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미학』은 프랑스의 과학철학자이자 '상상력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끈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가 남긴 마지막 글이다. 원제는 La flamme d'une chandelle로, 번역하자면 '초의 불꽃' 정도가 될까. 어쨌든 제목에 미학이 들어가지 않는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문예출판사 번역본  제목 『촛불의 미학』이라는 이름이 널리 퍼져 있어 부득이하게 촛불의 미학으로 번역했다고 언급된다.


바슐라르가 과학철학자의 길을 걷다가 인간의 객관적 정신을 탐구하기 위해 시의 상상력이라는 영역에 처음 발을 들인 책이 『불의 정신분석』이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4원소설에 기반한 상상력 연구자로서 바슐라르가 불로 자신의 상상력 연구를 불지핀 끝에 마지막에 도달한 곳이 촛불과 램프로 밝힌 어두운 방에 도달한 것 같아 흥미롭다.


본서는 역자후기를 제외하면 약 150페이지 가량의 분량에 불과하며, 서론, 본론 5장과 에필로그, 모두 합쳐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서론 첫 페이지 첫 문단에서, 바슐라르는 왜 불꽃에 관한 책을 썼는가, 그 목적을 말한다.

단순한 몽상을 담은 이 작은 책에서 우리는 그 어떠한 지식도 과도하게 담아내지도 않고, 어떤 통일된 연구 방법에 구애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 사람의 몽상가가 고독한 촛불을 관조하면서 어떤 새로운 몽상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말하고자 한다. 몽상을 불러일으키는 세상의 사물들 가운데 불꽃은 가장 훌륭한 이미지 작동체(opérateurs d‘images)의 하나이다. 불꽃은 우리가 상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불꽃 앞에서 꿈을 꾸자마자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불꽃은 지극히 다양한 명상 영역에서 은유와 이미지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 P. 9

나름대로 바꿔 말해보자면 어두운 방에서 촛불을 바라보는 한 몽상가에게 촛불이 어떤 몽상을 가져오는가를 밝히는 것, 바로 그것이 본서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바슐라르는 본서에서 각각의 장들을 통해 여태까지 몽상가들이 촛불을 통해 어떤 몽상을 하였고, 촛불로부터 어떤 시적 이미지를 구하였는지 밝힌다. 


마지막 5장에서는 스위치로 전등불을 키고 끄는 모습을 두고 램프를 키는 것 만큼 다양한 순간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촛불도, 램프도, 전등도 밀려난 시대, LED조명이 대세인 이 시대에 더 이상 어두운 방안에서 촛불을 키고 조용히 몽상에 빠지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바슐라르의 글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촛불의 몽상을 느끼고 만족해야 하는 시대다.   


사실 원래는 이 책을 읽고 어떻게든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뭐가 되든 글을 쓰고자 했다. 분량이 짧기에 나름의 해석이나 평가까지는 힘들다하더라도 최소한 요약은 어떻게든 가능하지 싶었으나 완전히 잘못 생각했다. 이 책은 요약하기도 힘들다. 요약은 곧 글이라는 덩어리에서 뼈대를 남기고 살을 발라내는 과정으로 비유할 수 있을 텐데, 이 책은 문장 하나하나가 시적이고 압축적이며 난해하기까지 해서 함부로 요약할 수가 없다. 결국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대신 이 책이 어떤 책인가, 이 책을 읽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에 관해 글보다는 한 장의 그림으로 더 잘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렘브란트의 작품 〈명상 중인 철학자〉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본서에서 바슐라르가 조르쥬 상드의 《콩쉬넬로》의 주석을 인용할 때, 해당 주석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그림 속에 촛불은 없지만, 어두운 방안에서 명상에 빠진 철학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책을 쓰고 있었을 바슐라르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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