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론』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4년에 씌여진 책으로, 저자는 그 유명한 베블런이다.


이 책은 1904년 당시 미국 기업들의 행태를 분석한 책이다. 그럼에도 읽다보면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기업인들의 행태가 현재와 겹치는 지점이 여전히 많기 때문에. 


가끔 대의제에 입각한 입헌 민주주의 국가가 과연 정말 민의를 반영하고 있는게 맞나? 싶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제목은 『기업이론』인데 왜 민주주의 국가가 나올까? 아무튼 책에서 나온다. 기업가들이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를 좌우하는지를 해부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국심이다. 베블런은 애국심에 대해 아주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그에 따르면 애국심은 기업가들의 이익을 일반 시민들의 이익으로 둔갑시키는 수단이다. 애국심 덕분에 일반 시민들은 기업가의 이익이 늘어나면 자신들의 이익이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 책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100년전 미국인데 어째서 지금도 설득력이 있는거 같지 라고 느낀다면, 정상이다. 


이 책을 쓴 소스타인 베블런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미국의 경제학자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경제학'에 비춰보면 이 사람을 '경제학자'라는 범주에 묶어둘 수 있는가? 라는 의문에 절로 부딪치게 된다. 바로 위의 사례를 보자. 경제학자와 "애국심". 둘 사이에 교집합 따윈 없어보이는데?


그렇긴 하지만, 베블런은 아무튼 경제학자다. 그것도 유명한. 그도 그럴게, 이 사람의 첫 단행본 연구서가 바로 그 『유한계급론』이다.


『유한계급론』을 읽다보면 지금 우리가 접하는 경제학과 너무나 거리가 먼 경제학을 접하게 된다. "유한계급"만 놓고보면, "유한계급"이 선사 시대 어느 시점에서 생겨났다는 언급을 보면 왜 "경제학"에서 사회학이나 역사학에서 다룰법한 "계급"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 싶다. 거기다가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근거를 보여준답시고 저기 인도의 원시 부족을 사례로 끌고온다. 


베블런 본인은 "경제 이론"을 들먹이면서 "경제 이론에 의하면 ..."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이거 정말 경제학 책 맞나?" 


나중가면 아예 진화론에, 인종 논의까지 나오는데, 왜 경제학에서? 싶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 시대에 매일 같이 논쟁을 몰고다니는 리처드 도킨스나, 도킨스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생물학자로서 '사회생물학'이라는 화두를 던져 인문, 사회과학계에 파란을 일으킨 에드워드 윌슨 같은 생물학자들도 사실 100년 전 미국의 지식인들이 진화론을 바탕으로 전개한 파격적인 논의들 앞에서 한수 접어줘야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경제학자' 베블런의 논의가 천방지축인 이유를 꼽자면 우리가 아는 현재의 경제학은 20세기 후반을 거치며 형성된 결과물이어서다. 20세기 이전, 특히 19세기 말의 경제학은 지금과 너무나도 달랐다.(그렇다고 현 경제학의 뿌리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충 애덤 스미스-리카도와 맬서스-존 스튜어트 밀-앨프리드 마셜-케인즈 ... 같은 식으로 주류 경제학의 계보가 이어진다.)


어쨌든『유한계급론』은 고전의 반열에 든 책이다. "왜 고전인가요?"라고 물으면 속시원히 대답해줄 사람이 드물어서 그렇지. 그 증거가 국내 번역판본의 수다.


완역본만 5권에, 편역본이 2권 나왔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비교하자면 『자본론』은 3권이나 되는데 이 책은 1권뿐이고, 거기다가 원서가 영어니 독자나, 번역자나 진입장벽이 낮아보인다는 게 참 크다.(낮다는 말이 아니다!)



   



이상의 5권은 완역본이다. 





이상의 2권은 편역본이다.


이 중에서 읽은 번역본은 사실 


3권 뿐이라 어느 책이 가장 번역이 낫니 하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뭣보다 베블런 본인이 글을 정말 어렵게 쓰기 때문이다. 글만 어렵게 쓰는 게 아니라 셰익스피어마냥 자기가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거기다가 일반 명사를 고유명사처럼 써댄다. 베블런의 책은 몇 권 더 번역되어 있는데, 번역자의 후기를 읽다보면 항상 번역하기 어려웠다는 말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다만 『유한계급론』만 놓고보자면 작년에 나온 휴머니스트 번역판이 다른 번역판본들에 비해 가격은 조금 나가도, 소스타인 베블런에 대한 최신 연구성과들을 적극 반영한 주석이나 해제가 수록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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