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한국의 역사 교육은 ‘찬란한 역사‘를 이념으로 내걸면서도, 외국의 침략으로 받은 고난과 그를 극복한 사실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 결과, 한반도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의 국민이 해외로 나가는 한편, 한국에 매력을 느끼는 외국인이 세계 각지에서 이민 오는 21세기의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생각의 틀을 현대 한국 사회는 아직 갖추지 못했다. - P138
그리고 현재, 문순득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영웅담을 넘어 또 다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해시말》이 문순득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 아님은 그 일행이 방문했던 유구·마카오 등지에서도 관련 기록이 발견되면서 밝혀졌다. 또한 조선을 포함한 유라시아 동해안 전체가 상호 호의에 입각한 표류민 송환 체제를 국제적으로 유지했음이 확인되고 있다. 앞에서 주장했듯이 한반도는 언제나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기능한 것이 아니다. 하멜이나 1801년의필리핀 루손 표류민은 한반도가 유라시아 동해안의 국제적 네트워크에서 외곽에 위치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근대 일본과 마찬가지로 조선 역시 결코 쇄국 체제를 완고하게 유지한 것이 아니었다. 지정학적으로 변두리에 있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속도와 효율성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한반도 역시 국제 체제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문순득을 둘러싼 최근 한국 사회의 동향은 21세기에 맞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현대 한국인에게 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틀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 P139
조선에 중요한 외국은 여전히 중국과 일본, 특히 중국뿐이었다. 이를 《삼국지》에 비유하자면, 조선인은 자국을 《삼국지》 속의 위·촉·오 가운데 특히 촉나라와 동일한 존재로 생각하거나, 위·촉·오바깥의 ‘오랑캐‘와 대비되는 ‘중화‘적인 존재로서 간주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인이 진정으로 알아야 할 외국은 중국, 또는 중국과 일본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에 러시아·영국·프랑스·미국과 같은 서구 열강이 들어갈 틈은 없었다. 이는 일본인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일본은 자국을 천축 인도·진단 중국과 한국·본조 일본의 삼국 가운데 하나이거나, 자국을 일본열도 바깥의 오랑캐와 대비되는 중화로서 간주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본은 러시아와의 접촉과 충돌을 통해 《삼국지》적 세계관을 벗어났으나, 한반도는 《삼국지》적 세계관을 탈피하지 못한 채 20세기를맞이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거나 미국과 중국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 한국의 역사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존재를 과소평가하고 미국과 중국의 존재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바람에 중요한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를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반도 통일 문제에서는 미국과 중국만이 아닌 러시아와 일본 역시 중요한 플레이어로서 기능할 테지만, 한국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일본의 중요성을 저평가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 P163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도 아닌, 극도로 단순한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소설 《삼국지연의》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다 보니, 한국 사람들 일부는 수많은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를 냉철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굳이 소설을 읽고 세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필자는 《삼국지》보다 차라리 《열국지》나 정비석의 《소설손자병법》을 권하고 싶다. "《삼국지》 세 번 읽은 사람과는 말도 하지마라"는 식의 주장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때, 한반도의 시민은 비로소 수많은 플레이어가 현란하게 얽혀 전개되는 국제관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능란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 P164
필자는 <한 경계인의 고독과 중얼거림>이라는 호슈의 수필을 번역하면서 만약 호슈 정도의 사람이 주장하는 것까지도 납득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일본을 결코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바 있다. 호슈에 비견할 만한 조선의 인물은 아마도 《해동제국기》라는 위대한 외교문헌을 편찬한 조선시대 전기의 신숙주 정도일 것이다. 이 두 사람 모두 양국인의 기억에서 묻혔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간극은 넓고 깊다. - P204
