑 받는 시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마냥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20년도 지난 시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이 이야기된다면, 시 하나만을 남길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시인에겐 그건 또 다른 비극이자 넘어야 할 산일 것이다. 그가 20년간 쉬지 않고 작업했음에도 그는 그만큼 성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꼴이니까. 동시에 시인 하나를 시 하나로만 기억하는 독자 역시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시인에게 어떻게 하나만의 얼굴만이 존재할까?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인의 범주에 시인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오직 일면만으로 그를 이야기하기보단 좀 더 다양한 시인의 매력을 맘껏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듯 곽재구 시인의 ‘길귀신의 노래’는 곽재구 시인의 다른 버전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우린, 아니 난 곽재구 시인을 박제가 된 ‘사평역에서’란 시로만 기억한다. 그래서 곽재구 시인에 대한 개인적 이미지는 재미없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계속 들으면 지겨워지는 법이 아닐까? 그런 찰나, 제목부터 색다른 ‘길귀신의 노래’는 박제된 그의 이름뿐인 시인을 멋지게 깨면서 그의 보다 신나는 매력을 보여준다.
  자신의 여행 에세이인 이 책에서 ‘길귀신’이란 단어에 대한 호기심은 계속 다음 쪽을 내달리도록 독자를 채찍질한다. 시인이기에 운명적으로 갖고 있는 수려한 표현력과 풍성한 한글들은 한글들도 참 다양하고 독특하다라는 인상을 만들어준다. 도시에 살면서 판에 박힌 단어들과 어휘, 심지어 문장들에 파묻히다 보니 어쩌면 너무 뻔한 문장 스타일에만 갇혀 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문장 스타일이과 삶의 방식이며, 좀 따분하게 됐다. 도시는 어쩌면 감옥으로 우리들의 상상력과 이해력의 한계만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시인이 쓴 이 책은 매혹적인 꽃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색다른 문장들을 통해 마치 동화 속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무엇보다 말의 즐거운 향락에 빠진 듯 했다.
  이런 글들의 시작은 아마도 그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추억에서 비롯된 듯 하다. 인도의 타고르를 찾아 가면서 방문한 인도의 도시들과, 중앙 아시아의 여러 지역들은 가보지 못한 곳들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킴은 물론, 색다른 풍광 속에서도 어딘지 모를 인간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곳도 인간이 사는구나 하는 생각보다 그곳에도 인간이 있으니 인간미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작가의 고향 전라도의 그 수많은 고장에서의 인간미가 다른 곳에서도 재현되면서 그곳의 색다른 풍광과 함께 인간세상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인간은 사랑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어느 순간 계산적이고 2차적 인간관계에 치이는 우리들에게도 그런 것이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인간미가 다시 발현됐으면 하는 갈구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는 순수한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단 점이다. 농촌이나 어촌의 노동의 가치와 더불어 사는 공동체 속에서의 인간미들은 도시인들이 잊고 산 그 무엇이었다. 도시 속 어느 곳을 거닐 때 과연 그 누가 아는 체를 할까? 그것도 이방인에게. 그런 아쉬움이 시골에선 예외인 것 같았다. 풍요로운 인간미들을 보면서 그가 만난 인간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최근 유행하는 단어는 힐링이 아니고 무엇일까? 추억 속의 장소에서도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을 함께 사는 우리들의 세계 어디에서도 그런 멋진 인생이 숨쉬고 있단 생각이 들면서, 그와 함께 여행하고 살아가는 길귀신을 나도 만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시인 곽재구의 20대는 참 어려웠나 보다. 비록 시기는 같지 않겠지만 어느 누구나 힘든 시간이 있기 마련이고 위로 혹은 위안을 받고 싶어 한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경제적으로 극복해 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인생이리라. 그런 험한 순간, 자신의 마음 속에서 희망을 찾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고통에 대한 위안을 삼는다는 것은 부럽기도 하고, 그런 것이야말로 자신에 대한 진정한 위안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시의 가치이자 매력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다. 그런 희망이 사회를 살면서 어느 순간 무너지지만 그래도 작지만 아름다운 소망을 하나 갖고 있으면서 길귀신과 함께 여정을 떠난다면 지금의 삶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게 여행의 매력이고, 도시가 아닌, 그리고 이미 색다른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풍성한 전원으로 향한 여행의 진미가 아닐까 생각난다. 나도 여행 가방 하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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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예술가의 초상, 알폰스 무하 위대한 예술가 2
