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떠나는 철학여행 하루에 떠나는 시리즈
김영범 지음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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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문학의 위기라고 다들 이야기하고 있다면 아직도 인문학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역설적이게도 말이다. 철학도 이러긴 마찬가지다. 어쩌면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어야만 생존하는 기능주의적 경향이 지배하면서 이런 탄식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문학이나 철학도 인류가 생존하는 한 유지될 것이다. 형태와 모습, 혹은 공부하는 대상이 달라질 뿐,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에겐 어떤 나침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삶은 쉽지 않으며, 그 속에서 겪게 되는 인간적 고통은 스트레스든 트라우마든 끊임 없이 지속되기 때문이리라. 다만 현재 철학의 인기는 좀 사그라졌지만 말이다.
  이런 위기의식으로 태어났던 것 같다. 그래서 몇 천 년인지도 감이 안 잡히는 철학의 역사를 단권화 한 것은 물론 책제목을 ‘하루에 떠나는’이란 관형절을 붙인 것 같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런 작업은 불안하고 불안전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저자의 욕심이 과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혹은 위기에 처한 철학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하는 고민, 어느 정도 느껴졌다.
  이렇게 아니라도 철학은 생존할 수 있다. 새로운 영역이 생길 때, 이것을 철학의 한 분야로 인식하거나 명명하면 역시나 철학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중세에 신을 다뤘지만 오늘날엔 언어를 다루지 않나? 대상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철학이란 단어가 유지된다면 그것도 좋은 생존방식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도 일관성이 필요할 것 같다. 과거로부터 같은 단어가 유지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말이다. 저자 김영범은 그런 고민을 안고 소박하지만 효과적인 방식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수많은 철학가들을 읊어 내려갔다. 그런데 철학가들의 생각을 나열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차이 속에 숨겨진 경쟁의식이 바로 그 방식이다.
  책 속에서 철학가들이 칼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 자칫 철학가들 사이의 경쟁이 잘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철학자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경쟁관계를 형성한다. 진리를 찾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비현실적인 공상일 것이다. 모든 이들의 마음은 물론 경험도 다른데 그런 것을 일치할 것이라 짐작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이 탐구하는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 책은 무척 위험한 줄타기 몇 개를 하고 있지만 그들간의 경쟁을 기반으로 해서 풍성하면서도 치밀한 내용을 담았다.
  깜짝 놀랐다. 아주 과거의 철학자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잊혀진 것이 아니라 아예 있지도 않은 존재들이다. 설사 이름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어느 교과서에 짧게 나왔을 뿐, 시험용 아니면 접하기 힘든 그런 철학자들이다. 기껏 몇 페이지(심지어 어떤 철학자들은 딸랑 2페이지에만 담겨있을 정도였다)에 담긴 이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내용까지 작은 것이 아니었다. 철학을 업으로 삼은 이의 혜안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 순간들을 목격할 때마다, 지금의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독특한 것이 아니었고 과거의 어느 이가 이미 그에 대해 탐구했고 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했다는 것을 보게 됐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뛰어난 문장력으로 너무 풍부해서 두꺼운 책으로도 담기 힘든 그들의 고민 어린 이야기를 적절한 구체적 상황들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단 몇 줄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쉽게 풀어줬다는 점이다. 철학은 어려운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의 이론이 되기 위해 무수한 고민과 전제, 추리 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 하루 동안 만들어질 수 없기에 인간의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내용들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기술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많은 것들을 극도의 추상화를 하면서도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능력이 힘든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것은 당연하겠지만 저자의 천부적 능력이 부러울 뿐이다.
