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사전에 〈절대〉는 연결과 한계에 거리끼거나 얽매이지 않는 모든 것, 타자에게 좌우되지 않고 그 자체에 자신의 근거, 원인, 설명이 있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신과 아주 흡사한 것이다. 신은 <나는 존재하는 자다Ergo sum qui sum)라고 자기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가. 신에 비하면 나머지는 모두 〈우연적〉이다. 그 자체에 자기 원인이 없으며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을지라도 당장 내일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일은 태양계에도, 혹은 우리 각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반드시 죽고 말 우연적 존재인 우리는 사라지지 않을 무엇, 다시 말해 절대적인 어떤 것과 이어지기를 갈구한다. - P125

요컨대 불은 너무 많은 것이고 물리적 현상을 넘어서서 상징이 된다. 그리고 모든 상징이 그렇듯 이 상징도 애매하고 다의적이며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불러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불의 정신분석학이 아니라 개략적이고 느슨한 불의 기호학을 해보고 싶다. 우리는 불을 써서 온기를 얻기도 하고 때로는 죽기도하는데, 이 불이 지녀 왔고 지금도 지니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겠다는 얘기다. - P165

사물이 빛의 발산에서 태어난다면 신성한 빛의 발산과 닮은 불보다 아름다운 것은 지상에 달리 없을 것이다. 색의 아름다움은 단순한 것이다. 이 아름다움은 질료의 어둠을 다스리는 형상에서 나오고, 색에 존재하는 무형의 빛, 즉 색의 형상적 이치에서 나온다. 그래서 불은 그 어떤 사물보다 그 자체로 아름답다. 불에는 형상의 비물질성이 있기 때문이다. 불은 모든 물체 중에서 가장 가볍다 못해 거의 물질이라고 할 수도 없다. 불은 질료를 이루는 다른 원소들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늘 순수하게 남는다. 반면 다른 원소들은 늘 불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들은 불을 받아들여 따뜻해질 수 있지만 불은 차가워질 수 없다. 오직 불만이 그 성질상 여러 색을 지닐 수 있다. 다른 사물들은 불을 통해서 색깔과 모양을 부여받고 불빛에서 멀어질수록 아름다움을 잃는다. - P169

그렇지만 역사 시험에서 히틀러는 코모 호수에서 총살당했다고 답한 학생을 떨어뜨린다고 해도, 문학 시험에서 안나 카레니나는 알렉세이 카라마조프와 시베리아로 달아났다고 답한 학생도 떨어뜨리는 것은 어찌 된 일일까?
논리학과 기호학의 관점에서 이 문제는 쉽게 풀린다. <안나 카레니나는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실제 세계에서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가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다는 내용을 쓴 것은 사실이다>를 관습적으로 줄여 쓴 문장이다. 따라서 톨스토이와 히틀러는 같은 세계에 속해 있지만 히틀러와 안나 카레니나는 같은 세계에 속해 있지 않다.
따라서 논리학적으로 말해 보자면 <안나 카레니나는 자살했다〉는 〈대언적de dicto> 참이고 <히틀러는 자살했다〉는 〈대물적de re〉 참이다. 혹은 좀 더 잘 말해 보자면,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는 표현의 〈기의〉와 관련 없이 기표하고만 관련이 있다. - P214

안나 카레니나에게 감동하는 이유는 우리가 서사의 규약에 따라 그 인물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처럼 사는 척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가면(마치 서사의 특징에서 비롯된 신비주의 발작에 빠진 것처럼) 우리는 <그러는 척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그게 다가 아니다. 우리가 그 세계에 들어가 있지 않으므로, 다시 말해 그 세계에서 우리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우리 자신을 그 세계에 속한 인물 중에서 우리와 가장 공통점이 많은 사람에게 의탁하게 된다. -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