김은해 지음 / 컬처그라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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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하는 인간’이란 의미를 지닌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참 부러운 표현이다. 자신의 취미와 즐거움을 생존을 위한 생활 속에서도 실현한다는 것, 이것의 성공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행복이자, 이상적인 세상을 산 것이리라. 그러나 쉽지 않은 곡예다. 그렇게 쉬웠다면 자신의 취미를 살려 프로게이머가 된 이들 역시 행복해야 하는데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취미와 경제적 삶, 이 둘은 이율배반적인 극과 극이다. 경제적 삶은 자신만의 즐거움만을 위해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는 관계를 맺고 산다. 그 관계가 가족과 같은 일차원적인 관계가 아닌 이차원적인 관계라면 그 속엔 거래가 존재하며, 그 거래는 상대의 만족을 위해 자신의 만족이나 꿈을 상실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생존이란 문제에 부딪힐 때, 혹은 가장이란 생활인이 될 때, 만나게 되는 타인은 언제나 타인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요구하며, 그에 합당한 것을 받을 때, 그 대가를 지불한다. 그 대가로 생활하는 것이 생활인이고 보면, 취미는 결국 어느 순간 상품이 된다. 상대의 만족을 위해 자신의 만족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직장생활이고 돈 버는 것이고, 그게 생활인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과연 취미가 곧 생활이 되는 것이 마냥 즐거울 리는 없을 것이다. 돈 벌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이런 쉽지 않은 운명을 체코의 어떤 유명 미술가가 거역했다고 한다.
  ‘성공한 예술가의 초상, 알폰스 무하’는 순박해 보이는 어느 이방인 예술가의 성공담을 다룬다. 그렇다고 이 책은 그의 성공담과 인생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가 그린 그림들의 매력을 촘촘히 써내려 간다. 작가 본인의 개인적인 판단과 그녀의 페미니스트적인 인식과 판단이 무하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감동을 막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쩌면 현실적인 내막에 대해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의 인생과 작품들에 대한 착실한 설명은 무하를 모르는 사람에겐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저자의 판단은 아마도 무하의 인생은 ‘호모 루덴스’로 파악하면서 현대인들의 이상적 인간형으로 다루는 듯 하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멋지게 보인다. 동유럽 슬라브 출신인 미술가 ‘무하’에 대한 이야기는 신데렐라 스토리 같다. 일종의 문명 후진국에서 파리로 온 어느 이방인의 성공 스토리가 말이다. 분명 그는 성공했고, 자타가 인정하는 유명 미술가가 됐다. 그의 성공은 아마도 대중성의 의미를 잘 파악한 그의 탁월한 이지와 감성의 산물일 것이다. 파리 시절부터 그린 그의 포스터는 환상과 성적 요소의 극대화된 조화에 기인한 것 같다. 우선 아름답고 신비하다. 또한 여성의 매력을 통한 그의 접근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여기까지 그는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 치달은 생활인일 뿐이다. 그의 그림이 아르누보든 상징주의이면서도 치장에 충실한 그런 작품이든 그의 작품은 성공을 거뒀고, 자신의 생활을 굳건히 만든 개인적 성공의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현대인들 역시 이런 성공에 목말랐고, 그것을 위해 오늘도 밤새워가면서 몸을 혹사하면서 일한다. 사실 성공이 아니라 자기 처자식을 굶게 하지 않으려는 남자 가장들의 절박함이 있는 것을 보면 성공만을 위해 몸을 축내면서 산다고 볼 수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인 성공담을 갖고 있는 무하는 하루 생존이 급한 개인에게도 멋진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성공담이 개인적 안위를 위한 것이었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개인적 목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적 고충이 있었다면, 그의 다음 인생은 좀 더 공동체적인 것으로 향하고 있다. 어쩌면 그의 매력적인 포스터는 자신의 취미를 생활의 기반으로 삼았을 때 무엇인가 허전했고, 그래서 그것은 결국 마냥 성공을 빼곤 마냥 행복한 것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즉 아쉬운 개인사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안위에 중심을 두는 것을 뭐라 할 수 없지만 대가의 품격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성공을 발판 삼아 진정으로 원하는 것으로 향한 것 같다. 그래서 성공이 롤모델이 되는 시대에 살면서 개인적 성공담을 만들어주는 것 이상으로 그는 체코를 비롯한 슬라브 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한다. 그에게 돈벌이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품격과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의 노력이 빛을 본다. 어쩌면 이런 노력으로 인해 그는 진정한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의 초창기 작품에선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시대적 고충을 안으려는 그의 시대적 성찰인의 매력을 함께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행위로 인해 그의 그림은 단순히 예쁜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점점 발전하는 한 인간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것 같아 좋아 보였다.
