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독자들을 가르치므로 책은 독자들보다 한수 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책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독자가 책을 비평해서는 안 된다. 책을 다 이해해야 비로소 독자와 저자는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이다. 독자로서 새로운 권리와 특권을 행사할 자격을 갖춘 것이다. 이렇게 독자가 비평할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저자에게는 불공평하다. 독자들이 자기와 동등한 위치에 이를 수 있도록 저자 나름대로 노력을 했으니 말이다. 저자는 독자가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반응을 보여 주기를 바라며, 독자는 저자의 동료로서 그렇게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 P148

여기서 배움의 미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수동적이고 유순하면 잘 배운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배우는 일은 지극히 적극적인 일이다.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자유롭게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짜 뭔가를 배웠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저 훈련을 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가장 잘 배우는 독자는 가장 비평적이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독자는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기 위해 열심히 애쓰며 그 책에 응답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P148

저자가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도 파악하고 저자가 진술하는 내용도 이해하는 독자는 저자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사실, 해석을 하는 모든 과정은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한 정신의 만남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저자와 독자가 일종의 같은 의견을 갖는 것이다. 저자와 독자는 어떤 생각을 표출하는데 있어서 언어의 용법에 동의한 것이다. 이렇게 동의함으로 인해 독자는 저자의 언어를 통해 저자가 표현하려는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있다. - P162

다만 숫자에 연연하여 수박 겉핥기식으로 많은 책을 읽기보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여기서 이야기한 원칙들을 잘 지키며 이상적으로 잘 읽기를 바란다. 물론 원칙들을 따라 잘 읽어야 할 책들은 많다. 하지만 단순히 훑어보기만 해도되는 책들이 훨씬 더 많다. 책을 잘 읽기 위해서는 먼저 훑어보기만 해도 되는 책인지 찬찬히 잘 읽어야 할 책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 P176

이미 능동적으로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야기했다. 어느책에나 해당된다. 그런데 지식을 전하는 전문서적을 능동적으로 읽는것과 시를 능동적으로 읽는 것은 다르다. 전문서적의 경우는 먹이를 쫓는 새처럼, 끊임없이 경계하며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하듯 읽어야 한다.
시나 소설을 읽을 때는 이런 능동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색한 표현이지만, 수동적인 능동성, 혹은 능동적인 수동성이 필요하다. 즉 이야기를 읽을 때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우리를 감동시키도록, 그 책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그 책을 향해 우리 자신을 열어 두는 것이다. - P213

반면 문학작품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경험을 창조하고, 거기서 배움을 이끌어낸다. 이런 책에서 배우기 위해서는 독자 스스로 그 경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철학이나 과학서적은 이미 저자들이 한 사고를 이해하기만 하면 되지만 말이다. - P215

소설을 읽을 때는 소설가가 창조한, 그리고 우리 안에 재창조된 사건과 인물의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면 된다. - P216

소설을 읽을 때는 빨리 그리고 완전히 몰두한 채 읽으라. 이것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충고다. 한 권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바쁜 사람이 장편을 읽을 때는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가능한 한 짧은 기간 동안 웬만한 소설 한 권을 읽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어버리고 줄거리의 흐름을 놓쳐헤매게 된다. - P226

빨리 그리고 완전히 몰두한 채 읽으라고 했는데, 이는 문학작품이 독자에게 어떤 작용을 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즉 독자의 머리와 마음속에 소설 속의 인물이 들어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 사건에 대한 의문도 접어 두고, 이해가 되기 전에 인물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비난도 하지 말라. 독자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니라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 열심히 살아보면 그들의 행동도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실제처럼 그 안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전에는 그 세계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 P226

희곡을 읽을 때, ‘완성‘된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희곡은 무대에서 상연이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들어야 알 수 있는 음악처럼, 희곡도 책으로 읽으면 피부에 와닿을 수 없다. 독자가 생생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유일한 방법은 희곡이 상연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읽는 것이다. 즉 그 전체든 부분적으로든 희곡이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 알게 되고,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등을 알면 일단 ‘연출‘ 을 해보는 것이다. 배우들이 앞에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배우들에게 이 행은 어떻게 하고, 이 장면은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해 보라. 어떤 대사가 중요하고 그 작품의 절정은 어떻게 연기하라고 설명해 보라. 그러면 아주 그 희곡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 P232

그런데 훌륭한 서정시는 통일성이 있다.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그 일관된 흐름을 이해할 수 없다. 우연히 찾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밑에깔린 기본적인 감정이나 경험을 찾아낼 수 없다. 특히, 첫 번째 행이나첫 번째 연에서는 시의 본질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이는 부분적으로 결론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반복해서 읽고, ‘소리내어 읽으라. 앞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같은 시적인 희곡을 읽을 때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도 그런 방법이 필수적이다. 시를 소리내서 읽으면 단어를 읽는 바로 그 행위가 단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리내서 읽을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잘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눈으로 읽었을 때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 귀에는 거슬리는 소리로 들려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리듬이 있는 시라면 그 리듬이 강조되는 부분을 보여 주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시를 향해자신을 열어 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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