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 - 융 심리학으로 읽는 자기 발견의 여정
모린 머독 지음, 고연수 옮김 / 교양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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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마이어의 문명"이라는 게임 시리즈가 있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사가 선별한 유명 문명의 지도자가 되어 문명을 이끌어나간다. 게임 제작자들이 만든 룰을 따라 게임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무척 재밌다. 게임 초반, 미지의 세계 속에 내던져진 약소한 문명을 거대 제국으로 일구는 재미는 그 어떤 게임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뒤로 갈수록 재미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약소한 문명이 거대 제국이 되어 갈수록 플레이어는 문명을 이끄는 영웅이자 리더에서, 단순히 마우스 버튼이나 딸깍이며 거대 제국의 잡무를 처리하는 공무원, 마우스 클릭 손가락 노동자가 된다. 이 시점에서 플레이어는 "내가 왜 이 게임을 붙들고 있지?" 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품을 수 있다. 이 시점에서 플레이어는 억지로 게임을 이어나가 승리를 이룰지, 메뉴를 켜서 게임을 종료하고 바탕화면으로 나가기를 누를지 선택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많다. 다른 장르의 게임들을 즐기다 지겹다, 혹은 나와 맞지 않다 싶으면 접속을 종료하거나, 게임을 끄면 된다. 음악을 듣다가 지루하거나 내 취향이 아니다 싶으면 음악을 끄면 된다. 독서를 하다가 졸리다, 이 책이 아니다 싶으면 책을 덮고 다른 일을 하거나 자면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다가 이 영화는 나와 안 맞다, 혹은 영화가 별로다 싶으면 극장에서 나가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끄면 된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인생에는 게임처럼 로그아웃, 접속종료, 바탕화면 나가기, 프로그램 종료하기 같은 선택지가 없다. 누군가는 우리가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다거나, 시뮬레이션 속 가상 인물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게임에서와 달리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메뉴버튼도, 플레이/중단 버튼도 없다. '매트릭스를 나간다' 혹은 '시뮬레이션을 종료한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다.


한창 인생에서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달려왔는데, 어느 시점에서 공허함과 허무함을 마주할 때, 내가 걸어온 길이 부정당한다고 느낄 때, 사실 우리는 삶에서 새로운 여정의 시작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삶에서 바로 그런 순간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지침이 되어준다. 


들어가기에 앞서 책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이 책을 쓴 모린 머독은 융 심리학 치료사이다. 이 책은 1990년에 출간되고 2020년에 개정판이 나온 "The Herione's Journey"의 번역서다. 2014년 같은 역자를 통해 『여성 영웅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한 번 번역되었다. 개인적으로 기존 번역인 『여성 영웅의 탄생』보다는 개정판의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원래 제목이 책의 내용 전반을 포괄하긴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미국의 비교종교학자이자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과의 만남에 있다고 말한다. 책 표지의 앞날개와 뒷날개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저자는 캠벨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캠벨과 만나기 전, 저자는 여성 영웅의 여정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 했다. 그런데 캠벨은 남성과 달리 여성은 여정이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이에 실망한 머독이 내놓은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 한 가지 기대한 지점이 있었다. 내심 캠벨의 글처럼 여러 신화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신화학자여서 세계 각지의 다양한 신화를 예시로 들고 오는 캠벨과 달리, 머독은 융 심리학에 기반한 심리 치료사여서 몇몇 여신들이 등장하는 신화(아테나,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인안나, 칼리 등)를 언급하기는 하되 신화보다는 자신에게 내담한 내담자들, 그리고 머독 자신이 겪은 사례를 자주 든다.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 책은 여성 영웅의 여정과 실제 여성들이 겪은 여성 영웅의 여정의 사례들을 다룬다. 여기서 알 수 있겠지만, 책에서 말하는 여성 영웅은 '초인'이 아니라 평범한 여성이다. 먼저 머리말에서는 여성 영웅의 여정이 제시된다. 머독이 제시하는 이 여정은 여성이 현실에서 거치는 여정이며, 외롭고 힘든 길이다.