  그의 조국 체코는 참 다사다난한 나라다. 오랜 동안의 내전과 식민지, 그리고 심지어 한 나라에서 둘로 나뉘는 불운까지 짊어진 그런 나라다. 분명 하나 된 슬라브를 염원했던 그에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모든 이들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단 점이다. 일의 성패는 한 인간으로서는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것 자체도 소중한 것이리라. 그의 노력은 <슬라브 서사시> 연작들을 분명 아름다운 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시대적 의미를 지닌 걸작으로 불리게 할 것이다. 그런 것이야말로 무하를 성공한 한 인물로서 자리매김하는 이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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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 죽어라 - 혜암스님의 벼락같은 화두
정찬주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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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되는대로 살았다. 지금 아쉬운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과거에 했지만 잘 이루지 못해 아쉬워서 그냥 했던 것들로 내 생활의 쓰레기들이 넘쳐났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왜 해야 하는가라는 자성을 잃어 버렸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조차 잃었다. 그냥 길이 있으니 길을 따라 가는 그런 행인, 그게 나였다. 이런 나에게 혜암스님의 인생과 말씀을 담은 책 ‘공부하다 죽어라’는 매우 독한 죽비가 되어 나를 호되게 치고 말았다.
  참 시의적절하다고 해야 할까? 지금의 나에게 필요했던 그런 것들을 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삶의 긴장 속에서 나의 마음과 의지는 녹아 버렸다. 지금의 일에 치이고 과거의 뿌연 욕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뭘 해야 할지 모른 채 오늘을 살고 있다. 용맹정진이란 단어의 생활화가 거의 이뤄질 수 없는 정신자세의 지속, 이건 확실히 오늘의 나를 표현한 말이다. 그래서 책을 읽은 지금, 이 책이 참 고맙다.
  불교의 진미를 느끼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차별과 구별, 그리고 주관을 통해 만든 인식으로 인해 고통 받게 되는 한 개인은 사실 고해의 한가운데 있게 된다. 이것을 벗어나는 지혜를 부처께선 얻고자 그리 큰 고행을 하셨을 게다. 그래서 얻은 현묘한 불법,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법인가 보다. 부처님보다 불법이 앞서면서, 불법보다 스님이 앞선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 이 시대를 살면서 아무리 뛰어난 불법이라도 그것을 지금의 우리들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이가 없다면 부처의 가르침은 불기 1년, 그 시절에 있었던 좋은 내용이었을 뿐이다. 뛰어난 스님들이 있었기에 불법은 지금까지 내려 온 것이며 그런 분들 중 혜암스님이 계신다.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된 고인의 뛰어난 모습은 비록 몸은 여기 없으시지만 그 분의 지혜는 지금도 여기에 있도록 하게 된다. 사람으로서 고통일 수밖에 없는 장좌불와를 통한 공부는 인간의 한계까지 가면서 공부하는 그분의 의지를 이야기한다. 책 제목인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런 공부 과정에서 이 책을 읽는 본인에게 없었던 다양한 것들을 보게 된다. 의지는 있었는지,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는지, 그리고 과연 죽어라 공부를 했는지… 참 부끄러운 것들이 마음 속에서 계속 생겼다. 그리고 참 아팠다.
