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그 사관이 여전히 번창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아직까지는 지성사 연구가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어떤 면에서 휘그 사관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널리 퍼져있다. 대중적인 역사 잡지나 어느 도시 책방의 ‘역사‘ 코너, 또는 라디오나 TV에 출연하는 인기 있는 역사가가 말하는 내용을 훑어보면, 예기적 해석, 즉 과거가 미래의 관심사를 앞질러 말해준다는 식의 독해가 지금까지 이를 비판해온 연구자들의 낯이 뜨거워질 만큼 여전히 지배적으로 유통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식의 잘못된 역사서 쓰기는 과거를 오늘날의 도덕적 관점에서 판단하는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다음으로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역사적인 매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이어지는 무언가의 기원을 찾아내는 것이 두 번째 단계라면, 역사 속의 행위자들에게서 단순명료한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이 세 번째 단계다. 그런 교훈의 예로는, 과거란 얼마나 별나고 흥미로운 때였는지, 또는 종종 되풀이되듯 과거에 비해 우리가 더 합리적이고, 더 윤택한 생활 수준을 누리고, 더 커다란 부를 누리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등등의 뻔한 내용이 있다. - P198

이런 출판물에 실리는 글을 몇 편 읽어보면, 수많은 현직 역사가들이 여전히 다음과 같은 잘못된 믿음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들은 과거의 연구에서 오늘날의 선행 사례를 찾아내야 하고, 과거는 우리 자신이 - P199

살고 있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흥미로우며,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범주들을 활용해 과거의 쟁점들을 캐물어야 하고, 우리가 과거의 행위자들 및 그들이 살던 시대를 반드시 도덕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런 믿음들이다. - P200

이러한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면 과거가 현재와 지극히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혹은 과거가 지금과 너무나 다르다는 점에서 신기하게 보이도록 역사를 제시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오곤 한다. 그 부정적인 결과 중 하나는 이렇다. 점점 더 많은 수의 정치가들 혹은 공인들이 역사책을 적어도 한 권 정도 쓰는 일을 통과의례처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책장은 스스로가 다른 이들의 작업을 적절히 각색했으며 1차 자료를 거의 또는 완전히 무시했다고 고백하는 책들로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 P200

지성사 연구가 목표하는 바는 과거 사상의 복잡성을 인식하고 이를 더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그런 사상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어째서 역사적인 문제를 풀고자 하는 서로 다른 해결 방법들이 각기 나름대로 타당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삶에서 마주하는 이데올로기적 체계가 역사 속의 인간 행위에 어떤 한계를 부여하는지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역사 속 행위자에게 공감하는 태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자세가 꼭 역사가가 과거의 사상과 행동을 정당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지성사 연구자는 인간과 사회가 완전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기획에 회의적인 견해를 가질 확률이 높으며, 마찬가지로 혁명가로 살아가게 될 가능성도 적다. 이는 그들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이 역사에 작용하곤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느 저자가 개진한 관념이 그 저작을 곧바로 대면한 청중들에 의해 수정되고 또 시간이 흘러 그때와는 달라진 지적 맥락 속에서 살아가는 미래의 세대들에 의해 어느 정 - P210

도 재발명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지성사 연구자들은 한편으로는 과거 혹은 현재와 연관된 주제들을 다루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수긍한다. 동시에 그들은 과거에 또 현재도 계속해서 사람들의 지적인 삶을 형성하고 있는 역사의 여러 층위들을 알고 있기에, 과거 어떤 관념이 중요했던 이유와, 역사 속 행위자들 혹은 우리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P211

혹시 지성사가 스스로 과거의 저자에게서 혐오스러운 주장 혹은 관념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것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요점은 왜 저자가 그런 관념을 세계에 내놓았는지, 그리고 당시의 맥락에 입각할 때 어떻게 그런 논변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 있다. 이런 것들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상황을 좀 더 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며, 더불어 당시에 해당 논변이 (설령 지금 우리들에게 매우 끔찍하다 할지라도) 어떤 이유에서 유효했는지 통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서는 텍스트를 평가하는 작업을 피할 수 없다. 지성사 연구자들이 역사적인 텍스트를 두고 피상적인 비평을 내놓을 뿐인 접근법을 공격하는 것은 타당하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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