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바꾼 아이디어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지음, 안정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표지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의 표지는 특이하게도 ISBN 바코드로 되어 있다. 북적북적이나 북플 앱으로 바코드를 검색하면 실제로 인식된다. 아마 책 도중에 제시되는 아이디어 중 하나인 '몇 개일까? - 수(數)가 실재라는 아이디어'(pp. 120-121.)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해당 페이지 도판도 실제 ISBN 코드이기도 하고.


이 책은 인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러 아이디어들이 무엇이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추적하고, 각각의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밝힌다. 


어떤 아이디어는 손에 잡히는 결과를 만들어 냄으로써 직접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키지만, 또 어떤 아이디어는 사람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줌으로써 간접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

 이 책은 이 두 가지 유형의 아이디어를 모두 다룬다. 각 아이디어에 대하여 필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 아니라,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영향을 남겼는지도 말하려 애썼다. 그리하여 각 아이디어의 기원, 전후 배경, 성격, 그리고 결과를 하나의 텍스트 안에 담았다. - P6


이 책이 다루는 아이디어는 Idea 그 자체다. Idea는 한국어로 생각, 방안, 견해, 신념, 사고방식 등등 다양한 의미로 번역되는 단어다. 저자가 사용하는 Idea는 Idea가 의미하는 개념을 모두 포괄하는 광의의 Idea로 보인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이 책이 말하는 Idea는 선사시대 및 역사시대 인간이 특정 사물이나 행위를 바라보는 방식, 특정 행동을 수행하게 만드는 의도나 가치관, 세계관, 특정 행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강화되는 믿음, 신념, 관념 등등을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 책은 제일 먼저 '식인 행위'를 제시하여 선사 시대의 인류가 어떤 '의도'로 식인행위를 저질렀는지 추정하는 것으로 시작해, 여러 시대에 걸쳐 나타난  종교, 사상, 과학적 아이디어를 다룬 후 마지막 페이지 '지구촌'에서는 문화적 다원주의라는 '사상'의 필요성을 제시하며 끝난다. 'Idea'라는 단어를 'Idea' 그대로 받아들이는 영어 사용자 입장에서 이 같은 시도는 흥미로울 것으로 보인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이 다루는 시간적 범위는 기원전 30000년전부터 기원후 2000년까지다. 


각각의 장은

1. 사냥꾼의 정신(기원전 30000~10000년 전)

2. 진흙탕에서 나와(기원전 10000년전~기원전 1000년)

3. 부처님 가라사대(기원전 1000년~기원 원년)

4. 생각하는 종교(기원 원년~기원후 1400년)

5. 미래로의 회귀(1400년~1800년)

6. 진보의 환상(1800년~1900년)

7. 불확실성의 시대(1900-2000년)으로 나뉜다.


각각의 장은 해당 시대를 개괄적으로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여타 역사책과 비교했을 때 시대 구분이 독특한데, 이 책은 고고학이나 인류학에서 다루는 선사시대에서 시작해 역사학에서 다루는 역사시대로 나아간다. 역사 시대 시대를 나누는 연도도 서양 역사서에서 주로 제시되는 고대/중세/르네상스/근대 같은 시대 구분과 차이가 있다. 선사시대를 아우르려는 점에서 빅뱅 이래 우주의 역사까지 포함하고자 하는 '빅히스토리' 보다는 범위가 작지만 역사시대만 다루는 보통의 역사책들보는 그 범위가 넓다. 이 책이 다른 역사책들과 어떻게 다른지 저자 본인의 말을 들아본다면,


오늘날에 존재하는 중요한 아이디어 대부분은 그 기원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는 그 사실을 반영하기 위해 통상적인 관습을 버렸다. 많은 아이디어들은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 인간의 마음속에 최초로 떠올랐다. 그런 아이디어들은 오로지 고고학적 연구와 드물게 나마 살아남은 예술 작품과 상상력을 통해서만 재구성할 수 있다. 아이디어의 역사를 다룬 대부분의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한다. 기껏해야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이중의 오해를 낳는다. 우선 그것은 서구 전통에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역사를 왜곡하고, 다음으로 역사에서 가장 긴 시대를 배제한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독자들은 그리스 현자들의 아이디어에 도달하기 전에 책 전체 내용의 4분의 1이상을 지나온 것을 발견할 것이다. - P7


각각의 장에는 각 시대에 등장한 아이디어들이 제시된다. 2페이지에 걸쳐 하나의 아이디어를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아울러 이해를 돕기 위해 각각의 아이디어를 한 눈에 보여주는 도판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본서에서 해당 아이디어와 관련이 있는 아이디어가 몇 페이지에 있는지 제시하여 아이디어끼리의 연계성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영어 원서만 제시되긴 하지만) 해당 아이디어와 관련해 어떤 책을 읽어보면 좋을지 저자가 추천하는 참고 도서가 2~3권 가량 제시된다.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저자의 방대한 학식과 기존의 틀을 깨는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고고학, 인류학, 역사, 종교, 철학, 과학, 예술 등 경계를 넘나들면서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의 기원과 변화를 추적한다. 이때 저자의 말처럼, 현재의 우리가 평소 당연하다 생각하는 많은 아이디어들은 사실 선사시대나 역사시대 초기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는 5장에 배치되어야할 것 같지만 3장에 배치되어 있다.


덧붙이자면 저자가 되도록 '서구중심주의'를 탈피하고자 비유럽권의 아이디어들도 책에 담으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가령 5장 미래로의 회귀에서는 중국의 '천명'이라는 아이디어를 다루고, 6장에서는 인도, 중국, 일본이 서구화를 어떻게 수용했는가에 관해 지면을 할애하기도 한다. 몇몇 장은 글씨체를 바꾼다거나 책의 구성을 달리하는 식으로 해당 아이디어의 필요성을 체험하게 만드는 구성도 돋보인다.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다. 첫째로 가끔 오탈자가 있고, 타언어권 인물명을 영어식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간혹 보인다.(프리드리히 2세를 프레데릭 2세로 표기한다던가) 그리고 수록된 도판이 본문의 텍스트와 겹치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페이지도 있다. 다행히 읽는데 크게 지장은 없는 단점들이다.  


두 번째 단점은 저자도 인정하는 단점으로, 이 책의 아이디어들은 저자가 주관적으로 선택한 아이디어들이다. 읽는 독자에 따라서는 '왜 저자는 이 아이디어를 이 장에 수록하지 않았을까?' 혹은 '왜 저자는 이 아이디어를 이 장에 수록했을까?' 같은 의문을 자연히 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자본주의처럼 논쟁적인 개념이라면 더더욱.


나는 이 책이 나름대로 독특하고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책에도 한 가지 중요한 한계가 있다. 그것은 이 아이디어들이 개인적으로 선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선택의 문제는 오로지 필자의 책임이다. - P7


간단히 마무리하자면,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행위와 생각들이 사실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마음속에서 먼저 일어난 역사, 즉 아이디어에 의하여 추진된 역사를 다룬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기록이 왜 변화로 가득한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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