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읽었던 책이다. 정독 2번에 훑어보기는 몇 번을 한 건지. 이 책은 디아스포라와 혼종성에 관한 연구들을 논평하는 연구서다. 그래서 디아스포라, 혼종성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은 당연히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나아가 해당 개념들에 관해 디아스포라 연구자와 문화 연구자들이 개진한 전체적인 연구가 어떤 흐름 속에 있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책의 맥락을 그나마 따라갈 수 있다.
이 책은 원서는 200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것은 2014년이다. 그러다 보니 서론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느껴볼 수 있다. 각 장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서론에서는 2001년의 사건 이후 세계가 크게 변화했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디아스포라와 혼종성 같은 개념이 여전히 유효한 지를 검토할 것을 천명하고, 1장에서 7장까지 어떤 내용을 다룰 것인지 간략히 소개한다. 1장에서는 디아스포라의 대명사, 유대인 디아스포라로 잘 알려진 고전적 디아스포라의 한계를 지적하고, 기존 연구자들이 디아스포라를 범주화하려는 시도가 어떤 점에서 단점이 있는지 따져보며, 이어서는 디아스포라의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검토한다. 2장에서는 디아스포라의 문화적 특성을 개관한다. 디아스포라는 민족이라는 소속감에 의문을 제기하며, 음악, 영화, 문학을 통해 디아스포라 문화가 생산되는 과정을 고찰한다. 이어서 이러한 문화상품들이 기존의 구조에 도전할 힘이 있는지 검토한다. 3장은 디아스포라와 젠더의 관계를 다룬다. 디아스포라와 호스트 사회 속에서 젠더 관계는 대단히 복잡한 것으로 나타난다. 호스트 사회는 디아스포라의 젠더 관계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가가 의문으로 제시된다. 4장부터는 혼종성을 다룬다. 혼종성은 디아스포라의 문화와 호스트 문화를 자르고 뒤섞어 혼종적 문화를 창출해낸다. 혼종성은 상품화될 가능성이 있다. 5장에서는 혼종성이 헤게모니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6장에서는 그동안의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개념인 백인성이 다루어진다. 저자들은 '블랙'(아프리카인과 남아시아인)과는 구분되는 백인의 구조적 특권을 지적한다. 전자에 속하는 이주자나 디아스포라는 호스트 사회에서 위험한 이주민 취급을 받는 반면, 백인은 어딜 가나 안전한 원주민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울러 '백인성'이라는 개념이 아일랜드, 유대인과 같이 한때 2류백인 취급당한 이들을 가리는 점을 문제시한다. 마지막으로 7장에서는 2001년의 사건으로 인해 국경과 민족국가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디아스포라와 혼종성 같은 개념이 실질적으로 효용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 책에서는,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영국 사회에 많은 '블랙'(아프리카인, 남아시아인)이 유입되었고 그들의 디아스포라, 그들이 만들어낸 혼종성이 이미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저자들은 2001년 9.11 사건 이후 종래 진행되었던 흐름이 단절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만, 현실은 저자들의 기대, 혹은 불안을 완전히 비껴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으리라. 흐름은 단절되지 않았다. 다만 이민자의 유입과 디아스포라 및 혼종성이 긍정적 결과만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읽고, 메모로 남긴 내용을 참고했는데 내용 요약하기도 힘들다. 그만큼 나에게는 어려운 책이자 지적 도전이라 평가할만한 책이었다. 책의 내용을 다시 요약해보자면, 크게 디아스포라/혼종성/백인성 3가지 주요 개념을 두고 기존 연구자들의 주장을 검토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만일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계 연구자라면, 해당 분야를 두고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영어권 연구자들이 어떤 논의를 진행했는지 알려준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굳이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이 개념이나 이 분야에 관심은 있는데 '어려운 책'을 읽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 읽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문체라고 본다. 저자들의 문체가 어려운 건지, 번역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쉽게 읽히지 않는 문체였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표현처럼 읽을 때 꼼꼼하게 단어 하나하나 꼭꼭 씹어서 소화 시켜야 하는 책이다. 이게 무슨 책이지? 하고 읽다가는 금방 덮어버릴 지도 모를 책이다. 그렇긴 하나 책을 읽고 해당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지금의 세계가 조금은 달라 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