  책 속의 철학가들은 비록 서양이란 영역에 국한된 것이지만 신과 인간의 싸움에서 이제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 스스로의 문제점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기능적인 요긴함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철학이라고 본다면 많은 시간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요구를 위해 철학도 부단하게 변화를 겪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동체 내에서 살아야만 하는 인간은 공동체의 요구를 따르면서도 그 요구에 반대되는 욕망을 갖기 마련이다. 자유란 말은 어쩌면 공동체에 대한 반항으로 생긴 말인 것 같다. 개인이란 단어도 집단이 없다면 생길 수 없는 단어다. 그런데 공동체는 끊임없이 변했다. 폴리스에서, 신성이 존재하는 중세의 교회에서, 이제 거대 도시 속에서 자본주의란 가치관에 매몰된 도시문명으로까지 집단의 모습은 계속 변했다. 이런 공동체의 변화에 힘들어 하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철학의 반응도 적절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변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잘 어울리는 영역이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아프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만병통치약을 만들기는 힘들 것 같다.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치료약을 갖고 나오지 않기 때문이며, 철학의 심도 있는 치료약을 정신적인 숙련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선택된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책에 담긴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들을 만하며, 심각하게 고민할 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또한 참고할 만하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후배의 특권이 참 좋다. 또한 과거의 어느 인물의 고민은 지금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란 점이다. 흘러간 옛 노래도 다시 듣는다면 좋을 수 있는 그런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즐거움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임을 모든 이가 알 것이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니체의 책들을 꼭 읽어 보고 싶은 충동이 들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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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모 - 희단.관중.이사.소하.진평.제갈량.장거정의 임기응변 계략
이징 지음, 남은숙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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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가웠다. 한때였지만, 삼국지나, 수호지, 그리고 열국지 등으로 중국의 이야기와 역사는 개인적으로 무척 친근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시간은 야속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삶의 무게를 좀 더 덜 수 있는 일들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 순간 과거의 이야기들로 사라져버렸던 중국 이야기는 어쩌면 내 동심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들이 어른이 다 된 후, 묘한 인연으로 다시 돌아왔다. 엔트로피의 원칙처럼 어릴 때의 나는 비록 아니지만 그 때의 묘한 흥분이 돌아왔다.
  이제 세상과의 인연이 많아서인지 역사라는 무대의 주인공을 꿈꾸며 이 책을 읽지는 않았다. 아마 그러기 참 힘들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교훈이라 그럴 것이다. 또한 장소와 무대가 어디이든 그 삶에 열심히, 그리고 충실히 살면 된다는 생각도 들어서인 것 같다. 세상은 언제나 겉으로 들어난 1인자들만의 세상이 아니며, 각자의 역할을 따라 살아가는 공간이다. 멋져 보이는 1인자들과 역사책, 혹은 역사소설의 주인공의 삶이 실재로는 그렇게 멋진 것만은 아니라는 현실의 냉혹함도 알만한 시간이 나에게 왔다. 어쩌면 삶은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지나치는 시공간일 수 있다. 그곳에서, 그리고 그때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마음을 어릴 때의 나보다 비워서 읽게 됐다. 하지만 과거의 낭만적이고 허황된 약속을 꿈꿨을 때의 나를 다시금 일깨우기 위해 읽지는 않았다. 그럴 내용도 아니었고 문제의식도 더욱 달랐다. 이 책은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 인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인생의 지침서이다. 어쩌면 책 저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출세를 위한 생활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멋진 2인자로 기억되는 7인의 이야기를 나름의 지적 통찰과 인생관으로 풀어가고 있다. 마치 사마천의 사기처럼 당대의 인물들의 행적에 대해 저자의 관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냉철한 역사인의 자세로 쓴 책이다. 방식도 비슷한 것 같다.
  이 책에 다루는 인물들은 단순한 유명인들이 아니다. 성공한 1인자들의 오른팔이자 재상이었으며, 동시에 1인자들의 의심을 받을 만큼 탁월한 인물들이다. 능력은 성공을 이끌지만 동시에 위기를 가져오게 하는 원흉이기도 하다. 인간의 DNA에 간직된 생존본능으로 인해 가장 친한 동료와 부하를 또한 자신의 적으로 볼 수 있는 인간관계는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하기엔 너무 비극적인 본능이다. 하지만 그 짐승적 속성으로 인간은 생존을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이니만큼 조심이란 마음가짐 역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 주공 단, 관중, 이사, 소하, 진평, 제갈량, 장거정은 최고의 위치에 오른 인물들이다. 그들의 탁월한 능력은 국가 초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위기의 순간, 나라를 구한 근본 요소다. 모든 이들이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잘 해낸 인물들이다. 특히 저자가 주목한 것은 능력은 물론 그들이 2인자로서 살아가는 지혜다.
