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소통 -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음근력 훈련
김주환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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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그런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든다. 습관, 가정환경, 양육환경, 경험, 지리, 문화, 종교, 유전자 등등. 더 나아가 '사람은 선천적으로 유전자가 다 정해진 채로 태어나니 후천적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사람도 자주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런 관점은 인간으로서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과의 관계에서 '나'라는 인간은 주변 요소들에 결정되고 마는 존재로 간주하는 관점이다. 이는 저자도 책에서 지적하는 내용이다. 이런 관점은 흔히 'XX결정론'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 이 XX의 자리에는 뭐든 다 들어간다. '유전자,' '경제,' '지리,' '기술,' '가정,' '환경,' '구조,' '혈액형,' '성격,' 'MBTI,' 더 넣자면 '국가,' '종교,' '문화,' 등등, 판단하는 사람이 무엇을 넣고 싶느냐 명칭은 따라 달라지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다. "인간은 'XX'로 인해 결정된 존재이다." 이것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XX'결정론자들의 주장인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내면소통』의 저자가 가장 반박하고 싶어 하는 관점이라 할 수 있겠다.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내면소통』은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께에 걸맞게 가격도 상당하다. 책을 펼쳐 읽어가다보면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 사실과 연구성과들이 가득하다. 두께, 내용, 가격 이 모두 잠재적 독자들을 압도하는 요소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책 저자의 주장은 사실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다. '명상을 하세요.'


『내면소통』의 저자 이력은 독특하다.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며, 그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에게 기호학을 사사받았을 뿐만 아니라 움베르토 에코와 헝가리 출신의 기호학자 토마스 세벅이 편집한 저작 『셜록 홈스, 기호학자를 만나다』의 번역자이기도 하다(책에서 언급되지만, 저자는 자신이 퍼스의 개념 중 abduction의 번역어로 '가추법'을 도입하였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내면소통』에서 뉴턴의 고전역학은 물론, 양자역학과 같은 물리학, 뇌의 각종 부위별 기능과 종합적인 뇌의 기능에 관해 다루는 뇌과학,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감정과 같은 정신건강 및 심리학을 포함하는 과학의 영역에서, 인간의 의식, 인간의 자아와 같이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선에 서 있는 영역, 나아가 불교의 명상법, 유교의 수양법, 인도의 요가, 근현대 수행법과 같은 종교적 영역까지 '전문 영역'의 벽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나아간다.


이 책에서 저자의 논거로 제시되는 다양한 사항들을 요약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할 것이며 크게 의미도 없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저자의 주장은 '명상을 하세요'이며 이 책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논거들은 종교적 색채를 최대한 배제하고 뇌과학적 측면에서 여러 명상기법들의 과학적 특성과 명상이 생리학적 측면에서 어떤 이득이 있느냐를 입증하기 위한 근거들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명상기법을 알려주는 실용서적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페르시안밀과 같은 고대의 수행법에서부터 우리가 흔히 '명상'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명상법들, 나아가 알렉산더테크닉 같은 현대적인 수행법까지 접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단순히 책만 읽어서는 명상의 자세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참고용 온라인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QR코드를 첨부해놓았다. 아마 이 책을 읽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이 책을 읽고 어떻게 명상을 일상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느냐 일 것이다. 이 문제는 지식이 아니라 개개인의 의지와 실천에 달린 문제여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문이 들 것이다. '명상하는 법에 대한 책자를 쓰면 될 것을, 왜 이리 두꺼운 책을 내놓는단 말인가?' 실제로 그렇다. 스마트폰 어플에서 명상만 검색해도 다양한 명상앱이 나온다. 더 나아가 넷플릭스에서는 명상에 관한 스트리밍도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경우, 명상 기법을 다룬 7-11장 정도만 읽어도 명상하는 데는 문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여러장에 걸쳐 편도체와 전전두피질의 기능과 관계, 좌뇌와 우뇌의 관계, 경험자아와 배경자아를 비롯한 인간의 다양한 자아들, 후성유전학의 실제 발현 과정,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고전물리학 설명하기, 기계론적 우주론 대신 유기체론적 우주론 속에서 우주와 '나'의 관계, 각종 뇌의 기능에 관한 실험과 그 덕분에 밝혀진 뇌의 기능들을 자세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다. 데카르트 이래 근대의 철학과 과학이 당연하다 상정한 '주체'로서의 나와 '객체'로서의 세계라는 이원론적 가정, 어떻게 보면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상식으로 남아 있지만 그 패러다임은 이미 구식이 된 요소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양자역학을 포함한 최신 과학 연구성과들을 언급하면서, 해당 분야들이 우리의 '직관'과 어긋남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고전물리학이 양자역학보다 더 그럴듯해보인다는 것이다. 사실은 그 반대임에도. 


저자는 인간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 먼저 인간의 의식은 인간 신체의 주인이 아니다. 단지 몸의 일부이자 진화 과정 중에 우리 몸이 발명한 발명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인간의 의식은 인간의 신체는 고사하고 당장 뇌에서 떠오르는 다양한 생각마저도 조절하지 못한다. 5분후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 내 의식은 예측도 못하고 그때 무엇을 생각할 지도 결정할 수도 없다. 인간의 자아는 지금의 경험을 느끼는 경험자아와 이를 조용히 바라보는 배경자아로 나뉜다. 인간은 의식 밖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받아들일 때 이야기로 만들어 받아들인다. 인간이 품는 생각, 감정, 의식 등등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에게 전달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누적된, 달리 말해 여러 일화기억들의 집적물이다.  


프로이트의 말을 적당히 떠오르는대로 고치자면 코페르니쿠스가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밀어냈고, 다윈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에서 밀어냈다면 인간은 자기 내면 속에서도 밀려나있다. '나'조차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그렇기에 인간은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여기서 책의 제목인 '내면소통'의 의미가 드러난다. 인간은 늘 대화하는 존재이며 그 대화 상대에는 '나'가 포함하는 '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고쳐쓸 수 없다'라거나 인간의 일생은 이미 'XX'로 정해져 있다는 'XX'결정론이 설 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나'의 일부인 의식이 나의 몸이나 나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라는 전체가 점차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가 바뀌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 유기체적인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을 위해서는 뇌의 구조를, 의식을, 사고방식을 바꿔나가야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을 위한 것이 바로 명상이다. 


이처럼 명상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 드러난다. 저자가 의도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뇌과학, 우주론, 양자역학, 심리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들을 유기적인 전체로서 종합하여 독자에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실용서적으로서 명상하는 법에 다룬 책이긴 하나, 다양한 과학적 설명들을 종합하여 유기체적인 우주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기계론적인 우주관, 또는 이미 인간은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XX'결정론을 반박하는 이론서적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책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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