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빛나는 밤에 - 천체물리학부터 최신 뇌 과학까지, 우주의 역사부터 과학의 역사까지
이준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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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한 단원을 끝낼 때마다 적혀 있는 문구,’세상이 좀 달라 보이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쓴다면, ‘그렇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상투적인 문구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 상투적인 속성 너머에 어쩔 수 없는 상투적인 답을 해야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단함에 놀랄 뿐이다.
  이 책 하나에 그 수많은 발견과 발명, 그리고 미래의 과학을 다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무모함에 도전하는 저자 ‘이준호 선생님’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과학의 모습으로 보인다. 본인이 과학자이면서도 동시에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이기에 그런 무모함을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한 교양서 정도의 수준을 넘은 그 무엇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이 책의 가치는 사실 읽고 있는 내내 압도당했다.
  우주의 시작과 인류의 시작을 서로 멋지게 결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은 인상적이었다. 과학의 영역에서 엄연히 서러 다른 분야로 취급되겠지만 저자는 그런 이분법을 불필요한 담벼락임을 증명하면서 이쪽 저쪽을 멋지게 넘나들고 있다. 또한 어려운 과학적 지식들을 효과적이고 정확하게 설명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최대한 돕고 있다. 과학에서 다루는 사실들이 바로 우리 옆에 벌어지는 현상인데도 제대로 이해 못한 우리들에게 생활에 매우 밀접한 사례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세상을 좀 달리 볼 여유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취지이겠지만 이런 상황이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런 시도를 하는 이들의 노력과 능력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 점에서 이준호 선생님의 노력과 능력에 감사할 뿐이다. 또한 어린 학생들만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들에게도 이 책은 많은 것들을 알려 준다. 현대 과학의 즐거운 점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자기만의 세상만 보면서 다른 분야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지 못하는 현 상황을 조금이나마 타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과학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진화하는 것 같다. 맨 마지막 부분인 정신과 육체와의 관련성을 파악하는 부분에서 정신이 먼저인지 육체가 먼저인지에 대한 기우와도 같았던 질문들을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올 것도 같다. 과연 그것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인류 멸망의 그날을 만드는 것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우리 자신을 잘 알아야 많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좋은 쪽으로 많은 것들이 해결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한다. 그래서 세상이 좀 달리 보이는 효과를 모두가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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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 행복한 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의 절박한 탐구의 기록들
찰스 몽고메리 지음, 윤태경 옮김 / 미디어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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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도시 속의 삶은 저주받은 것처럼 불행한 것으로 묘사됐다.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입식으로 교육받아서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도시 속의 삶은 소외나 오염 등의 부정적 단어로만 연결된 것 같다. 그래서 농촌이나 자연 속의 삶이 환상적이면서도 이상적으로 묘사됐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 마냥 행복할 리 없고, 노동과 같은 치열한 삶의 현장을 벗어날 수도 없다. 농촌이나 자연 속의 삶이 그것의 예외는 될 수 없는데 힘든 도시 속의 삶이 좀 과하게 비쳐진 탓인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동경에 대상이 된 반사이익을 누린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어느 곳이거나 힘들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무척 중요한 것들을 다시 발굴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인간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인가? 이것은 인간이 살아오면서 되새김질해온 질문이다. 집단이든 개인이든 말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 대한 속 시원한 해결책은 그리 많지 않고 있으며, 지금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제 환경 파괴와 에너지 고갈 같은 지구의 위기가 직면한 이 시점에서, 인류 태반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질문에 ‘찰스 몽고메리’라는 작가의 작품인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는 답을 한다.
