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딩의 작품은 파리대왕에 이어 두 번째이다. 파리대왕도 읽기 힘들었지만 상속자들도 참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 



과거 한 철학자가 '문학은 2번 읽어야 한다'고 말한 바에 감명받아, 문학은 두꺼운 책이라도 되도록 2번 읽으려 한다. 같은 작가의 작품인 파리대왕도 처음 읽을 때 지금의 독자 입장에서는 어색한 단어들을 맞닥뜨리다보니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간 부분이 많았다. 전체적인 플롯과 스토리의 전개는 이해가 갔지만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2번째 재독할 때는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까지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속자들은 재독할 때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파리대왕처럼 플롯과 스토리는 얼추 감을 잡으면서 읽어갔는데, 로크 무리의 대화도, 로크 무리의 시선에서 묘사하는 세계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한국어를 읽고 있음에도, 한국어를 읽는 것인지, 외국어를 읽는 것인지, 그동안 나의 읽기 능력이 허상이었던 것인지 고민에 빠질 정도였다. 뒤로 갈수록 나아지긴 했지만. 책 뒷부분에 마련된 해설에 따르면 로크를 비롯한 주인공 무리는 네안데르탈인 무리이고 네안데르탈인스럽게 의사소통하며, 네안데르탈인스럽게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 마지막 호모 사피엔스들의 대화와 묘사는 호모 사피엔스 스러워서 잘 이해가 갔던 건가? 


읽기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의 작품답게 생각할 거리는 던져줬다고 생각한다. 2022년이 마무리되어가는 요즈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변한 것인가? 세상이 변한 것인가? 아마 정답은 둘 다 변했다일 것이다. 유튜브로 옛날 예능이나 보면서 낄낄 거리다가, 언제부터인가 이미 유행이 끝난 추억거리를 되새김질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시간의 흐름에서 저 멀리 흘러가고 만 셈이다. 같은 인간, 같은 호모 사피엔스이지만 나보다 어린 세대가 즐기는 문화가 이상해 보이고 뭐 저런걸 즐기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알게 모르게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서 이미 멸종해버린 네안데르탈인, 상속자들에서 호모 사피엔스 앞에 몰락이 예정된 주인공 로크 무리와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번 달에 같이 읽은 달과 6펜스에도 초반부에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 알렉산더 포프 휘하에서 2행 압운의 교훈시를 썼으나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터져 시대에 뒤처지고 만 조지 크랩 이야기다. 


때로 어떤 사람은 자기가 살았던 시대를 넘어서 전혀 낯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살아남는 수가 있다. 그러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인간 희극 가운데에서 가장 기이한 광경 하나를 목격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오늘날 누가 조지 크랩을 기억하겠는가? 그는 자기 시대에 유명한 시인이었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천재성을 인정했었다. 현대인의 삶이 훨씬 복잡다단해져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일은 이제 아주 드물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는 앨릭잔더 포프의 문하(門下)에서 시 작법을 배워 2행씩 압운(押韻)시키는 형식으로 교훈시를 썼다. 그러자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터졌고 시인들은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크랩 씨는 계속해서 2행 압운의 교훈시를 썼다. - P18

달과 6펜스의 화자의 말을 빌려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2행 압운의 교훈시를 쓰겠다. 내가 나 자신의 즐거움 아닌 어떤 것을 위해 글을 쓴다면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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