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우리 영혼의 본성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우리는 돈독하게 결속되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소속감과 공동체를 갈망한다. 우리 문화가 잃어버린 여성성의 긍정적인 특질, 즉 강인하고 잘 보살피는 특질을 열망한다. "개인 또는 사회가 너무 한쪽에 치우쳐 있거나 인간 경험의 깊이와 진실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질 때, 진실을 회복하기 위한 어떤 움직임이 내면에서 꿈틀거린다. 기존의 틀을 깨뜨리면 순식간에 일상의 현실이 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삶이 자유로워지고, 자기 치유와 더불어 내적 통과의례라는 심오한 영적 작용이 활성화된다." 우리는 강하고 힘 있는 어머니를 갈망한다. - P256
현실의 어머니가 자상하게 보살펴주는 어머니이건 냉정한 어머니이건, 아이에게 자율을 주건 조종하건, 곁에 있어주건 방치하건 간에 어머니와 내적으로 맺은 관계는 어머니 콤플렉스(mother complex)로 남아 우리의 정신에 흡수된다. - P260
우리의 집단 심리는 ‘어머니‘의 힘을 두려워하고 폄하한다. 또 그 힘을 파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어머니의 양육을 당연하게 여긴다. 기회가 되는 대로 어머니를 이용하고 학대하고 지배한다. - P262
교회는 신의 여성적 이미지를 파괴하고 남성 신들을 위해 여신의 힘을 찬탈하면서 오랜 세월 신의 여성적 얼굴을 지하로 밀어 넣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가 여성성을 잊어버리도록 온갖 짓을 다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여성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겠는가? 우리는 탐욕, 지배, 무지의 신들을 숭배하고 돌봄, 균형, 관용의 여성적 이미지를 조롱한다. 우리는 훼손하고 약탈하고 파괴하면서도 대지가 우리에게 끝없이 베풀어주기를 기대한다. 이 모녀 분리의 상처는 깊다. 이를 치유하려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 P262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깊은 상처를 경험한 여성들은 종종 평범한 경험 속에서 치유를 얻는다. 많은 이들이 신성한 일상에서 치유를 받는다. 설거지이든 화장실 청소든 정원에서 잡초 뽑기든 모든 일상의 행위에서 신성함을 보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을 평범한 일상에 내려놓으면서 보살핌을 받고 치유된다. 내면의 여성성을 회복하는 이 기간에 여성이 헤스티아 여신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내면의 현명한 여성‘을 발견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 P269
헤스티아 여신은 따뜻한 마음, 안전, 인간관계 같은 가치들과 관련이 있다. 가족이나 조직에서 헤스티아는 세세한 부분까지 보살피고 모든 사람이 각자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아는 사람, 촘촘하게 관계의 그물망을 엮는 ‘거미‘ 같은 사람이다. - P269
신화 만들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신화는 삶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데 필요하다. 마크 쇼러(Mark Schorer)는 시의 맥락에서 신화의 개념을 논하면서 이렇게 썼다. "신화는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할 때 쓰는 도구이다. 신화는 평범한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실들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거대하고 지배적인 이미지이다. 다시 말해 신화는 경험을 체계화한다는 데 가치가 있다. (집합적 의미의) 신화란 그러한 이미지들이 어느 정도 분명하게 구체화된 것, 판테온이다. 그런 이미지들이 없다면 경험은 그저 혼란스럽고 파편적이며 일회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 P274
여성들이 꾸는 꿈은 어둠에 관한 것이고 삶과 죽음의 가혹한 현실을 대면할 필요에 관한 것이며, 격변과 고통과 정신 이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속에서 자신을 보살펴주고 새로이 창조해주는 거대하고 강한, 피부가 검은 여성을 만난다. - P280
동화는 대개 어린 소녀(또는 소년)의 관점에서 그녀가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부모, 형제자매, 마법적인 존재들과 그녀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동화 속 소녀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거나 못되게 굴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여정에서 겪는 시련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리하여 마침내 어떻게 성공이나 화해의 열매를 얻는지 듣게 된다. 동화 속에서 계모, 마녀, 미친 여자는 성장하는 아이들 앞에 장애물을 놓는 인물이면서 비열하고 몰인정한 데다가 아이를 굶기고 조종하고 시기하는 탐욕스러운 인물로 묘사된다. 그들의 사악한 행위는 대개 죽음으로써 벌을 받는다. - P283
동화는 계모나 사악한 마녀가 잔인해진 원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리는 그저 그들은 원래부터 그랬을 거라고 추정할 뿐이다.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아이, 징징거리고 말 안 듣고 영악한 아이에 관해 그녀들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사악한 계모는 ‘완벽한 엄마‘를 갖지 못해 실망한 아이들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이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엄마‘란 항상 집에 있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이해해주고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이웃집 엄마‘의 환상에 불과하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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