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현장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떠난 이들 대신 그들의 사연을 말해주는 유품을 하나하나 정리할 때마다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 P13

"또 한 명의 인생을 지웠습니다"라는 문구 대신 "또 한 명의 인생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할 수 있기를. 누군가의 인생을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남겨진 이야기에서 출발한 이 책이 시작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P15

아픈 사람이 의사를 찾고 범죄 피해를 입은 사람이 경찰을 찾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독사 현장에는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 경찰, 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다녀간다. 현장 모습을 아는 사람 중 내가 가장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속속들이 사연을 알게 되는 사람이기에 유족들은 내게 마음을 털어놓고 조금이나마 속을 풀어내려 한다. - P22

죽은 사람은 그걸로 끝이지만 남겨진 사람에게는 그때부터 새로운 고통이 시작된다. 사느냐 죽느냐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만 여겨지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남겨진 사람에 대한 책임과 도리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게 한 아이들이 있는 한 선택에 대한 완전한 자유는 없다. - P32

고독사는 사회적인 문제고, 예방하기 어려운 사고다. 가족과 함께 산다고 해도 24시간 함께할 수는 없기에 돌연사는 더더욱 예방하기 어렵다. 후회는 남을지언정 냉정히 말해 자책할 이유는 없거늘 남겨진 사람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 P39

떠난 고인도, 남겨진 자식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힐 듯이 안타까웠다. 누구도 그 끝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면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마음을 전할 일이다. 잘 있겠지 무턱대고 믿지 말고, 자주 연락하면 번거롭겠지 눈치 보지 말고. - P45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삶의 의지를 놓은 채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현장을 매일 정리하다보면,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나라끼리 벌이는 전쟁만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린 이미 하루하루를 격렬한 전쟁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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