  인간이 만든 선악의 개념에서 꼭 착하다고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저자는 살아가는 인생이 거칠기에 여러 면에서 그들을 삶의 관점에서 평가하려 노력했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함부로 시시비비를 따지는 역사적 인식은 가치명제를 너무 앞에 둬서 식견 있는 독자들에겐 웃음거리 밖엔 되지 않을 뿐이다.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에겐 보다 사실에 입각해서 인간적인 냄새를 간직한 상황에서 기술해야 하는 법이며, 이 책은 그런 자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분명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큰 도움을 준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지만 진평과 같은 이에겐 당시 그가 처했던 상황이나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받아들이며 그에게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것을 주저한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가 오늘의 기업가들 내에서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친절하게 전달하려 노력한다. 어쩌면 현실을 살아가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적 평가만이 아닌 실용성도 간직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책은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중심으로 인물들의 행적과 상황을 묘사했다. 삼국연의나 초한지 등의 통속적 소설들로 인해 가려졌던 진정한 인물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물들을 제대로 평가한 것이리라. 이를 통해 좀 더 인간적이고 제대로 된 인간상을 보여줄 수 있었다. 또한 그를 통해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작가의 노력 하나하나가 책 곳곳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원하는 바다. 미화된 거짓보다 진솔한 인간의 이야기야말로 험난한 인생을 사는 인간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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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하는 건축 - 함성호의 반反하고 반惑하는 건축 이야기
함성호 지음 / 문예중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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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건축이란 단어는 자주 들었지만 관련 분야에서 일한 적도 없었고, 건축의 묘미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도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 함성호의 글쓰기는 확실히 친숙한 편은 아니다. 반한다는 의미를 for 아니면 against로 계속 변화무쌍하게 사용하면서 읽는 독자는 그의 독특한 표현력을 이해해야 하는 고역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
  건축은 예술의 영역이면서 실용의 영역이다. 보거나 사용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미감을 제시해야 하면서도 뭔가 대중적인 쓰임이 없다면 어느 광장에서 보여지기 위해 세워진 조각과 다를 것이 없다. 안과 밖을 나누어서 공간 속에서 안락함이나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건축물의 숙명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기 위해 건축가가 존재하고 건축학이 존재하고, 마침내 건축이 존재하는 이유리라.
  한 때 살았던 고양시의 정발산에서 활동하는 저자의 이력이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장소로서의 개인적 관심을 넘어 상당히 많은 주제와 시대성을 담고, 또한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에서의 끊임없는 긴장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런 무한한 긴장은 읽는 독자들을 압도한다. 글의 내용 뿐만 아니라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와 철학이 무척 파괴적이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건축 역시 당시의 시대성과 조율해서 가야 할 운명인가 보다. 그래서 건축이 어떤 것을 꿈꾸는가, 그리고 무엇을 가치관으로 삼았는가 하는 점에서 각 시대의 차이점이 반영된다. 그리고 시대를 대표하는 가치관은 언제가 과거의 가치관을 비판하면서, 혹은 반항하면서 등장하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을 생각해보면 이 책이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세계관은 모더니즘이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의 기계론적 가치관은 언제나 흥미를 끈다. 중세의 신학적 장식성과 상징성을 부정하고 정신을 부정하며, 객관화된 세상을 꿈꿨던 이들의 도전은 근대라는 시대를 만들었고 대표한다. 그들은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는 엘리티시즘으로 무장한 모더니스트들은 신학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열망을 담은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열망도 언제나 순수성만으로 움직일 수 없었고 모더니스트들의 이론적 취약점과 함께 사회, 정치, 그리고 경제적 이유 등으로 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 역시 발생하고 만다. 이런 상황으로 그들이 이루고자 한 도시는 약점이 됐고 역시나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후세인들에게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 되고 만다.
  환타지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모더니스트들 역시 또 다른 환타지를 만들고 말았다는 비판은 무척 가슴 아픈 사실이다. 결국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며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과연 어떤 확고한 체계를 갖고 과거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는지 의심이 된다. 모더니즘 이후에 등장했기에 포스트라는 접두사가 붙었겠지만 아직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포스트 모더니즘 역시 모더니즘의 엘리티시즘을 모방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 역시 지금의 현대인들을 선도하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대표한다는 자긍심도 얻고 싶을 것이며, 이를 통해 재력과 인기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터모던 클래식이나 슈퍼매너리즘 등 포스트 모더니즘 방식들이 얼마나 과거의 모더니즘을 밀어 냈고, 또한 시대적 당위성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진행형이란 말이 더 어울릴 것이며, 포스터 모던 방식들은 가혹한 시장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다만 모더니즘이 보여줬던 파괴력은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을 만약 모더니즘 초기 사상가들이 본다면 좀 억울할 것이다. 자신들과 달라진 세계로부터 온 이들이 자신들과 다른 문제의식과 고민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비판할 것이니 말이다. 마치 열대우림 기후의 사람들이 사막기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비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비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다음 세대의 목적이며, 그것이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의 생존방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은 잔인한 것이다.
