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다 죽어라 - 혜암스님의 벼락같은 화두
정찬주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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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되는대로 살았다. 지금 아쉬운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과거에 했지만 잘 이루지 못해 아쉬워서 그냥 했던 것들로 내 생활의 쓰레기들이 넘쳐났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왜 해야 하는가라는 자성을 잃어 버렸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조차 잃었다. 그냥 길이 있으니 길을 따라 가는 그런 행인, 그게 나였다. 이런 나에게 혜암스님의 인생과 말씀을 담은 책 ‘공부하다 죽어라’는 매우 독한 죽비가 되어 나를 호되게 치고 말았다.
  참 시의적절하다고 해야 할까? 지금의 나에게 필요했던 그런 것들을 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삶의 긴장 속에서 나의 마음과 의지는 녹아 버렸다. 지금의 일에 치이고 과거의 뿌연 욕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뭘 해야 할지 모른 채 오늘을 살고 있다. 용맹정진이란 단어의 생활화가 거의 이뤄질 수 없는 정신자세의 지속, 이건 확실히 오늘의 나를 표현한 말이다. 그래서 책을 읽은 지금, 이 책이 참 고맙다.
  불교의 진미를 느끼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차별과 구별, 그리고 주관을 통해 만든 인식으로 인해 고통 받게 되는 한 개인은 사실 고해의 한가운데 있게 된다. 이것을 벗어나는 지혜를 부처께선 얻고자 그리 큰 고행을 하셨을 게다. 그래서 얻은 현묘한 불법,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법인가 보다. 부처님보다 불법이 앞서면서, 불법보다 스님이 앞선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 이 시대를 살면서 아무리 뛰어난 불법이라도 그것을 지금의 우리들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이가 없다면 부처의 가르침은 불기 1년, 그 시절에 있었던 좋은 내용이었을 뿐이다. 뛰어난 스님들이 있었기에 불법은 지금까지 내려 온 것이며 그런 분들 중 혜암스님이 계신다.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된 고인의 뛰어난 모습은 비록 몸은 여기 없으시지만 그 분의 지혜는 지금도 여기에 있도록 하게 된다. 사람으로서 고통일 수밖에 없는 장좌불와를 통한 공부는 인간의 한계까지 가면서 공부하는 그분의 의지를 이야기한다. 책 제목인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런 공부 과정에서 이 책을 읽는 본인에게 없었던 다양한 것들을 보게 된다. 의지는 있었는지,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는지, 그리고 과연 죽어라 공부를 했는지… 참 부끄러운 것들이 마음 속에서 계속 생겼다. 그리고 참 아팠다.
  책 속 행간에 담긴 글 하나하나, 그리고 당신의 말씀 하나하나 역시 진미를 느끼게 한다. ‘그대가 지금 하는 일이 바로 공부다’, ‘내 마음을 모르는데 자유가 어디 있고, 성공이 어디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등의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을 설레게 했다. 또한 현기스님의 말씀이셨던 ‘왜 과거를 들먹이지요? 과거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거요’라는 문장에서 내 고민에 대한 해결책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하다. 또한 이런 뛰어난 문구뿐만 아니라 이 책은 비록 스님들의 말씀을 담았지만 뛰어난 논리적 구성도 갖췄다. 삼단논법의 진국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시각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구성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내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불교에서 어떻게 구성했는지가 개인적으로 화두였다. 탈속을 통한 도를 닦음은 개인적일 수 있는 행위인데 이런 행위를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변화시킬 지가 궁금했다. 이 책은 그런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기도 했다. 공부는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고, 그 궁극의 목표는 바로 공동체라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개인적 어설픈 지식이 호되게 질타당하게 됐다.
  좋은 내용과 좋은 사진, 이런 것들은 좋은 책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것들이다. 다행히 이 책은 좋은 책의 교과서가 된 것 같다. 그로 인한 기쁨은 독자들이 누릴 것이다. 책의 목표가 독자에게 향한 것이라면 저자와 사진작가의 고행은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이라. 책의 진미가 뚝뚝 흐르는 이 책 속을 통해 올해가 나에게 매우 좋은 시간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 비록 책 속의 내용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용기와 역량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을 살면서 불가의 지혜를 조금이라도 얻어 지금의 나를 조금이라도 성숙시킬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었던 시간은 고마운 때가 된다. 그리고 혜암스님께서 비록 입적하셨지만 그 가르침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좋은 시간과 행복을 주고 있어서 무척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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