  체계적인 구성과 짜임새 있는 내용, 그리고 중심의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풍성한 내용을 담아내는 작가의 뛰어난 글쓰기 능력이 우선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꼭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날 만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작가의 문장능력 이상의 그 무엇들로 풍부하다. 현재의 도시문제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물론 그 이면에 담긴 사회 정치적 긴장관계를 제대로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성찰, 그리고 인간의 시민의식 복원의 가치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우파들이 싫어하는 책이다. 도시 속에서의 공동체의 복원, 이웃들과의 친목 활성화를 통한 인간성 회복, 그리고 삶의 비용을 많이 요구하는 것들로부터의 탈피 등,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이끄는 것들로 넘치고 무엇보다 우파들이 극도로 반대하는 자산가치의 하락을 요구하는 것들이 태반이다. 도시의 확산이라는 교외지역의 활성화를 통해 투자기회를 넓히고 그에 따른 집값 폭등과 비싼 임대료 수익은 물론 자동차 소비 등의 촉진을 통해 자산가치와 주식 가격의 폭등을 염원하는 우파 입장에서 이 책이 제안하는 것은 구미에 당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도시 속에서 살고, 그 속에서 통근거리를 짧게 하면서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을 하는 것은 개발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사실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자동차를 안 타면 결국 자동차 회사가 문을 닫아서 디트로이트와 같은 패망하는 도시가 생긴다고 위협을 주는 시점에서 이 책의 기본적 가치를 만든 뉴 어버니스트들의 주장은 매우 쓴 독약처럼 들린다. 그리고 막고 싶을 것이다.
  이 책에서 심도 있게 추적하지 않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좌와 우익 간의 긴장관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베이비 부머들의 삶의 방식이었던 개발방식에 대한 도전으로 보인다. 아니 그럴 것이다. 즉 세대 갈등이 숨어 있다. 교외 확산은 물론 자연의 훼손시킬지라도 소비를 극대로 끌어올려 일자리와 공장을 창출함으로써 생존해온 이들이 바로 베이비 부머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자신의 세대들보다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활력을 찾기 힘들다. 그리고 빈부의 격차의 확대는 물론 환경 파괴로 인한 지구 위기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베이비 부머들의 방식은 매우 위험한 방식임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새로운 방법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데 그것이 우파 지지자들과 베이비 부머들의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방법이 아닌 것들이 요구되고 추진된다는 점이다. 또한 새로운 방식이 어쩌면 지구와 도시를 위한 유일한 방식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성이든 탐욕이든 솔직히 안 하고 싶은 것들이란 점이다.
  하지만 과연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석유가 없어지고 있는 지금, 자동차 운전은 돈 먹는 하마일 것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 이동 방식으로 가능했던 교외지역으로의 확산은 더 이상 사람들이 버틸 수 없을 만큼의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교외지역으로 내몰린 사람들은 결국 빈부의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결국 다시 도시 내부로 들어와 살아야 할 시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오래 버틸 수 있으며, 자동차로 인해 상실된 건강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파와 베이비 부머들의 양보는 어쩌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일 뿐이다.
  이 책은 아주 대단한 모험가들의 발자취와 그들의 성공을 통해 뉴 어버니즘의 실용성을 증명하고 있다. 100% 성공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그에 따른 변화를 생생한 장면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서울 역시 이런 뉴 어버니즘의 도전에 부응하면서 자동차를 없애는 거리들을 늘리고 있다. 아직 시작이겠지만 한국 사회 역시 지구와 인간의 위기 속에서 부응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뭔가를 해야 하고, 그에 대한 아이디어를 뉴 어버니즘에서 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변화 속에서 어쩌면 잃어버린 주인의식이라 할 시민정신의 가치를 새삼 느낀다. 혼자만으로 할 수 없는 변화를 결국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시민이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확신을 이 책이 선사한다. 그러기에 무척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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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A! 남미여행 100 - 남미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100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
박명화 지음 / 상상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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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점이 우월하게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름다운 이미지를 담은 사진? 아니면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뛰어난 줄타기를 한 문장 실력? 잘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남미 여행사로부터 무슨 후원을 받은 어느 정보지 수준 정도로 느끼지 않았다. 깊이 있는 역사적 내용을 담아 냈고, 그를 통해 보게 되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게 됐고, 무엇보다 뛰어난 사진사의 능력 덕분에 예술작품이 되는 뛰어난 사진작품들을 보게 됐다. 그리고 남미를 다시 보게 됐다.