흔히 한민족을 ‘책의 민족‘, ‘기록의 민족‘이라고 하지만, 한국보다 옛 문헌을 더 많이, 더 소중히 보존해온 지역은 전 세계에결코 적지 않다. 당장 현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려 해도 한국에 보존된 자료가 너무 적기 때문에 미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국가에 보존된 문헌을 중요하게 참고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한민족이 책의 민족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면 그것은 책에만 의지해서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세계 역사상 초유의 사건을 벌인 한민족의 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인해서일 것이다. - P222
동시에 17-19세기 유라시아 동해안의 가톨릭 순교자들이 보여준 정신세계는 이른바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위를 보여주는증거가 아닐뿐더러 가톨릭만의 전유물은 더더욱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17-19세기 유라시아 동해안의 가톨릭교도는, 서구 국가의 가톨릭교도가 자행한 마녀사냥이나 비서구권 지역 주민에 대한 학살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세계를 유라시아 동해안 일대에 구현하기 위해 크리스트교라는 외래 신앙을 이용한 것이다. 현세에서는 물론 내세의 구원에서도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세상 속으로 뛰어든 원효대사가 상징하듯이, 고대에 유라시아 동부 일대에서 불교라는 평등주의적 종교가 수행한 역할과 비교할 수 있다. 18-19세기의 전환기에 크리스트교는 한반도 주민들에게 기존 체제를 뛰어넘을수 있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해주었다. - P228
필자는 특정 종교의 신자가 아니지만, 이 세상에는 세속의 세계관과 영원의 세계관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법이고 각자는 믿는 바에 따라 각자의 길을 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 P232
러시아가 유라시아 동해안에 등장한 17세기 중기를 경계로 유라시아 동부의 국제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이해하고 ‘한중일 삼국지‘적인 세계관을 폐기하는것이, 20세기 후기에 한국인이 이루어낸 성과를 21세기에 지속할 수있는 길이다. - P241
한국 학계가 친일파 문제를 냉철한 학문적 관점에 입각하여 정면에서 다루지 않은 결과, 한쪽에서는아무에게나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어대는 이들이, 또 한쪽에서는 "식민지 시기의 조선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모두 친일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탄생했다. - P274
만주와 연해주에서 ‘한국인‘들은 천여 년 전의 연고권을피 바탕으로 ‘수복’을 꿈꾸었다. 몽골인은 칭기즈칸의 옛 영화를 조금이나마 되찾고자 했다. 일본인은 만주인의 이름을 빌려 동북 지역을 중국에서 떼어내려 했다. 아무것도 없던 자들은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연해주와 만주는 한국인에게만 건국의 권리가 부여된 땅이 아니었으며, 이곳에 국가를 만들고자 한 것 역시 한국인뿐이 아니었다. 이 지역은 건국의 요람이었으나, 이들 가운데 건국의 꿈을 이룬 것은 소련의 힘을 빌린 일부 몽골인뿐이었다. - P336
그러나 일부 한국인은 다수의 플레이어가 펼치는 복잡한 국제관계를 ‘한·미·일‘, ‘한·미·중‘ 등의 삼각 구도로 한정해서 생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역사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촉나라를 삼국시대의 중심으로 설정하는 소설적 세계관, 《삼국지》의 주인공인 한인을 자신과 동일시한 나머지 실제로 자신과 마찬가지 처지인 한인 바깥의 여러 집단을 오랑캐로 치부하여 깔보는 모순된 자기 인식, 세 집단이 정립하는 것을 자연의 질서인 양 간주해서 이를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비논리적 행동 등도 ‘삼국지‘적 세계관의 폐해다. 21세기 이후 한국에는 중국의 부상을 숙명적이자 비가역적인 것으로 보는 사고가 존재한다. 중국은 서구 사회나 한국·일본·터키 등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군사적으로 세계 강국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한국 사회의일각에서 들린다. 이런 주장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미국 경제는 기존의 모든 경제학 이론을 무시하고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신경제New Economy‘ 의 환상을 떠올린다. 금융위기와 함께 미국의 신경제라는 환상이 붕괴했듯이, 중국이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달성한 성과가 민주주의적 질서의 뒷받침없이도 확고한 것이 되리라는 주장 역시 결국은 기각될 것이다. 더 강하게 말하자면 중국의 부상을 기뻐하는한국 사회 일부의 모습을 보며, 중국과 한국을 동일시하려는 전통적인 오류에, 일본이나 미국에 대한 증오가 결합된 것 같은 느낌마저 받는다. 한국 사회는 언제쯤이나 중국이라는 프리즘 없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될까? - P360
나토 18개국이 자국에 주둔하는 미군에 25억 달러를 지원한다면, 일본은 ‘배려 예산‘이라는 명목하에 단독으로 44억 달러를 지원한다.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경비 가운데 75%를 일본이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일본은 철저히 미국의 방침에 순응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한국 사람들은 서로를 ‘북한인(빨갱이)‘과 ‘일본인(친일파 매국노)‘라고 비난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할 뿐, 그 배후의 국제적인 상황을 간파하거나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현명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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