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많다. 그런데 책에 대한 글, 즉 서평은 그만큼 많지 않다.
서평을 쓰려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서평을 가르치는 기관이나 전문교재는 많지 않다.
많고 적음 사이에 큰 괴리가 있는 셈이다. - P4

‘쓰기‘란 삼형제 중의 막내와 같다. 쓰기는 결코 ‘혼자‘서, 혹은 ‘먼저‘ 태어나지 않는다. 모든 쓰기는 콘텐츠라는 이름의 큰 형, 콘텐츠 이해라는 둘째 형 다음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쓰기를 위해서는 읽고, 이해하기를 동반해야 한다. 이 삼형제를 한꺼번에 다루기 가장 좋은 영역이 바로 ‘서평‘이다. ‘읽고 이해하고 쓴다‘는 3단계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쓰기의 절대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서평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다. 그것은 공부와 글쓰기의 접점이다. - P6

그래서 책을 쓰게 되었다. 학교의 아카데믹한 성격을 많이 지우고, 서평을 쓰고 싶은 모든 사람을 위한 쉬운 책을 만드는 것이 오늘의 목표이다. - P7

비슷한 질문을 던져보자. ‘요리란 무엇인가‘를 알면 요리가 달라지나? 달라진다. 요리에 대한 철학이 달라지면 요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요리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면 요리를 대하는 자세가 정확해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평이란 무엇‘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생각해야 한다. 당신은 세상에 없던 서평 장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미 있는 서평 장르의 멋진 텍스트를 생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미 있는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남들은 어떻게 쓰는지, 응당 물어야 하고 살펴야 한다. - P30

그러니 어떤 비평문을 쓰더라도 대상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중요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36

가장 기초적인 감상의 독서란, 누구나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보통의 독서를 의미한다. 독서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또한 빈번한 독서는 ‘감상‘을 위한 독서이다. 이를테면 읽고 싶어 책을 읽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것도 바로 이 단계의 독서이고, 우리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독서도 바로 이 단계의 독서이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형태의 독서가 바로 이 단계의 독서이기도 하다. 감상의 독서란 날것 그대로의 원초 독서이다. - P42

감상의 독서, 비판의 독서는 분명 다르지만, 우리가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감상의 독서를 저변에 깔고 나서 그 위에 비판의 독서를 얹어야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일반적으로 책을 읽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자유롭게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서평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분석하면서 또 한 번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서 ‘한 번‘ 읽는다고 표현했지만 두 번이 되어도 좋고 세 번이 되면 더 좋다. - P44

눈치챘겠지만 서평러는 반드시 책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마치 자아분열처럼 가만히 있는 책에게 내가 질문을 던져놓고 또 내가 그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해보는 건데, 이 과정이 있어야 나만의 서평이 잘 나온다. - P52

서평러의 멋진 질문도 도구가 있으면 훨씬 수월하다. 서평러가 책을 분석하려고 덤빌 때 상비할 무기는 ‘왜?‘와 ‘어떻게?‘이다. 얘네 둘은 같이 붙어 다니는 게 좋다. 큰 녀석 ‘왜‘가 나오면 꼭 둘째 ‘어떻게‘로 연결이 되도록 해야 말할 거리도 많아지고 분석도 풍성해진다. 그러니 ‘왜‘는 오른손, ‘어떻게‘는 왼손에 쥐고 책에게 막 던져보자. - P53

다음 단계란 ‘왜‘와 ‘어떻게‘를 활용해서 생각을 보다 논리적인 세계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두 번의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정신과 감수성을 열어놓고 읽는 한 번의 독서, 그런 후에 보다 차갑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면서 읽는 또 한 번의 독서. 이 두 독서의 결합이 위에서 말한 ‘따뜻한 감수성과 차가운 지성‘의 결합이다. 그리고 이 두 독서의 결합이 더 위에서 말한 ‘1단계 독서와 2단계 독서까지 가야 한다‘는 충고와 같은 말이다. 이 길이 쉽겠는가. 설명도 어려운데 쓰기란 도통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도전할 만하다. - P55

우리는 평생을 걸쳐 교과서 시대보다 더 넓고 자유롭게 배울 필요가 있는데, 검색창과 인터넷에만 빠져들면 지나치게 떠다닐 위험이 있다. 투자의 안전자산이 금인 것처럼 책은 공부의 최대 안전자산이다. 그래서 일평생 사람은 공부해야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책 읽기의 세계에 빠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책 읽기가 ‘암기‘라는 전통적인 공부 방식과 ‘검색‘이라는 현대적인 공부 방식을 중도적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비판과 창의와 교양과 지성에 접근할 수 있는, 제3의 공부 방식이기 때문이다. - P66

모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영화의 장면과 대사가 내 삶의 의미라든가 오늘 오후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큰 영향이 아니라면, 적어도 나에게 전혀 다른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 기회, 대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기회, 나와 다른 세계와 생각을 접하게 하는 기회일 수도 있다. 이 기회는 남의 블로그만 가지고는 얻을 가능성조차 없다. - P68

영향력이니, 영혼에의 스며듦이니 이런 소리를 하지 않아도 ‘책은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배우게 된다. 책에는 사람들의 의견, 생각, 숨소리, 웃음소리, 고통, 신음, 비판, 미움, 용서, 사랑, 분노, 잘못, 후회, 질책 등이 담겨 있으므로, 우리는 이것들을 책으로써 학습하게 된다. 읽으면서 더 많은 암기의 대상을 만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숙고의 문제들, 더 많은 알아야 했으나 숨겨져 있던 진실들, 생각하는 방식과 생각해야 할 방식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 P69

‘전제를 ‘이해 이후‘로 옮기자. 우리는 지금 ‘쓰기의 전략‘을 말하고 있다. 이해를 어느 정도 해결했고, 요약을 완성한 다음의 문제는 주체적 관점의 유무이다. 사실, 요약이 생략될 수도 있다. 그래도 서평은 서평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분석이 생략되면 서평은 서평이 아니라 소개글, 정보전달글에 머무르고 만다. 분석과 판단 없는 서평은 서평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서평러가 최종적으로, 가장 중대하게 다루어야 하는 영역이 바로 이부분이다. - P116

분석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분석의 시작이자 절반은 ‘선택‘이다. 점심 메뉴 고르기도 힘든데, 무슨 선택이냐고? 아니다. 서평러의 선택은 어렵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접어놓는 페이지, 긋는 밑줄, 이것이 바로 당신의 중요하고도 중요한 ‘선택‘ 그 자체다. 다시 말해서 페이지 잘 접고, 포스트잇 붙여놓고, 연필로 밑줄 그어놓는 행위 (꼭 자기 책인 경우에만 그으시오. 대출도서는 밑줄금지) 이것만 잘해도 분석은 이미 절반 이상 한 셈이다. - P120

‘왜‘라는 무기는 텍스트의 핵심을 파도록 도와준다. ‘왜‘를 통해 수확한 내용은 서평의 방향과 주제를 결정해준다. 내가 느낀 감정이나 느낌을 논리적으로 풀도록 유도해준다. 저자가 왜 이렇게 말했지? 이 단어는 무슨 뜻이지? 왜 여기서 이런 예시를 들었지? 저자 말이 왜 이해가 안 되지? 저자 말이 왜 충격적이지? 저자 말에 왜 쉽게 동의가 되지? 저자 말에 왜 괜히 찔리지? 이런 ‘왜‘들은 책의 심층으로 들어가게 하는 곡괭이이다.
그럼 ‘어떻게‘는 어떤 역할을 할까. ‘어떻게‘를 묻는다는 것은 ‘방법론‘을 묻는 것이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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