 

 

 

 


  책은 뛰어난 요소들을 잘 갖추고 있다. 아름다운 사진, 뛰어난 문장실력 등이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과 함께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미에 대한 꼼꼼한 것들로 넘쳤다. 여행지 정보 수준이었다면 간과했을 것들이 듬뿍 담기면서 책은 남미, 아니 중남미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뛰어넘게 했다. 개인적으로 왜 중남미라 안 하고 남미라 했는지 이해 못 할 정도로 라틴 아메리카란 지역의 풍요로운 것들을 세세하게 보여주면서 책은 중남미를 여행하게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이 여행하려는 이들에게 와인을 잘 마시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즐거움에만 치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칫 낭만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편중된 정보가 아니라, 중남미 각국의 지형적 특색과 역사적 이유를 잘 묶어 내면서 지역에 대한 뛰어난 안목을 도드라지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라틴 지역을 모르는 이들에게 이 지역을 방문하는 데 뭐가 필요한지를 제대로 알려줬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감사할 뿐이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국가별 특징과 역사적 맥락, 그리고 그 지역의 환상과 현실을 제대로 안배하면서 보여줬다. 라틴 아메리카에 많은 나라가 있다는 것쯤은 알지만 사실 어떤 특색을 각기 갖고 있는지는 모르는 특색 없는 여행가들을 위해 이 책은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실마리를 그들에게 안겨준 것이다.
  브라질에 왕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브라질에 투자를 하려거나, 아니면 현지화를 하기 위해 직접투자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그것은 브라질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역적 특색을 모르면서 한국적 특수성에 매몰된 채로 다른 지역으로 삶의 방향을 수정하는 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지역에 대한 고민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런 것들을 이 책이 들려준다. 분명 더욱 자세한 것을 알려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작하려는 이들에겐 매우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라틴에 대한 내 개인적 지식이 박약하다는 것을 알려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좀 더 라틴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 샘솟게 되어 무척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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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 1 - 사도세자 이선, 교룡으로 지다
최성현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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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이겠지만 팩트같았다. 사실 뒤에 자리잡은 진정한 사실을 꽤뚫어 보는 작가의 시선이 무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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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 1 - 사도세자 이선, 교룡으로 지다
최성현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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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혜경궁 홍씨’가 썼다는 ‘한중록’이 거짓된 이야기란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역사적 비극 속에서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썼다는 것이 그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온 책이 소설  ‘역린’ 시리즈인 것 같다. 무엇보다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궁중 암투 앞에서 부부란 관계는 허울뿐이란 사실을, 그리고 소설이 정말 사실 같고, 사실이 소설 같은 것이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조, 분명 개인적으로 슬픈 왕이다. 위로는 형, 경종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그리고 자신의 자식을 뒤주 속에 가둔 이로 역사에 기록된 왕으로 말이다. 그는 또한 죽음의 위기로 자신의 손자를 내몬 임금이기도 했다. 어쩌면 태종이나 세조보다 더 극악한 가족관계를 갖고 있다. 평생 동안 불운한 가족사로 인해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는 그런 인간이었다. 자신의 혈육을 죽였다는 왕이란 오명을 씻기 위해 정치를 잘하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명군이란 이름을 탐했을 것이다. 탕평잭을 통해 신하들을 묶으려 했고, 다양한 애민정책을 통해 백성들의 경제적 삶을 안정시키려 했다. 그래서 그는 조선 후기의 중흥기 대다수의 시기를 맞이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정당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그는 언제나 번민 속에서 힘들어 해야만 했을 것이다.
  소설의 시작은 사도세자의 죽음이지만 지금까지의 뻔한 사실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노론이란 당에 이끌리는 조선으로 시작한다. 노론에 저항하는 자는 세자도 무사하지 못했고, 어쩌면 왕도 그랬을 것이다. 소론의 후광을 뒤에 업었던 경종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던가는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왕이 존재했지만 왕의 힘이 약한 나라가 된 조선은 그렇게 약해지고 있었다.