  다만 제대로 된 비판과 함께 좀 더 현세대를 보다 더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포스트 모던니스트들이 제시했으면 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에 대안이 없다면 결국 말장난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 대안을 찾아 머나먼 여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연의 폭력성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자연을 떠났던 인간들이 도리어 자연의 환타지를 만들어 도시를 꾸미려는 시도는 어쩌면 인간의 비합리성은 물론 모순이란 본질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런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건축은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바로 인간의 생활과 직결된 예술분야다. 우리의 삶과 유리되지 않는 공간창출인 건축은 모순된 길을 걸어가면서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최종점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그런 것을 추구하는 치열한 노력을 보여준다. 그 노력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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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예술 산책 - 작품으로 읽는 7가지 도시 이야기
박삼철 지음 / 나름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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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만 본다면 이 책은 예술작품들을 소개하는 에세이와 같다. 특히 도시란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도시 속의 삶을 지옥에서의 삶처럼 묘사하는 책들이 서점을 장악한지 오래도, 그래서인지 일탈이니 도피니 하는 낭만성만을 강조하는 여행에세이가 역시나 인기인 요즘에 이 책은 매우 신선해 보였다. 무엇보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도시이고,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구가 매우 많은, 그래서 지옥이라고들 이야기되는 그런 도시에서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이 그다지 우아하지 않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도시를 못 벗어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크게 드는 시점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도시를 볼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쩌면 도시를 사는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일종의 구원을 찾기 위해 시작된 이 책 읽기는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도 가게 됐다. 도리어 이 책은 지금까지 살고 온 도시에 새로운 기운을 불러 일으키는 공공미술에 대한 이야기와 그 작품들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책이다. 그리고 도시인들을 그렇게 만든 도시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댄 그런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리 간편하게 읽을만한 책이 아니다.
  무겁다. 책의 두께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철학과 독자들에게 의식의 변화와 행동을 요구하는 강한 주장까지 담고 있는, 그리 쉽지 않은 책이다. 획일화되고 수동적으로 된 공간으로 상징되는 근대 도시 속에서의 인간미를 찾으려는 도전이 이 책에 가득하다. 페이지 수로만 정의될 수 없는 탈근대인의 도전과 인식이 글과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근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에서 탈근대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인식을 소개한다. 에세이로 구분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현대 철학서이다. 다만 그런 내용을 밝히는 수단으로 도시 속의 예술 매체들이 사용됐다는 점이 특이한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도시 속에 숨겨진 예술작품들이 그리 간단한 작품처럼 다가오지 않았고 숙고를 요구하는 좀 고역을 요구하는 작품들로 다가온다. 참 세상 살기 힘든 것 같다. 편안하게 볼 수도 있던 것처럼 보인 작품들도 가장 원시적이고 힘든 사고력을 요구하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서로의 인생이 다르다는 본질적인 차이 이외에도 비판의 대상에 대한 인식을 서로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를 살면서 근대의 고마움을 이제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럴 시간에 새로운 대안인 탈근대주의적인 기반 하에 과거를 비판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과 단점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비판이 이 책에선 생산적으로 작용하며, 많은 점에서 참고할 만하고, 또한 근대를 추진한 인간들이 꼭 받아들여야 할 많은 것들이 풍부하다. 작가의 현대적이고 탈근대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과거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사실 책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그런 시도를 하는 매력은 충분히 볼만 하고, 또한 예술에 담긴 다양한 삶의 인식과 철학은 들어 볼만 하다.