  책 속 행간에 담긴 글 하나하나, 그리고 당신의 말씀 하나하나 역시 진미를 느끼게 한다. ‘그대가 지금 하는 일이 바로 공부다’, ‘내 마음을 모르는데 자유가 어디 있고, 성공이 어디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등의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을 설레게 했다. 또한 현기스님의 말씀이셨던 ‘왜 과거를 들먹이지요? 과거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거요’라는 문장에서 내 고민에 대한 해결책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하다. 또한 이런 뛰어난 문구뿐만 아니라 이 책은 비록 스님들의 말씀을 담았지만 뛰어난 논리적 구성도 갖췄다. 삼단논법의 진국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시각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구성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내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불교에서 어떻게 구성했는지가 개인적으로 화두였다. 탈속을 통한 도를 닦음은 개인적일 수 있는 행위인데 이런 행위를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변화시킬 지가 궁금했다. 이 책은 그런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기도 했다. 공부는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고, 그 궁극의 목표는 바로 공동체라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개인적 어설픈 지식이 호되게 질타당하게 됐다.
  좋은 내용과 좋은 사진, 이런 것들은 좋은 책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것들이다. 다행히 이 책은 좋은 책의 교과서가 된 것 같다. 그로 인한 기쁨은 독자들이 누릴 것이다. 책의 목표가 독자에게 향한 것이라면 저자와 사진작가의 고행은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이라. 책의 진미가 뚝뚝 흐르는 이 책 속을 통해 올해가 나에게 매우 좋은 시간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 비록 책 속의 내용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용기와 역량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을 살면서 불가의 지혜를 조금이라도 얻어 지금의 나를 조금이라도 성숙시킬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었던 시간은 고마운 때가 된다. 그리고 혜암스님께서 비록 입적하셨지만 그 가르침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좋은 시간과 행복을 주고 있어서 무척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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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의 26가지 비밀 - ETS가 알려 주지 않는
히로 마에다 & 세료인 류스이 지음, 전경아 옮김 / 넥서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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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발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토익이란 시험에 열중해서 나온 결과물이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토익 시험의 위상이 높다 보니 나왔다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나온 소설이지만 한국의 토익 수험생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 이 소설이 갖고 있는 한국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을 것만 같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비영어권 사람들에게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능력의 상징이자 미래의 부를 획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현재는 어떻든 미국의 시대니까. 점차 중국이 강력한 부의 국가로 성장하는 시점이지만 말이다. 중국인 역시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안다. 토익을 열심히 공부할지, 아니면 토플을 열심히 공부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처럼 중국인들 역시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영어의 가치는 아직도 유지된다고 봐야 한다. 솔직히 아시아뿐이겠는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토익과 관련된 소설책이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대단한 걸작이 태어났다고는 볼 수 없다. 새로운 세계관을 열거나 신사조를 만드는 그런 획기적인 작품은 아니다. 그렇다고 묘한 문체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하는, 즉 시대를 앞서가가나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작품의 위상을 차지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을 쓴 일본인 작가들, ‘히로 마에다’나 ‘세료인 류스이’가 그런 의도를 갖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소설 역시 영화 ‘매트릭스’에서 어느 정도 구성을 따온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저런 거 생각하면 위대한 뭔가를 남기기 위해 만든 작품은 아니다.
  그런데 묘한 끌림이 있고, 재미도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이 밝히고자 한 토익의 구성 이유들이 보이기도 한다. 100%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시험 패턴이나 문장 구성들이 이 책이 지적하는 것과 같은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다. 토익을 무수히 많이 쳐본 작가의 경험담이니 믿을 만 할 것이다. 또한 그의 경험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토익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색다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 줄 것이다. 미리 그럴 것이다라고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어느 정도 시험문제를 빠르게 대처하고 그러면 더 많이 맞힐 수 있는 기회가 높은 것은 당연하니까 말이다.
  이 소설의 목적이 전술한 내용일 것이다. 시험이란 것이 하늘에서 갑자기 나올 리는 없다. 그렇다면 출제자 역시 과거의 패턴을 통해 배울 것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시험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또 그런 것을 통해 수험생들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은 타당성이 그리 낮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토익을 위한 핵심을 잘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토익 문제 하나라도 더 맞힐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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