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외주의 -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
세이무어 마틴 립셋 지음, 문지영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보통 책을 읽을 때는 목차를 따라 순서대로 읽는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의 배경을 먼저 이해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즉 옮긴이 후기를 먼저 읽고 그 다음 머리말부터 읽어야 이해하기 쉽다. 이유는 간단하다. 옮긴이 후기에 저자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지적 배경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앞표지에 소개되는 저자 약력만으로는 저자의 지적 배경을 파악하기 힘들다. 옮긴이 후기에 따르면 립셋은 다니엘 벨 등과 함께 1세대 네오콘(신보수주의) 지식인이다. 이 같은 립셋의 성향은 2부 6장 '미국 지식인들: 대부분 좌파 성향이며 일부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자들'에서 잘 드러난다. 이 장에서 립셋은 미국의 지식인들이 좌파적 성향을 띠고 있으며 이 때문에 역으로 대학 내 좌파들에 비해 소수에 속하는 우파는 발언을 주저하게 되는 경향을 띠게 된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로 염두에 두어야할 사항은 이 책의 원서가 1996년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 번역된 것은 2006년이라는 점이다. 약 10년의 격차가 있는 셈이다. 2024년 시점에서 보면 이 책은 출간된 지 거의 30년, 국내에 소개된 시기로 치면 20년이 다되 가는 낡은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90년대 미국을 90년대 캐나다, 일본, 그외 여러 유럽국가들과 대비시켜 미국만의 예외적인 혹은 독특한 특징을 포착한다. 2024년 시점에서 립셋이 미국의 특징으로 열거하고 그 근거로 제시하는 통계들을 보고 있으면, 현재 미국에서 나타나는 정치, 사회, 문화적 현상들이 2020년대 들어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며, 90년대 미국에서도 그런 측면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로 고려해야할 점은 이 책이 대체로 현대 미국(90년대 미국)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면모를 제시하고 이를 통계자료 등으로 뒷받침하는 데 치중한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미국 예외주의라 부를 만한 사상적 특징이나 현상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변화해왔는지 검토하는 '동태적' 분석이라기 보다는, 90년대 미국이 보여주는 예외적 현상들이 여러 통계나 여론 조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캐나다나 일본 같은 나라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여주고자 하는 '정태적' 분석에 가깝다. 물론 대공황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언급되기는 하나,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이나, 그외 미국과 비교되는 여타 사회들이나, 200여년 동안 변화를 겪긴 했으되 그런 변화가 국가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가치관이나 행동 양태를 변화시키진 않았다고 보는 듯 하다.


저자가 말하는, 다른 유럽, 캐나다, 일본의 구성원들과 비교했을 때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예외적인 현상은 미국의 탄생으로 거슬러간다. "미국은 ... 독립에 성공한 최초의 식민지, '최초의 신생 국가'라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미국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했다.'(p. 14) 미국과 달리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는 구성원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국가가 이미 존재했고 공동체가 지니는 공통의 역사를 통해 스스로를 규정하였다. 반면 미국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된 나라라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이 보여주는 미국적 신조로 저자는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자유, 평등주의, 개인주의, 포퓰리즘, 자유방임주의, 다섯 가지가 그것이다. 여기에 가장 기독교적인 국가로서 미국의 성격이 부각된다. 저자는 유럽 국가들이 여러 교회(가톨릭, 성공회, 루터교, 그리스 정교)가 지배적인 반면 미국의 종교는 여러 기독교 종파들이 지배적이다. 이 사실로부터 저자는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종파주의가 신자들에게 도덕률을 준수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높은 수준의 도덕주의적 성격을 지닌다는 논지로 이어나간다. 그 결과 미국인들은 '국가'보다는 '양심'이 더 중요하게 된다. 이 같은 도덕적 성향이 미국이 전쟁에 나설 때 어떤 전쟁의 경우에는 미국인들이 해당 전쟁을 두고 선(미국) 대 악(적국)의 싸움으로 인식한 반면, 어떤 전쟁의 경우에는 반대로 국가가 부당한 전쟁을 치른다고 인식하여 미국인들이 반전을 외치는, 미국사에서 모순된 면모를 드러내는 요인이 되었다. 전자는 제2차 세계대전, 후자는 베트남전이 주요 사례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30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고 90년대 미국의 예외적인 사회상을 정태적으로 그려내는 데 치중하는 책이다. 하지만 2024년 현재 미국의 여러 면모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점에서 그 값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통계들은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꾸준히 거론된 논쟁거리들, 예컨대 낙태 문제나 정치적 올바름, 적극적 우대 정책과 관련된 90년대 미국인 대중들의 의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독자로서 현재의 한국과 90년대 미국(나아가 현재의 미국)을 비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동시에 시작된 냉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제1세계의 최전방이었기에 미국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근래 한국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많은 갈등들,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는 여러 집단들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을 보면 이 책에서 90년대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가치관의 충돌과 묘하게 겹치는 지점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능력주의에 대한 강조나 기회의 균등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런 가치관이 과연 어디서 왔는가, 어떤 과정을 거쳐 특정 세대에 안착했는가, 어떻게 이론적 무기로서 사용될 수 있었는가 등은 따져볼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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