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30주년 기념 개정증보판) - 현대 경제사상의 이해를 위한 입문서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한순구 감수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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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언급해야 할 점. 책 표지에 박혀있듯이, 이 책의 제목에는 죽은 경제학자들(Dead Economists)이 들어가지만 막상 책을 펼쳐 목차를 보면 (생물학적 측면에서) 생존한 경제학자들도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생각에 관한 생각』으로 잘 알려진, 심리학자임에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이 대표적일 것이다. 교과서나 개론서, 입문서 등에 언급되는 인물, 혹은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인물은 으레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묘한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두 번째로 언급해야할 점. 저자의 이력이다. 저자 토드 부크홀츠는 하버드와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고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가르친 경제학자이자, 조지 허버트 부시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경제정책 자문위원을 맡았으며 헤지펀드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저자의 경력에서 대체로 저자의 성향을 유추할 수 있다. 특별히 이 책에서 저자가 주류 경제학에 대한 여러 비판 중 일부를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간다는 주관적인 느낌이 든 지점은 있긴 했지만, 한 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어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거의. 이건 개인의 성향에 달린 문제이니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세 번째로 언급해야할 점. 이 책은 '경제사상사 입문서'이다. 700페이지 가까운 두꺼운 벽돌책이긴 하지만. 사실 얇고 가벼운 입문서를 찾자면 옥스퍼드에서 나오는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국내에서는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같은 시리즈를 찾는 것이 더 좋은 선택지일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 책은 두꺼운 벽돌책이란느 점에서 들고 다니기는 힘들지 몰라도 얇은 입문서에 비교 했을 때 두꺼운 입문서 답게 폭 넓은 서술, 깊이 있는 서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이 책을 통해 일부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사상을 전개하였고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그 윤곽과 개요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으로 현재 대학 학부 및 대학원에서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경제학을 습득하려 한다면 그것은 너무 나간 것일 수 있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같은 개념을 이 책에서 쉽게 설명해주는 만큼, 이 책에 소개된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이해한 다음 경제학 전공서적을 읽을 때 해당 개념을 마주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긴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더 파생되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경제학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 과거와 현재의 경제학자들 중 열댓명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해당 경제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압축하여 요약한 후 핵심적인 사상만 이해하기 쉽게, 흥미롭게 풀어서 설명하는 데 그친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입문서'의 미덕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입문서라는 측면에서 이 부분을 좀 더 풀어보자. 이 책이 지닌 뛰어난 장점이자 한계라 볼 수 있는 단점은 저자가 선정한 몇몇 인물들을 중심으로 여러 경제사상의 흐름을 전개해나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맬서스와 리카도는 친구 사이로 엮여 있으며,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도 이들과 친했다. 앨프리드 마셜은 케인즈의 스승이며, 케인즈는 밀턴 프리드먼과 다투기도 했다. 다만 애덤 스미스의 고전파 경제학에서 시작해 케인즈로 이어지는 이런 주류 경제학(고전파와 신고전파)의 흐름 속에서 마르크스, 베블런 같은 인물들은 조금 겉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저자는 해당 인물들의 주된 일화들을 소개하고, 직간접적으로 인물들이 살던 시대 상황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그러다가 경제학자들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이론을 전개하는 시점이 될 때, 저자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대인에게 익숙한 비유나 사례를 들어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설명한다. 이 지점이 바로 이 책의 제목에 포함된 '살아 있는 아이디어(New Ideas)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저자가 애덤 스미스를 설명할 때 스미스가 손수 든 사례인 핀 공장이 아니라 레이건 행정부에서의 사례를 곁들이고, 데이비드 리카도의 이론이 현재 시점에도 완전히 실현에 이르지 못했다고 설명하는 점이 그 사례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저자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딱딱한 주장, 복잡한 이론과 그래프, 수식을 내세운 낯선 인물들을 친근한 인물들로 손쉽게 변모 시킨다. 너무 효과적이어서 시간이 남아서 경제학 서적을 쓰기 시작했다는 애덤 스미스, 어릴 때부터 극한의 영재교육을 받은 존 스튜어트 밀, '나는 경제학에 소질이 없는거 같다'면서 경제학자가 된 케인즈의 일화적 측면들은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막상 그들의 복잡한 이론을 이 자리에서 쓰라 하면 그러기 힘들 것 같긴 하지만.


그렇지만 입문서로서 이 책의 한계도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먼저 인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는 것의 한계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이 저자의 기준에 따라 선정된 인물들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이는 저자가 각 장에 배분하는 분량에서도 대충 눈치챌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경제학은 여타 사회과학들처럼 19세기 대학이 전문화되고 경제학이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자리잡으면서 엄청난 수의 경제학자들이 등장했다. 저 장구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목록은 그 많은 경제학자 중 극히 일부만을 나타낼 뿐이다. 이 책에서 지나가듯이 언급조차 되지 못한 경제학자들의 수는 대단히 많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경제학자들에 대한 서술이 완전할 수 없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애덤 스미스부터 케인즈와 프리드먼까지의 경제학자들은 책의 분량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정치학, 역사학, 사회학 같은 인접 분야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들이다(마르크스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마르크스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 지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인문사회과학 분과학문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없는 분야를 찾아보는 것이다.). 해당 인물들은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과거의 문헌들이 재발굴되거나 잘 알려진 기존 문헌이 재해석되면서 기존의 해석과 관점에 도전하는 이른바 '수정주의'가 나타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이 책의 또 다른 한계가 드러나게 된다. 책이라는 매체 상의 한계이긴 하지만, 책에서 다루는 여러 경제학자들에 관한 학문적 논의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의 원서가 2021년에 나왔고 2023년 한국어판이 나왔음에도 말이다. 


이 책의 몇 가지 한계들을 늘어놓긴 했지만, 사실 이런 한계들은 그 한계를 체감한 독자가 스스로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읽기 쉬운 서술로 독자들을 경제사상과 경제학의 세계로 인도하여 더 많은 경제학자와 경제사상을 접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 책과 저자는 제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것이 저자가 이 두꺼운 책을 쓰고 몇 번이나 개정판을 출간한 의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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