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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대논쟁 서구의 흥기 ㅣ 바다인문학번역총서 1
조너선 데일리 지음, 현재열 옮김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20년 10월
평점 :
『역사대논쟁: 서구의 흥기』는 시카고 소재 일리노이 대학의 역사학자 조너선 데일리가 집필한 책으로, 어째서 서구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되었는가에 관해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서양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려 시도한 학자들의 주장을 요약한 책이다.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된 본문은 머리말에서 몽테스키외, 볼테르에서 시작해 21세기까지 서양권 학자들의 여러 주장을 간결하게 압축하여 핵심적인 논지만을 제시하고 있다.
머리말에서 간단히 제시되는 인물들은 몽테스키외에서 막스 베버 까지이며, 본문에서는 대체로 20세기 초반부터 현재까지의 서양권 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제목은 "역사대논쟁"이기에 역사학자들만의 주장이 소개될 것 같지만, 막상 저자가 요약한 학자들 중에는 역사학자라고 보기에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도 다소 포함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사회학자이고,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지리학자이며 첸원이엔은 이론물리학자다.
저자는 여러 경제사가들을 포함해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크게 5가지 항목으로 분류하고 이를 그대로 본문의 장으로 활용한다. 책 본문의 구성은 각각 "1. 서구의 기적," "2. 세계사," "3. 제국주의와 수탈," "4. 아시아의 위대함," "5. 왜 중국이 아니었나?"로 이루어져 있다.
1-5장에 이르기까지 각 장의 구성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자는 먼저 각 장의 항목에 분류된 학자들이 어떤 경향을 띠는지 서술하고, 이어서 각 연구자들의 핵심적인 주장을 압축한 한 문장으로 제시한다. 이어서 해당 연구자가 어떤 논리에서 그런 핵심적인 주장을 내세웠는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무엇이 있는지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며,그 과정에서 해당 저자들의 인용문과 지도 자료도 간간히 제시된다. 본문에서 저자의 주석은 모두 미주인 반면, 각주에서는 번역자가 독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저자가 다루는 학자들 및 개념이나 용어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첨부해 놓았다. 본문에서 하나의 장이 끝날 때마다 저자는 본문의 학자들이 어떤 주장을 개진하였는지 다시 간단히 정리하는 결론을 보여주며, 이어서 "더 읽을 거리"와 미주가 나온다.
1장 서구의 기적에 포함되는 학자들은 대체로 기독교, 서구만의 제도들, 기술 진보, 체계화된 지식의 축적과 같은 유럽 "내적" 특징들이 서구의 흥기를 추동했다고 주장한다. 대체로 20세기 중반에 활발히 활동한 학자들이 많지만 21세기 현재에도 이 같은 주장을 내세우는 학자들이 존재한다.
2장부터 4장까지는 유럽 "외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모아놓은 항목들이다. 이중 2장 세계사는 "1장 서구의 기적"에 소개된 학자들을 "유럽중심주의"적이라 비판하며 유럽을 보다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고 유럽을 "탈중심화"하여 비유럽권과의 상호관계나 영향, 유럽의 비유럽에 대한 수탈이나 식민화 등에 중점을 둔다. 다만 3장과 비교했을 때 2장에 수록된 학자들은 수탈을 중심으로 삼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인다.
3장 제국주의와 수탈에서 다뤄지는 학자들은 서구가 흥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유럽인들의 비유럽권에 대한 지배로 돌린다. 대체로 이러한 분석은 북서유럽이 중심이 된 전지구적 분업 구조와 경제적 지배의 위계를 강조하는데, 북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산업화가 이어지면서 비유럽권 사람들은 북서유럽에 노동과 자원을 넘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라 그러한 체제가 등장한 시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월러스틴은 16세기, 에릭 밀란츠는 13세기로 추정한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처럼 5000년에 이르는 세계 경제의 순환 속에서 유럽이 운이 좋아 패권을 잡았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저자가 말하듯이 3장의 연구자들은 "서구의 흥기에는 이례적인 폭력과 침략, 수탈이 수반되었다"는데 이견이 없다.