오늘날 여성들은 탐색의 여행을 하고 있다. 이 여행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리고 여성성에 난 깊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지를 배움으로써 자신의 여성적 본성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온전하게 통합되고 균형 잡힌 전인(全人)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내면으로의 여정이다. 대부분의 여행처럼 여성 영웅의 행로도 쉬운 길이 아니다. 제대로 된 이정표도 없고 알아보기 쉽게 설명한 여행 책자나 지도도 없다. 몇 살에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지도 정해져 있지 않다. 또 이 여정은 절대로 곧게 뻗은 일직선 도로를 따라가지도 않는다. 외부 세계는 이 여정을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방해하거나 간섭한다. - P26


총 10단계로 구성되는 여성 영웅의 여정은 1. 여성성 분리 2. 남성성과 동일시, 그리고 조력자를 만남 3. 시련의 길: 괴물과 용을 만남. 4. 성공이라는 허황된 열매를 찾음 5. 정신적 메마름 자각: 죽음 6. 여신으로 입문과 하강 7. 여성성과 재결합을 갈망함 8. 모녀 분리 치료 9. 상처 받은 남성성 치유 10. 남성성과 여성성의 통합으로 이루어진다. 캠벨의 영웅의 여정처럼 머독이 제시하는 여성 영웅의 여정 역시 원형의 구조를 띤다. 


책의 본문 구성은 이 여성 영웅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본문은 해당 여정의 단계에 맞춰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은 여성 영웅이 거치는 각 단계의 여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여정의 기본적인 흐름은 딸들이 어머니 대신 아버지를 롤모델로 삼고 자라난 끝에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만 그 대가로 자신을 희생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내면으로 하강하여 잃어버린 자신의 본 모습을 포용하고 되돌아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기본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은 가부장적 문화가 여성의 본모습을 가려왔으며, 여성은 이 가려진 모습을 되찾아야한다는 점이다. 여정의 1단계부터 4단계까지는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자라난 여성이 가부장적 문화를 내면화하려는 헛된 시도다. 5단계부터 마지막 단계까지는 가부장적 문화 속에 가려진 여성 내면의 본모습을 되찾고 가부장적 문화가 여성에게 덮어씌운 베일을 벗는 과정이다. 저자의 고민은 여성들이 가부장 사회가 여태 가려온 자신의 본모습을 어떻게 일깨울 것 인가이다. 


오늘날 여성적 영성이 중요한 관심사가 된 이유는 아주 많은 여성들이 남성 영웅의 여정을 따랐지만 결국 개인적으로도 공허하고 인류에게도 위험하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따를 만한 다른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 영웅의 여정을 모방했다. 여성의 삶은 남성중심적인 문화에서 여성으로서 ‘성공‘하거나 남성에게 지배당하고 의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오늘날 서구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를 변화시키려면 새로운 신화와 여성 영웅을 찾아야만 한다. - P39
우리 사회는 남성 중심적이다. 남성 중심적이라는 말은 남성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남성들은 자신의 지성, 추진력, 신뢰성을 지위, 권위, 경제적 이익이라는 결과물로 보상받는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비슷한 수준의 보상을 받지만 평등하지는 않다. 만일 여성이 남성의 눈으로 자신을 보고 남성들이 규정한 문화의 잣대로 끊임없이 자기를 평가한다면, 자신에게 결함이 있거나 남성들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여성은 결코 남성이 아니다. ‘남성처럼 훌륭해지려고‘ 애쓰는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훼손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자신이 지니고 있지 않거나 성취하지 못한 것들의 측면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면서부터 여성으로서 자신을 평가 절하하고 감추기 시작한다. 여성들의 이러한 평가 절하는 어머니에 대한 평가절하에서부터 시작한다. - P48

자신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딸‘로서 살아왔음을 깨달을 때, 우리에겐 몇 가지 캐내야 할 것이 있다. 문화라는 의복으로 덮어 감추기 전에 우리들 것이었던 우리의 일부를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 P203


여성 영웅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의 대상 독자는 여성이다. 이 책에서 특히 경계하는 것은 끊임없이 목표를 이루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변질된(혹은 상처받은) 남성성'이다. 저자는 '변질된 남성성'을 탐욕스러운 폭군에 비유한다. 이 폭군은 만족할 줄을 모르며 (여태 지속된 가부장제) 사회가 정의한 성공을 이루라고 여성을 채찍질하고, 혹시 여성이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기미를 보이는 순간 '네가 지금껏 이루어 놓은 것들이 모두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조금만 더하면 성공할 수 있는데?'라면서 협박과 유혹을 해온다. 저자는 여성이 이 변질된 남성성 혹은 폭군에 가려진 진짜 자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때부터 진정한 여성 영웅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떤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생각하고, 남성들과 경쟁하고, 남성들의 게임에서 남성을 이기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 크나큰 자부심을 느낀다. 이런 여성들은 영웅적인 성취를 이룬다. 하지만 많은 여성이 결코 ‘충분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 신경을 갉아먹히는 듯한 괴로움을 느낀다. 그들은 남성들과 같아지고 싶어 점점 더 많은 일을 한다. - P97

