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짜로 나이 든 사람을 볼 때 보부아르가 타자他者라 부른 것을 본다. 너무 낯설어서 하나의 "사물이자 불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 저 사람 늙었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늙지 않았는데. 그리고 이 말에는 나는 절대로 늙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나도 이 말이 거짓말임을 안다. 하지만 유용한 거짓말이다. 이런 생각 덕분에 마르쿠스처럼 매일 아침 침대에서 나와 싸움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438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말했듯이 우리가 노화 탓으로 돌리는 많은 결점은 사실 인성의 문제다. 노화는 새로운 성격 특성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기존의 특성을 더욱 증폭한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더 강렬한 형태의 자기 자신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보통 긍정적이지 않다. 돈 쓰는 데 신중한 젊은 남성은 늘 투덜대는 늙은 수전노가 된다. 감탄할 만큼 의지가 강한 젊은 여성은 짜증날 만큼 고집 센 할머니가 된다. 이런 성격의 강화는 늘 부정적인 쪽으로만 흘러가야 하는 걸까? 나이 들면서 그 궤도의 방향을 꺾을 수는 없는 걸까? 더 나은 모습의 나이 든 내가 될 수는 없을까? - P439

철학은 우리에게 생각할 내용이 아닌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우리에게는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노화에 대해 별 생각을 안 한다. 젊음을 유지하는 것만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나이 듦의 문화가 없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절박하게 매달리는 젊음의 문화만 있을 뿐이다.
노화는 질환이 아니다. 병이 아니다. 비정상이 아니다. 문제가 아니다. 노화는 연속체이며, 우리 모두 그 연속체 위에 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늙어가고 있다. - P440

고대 그리스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두 개 있었다. 바로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이다. 시계 속의 분, 달력 속의 달이다. 카이로스는 딱 맞는 적절한 때를 의미한다. 무르익은 기회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카이로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 P441

실존주의자들에게 사람은 곧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더 이상의 반박은 없다. 우리는 온전히 실현한 기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추상적인 개념의 사랑이란 없으며, 오로지 사랑하는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천재란 없고, 천재적인 행동만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한 번에 한 붓질씩 자기 자화상을 그린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곧 그 자화상이며 "오로지 그 자화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더 이상 스스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말 것. 스스로를 그려나가기 시작할 것. - P445

사실성facticity은 또 다른 실존주의 용어다. 사실성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는 삶의 요소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 시기에 이 나라에서 이 부모에게 태어나기로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실성을 통제할 수 없다. 나는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사실성을 초월할 수 있고 자신의 사실성, 즉 자기 자신을 넘어설수 있다는 거야. - P446

보부아르가 보기에 노화는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사회적 판결이었다. 배심원이 없으면 판결도 없다. - P452

우리는 사회적 역할과 자신의 본질을 혼동한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타인에게 사로잡혀 있으며 타인의 시선대로 스스로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진정성이 없다(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단어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우텐테스authentes에서 나왔다). - P458

우리는 습관을 필요로 한다. 습관이 없으면 우리 삶은 수백만 개의 무의미한 파편으로 산산조각 날지 모른다. 습관은 우리와 이 세계를, 우리 자신의 세계를 하나로 이어준다. 습관이 왜 생겨났는지를 기억하고 끊임없이 그 가치를 의심하기만 한다면 습관은 유용할 수 있다. 습관이 우리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습관을 지배해야 한다. - P469

죽음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가장 생각 없는 사람도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궁금해한다.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죽음은 두려워할 일인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지? 죽음은 진정한 철학을 가리는 테스트다. 인생에서 가장 중대하고 겁나는 사건에 대처할 수 있게 도와주지 못한다면 철학이 다 무슨 소용인가?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은 결국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철학자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즉 무시하거나 겁낸다. - P482

몽테뉴는 그런 회피에 너무 큰 대가가 따른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회피하면 "다른 기쁨까지 전부 사라져버린다." 몽테뉴는 죽음을, 자기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직면하지 않고선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다고 말한다. "죽음에서 낯선 느낌을 제거하고, 죽음을 알고, 죽음에 익숙해지자. 다른 무엇도 죽음만큼 자주 생각하지 말자. 매 순간 죽음의 모든 양상을 상상하자. - P489

"죽음은 우리가 타고난 조건이다. 우리의 일부다. 죽음에서 도망치는 건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 쪽으로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죽음은 우리 밖에 있는 ‘무엇’이 아니며 우리는 죽음의 희생자가 아니다. - P493

몽테뉴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자신을 믿을 것. 자신의 경험을 믿을 것. 자신의 의심도 믿을 것. 경험과 의심의 도움을 받아 인생을 헤쳐 나가고 죽음의 문턱을 향해 다가갈 것. 타인과 스스로에게 놀라워하는 능력을 기를 것. 스스로를 간질일 것. 가능성의 가능성에 마음을 활짝 열 것. 그리고 몽테뉴는 동포인 시몬 베유와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제발, 주의 좀 기울여. - P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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