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은 뒷모습만 보인다. 일종의 무대연출에 따라서 숭고가 무대를 차지하고 인물은 무대 전면에 놓인다. 그는 장면 안에 있으면서도—관객의 입장에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장면 밖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우리는 그를 통해 보고, 그의 자리에서 보며, 그가 보는 것을 보기 때문에 장면과 거리를 두게 된다. 이로써 우리 자신도 그 인물처럼 대자연 앞에서는 미미한 존재임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를 위협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자연의 힘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렇다, 나는 유구한 세월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늘 이런 식으로 체험되었다고 생각한다. 뒤돌아서서, 우리에게 속하지 않고 어떻게든 소유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을 마주하면서 바로 이 거리에 미의 경험과 다른 종류의 정념(情念)을 구분하는 희미한 선이 있다. - P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