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3권 모두 읽게 되었다.
우선 다음 두 가지 사례가 떠오른다.
1. 단체 패키지 여행을 갔디. 현지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한다. 그런데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다.
2. 뷔페에 가서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메뉴를 접시 하나에 담아온 후 깨끗이 비웠다. 식후 다른 사람들과 담소를 나눌 때 뷔페에서 몇 조각 집어먹은 음식만 가지고 한식이 이래서 어떻고 중식이 저래서 어떻고 품평한다.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책이다. 제목이 말하는 것에 충실하기에 그 이상을 바래서는 안 된다. 저자가 독특한 관점을 내세워 지식의 위계를 제시하고, 그를 바탕으로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진리를 포괄하는 폭넓은 지식을 전개하긴 하나, 그 깊이는 너무나도 얕다. 얼핏 보기에는 그 방대함에 압도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방대한 지식을 압축시켜놨기 때문에 결국 그 수준은 고등학교 탐구영역과 대학 학부 전공 사이에 수렴하게 된다. 쉽게 말해 대학 학부 수준 교양 과목들 몇개를 합쳐서 한꺼번에 듣는 것이라고 할까.
그래서 앞서 1번의 감상처럼 왠만큼 책 꽤나 읽은 사람, 교양 꽤나 쌓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 피상적인 얕음이 눈에 보일 것이다. 반대로 교양이라는 측면에서 그동안 쌓은게 별로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2번의 사례처럼 흘러가기 좋다.
이건 사실 당연한 현상이다. 방대한 지식을 우겨넣는 과정에서 저자가 책에 넣을 지식을 선별하는 과정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수백, 수천, 심하면 수만 페이지 짜리 책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런 책을 누가 읽겠는가? 위키백과로 책을 만들어 팔면 누가 그걸 읽겠는가? 이건 그 어떤 천재가 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지식의 중요도를 판별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안그러면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책의 가치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어느 책이든 편향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가 사실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역사가의 관점이 개입할 수밖에 없듯이, 저자가 어떤 지식을 엮는다고 할 때 저자가 자신의 관점에 의거해 중요한 지식과 그렇지 않은 지식들로 나뉘어 엮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측면에서 이 시리즈물을 더 살펴보자면, 2권에서 나름의 지식 체계를 제시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철학자 모티머 애들러가 『평생공부 가이드』에서 알파벳식으로 지식을 나열하는 백과사전 구성을 비판한 점에 비춰볼 때, 지식의 위계를 구성한다는 시도는 그 깊이가 깊고 얕음을 떠나 의미있는 일이다.
다만 그러한 지식의 위계가 모두가 납득할만한 것인가? 라고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에 대한 답은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어쨌든 이 시리즈의 장점과 단점 모두 얕은 지식을 추구하는 점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너무 많은 내용을 축약해서 담아놓았기 때문에 독자들의 의문을 자아내는 지점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책 말미에 가서 이 책의 독서를 여행에 비유하며, 앞으로의 여정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특정 분야의 지식에 흥미가 생긴 독자라면 당연히 그보다 더 깊은 지식을 추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디로 나아가야할 것인가? 어느 책을 읽어야할 것인가? 예를 들어 역사 분야에 흥미가 생겨 책을 더 읽고 싶은데 어느 책을 읽으면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가이드가 단체여행객을 인솔하여 산 정상에 올랐는데, 그 너머 보이는 산은 알아서 가라는 격이다.
물론 여행 목적지가 이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다면 가이드가 굳이 이 산 너머 저 산까지 어떻게 갈지 알려줄 필요도, 의무도 없고, 굳이 돈을 더 받지도 않으면서 인솔까지 할 필요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시작할 때 두 가지 감상에서 시작했다. 2번 같은 케이스는 책 한 두권 읽고 그걸 바탕으로 타인이나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성급히 재단하는 경우로 이어지기 쉽다. 예를 들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만 읽고 타인과 소위 '지적 대화'를 나눌 때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로마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단, 비판적 관점을 취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시리즈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이나 더 읽을 책 목록을 제시해줬으면 지식에 흥미가 생긴 독자들이 그 분야를 더 파고들수 있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이 시리즈물이 깊고 방대한 지식을 넓고 얕은 지식으로 압축한 이상,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나 편향된 정보를 전달하였을 수도 있으니, 독자를 위해서라도 이런 후속 조치 정도는 취했어야 하지 않을까?
참고문헌이 제시되는 것은 제로편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단촐하다. 1편과 2편은 참고문헌이 없다. 물론 책 여기저기서 누구의 연구 결과라거나 누구의 말을 인용하긴 하지만 책을 읽으며 집중하는 도중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새로운 인물의 주장을 그 자리에서 따로 찾는 것은 한참 몰입해서 읽는 행위를 방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시리즈는 교양이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교양을 쌓기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정도라면 적절하다. 물론 이 역시 책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장착했을 때 그렇다. 그런 비판적 관점 없이, 저자가 제시하는 압축된 내용에 대해 아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책의 내용을 무작정 수용하는 식으로 이 시리즈를 읽는다면 제일 처음 말한 2번의 사례를 실천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