무의식의 남성에 붙들려 있을 때 여성은 자신이 무엇을 하건, 어떻게 하건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그가 계속해서 또 다른 것을 추구하도록 몰아대기 때문에 한 가지 과업을 완성(p. 143) 하는 것으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과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가치가 없다. 무의식 속의 남성은 미래를 생각하라고 다그친다. 여성은 비난받았다고 느끼지만 내면의 결핍된 부분에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 "맞아. 어떤 걸 좀 더 해야 해. 이걸로 충분하지 않아." - PP.142-143.

겉도는 내면의 남성성에 자신의 인생을 맡긴 여성은 남성들이 세운 기준에 맞추어 성공하려는 욕구에 휘둘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려면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영웅적 여정의 보상에 관한 여성 영웅의 예상은 틀렸다. 물론 그녀는 성공과 독립과 자율 따위의 보상을 얻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이나 영혼의 한 조각을 잃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성은, 목표 지향적인 남성적 사고를 신뢰하면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문화적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개인적 사고방식에도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착한‘ 딸이 되어라, 그러면 ‘아버지‘가 널 돌봐줄 것이다. 그녀는 이제 위로받지 못하고 철저히 혼자라고 느낀다. 그녀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녀의 질서정연한 세계에 금이 간다. - P154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 저자인 모린 머독과 머독을 내담한 내담자들은 스스로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혹은 남성처럼 사회에서 성공을 거두고자) 스스로를 채찍질한 결과, 오히려 허무함과 마주했다. 


남성성은 원형적 힘이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성처럼 모든 여성과 남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창조적인 힘이다. 남성성은 균형을 잃거나 삶과 유리될 때 전투적이거나 비판적이거나 파괴적으로 변한다. 이렇게 삶에서 유리된 원형적 남성은 차갑고 비인간적일 수 있으며, 인간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 남자다움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저 전진하라고 말한다. 완벽과 통제와 지배를 요구한다. 어떤 것도 충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우리의 남성적 본성은 어부 왕처럼 상처를 입었다. - P298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극복 대상으로 제시되는 '변질된 남성성,' 혹은 '상처입은 남성성'은 사실 개인에게 덧씌워진 '가짜 자아'라고 생각한다. 이 가짜 자아는 진짜 자아인 것처럼 위장해 개인의 멱살을 잡아 끌고 간다. 그 목적지는 남들에게 인정받는/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회적/경제적 성공이다. 그 자리에 멱살 잡혀 끌려온 개인 스스로를 위한 자리는 없다. 말하자면 기계처럼 돌아가는 사회 속에 개인을 톱니바퀴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과정이고, 고장나거나 마모될 경우 그 즉시 폐기처분 해버리는 것이다. 이 가짜 자아 이야기는 에리히 프롬의 책에서 본 내용이 내 머리 속에서 적당히 걸러지고 혼합된 것인데,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머지 전부를 제쳐두고 달리기만 해온 여성들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을 멈추고 그동안 돌보지 않은 자기 자신, 가부장적 문화 속에 가려진 자신,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 속으로 '하강'한다. 


가부장제를 거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남성성과 새로운 관계를 발달시키기 위한 새로운 공간을 우리 내면에 창조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새롭게 관계를 맺을 남성은, 우리 문화에서 많은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세기에 걸쳐 여성성과 분리되어 있던 남성적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를 위대한 어머니에게 데려다 줄 창조적인 남성이다. 위대한 어머니를 만남으로써 우리는 여성적 본성에서 분리된 상태를 치유할 수 있다. 가부장제를 거부하면서 우리는 "5천 년 동안 추방된 여성성의 힘과 열정이 잠들어 있는 땅속 깊숙한 곳, 여신의 정신을 향해 하강"을 시작한다. - P172

하강은 영혼의 어두운 밤, 고래의 뱃속, 암흑의 여신과의 만남, 지하 세계로 가는 여정으로 여겨지거나 또는 그저 우울증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강은 대개 삶을 통째로 바꿔놓는 상실에서 비롯된다. - P177