  이 책이 시도하고 있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과거를 비판하면서 나온 새로운 인식은 그것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다시 비판을 받을 것이다. 어차피 이데올로기든 철학이든 허점투성이고, 또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 측면 역시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무지한 신의 세계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연 합리적 이성의 시대를 연 인간위주의 근대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그 단점들이 회자되면서 비판의 꼭대기 위에 서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은 조선의 성리학 역시 마찬가지였고, 탈근대 역시 그런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모더니즘이 비판하면서 등장한 혼이 없는 기계론이 이제 정신을 다시 부활시키며 등장한 탈근대에 의해 비판 받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인간들이 갖고 있는 상식과 이념의 대결 속에서도 도시 안에 제공된 공공미술들은 그래도 남아 있을 것이다. 도시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말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기꺼이 제공된 이 매력 있는 작품들은 각자의 이상을 담은 이념들과 그것들 간의 논쟁 속에서도 계속 말이다. 그에 대한 해석이 무엇이든 도시를 사는 사람들에게 그 작품들은 다양하면서도 풍족한 여유를 줄 것이다. 도시의 날카로운 생활의 고통 속에서 그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논쟁 너머에 있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여유, 바로 그것이 도시 속 작품들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이것들은 계속 남아 있으면서 다음의 세대에게 철학은 물론 여유도 많이 줬으면 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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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교토 - 느릿느릿 즐기는 골목 산책 시공사 시크릿 시리즈
박미희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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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가 이전에 ‘헤이안’으로 불렸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일본 역사에 대한 기억을 짚어가다 보면 ‘헤이안 시대’가 나온다는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 역사에 대해 관심은 그리 크지 못해서인지 관심 밖의 영역으로 있던 곳이다. 당연히 교토에 대한 역사를 들춰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상식이 없던 상황에서 상식 하나를 얻는 기쁨은 그리 작지 않다. 다만 ‘시크릿 교토’는 내 어설픈 상식 하나를 주기 위한 책은 아니었다. 도시라는 곳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일본인들에겐 상식인 교토의 내력이 나에겐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교토, 정말 독특하다. 말뿐인 신구의 조화를 제대로 이룬 이 도시는 정말 풍요로운 과거를 간직한 오늘의 도시다. 독특함과 기이함, 그리고 신선함이 살아 숨 셨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멋진 공원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것을 인식 못하며 살아가는 교토 사람들이 좀 부럽긴 하다. 어쩌면 그곳의 매력을 잘 알지 못한 채 평상의 어느 일상처럼 교토 속의 매력을 볼 그들을 생각하면 시샘이 나기도 하면서 그런 삶이 정말 좋은 삶,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부럽다.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에서 신선한 생명력을 전달해주는 것으로 맛집만한 것도 없다. 이제 일본 음식점이나 특히 라멘집, 우동집 등은 정말 구미를 당긴다. 여기에 일본 음식들의 진열장이라 할만큼 이 소잭자에 많고 다양한 맛집들이 소개되어 있다. 일본 음식에 특징이라 할 보기도 좋은 음식들의 모습은 미각과 시각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또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카페들은 현대적인 매력은 물론 일본의 특징을 담은 전통적인 특색도 지니고 있다. 확실히 일본은 일본인가보다. 교토의 심장엔 고전과 현대의 기막힌 조화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교토는 일본의 과거를 담고 있다. 현재 일왕이 거주하는 궁이 있으며, 역사적 시간 단위도 몇 십년이 아닌 500년, 심지어 천년 단위로 계산되는 장소들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도시 자체가 훌륭한 역사적 박물관이란 생각이 든다. 시간은 교토에선 매우 느릿느릿 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교토에 현대적인 매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교토만큼 과거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곳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궁들이나 정원들의 고풍스런 매력들이 무척 인상적이다. 하지만 옛 것을 간직하고 보여주는 것이 고궁만은 아닐 것이다. 거리 그 자체에서 고풍의 매력을 지닌 일본의 전통 가옥이 있는 ‘마치야’는 참 이색적이다. 가본 곳이 아니라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없지만 서울이 북촌의 고풍스런 매력을 새롭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 일본은 그런 부산함을 떨 필요 없이 과거의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보존된 이 곳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다. 그곳은 살아 숨쉬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독특한 색을 지닌 다양한 일본의 정원들에 대한 소개 역시 자극적이다. 특히 료안지의 가레산스이 정원은 무척 묘했다. 미니멀리즘과 같은 느낌을 일으키는 이 기묘한 정원은 작은 사진 속에 소개되어 있지만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사진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 걸작들이지만 그 소재가 그저 그랬다면 결코 감동을 주지 못했으리라. 괜히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재에 등재되진 않았으리라. 그것 이외에도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고 색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정원들이 많다.
  ‘짓코쿠부네’라는 나룻배 유람은 낭만을 자극한다. 벚꽃의 매력을 지나면서 진귀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것 같다. 또한 우지바시란 오래된 다리 위를 걷게 될 때, 과거로 들어가는 관문 앞에서의 흥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흔한 기회는 아니겠지만 게이코, 마이코를 만날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과거와의 조우, 그것은 분명 나에겐 흔한 경험이 아니다.
  한국에도 교토와 같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도시가 있을까?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규모와 다양성, 그리고 현대와 전통이 제대로 조화된 곳을 찾긴 좀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촌이나 서촌 등의 전통가옥들을 중심으로 옛 것에 대한 의미를 되새김하는 작업들이 있겠지만 생활 그 자체를 유지한 것과는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좀 더 자연스런 모습은 아닐 수 있단 생각이 든다. 경주라면 좀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아직도 과거의 매력을 더욱 많이 갖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교토가 부럽다. 과거를 제대로 간직한 현대인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유다. 교토, 가고 싶다. 그리고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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