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뇌과학 - 이중언어자의 뇌로 보는 언어의 비밀 쓸모있는 뇌과학
알베르트 코스타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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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원제는 El Cerebro Bilingue으로 2017년에 출간되었다. 원제와 저자의 이름, 그리고 번역자의 경력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영어권에 비해 보기 드문, 스페인어권 저작이다. 


알라딘에서는 이 책을 크게 뇌과학 일반, 언어학/언어학사, 뇌과학/인지심리학 이라는 범주로 구분해놓았다. 각각의 범주를 검색해보면 주로 영어권 저자들의 책이 검색된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은 보기 드문 '스페인어권' 저작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간략한 책 소개로 들어가보자. 이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과학 서적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 답하려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하나의 뇌에 언어가 공존할 있을까?" 책에는 우리가 자주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뇌의 언어적 기능을 알고 싶다면 이중언어 현상을 살펴봐야 한다. 연구를 통해 언어가 주의력, 학습, 감정, 의사 결정 등을 포함한 다른 인지 영역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있다. 이런 점에서 이중언어 사용은 인간 인지(human cognition) 연구에서 창문 역할을 한다. - P9


저자는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부차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특히 이 여행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과연 두 언어에 노출된 아기들은 두 언어를 어떻게 구분할까? 이중언어와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아기들의 언어 학습 과정은 어떤 점이 다를까? 이중언어자가 두 언어를 계속하게 해주는 뇌 영역은 어디일까? 이중언어 사용은 다른 인지 능력 발달에 어떤 영향을 줄까? 뇌 손상을 입으면 두 언어가 어떻게 손상될까? 제2언어(외국어) 사용은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 P9


그리고 이에 맞춰 가설을 세우고, 해당 가설을 입증하는 연구 자료를 제시하여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나간다. 사실 저자가 이 책에서 답하려는 내용은 프롤로그에 언급되어 있다.


1장에서는 어린아이가 언어를 동시에 학습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살핀다. - P13


2장에서는 성인 이중언어자의 뇌에서 언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룬다. 특히, 인지 신경과학과 신경심리학을 바탕으로 연구를 살핀다. - P13


3장에서는 일반적인 언어 처리 과정에서 이중언어 학습 사용 결과를 분석할 것이다. - P14


4장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이 다른 인지 능력, 특히 주의 체계(attentional system) 발달에 끼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것이다. - P14


마지막 5장에서는 2언어(외국어) 사용이 의사 결정 과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 P14


여기서 각 장의 내용을 보다 더 자세히 살펴보자. 1장은 이중언어에 노출된 아기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는 장이다. 정확히는 두 언어에 노출된 아기가 두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아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끊임없이 언어를 흡수한다. 그것이 단일언어든, 이중언어든. 아기들은 말하는 사람의 입모양을 보면서 무슨 언어를 말하는지 구분할 줄 안다. 또한 서로 다른 말을 들으면서 언어를 구분할 줄도 안다. 다만 언어에 단순히 노출되기 보다는 상호작용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


결과는 사회적 접촉이 외국어 학습에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 작용할 있는 환경에 있지 않고 단순히 언어만 노출시킨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을 때보다는 누군가와 상호 작용을 아이의 집중력과 동기가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자녀가 외국어를 배우길 바란다면, 동영상이 일을 대신 해줄 거로 너무 기대하지 말고 언어를 사용해서 아이와 놀아주길 바란다. - P52


아울러 언어는 아이들이 편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피부색이 같지만 영어를 할 때 외국인 억양이 있는 아이보다는 피부색이 달라도 모국어처럼 영어를 하는 아이들과 더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즉 그들의 원하는 친구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소는 피부색보다 말하는 방식이었다. - P54 



2장에서 저자는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나의 뇌에 두 언어가 공존하는가, 그리고 두 언어를 계속 사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P. 60). 처음에 저자는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의 언어 능력과 관련된 연구들을 소개하고 이어서는 이중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중언어자에 대해 논의로 넘어간다. 2장에서 저자는 언어를 자유롭게 전환하는 이중언어자를 두고 저글링을 하는 곡예사로 표현한다. 하지만 언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책에서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들이 한국어를 장기간 쓰지 않아 한국어를 잃어버린 사례가 언급된다.


