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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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한국의 바둑기사 이세돌의 매치 이후 바둑계의 변화에 대한 르포와 그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감상, 혹은 에세이를 덧붙인 르포타주라고 할 수 있다. 용어가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런건 llm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기도 하고.


목차를 펼쳐보면 장은 10장이지만 그 중 1-7장은 알파고-이세돌 매치 이후 바둑계의 변화에 대한 취재 및 저자의 코멘트이고 8-9장은 빅테크 및 과학기술의 현황에 대한 비판이며 마지막 장은 과학기술로부터 인간의 가치를 강조하는 에필로그 정도로 보면 되겠다.


제목, 띠지, 홍보문구까지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승리를 거둔 것도 이제 10년이 다되어간다. 한국어로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영어로는 one decade. 그리고 2022년 말 ChatGPT가 등장하면서 인공지능 혹은 AI라는 기술과 개념이 사람들의 인식을 독차지하는 화두가 되었다. 그 후 AI라고 불리지만 실상은 대형 언어 모델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었다.


그런데 사실 99%까지는 아니지만 지구상의 인구 대다수 입장에서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보다는 AI가 일상에 가져올 변화가 무엇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AI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풍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귀찮은 일들을 박멸해줄 수 있는가? 우리에게 물질적 부를 쥐여주거나 아니면 물질적 부 자체를 의미없게 만들 수 있는가?


이 책의 1-7장은 알파고라는 AI가 바둑업계에 미친 영향을 추적,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아마 독자들에게 제일 유용한 지점이 1-7장일 것이다. AI가 일상을 변화시킬 때, 누가 타격을 입는가? 어떤 타격을 입는가? 누가 수혜자가 되는가? 알파고 이후 바둑 기사들이 전해주는 경험담들을 작가는 소설가의 상황으로 상상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바둑기사/소설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직업이나 업무에서 AI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추측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5장에서 저자는 바둑에서 쓰이는 '기세' 같은 용어가 얼마나 추상적이고 분별없이 쓰였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기세'가 적어도 3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AI의 등장이 가져온 후폭풍 속에서 '기세'라는 단어가 혼용되고 바둑기사들조차도 '기세'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하면서도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말하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이자 인간의 직관이 맞물리는 지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7장에서 저자는 암묵지라는 개념을 끌어와 직업마다 통용되는 암묵적인 지식이 있으며 인간 사회의 각종 직무들은 바로 이 암묵지를 전수하는 지식경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암묵지는 언어로 전달되지 않아서, 소위 '신입'들은 '선배'나 '사수'로부터 이런 암묵지를 전수받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어느 직업이든! 이 암묵지라는 개념은 바둑 기사들을 덮친 AI의 파동이 다른 직업들에게 어떻게 전이될까를 추측할 수 있는 지점 중 하나다. 


대학원생이 수 년에 걸쳐 논문 쓰는 법이라는 암묵지를 터득했는데 AI 연구원은 인풋을 입력하면 논문을 출력하는 상황이라면 대학원이라는 제도가 필요할까? 대학 교수가 수 년에 걸쳐 연구한 내용이 전문 AI에게 즉시 반박당하면? 기자가 발로 뛰어 취재한 내용이 AI 작문 도우미에게 틀렸다고 판정받으면? 의사의 처방전이 의학 AI에게 부작용이 있다고 경고 메세지가 뜨면? 진짜 문제는 옆에 AI와 인간 전문가가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할 때 그 전문가의 지식을 소비하는 소비자는 누구의 지식을 소비할 것를 생각해보면 전문가는 AI에게 의견을 굽혀야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내비게이션으로 비유한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것은 자유지만, 내비게이션을 따라가지 않을 때 발생하는 비용, 그리고 동승자들이 '왜 내비대로 안따라가냐'라는 의심의 눈초리라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


그런 점에서 1-7장은 AI가 수년 내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침투할 것인지 보여주는, '먼저 온 미래'라는 제목에 어울리기 그지 없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8-10장은 그러지 못한다. 저자는 과학기술이 '가치'를 바꾼다는 점을 지적하며 AI를 개발하는 구글을 비롯한 빅테크들 역시 예외가 아니고, 오히려 이런 빅테크의 약탈 행각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예를 들어 바둑계는 알파고 이후 프로 기사들의 권위가 사라지고 최상위권이 아닌 프로 기사들의 수입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구글은 알파고는 내버려두고 이후 신약 개발에 핵심이 되는 알파폴드로 관심을 돌렸다.


저자는 구글 뿐만 아니라 메타, 애플,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들이 기술을 개발하면서 일상의 '가치'들을 변질시킬 뿐만 아니라 파괴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지금 바둑 AI 프로그램을 금지시킨다하더라도 바둑기사들의 가치는 복구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기술을 개발하는 빅테크들이 우리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이 정당한가, '옳은 가' 의문을 제기한다.


이 지점에서부터 저자는 진부한 과거로 되돌아가버린다. 앞서서는 바둑계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얼마나 추상적인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이 전가의 보도로 쓰인다는 점을 포착한 저자가, 정작 나중가서는 '가치'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빅테크와 기술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를 불러와 현실에서 얼마나 실현되었는가, 동시에 저자의 이전 작품들에 대한 인용도 이어진다. 홍보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저자가 내놓은 대안, 혹은 앞으로의 방향은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국제기구 단위의 기술 규제(실제로 루소와 칸트의 이름을 언급한다. 그런데 루소를 온전한 민주주의자라고 보기에는?), 기술보다 우선되는 가치, 이를 뒷받침하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인문학 연구자들의 각성, 기술낙관론에 대한 저항 등등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 저자 본인도 가치를 전가의 보도마냥 휘두르듯이 쓴다는 점을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기술이라는 용어 속에 기술과 기술을 개발하는 빅테크를 구분하지 않는다. 어째서 저자는 바둑의 '기세'라는 용어에는 그토록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면서, 정작 '기술' 같은 정말 애매하기 그지 없는 개념에는 똑같은 매스를 들이대지 않는지? 


아울러 저자는 현대인이 과거 중세인보다 더 좋은 삶을 사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현대인의 감정과 중세인의 감정을 비교한다. 그러면서 중세인들의 삶의 근거로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중세사가 요한 호위징하의 "중세의 가을"(1919)을 들고와 중세인들이 어린아이 같은 심리 속에서 살았을 것이라 말한다. 2025년 기준으로 106년 전의 근거를 들고온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를 자아낼 수 밖에 없다.


'미술은 화가가 직접 그려야 한다'는 19세기 낭만주의적 잣대로 21세기 현대 미술을 비난하는 행태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덧붙여 예술과 스포츠 사이를 오가는 바둑의 가치를 논하면서 정작 그 호위징하가 쓴 "호모 루덴스"가 단 하나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AI가 일상생활에 스며들면서 우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했다. 이 책은 그런 일이 먼저 일어난 바둑업계를 살펴보면서 AI가 침투하면 일어나는 일에 대한 르포라는 측면에서는 충실하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이 책은 결국 답을 주지 못한다. 그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있는지도 알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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