  권력투쟁이란 것이 다 그러려니 하겠지만 사실 조선의 권력투쟁, 아니 왕을 중심으로 짜인 계급사회에서의 권력투쟁은 결국 목숨을 두고 싸우는 로마 검투사 경기와 하등 다를 바 없다. 상대를 죽여야 상대가 차지했던 관리 자리를 뺏을 수 있을 것이며, 돈과 명예도 다 뺏을 수 있는 것이다. 여느 집안에서의 결혼과 달리 왕과 그 가족과의 혼담은 집안을 순식간에 상승시킬 수도 있으며, 동시에 위험한 곡예를 하는 카드놀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관리가 되어야만 돈도 벌고 허영심도 부릴 수 있는 조선의 관료사회는 사실 피할 수 없는 길들로 넘쳤다. 사색당파 뒤에 감춰진 관료 이외의 대안이 없던 시절의 불운이 사대부란 허울 속에 각종 특혜를 누린 양반들을 짓누르고 있을 뿐이다. 관료가 되지 못하면 자신을 키워준 부모는 물론 가문 전체에 의해 매도되는 것은 당연한 시대였다. 그런데 무슨 대안이 있었겠는가?
  이를 위해 그들은 못할 짓이 없었으며 심지어 그렇게도 좋다고 금슬이 좋네 뭐네 하면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금칠을 하던 부부 관계도 권력이란 이름 앞엔 계약 관계를 넘어 스파이짓도 불사하는 아내를 만들고 있다. 하긴 오늘날의 부부 관계도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관계와 그리 달라 보이진 않는다. 이혼이 많은 시절을 생각하면 말이다. 부부가 그냥 계약관계인 세상은 현대는 물론 조선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허울뿐인 인간관계 속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타야만 인간들의 비루한 몸짓들이 소설 ‘역린’에서 치열하게 보인다.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인간사의 비극 모두를 알 수 없을 것이며, 또한 그 속에서 보이는 인간들의 불편한 진실을 다 짐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소설의 매력이 존재하는 것 같다. 다 알지만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며, 역사책에 담긴 것들이 사실은 승자들이 만든 거짓이란 것을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된다. 승자가 마냥 옳을 수 없는 이 현실 앞에 부당한 권력으로 인한 희생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만연된 것이며, 이런 희생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의 맥을 짚어가면서 픽션을 가미한 역사소설책들을 읽어야만 할 이유는 충분하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죽지 않기 위해 봐야 할 처세술인 것이다.
  사도세자는 죽으면서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도박을 건다. 그것도 자신을 죽이려 한 인생 최대의 적인 자기 아내와의 공조를 통해서 말이다. 인생의 아이러니라 할까? 사실 하늘 아래 최악의 원수가 같은 목적을 향해 달리게 된다는 것이 말이다. 남편을 죽여도 되지만 자식은 안 된다는 이 묘한 역설은 어쩌면 그나마 부부란 관계가 붙어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마지노 노선일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아들이며, 그런 비극을 통해 성장해야 할 아들은 결코 마음 편한 인생을 살 수도 없을 것이며, 비극을 넘어서 뭔가를 해야 할 슬픈 운명을 타고 났다. 인간이라면 결코 선택하고 싶지 않은 그런 인생을 억지로 살게 된 정조의 운명은 사실 가련하기 그지 없다. 그래도 살 수 밖에 없다는 DNA의 명령 앞에 복종하면서, 그리고 아버지의 원한을 갚아야 할 복수심에 복종해야 할 정조의 운명은 그래서 소설가들의 마음을 울리나 보다. 이보다 더욱 극적인 사실이 어디 있을까?
  다음 편이 기대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간 관계의 허망함 속에서도 뭔가를 이뤄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이의 고단한 인생과 그의 성공담, 그리고 결코 쉽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인생을 사는 방법에 목마른 자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줘야 하니까 말이다. 소설을 쓰는 것도 서비스라면 그런 서비스를 해줄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며, 이를 통해 우리들의 삶은 이어지며, 또한 생존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언제나 조심스레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주기도 한다. 인생은 쉬운 것이 아니고 누군가를 믿기엔 많은 가시밭길이 너무 많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성공하는 자들이 있어 힘이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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