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 일본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한국에서 일본을 연구하는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 쉽게 공격에 노출됩니다. - P123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조선 시대에서 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대 한국 시기에 이르기까지 <민족 감정>과는 무관하게 면면히 이어지는 행정의 연속성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80~90년 전에 식민지 당국이 만들어 낸 도시 구조가 오늘날까지 그대로 살아 있는 상황에서, 조선 총독부나 일식 가옥 같은 건물 몇 채를 철거하고는 〈일제 잔재 청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 P147

대서울을 답사하다 보면, 곳곳에서 재개발·재건축을 둘러싸고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건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쟁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현대 한국 초기의 개발 방식이 21세기 초에도 답습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 P152

현대 한국에서 유독 아파트 단지가 발달한 것은, 원래라면 국가가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각종 기반 시설을 아파트 단지에 입주하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국가 입장에서도 이른바 <낙후 지역>을 손쉽게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두 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남서울 아파트의 놀이터는, 못 미더운 정부를 둔 시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 기반을 만들어 나간 현대 한국의 역사를 보여 주는 유산입니다. - P155

즉 부군당은 기존의 양반 계층이 아닌 신흥 자본가 계급이 모신 신앙 대상으로서, 마치 유럽의 부르주아지가 기존 귀족 계급의 신앙인 가톨릭이 아닌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받아들임으로써자신들의 정체성을 수립한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조선 초기에 부군당을 섬긴 아전·하인·노비, 그리고 조선 후기에 부군당을 섬긴 신흥 중간 계급이 오늘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축이되는 시민의 원형에 해당하며, 거칠게 말하자면 부군당 신앙은 민주공화국 한국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원류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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