지하 세계에는 시간 감각이 없다. 시간은 무한하고 그곳을 서둘러 떠날 수도 없다. 아침도 없고 낮도 없으며, 또는 밤도 없다. 칠흑같이 어둡고 혹독하다. 온통 암흑뿐인 지하 세계는 축축하고 차갑고 뼈가 시리다. 지하 세계에는 쉬운 해결책이 없다. 빠져나가는 지름길도 없다. 울부짖음이 그친 그곳엔 침묵뿐이다. 여성은 벌거벗은 채 죽은 자들의 뼈 위를 걷는다. - P178

어머니를 거부하면서 여성성의 거울이 산산조각 난 여성은 분리된 자신의 부분들을 되찾기 위해 땅속 깊이 내려간다. 이 여행중에 여성은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몸, 자신의 감정, 자신의 성적 취향, 자신의 직관, 자신의 이미지, 자신의 가치,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될 수 있다. 이것들이 그녀가 그 깊은 곳에서 찾는 것들이다. - P181


그 과정을 거치면서 잃어버린, 혹은 망각당한 자신의 본모습을 만난다(이는 폭군과는 거리가 먼 내면의 창조적 남성성의 인도를 받아 위대한 어머니, 지모신과의 만남을 이루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여성은 그 전부를 포용하면서 하강을 끝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이 단계를 거친 여성은 자신을 돌볼 줄 알게 되고 더 이상 '탐욕스러운 폭군'에게 휘둘리지 않게 된다. 


하강을 끝내고 돌아올 때 여성은 자신의 몸을 되찾는다. 그 결과로 그녀는 자신의 건강한 몸 상태를 되찾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여성성의 신성함을 구체적인 행위로 표현한다. 그녀는 이 표현의 필요성을 분명히 의식하기 시작한다. 의식적인 영양 섭취, 운동, 목욕, 휴식, 치유, 섹스, 출산, 죽음을 거치며 그녀는 우리에게 여성성의 신성함을 일깨워준다. - P230
하강을 한 여성은 여성성의 탐욕스러운 파괴자 양상을 경험한다. ‘지상의‘ 삶에서 분리된 이 기간 중에 자신이 쓸모없다거나 자기 삶이 메말라버린 느낌을 경험하고 나서 여성은 창조적인 여성성의 촉촉하고 푸르고 물기 많은 측면을 갈망한다. 자신의 여성성과 단절되었다고 느끼는 여성은 창조성이 솟아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낄 때 천천히 자기 정체성을 되찾기 시작할 것이다. 정원에서, 주방에서, 집을 꾸미면서, 인간관계 속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글을 쓰면서, 춤을 추면서 재생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여성의 심미적이고 관능적인 감각은 색깔, 냄새, 맛, 촉각, 소리로 새로운 활력을 얻으면서 되살아날 것이다. - P245
여성 영웅은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는 대로 숨쉬면서 우리 모두에게 지(p. 321)식을 불어넣어 우리를 치유한다. 여성 영웅은 양쪽 세계의 여왕이 된다. 그녀는 일상이라는 삶의 바다를 항해하며 심오한 가르침에 귀 기울일 수 있다. 하늘과 땅의 여왕이면서 동시에 지하 세계의 여왕이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에서 지혜를 얻었다. 더는 다른 쪽을 비난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바로 그 다른 쪽이다. 여성 영웅은 세상과 지혜를 나누려고 자신이 얻은 지혜를 되가져 온다. 그녀의 경험이 세상의 여성들, 남성들, 아이들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시킨다. - PP 320-321.


여기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 있다. 이렇게 여성 영웅이 본 모습을 깨닫고 변신하게 될 때, 성장한 것일까? 본모습을 되찾은 것일까? 정답은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천 년 동안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신화가 전해져 왔다. 남성 중심의 신화 속에서 남신은 그 이전부터 존재한 여성적 신화 속 여신의 지위를 강탈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우라노스-크로노스를 거쳐 제우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신이 되었다. 바빌론 신화에서는 마르두크가 티아마트를 살해했다. 


