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서평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서평의 소재는 책이고, 방식은 비평입니다. 그러니까 책을 평하는 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서평의 본질을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평’을 책에 대한 모든 언급으로 착각하는 일도 많지요. 실제로 서평이라고 작성했는데 내용은 독후감인 경우도 흔합니다. 책에 대한 소감을 나열하고, 이를 책에 대한 평으로 오인하는 겁니다. 요약에서 멈추는 경우도 자주 보았습니다. 서평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모호한 탓이겠지요. - P21
책에 다가가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 책에 대한 나름의 해석입니다. 해석을 통해 책은 계속 만들어져 갑니다. 저자의 (읽고) 쓰는 행위와 독자의 읽(고 쓰)는 행위로 끝없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저자와 독자가 섞이고, 읽는 것과 쓰는 것이 합류합니다. 책은 고정되지 않고, 계속 성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책은 항상 새롭게 읽혀야 한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도 서평을 통해 구현된다." - P30
서평 또한 해석입니다. 서평, 즉 북리뷰 Book Review에서 ‘리뷰‘는 책을 ‘다시re 보는 view‘ 겁니다. 새롭게 읽는 것이지요. 이는 해석의 주체인 독자가 각기 다른 자리에 서있기에 가능합니다. 모든 서평은 독자/서평자의 다시 읽기입니다. 나아가 다른 독자에게 다시 읽기를 제안합니다. - P33
좋은 책일수록 해석의 여지가 많고 저자와 독자 간의 대화가 지속됩니다. 고전이 이름값을 하는 것은 해석의 가능성이 소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P36
이 해석 작업은 말과 글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서평은 글의 일종입니다. 서평은 다름 아닌 논리를 담아내며, 서평가가 읽은 책에 대한 조리 있는 설명과 평가를 문자화합니다. 읽고 나서 느낀 감동과 깨달음을 쏟아 내는 것은 서평이 아니라 독후감입니다. 물론 독후감의 감동과 깨달음은 서평의 설명과 평가와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독후감이 보여 주는 감동과 깨달음에 논리와 체계를 부여하여 설득력을 배가시킨 것이 서평이니까요. - P37
독서는 그저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책에 대한 독자의 이해와 해석은 계속됩니다. 실은 그의 삶을 통해 책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지속된다고 말해야 정확할 터이지만, 여기에서는 그에 대해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표현입니다. 해석은 언어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말과 글을 통해 구체적으로 정리되어야 독서는 완결됩니다. - P43
서평 쓰기의 일차 가치는 독자 자신의 내면 성찰에 있습니다. 서평 쓰기는 작성자가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독서 자체가 그러한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서평 쓰기는 심화된 독서 행위입니다. 더욱 깊게 책을 읽는 가운데 자신을 더욱 깊이 읽게 되는 것이지요. - P44
좋은 책을 잘 읽으면, 삶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서평은 이러한 독서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서평 쓰기의 귀결은 독서를 통해 획득한 자아와 타자에 대한 깨달음을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앎과 삶의 일치, 즉 인격의 통합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 P49
좋은 서평은 이렇게 독자에게 서평자의 의도를 관철해 냅니다. 독자가 대가를 치르게 했다면, 그러니까 독자가 책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면, 또한 독자가 책을 집어 들어 읽게 만들었다면, 그 서평은 성공한 셈입니다. 그 책을 사거나 읽지 않도록 할 때에도 그 서평은 성공한 것이지요. 만일 그 서평이 서평자의 의도와 반대로 독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그 서평은 실패한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평은 독자와의 씨름입니다. 그러므로 서평을 쓸 때는 영혼을 담아야 합니다. - P58
서평을 작성하면서 특정한 평가에 따른 특정한 의도를 관철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평가에 부합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서평을 단지 의례적인 주례사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공치사로 장식된 서평도 서평이긴 하지만 결코 좋은 서평은 못 됩니다. - P60
그렇다면 서평자는 무엇을 위해 책을 읽을까요? 기본적으로는 앞에서 말한 목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저 각각의 다양한 목적에 따라 읽고 독자와 공개적으로 소통하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읽느냐보다는 왜 읽느냐에서 도출되는 질문인 무엇을 소통하려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 P70
서평가는 결코 밀실에서 고고하게 외치는 이가 아닙니다. 그는 광장, 그러니까 공론장에서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서평을 작성합니다. 나아가 사회 자체를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데에 서평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반드시 그런 거창한 목적을 위해 써야 한다는 당위성이 없더라도 그 목적만은 스스로 분명하게 세워야 합니다. 이 점만 명확하게 할 수 있다면 포르노 소설로도 서평을 쓸 수 있습니다. - P71
분노로 두개골을 열어젖혀도 그 안에 근육밖에 없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선 문법과 언어의 기본 수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또한 문자를 넘어서 그 맥락을 파악하고 저자의 심층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독해력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해당 도서가 자리하는 맥락(전공)에 대한 기본 이해가 필요합니다. 내 마음의 도서관 혹은 인덱스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P73
따라서 어떠한 책에 대해 분노를 느끼거나 비판을 하더라도 동시에 그 책의 매력 요인에 최대한 공감해야 합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비판인 것입니다. 애초에 독자라면, 아니 서평가라면 기본적으로 공감의 태도로 책에 접근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비판의 해석학에 선행하는 것은 공감의 해석학입니다. 온전히 매료되어야 제대로 비판할 수 있습니다. - P75
책에 대한 매료가 책에 대한 반박에 앞서고 논지에 대한 이해가 주장에 대한 비판에 선행하며, 저자에 대한 공감이 저자에 대한 공격을 예비합니다. 그렇기에 좋은 요약은 공정한 평가의 전제가 됩니다. 요약은 성실한 독서에 따른 이해의 결과요, 증거입니다. 요약이 서평의 본질은 아니지만, 요약 없이 서평을 작성할 수는 없습니다. 평가가 열차라면, 요약은 레일입니다. 따라서 평가 없는 서평은 공허하나, 요약 없는 서평은 맹목적입니다. 성실한 독서와 이를 통한 적절한 요약 다음에 나름의 평가가 따라야 합니다. - P80
서평가의 해석과 평가에 튼실한 기반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단 한 문장이 되었든, 서평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든 상관없습니다. 서평의 독자, 즉 서평이 다루는책의 잠재 독자가 책의 요약을 기반으로 삼아서 서평가의 평가를 가늠할 수 있으면 되겠지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요약 자체가 해석입니다. 해석은 해석자의 전망과 입장을 매개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요약도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약의 정확성과 균형 감각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숙련된 독자의 눈에는 이것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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