4장 아시아의 위대함은 유럽의 성취는 아시아 덕분에 가능했다거나 19세기까지 아시아가 유럽을 앞섰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요약한 장이다. 결론에서 저자가 이들의 주장을 요약할 때 각 연구자들의 주장은 다른 편이지만, 공통적인 지점을 하나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즉, 유라시아의 여러 문화들은 수천 년은 아니라하더라도 수백 년 동안 서로에게서 차용하면서 큰 이익을 누렸다. 그러나 서로 의존하여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이 연회(宴會)에 유럽이 참여학 ㅔ된 것은 상당히 늦은 일이었다."(p. 241)
5장 왜 중국이 아니었나?는 2-4장, 특히 4장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19세기에 들어서서야 유럽이 중국을 추월하였다면, 왜 중국은 유럽에게 추월당했는가?라는 의문이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 여러 연구자들은 어째서 중국이 19세기까지 유럽보다 앞서나갔음에도 유럽처럼 과학혁명이나 산업혁명을 맞이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중국의 제국 체제, 중국의 기술적 정체, 중국 엘리트들의 과학 및 상업 천대, 식민지의 부재, 2,000년에 걸친 중국 특유의 지배 문화 등등. 저자는 "왜 중국이 아니었나?"라는 의문이 "왜 서구였나?"라는 의문 만큼 많은 연구를 낳았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왜 서구인가?," 보다 정확히는 "왜 중국이 아니라 서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 저자들이 내놓은 핵심적인 주장들이 수록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연구들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여러 저자들의 주장 중 누가 옳고 그른지 판별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주장을 항목별로 분류하여 제시할 뿐이다. 누구의 주장이 현재의 상황을 더 적실하게 설명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서구의 흥기라는 주제에 관해 큰 흐름을 파악할 때 유용하다. 서구의 흥기, 혹은 유럽의 중국 추월과 같은 논쟁거리는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사로 잡는 주제이며 그에 관해 방대한 연구가 지금껏 누적되어 왔다. 해당 분야의 관련 서적만 읽는 전문가도 관련 연구들을 섭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일반 독자가 만약 이 분야에 관심을 지닌다면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할 지 막막함부터 느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 책에 등장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대표적인 연구서가 바로 『근대세계체제』인데, 총 4권으로 이루어지며 국내 번역서 기준으로 각권마다 분량이 최소 5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또 다른 연구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는 600페이지가 넘는다. 포머란츠의 『대분기』도 686페이지나 되는 벽돌책이다. 게다가 이런 책들이 한두 권 있는게 아니다. "서구의 흥기"라는 논쟁거리가 '논쟁'으로서 유효성을 지니는 한, 새롭고 두꺼운 연구서들(과 번역서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왜 중국이 아니고 유럽이었는가?"라는 역사학적 논쟁에 대해 그동안의 많은 연구자들이 어떤 측면에서 주목했고 그에 맞춰 어떤 논리에서 어떤 근거에 맞춰 어떤 주장을 했는지 잘 보여준다. 나아가 이 책은 특정 연구자의 책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외부적 요소들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예컨대 책이 출간될 당시의 연구 트랜드, 특정 서적이 불러온 논쟁, 책이 출간될 당시와 현재의 반응에서 나타나는 차이와 같은 지점들 말이다. 예를 들어 1장에 소개된 학자들은 '유럽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는 연구 트랜드의 차이를 드러내며, 3장 제국주의와 수탈에서 소개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같은 장에서 소개되는 다른 후속 연구자들을 자극하여 새로운 연구 성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는데 저자가 미국인 역사학자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대체로 저자가 다루는 학자들도 서구권 학자들로 한정되고 만다는 점이다. 총 5개의 항목에서 아시아권 출신 학자는 단 둘, 첸원이엔과 켄트 G. 등 뿐이며 그마저도 5장 왜 중국이 아니었나?에서만 다루지며, 서구권에서 활동했거나 활동하는 중국인 연구자들이다. 이 영역은 지금도 새로운 연구가 쏟아지고 있을텐데 2010년대 초라고 아시아권 학자들의 연구가 드물었을 것 같지는 않다.
아울러 저자가 이 책에서 자기 주장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저자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겠다.
유럽이 흥기한 이유는 그 사회가 모든 사람이 지닌 놀랄 만한 창조성을 보다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가 가진 제도와 전통이 그런 창조성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반드시 번창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7,
나는 특별히 유럽에서 인간의 정신적 힘이 마음껏 펼쳐진 것이 근대 세계의 형성에 핵심적 요소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럽인들이 다른 문화들로부터 배우는 데 유달리 열려있었다는 점에 이런 발전이 가진 핵심적 특징이 있으며, 최근에는 일본인과 한국인, 그 외 아시아 사람들이 유럽인들의 뒤를 이어 이런 열린 자세를 가졌던 것이다.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