뇌 손상을 입은 사람의 언어 행동 연구와 뇌 영상 기술을 통해 확보한 건강한 사람의 뇌 활동 평가로 이중언어자의 언어 사용이 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뇌에서 언어 통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언어를 아는 것 뿐만 아니라, 사용(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다가왔길 바란다. - P102


3장의 제목은 '이중언어를 하면 뇌가 어떻게 변할까'이다. 3장에서 주로 제시되는 가설과 연구들은 이중언어가 언어 처리 및 다른 인지,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의외로 3장은 이중언어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비교하면서 시작된다.


이중언어 사용이 일반적으로 언어 사용과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수십 년 전이긴 하지만, 이중언어 사용이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 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상가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극단적인 의견이 나오지는 않지만, 이중언어 사용이 가져올 수 있는 악영향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 P104


한편, 최근의 어떤 연구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이 특정 인지 능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이중언어자가 '더 똑똑하다'(P106)고 선전했다. - PP105-106.


그러나 저자가 관심을 가지는 지점은 이중언어 사용 경험이 뇌의 언어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여기서 저자는 어느 한 편을 들지 말고 사람들의 언어 능력에 대해 신중히 말할 것을 강조한다. 이중언어 사용은 분명 뇌 구조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긴 하나 영향을 끼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중언어 사용은 우리의 언어 발달과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중언어 경험이 주는 혜택이나 문제에 대해 글이나 말을 접할 신중해야 한다. 적어도, 과학을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 P141


4장에서는 이중언어 구사자의 주의력을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책에 언급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단일언어 사용자에 비해 이중언어 사용자가 갈등 해결 측면에서 뛰어나다. 이어서 다중작업, 즉 멀티태스킹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결론은 이중언어 사용이 주의 체계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노화로 인한 인지 저하와 이중언어간의 관계가 다루어진다. 저자는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인지력 감퇴를 방지하는 실험적 증거는 있으나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마무리한다. 


5장은 감옥에서 적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배운 넬슨 만델라를 인용하며 시작된다. 


어쨌건 만델라가 했던 말 중에 도움이 될 만한 문구가 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머리로 간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어쩌면 만델라가 적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염두에 두었던 말일 수도 있다. 그는 도리에 맞게 말할 뿐만 아니라, 그들 마음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길 원했다. - P183


이어서는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따져본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그리 합리적이지 못하다.


우리 행동의 기대 가치를 극대화하고 문제의 여러 변수를 늘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위대한 경제 사상가들이 말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이고, 우리의 결정은 신중하고 합리적인 유형보다는 직관적 과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 P195


나아가 저자는 외국어가 우리의 감정에, 그리고 의사 결정에 얼마나 관여하는지를 밝힌다. 저자는 I love you와 Te quiero 중 모국어인 후자에 더 감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예전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때 외국에서 잠깐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어로 말했으면 낯 뜨거웠을 말을 영어로는 잘도 뻔뻔하게 말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다시 저자가 언급하는 사례로 돌아가자면, 여러 도덕적 딜레마를 모국어로 접했을 때와 외국어로 접했을 때 차이가 있다. 그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도 여기에 언급된다. 트롤리 딜레마 같은 도덕적 딜레마를 접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그 반응이 다르다. 해당 딜레마를 모국어로 접할 때에 비해 외국어로 접했을 때 피험자들은 보다 냉철하고 '실용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책에서 저자가 염려하는 점은 누군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이중언어자와 단일언어자를 비교하면서 어느 한쪽의 우월성을 부각시키거나 한쪽을 폄하하는 것이다. 저자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과학이 남용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처럼 과학을 이용하는 것은 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아울러 저자는 도중에 본인의 경험에 의거해 과학계에 만연한 관습을 비판하는 모습도 잠시 보인다. 과학적 실험 그 자체가 아니라 연구 결과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연구자의 연구물 출간 여부가 결정되며 그 결과 많은 연구가 발표되지 못한다. 저자는 실험 결과가 부정적이더라도 다른 연구자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을 샀던 이유, 이 책을 읽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외국어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언급되지만 이 책은 어떻게 외국어를 공부해야하는지 알려주는 실용서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이중언어의 사용과 관련된 사회적, 정치적 논의를 다루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이중언어의 습득과 구사 과정에서 아기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뇌가 얼마나 경이롭게 작동하는가 알려주는 교양 과학서이다. 특히 외국어가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5장은 독자에게 다른 의미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마지막으로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 될 수 있겠다. 이 책은 참고문헌을 포함하여 232페이지에 불과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머리로 간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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