역사적으로 육체와 영혼의 연결은 지모신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파괴되었다. ‘어머니 대지‘가 대대적인 파괴의 위협을 느끼는 지금에 와서야 관계가 회복되고 있다. 인류가 대지의 신성함을 잊고 숲이나 언덕이 아닌 교회나 성당에서 신에게 예배하기 시작했을 때 자연과 맺은 신성한 ‘나와 너(I-Thou)‘의 관계는 잊혀졌다. 우리는 어머니 대지의 모든 종(種)과 서로 연결된 대지의 자손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 나무, 바위, 대양, 짐승, 조류, 아이들, 남자, 여자로 구현된 신성함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자연의 성스러움을 무시하는 것이 육체의 신성함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 P221

20세기 후반 들어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 신화가 가려버린 여성적 신화를 발굴하고 복원하려는 시도, 새로운 여성 신화를 창조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인류 역사에 협력 관계가 중심인 사회들이 존재한 시기가 많았다. 그런 사회에서는 생명을 잉태하고 보살피는 신성성의 양상이 일상적 삶의 한 부분으로 숭배되었고, 종교적이거나 일상적인 일들을 수행하는 데에 성차별이 없었다. 서유럽의 구석기 시대 동굴과 차탈회위크와 하실라르의 무덤뿐만 아니라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 영지주의 기독교, 초기 켈트족, 아메리카 원주민들, 발리섬의 원주민들, 그밖에 많은 곳에서 이런 사회가 존재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 P336

낡은 이야기는 끝났다. 영웅적 탐색의 신화는 진화의 나선 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일시적인 명예에 불과한 직함이나 성취, 갈채, 부의 추구 같은 ‘본질이 아닌 것‘에 대한 탐색은 더는 타당하지 않다. 그 엉뚱한 탐색은 여성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어머니 대지에 너무 비싼 통행세를 치르게 했다.

오늘날 여성 영웅은 자신을 과거에 묶어놓았던 자아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신의 영혼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찾기 위한 분별의 칼을 들어야 한다. 어머니를 향한 분노를 놓아버리고 아버지를 비난하거나 우상화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한다. 자신의 어둠을 대면할 용기를 찾아야 한다. 그녀의 그림자는 이름 지어주고 껴안아줘야 할 바로 자신의 것이다. 여성은 자신 안의 이 어둡고 그림자 진 공간에 명상, 미술, 시, 연극, 의식, 관계 맺기, 흙을 만지는 일을 함으로써 빛을 비춘다. - P347

한 가지 더, 저자 모린 머독은 자신을 두고 1950년대 스푸트니크 쇼크 속에서 자란 "포스트 스푸트니크" 세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린 머독은 캠벨의 영웅의 여정을 보완/대체할 새로운 여정의 구조를 제시했다. 마찬가지로 지금 세대에게도 (남녀 가릴 것 없이) 지금 세대를 위한 새로운 신화 구조와 여정이 필요 하지 않을까? 민음사 세계 문학전집 아무 책이나 집어서 뒷표지 날개를 펼쳐보자. 세대마다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하고, 번역 문학 역시 세대마다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신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신화는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신화는 인간이 삶에서 얻은 경험에 구조를 부여한 것이다. 각 세대 마다 새로운 신화가 필요하다. 


신화 만들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신화는 삶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데 필요하다. 마크 쇼러(Mark Schorer)는 시의 맥락에서 신화의 개념을 논하면서 이렇게 썼다. "신화는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할 때 쓰는 도구이다. 신화는 평범한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실들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거대하고 지배적인 이미지이다. 다시 말해 신화는 경험을 체계화한다는 데 가치가 있다. (집합적 의미의) 신화란 그러한 이미지들이 어느 정도 분명하게 구체화된 것, 판테온이다. 그런 이미지들이 없다면 경험은 그저 혼란스럽고 파편적이며 일회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 P274


이 책은 여성에게도 유용하지만 남성에게도 유용하다.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남성 역시 사회적/경제적 성공을 거둬야한다고 끊임없이 주입당하지 않는가? 그런데 눈부신 성공을 거두거나 누구도 이루지 못할 업적을 이뤄 남들에게 과시하는데 성공한다면, 과연 그 개인의 인생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아가 아닌 외부의 목소리만을 따라간 끝에, 남성 역시 이 책의 여성들처럼 자신은 전혀 돌보지 못하고 중요한 것을 상실하지는 않았는가? 성공만을 위해 내달리다가, 자신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뒤늦게 돌이켜보고 '내가 지금 뭘 한거지?' 라고 의문을 품지 않는가? 


그런데 '성공하라,' '경쟁하라'며 들려오는 목소리, 내면에서 개인을 채찍질하는 목소리는 원래부터 인간 내면에 당연하게 존재한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언급한 문명이라는 '게임'처럼, 인간 스스로가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상상하고 만들어 내면화한, '게임의 룰'들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함께 여행하는 순례자들이다. 모든 생명의 존엄성—보이는 것이건 보이지 않는 것이건—을 존중하고 보존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여행 중이다. 그 안에 우리의 영웅적 힘이 있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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