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이데올로기 1
강철구 지음 / 용의숲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와 이데올로기 1: 서양 역사학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사학사적 측면에서 시작해 식민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적 범위만 따지면 고대부터 현재까지 서양사의 논쟁거리들을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한국의 서양사 연구자라는 시각에서 재검토한 책이다. 물론 유럽중심주의라는 주제 특성 상 책 한 권으로 모든 주제를 다루기란 말도 안되는 일이므로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말하자면 빙산의 일각이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유럽에서 전개된 서양사학, 고고학의 등장과 유럽, 중근동, 아프리카 고고학의 성격, 신화로서 19세기 근대 유럽인들이 고안한 고대 그리스와 실제 고대 그리스, 마찬가지로 유럽인들이 고안한 '자유로운 중세 유럽의 도시'와 그러한 도시 관념의 해체를 위한 타 지역 도시와의 비교, 르네상스를 개인의 탄생으로 바라본 문화사가 부르크하르트에 대한 비판, 고대에서 시작해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을 유지하는 인종주의, '문명화 사명'이라는 미명 하에 비유럽권의 전통 사회를 파괴한 식민주의이다. 


사실 해당 주제들도 '유럽중심주의'라는 거대한 주제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왜소해보이는 것이지, 실질적으로는 이 주제들 하나 하나가 해당 분야에서는 커다란 연구 주제이자 논쟁거리다. 그럼에도 이런 거대 주제들을 하나의 책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려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야심찬 지적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의 구성을 보다 상세히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7가지의 주제를 다루는 7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나의 장은 5~6개의 소챕터로 이루어지고, 각각의 챕터는 내용을 간략히 요약한 소제목과 본문, 각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페이지는 400p가 넘어가는 두꺼운 책이지만 폰트 크기가 그리 작지 않은 편이어서 책의 두께나 분량에 비해 읽는 속도는 꽤 빠름을 체감할 수 있다.


저자가 의문을 제기하고 해결해나가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서양사에 관한 지식이 있다면 익숙할 법한 기존의 통념(유럽중심주의적 해석)을 제기한다. 아울러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장의 주제와 관련된 기초적인 지식을 간단히 정리하여 해당 장에서 다루는 지식의 기본적인 지형도를 친절히 그려준다. 이어서 기존의 (유럽중심적) 해석이 어떤 측면에서 문제점을 드러내는 지 지적한다. 이후에는 이 같은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이 책을 읽고 있을 미래의 서양사 연구자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지니고 어떤 측면에 천착해야 할지에 관한 이정표를 제시하면서 하나의 장을 마무리한다.


기존의 유럽중심주의적인 해석이 지닌 문제점은 유럽/비유럽이라는 범주가 문명/야만, 보편/특수라는 이분법에 포함되는 대부분의 범주들로 위장하여 비유럽권을 야만 혹은 특수라는 위치로 밀어넣고, 유럽을 문명, 보편이라는 범주에 위치시킨다는 점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자연히 비유럽권은 선진적인 유럽/후진적인 비유럽이라는 위계를 수용하고 유럽이 이룩한 근대에 이르는 경로를 밟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제별로 검토하는 사항들은 이런 논리를 정당화한 기존의 유럽중심주의적 해석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세계사를 보다 균형잡힌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노력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유럽중심주의라는 문제점을 노출한 주제들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관한 실례를 저자가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앞서 말했듯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쉽게 다룰 수 있는 주제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해당 주제들에 관한 종래의 유럽중심주의적 해석이 어떤 측면에서 실제와 동떨어진 신화인지를 밝힘으로써 미래의 서양사 연구자들이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또 다른 장점을 들자면 기존의 서양사에 관한 지식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학계, 특히 역사학계에서 연구자들이 이미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학설들을 제기한 끝에 한층 더 진일보한 해석을 구축하였다 치더라도, 학계에서 일어난 변화가 일반 독자들에게 도달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특히 고, 중세와 관련된 2-5장까지에서 그런 장점이 잘 드러난다. 고고학, 고대 그리스, 중세 도시, 르네상스와 부르크하르트에 관한 (2004년 당시)의 새로운 해석들을 접함으로써 독자들은 그동안 상식이라 생각한 서양사 지식을 재고할 수 있다. 


단점은 바로 위에서 말했듯 이 책이 20년 전의 저작이라는 것이다. 2024년 현재 시점에서는 그동안 학계에서 축적된 연구 성과 및 논쟁의 진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태생적 약점이 있다. 이는 2022년에 출간된 『서양사강좌』처럼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하면서도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려 노력하는 연구서나 저작을 접하는 식으로 보완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한계점은 저자가 인정하듯이 대부분의 주제가 고대, 중세에 치우쳐있다는 점이다. 근대에는 자본주의와 근대성이라는, 이 책에서 다룬 주제들보다도 더욱 격한 논쟁을 초래하는 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2005년에 출간할) 2권에서 16-19세기 근대와 관련된 내용들을 다룰 것이라고 머리말에서 말하였으나, 알라딘에서 검색한 바로는 2권은 찾을 수 없었다. 근현대와 관련해서는 같은 저자가 집필한『서양 현대사의 흐름과 세계(2012)』, 『강철구의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 1(2009)』, 저자가 공저자로 참여한 『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2011)』,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2009)』와 같은 저작들을 참고해 보완해야할 지점으로 보인다. 다만 해당 저서들이 10여 년 전의 책이므로 도서관의 힘을 빌려야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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