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어쩌면 시 하나로만 알려진 시인일 것 같다. 국민의 시가 된 ‘사평역에서’의 작가 곽재구 시인 말이다. 시인에게 국민적인 사랑 받는 시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마냥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20년도 지난 시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이 이야기된다면, 시 하나만을 남길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시인에겐 그건 또 다른 비극이자 넘어야 할 산일 것이다. 그가 20년간 쉬지 않고 작업했음에도 그는 그만큼 성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꼴이니까. 동시에 시인 하나를 시 하나로만 기억하는 독자 역시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시인에게 어떻게 하나만의 얼굴만이 존재할까?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인의 범주에 시인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오직 일면만으로 그를 이야기하기보단 좀 더 다양한 시인의 매력을 맘껏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듯 곽재구 시인의 ‘길귀신의 노래’는 곽재구 시인의 다른 버전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우린, 아니 난 곽재구 시인을 박제가 된 ‘사평역에서’란 시로만 기억한다. 그래서 곽재구 시인에 대한 개인적 이미지는 재미없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계속 들으면 지겨워지는 법이 아닐까? 그런 찰나, 제목부터 색다른 ‘길귀신의 노래’는 박제된 그의 이름뿐인 시인을 멋지게 깨면서 그의 보다 신나는 매력을 보여준다.
  자신의 여행 에세이인 이 책에서 ‘길귀신’이란 단어에 대한 호기심은 계속 다음 쪽을 내달리도록 독자를 채찍질한다. 시인이기에 운명적으로 갖고 있는 수려한 표현력과 풍성한 한글들은 한글들도 참 다양하고 독특하다라는 인상을 만들어준다. 도시에 살면서 판에 박힌 단어들과 어휘, 심지어 문장들에 파묻히다 보니 어쩌면 너무 뻔한 문장 스타일에만 갇혀 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문장 스타일이과 삶의 방식이며, 좀 따분하게 됐다. 도시는 어쩌면 감옥으로 우리들의 상상력과 이해력의 한계만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시인이 쓴 이 책은 매혹적인 꽃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색다른 문장들을 통해 마치 동화 속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무엇보다 말의 즐거운 향락에 빠진 듯 했다.
  이런 글들의 시작은 아마도 그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추억에서 비롯된 듯 하다. 인도의 타고르를 찾아 가면서 방문한 인도의 도시들과, 중앙 아시아의 여러 지역들은 가보지 못한 곳들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킴은 물론, 색다른 풍광 속에서도 어딘지 모를 인간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곳도 인간이 사는구나 하는 생각보다 그곳에도 인간이 있으니 인간미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작가의 고향 전라도의 그 수많은 고장에서의 인간미가 다른 곳에서도 재현되면서 그곳의 색다른 풍광과 함께 인간세상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인간은 사랑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어느 순간 계산적이고 2차적 인간관계에 치이는 우리들에게도 그런 것이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인간미가 다시 발현됐으면 하는 갈구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는 순수한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단 점이다. 농촌이나 어촌의 노동의 가치와 더불어 사는 공동체 속에서의 인간미들은 도시인들이 잊고 산 그 무엇이었다. 도시 속 어느 곳을 거닐 때 과연 그 누가 아는 체를 할까? 그것도 이방인에게. 그런 아쉬움이 시골에선 예외인 것 같았다. 풍요로운 인간미들을 보면서 그가 만난 인간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최근 유행하는 단어는 힐링이 아니고 무엇일까? 추억 속의 장소에서도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을 함께 사는 우리들의 세계 어디에서도 그런 멋진 인생이 숨쉬고 있단 생각이 들면서, 그와 함께 여행하고 살아가는 길귀신을 나도 만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시인 곽재구의 20대는 참 어려웠나 보다. 비록 시기는 같지 않겠지만 어느 누구나 힘든 시간이 있기 마련이고 위로 혹은 위안을 받고 싶어 한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경제적으로 극복해 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인생이리라. 그런 험한 순간, 자신의 마음 속에서 희망을 찾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고통에 대한 위안을 삼는다는 것은 부럽기도 하고, 그런 것이야말로 자신에 대한 진정한 위안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시의 가치이자 매력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다. 그런 희망이 사회를 살면서 어느 순간 무너지지만 그래도 작지만 아름다운 소망을 하나 갖고 있으면서 길귀신과 함께 여정을 떠난다면 지금의 삶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게 여행의 매력이고, 도시가 아닌, 그리고 이미 색다른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풍성한 전원으로 향한 여행의 진미가 아닐까 생각난다. 나도 여행 가방 하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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