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짜 실존적 딜레마—필멸자인 동시에 자신의 필멸성을 의식하는 동물의 딜레마—는 극복할 방법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오랜 세월을 들여 독자적 존재가 되고, 자기만의 재능을 발전시키고, 세상에 대한 분별력을 가다듬고, 취향을 넓히고 벼리고, 삶의 실망거리를 감당하는 법을 배우고, 성숙하고 무르익어 마침내 자연 속의 고유한 피조물이되고, 존엄과 고귀함을 갖춰 동물적 조건을 초월하며, 더는 휘둘리지 않고 더는 완전한 반사작용에 머물지 않고 어떠한 틀에서도 찍혀나오지 않는다. 그러고 나면 앙드레 말로가 《인간의 조건》에서 말한진짜 비극이 시작된다. 60년간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어가며 그런 개인을 만들어놨는데, 이제 그가 잘하는 것은 죽는 일뿐인 것이다. 이고통스러운 역설은 당사자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아니, 그가 가장잘 안다. 그는 자신이 괴롭도록 고유한 존재임을 느끼면서도 궁극적인 차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안다. 그는 메뚜기처럼 언젠간죽을 신세다. 오래 걸릴지는 모르지만.
앞에서 말했듯 요점은 우리가 최고의 개인적 발전과 해방을 성취하더라도 인간 조건의 진짜 절망을 맞닥뜨린다는 것이다. - P415

창조는 수억 년간 모든 피조물의 피에 젖은 행성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악몽이다. 약 30억 년간 지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보면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온건한 결론은 지구가 거대한 거름 더미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양이 언제나 피를 말리고 그 위에서 만물이 자라게 하고 자신의 온기로써 유기체의 안락과 확장에 따르는 희망을 선사하며 우리의 눈길을 돌린다. - P435

과학으로 사람을 조종하려 드는 모든 사람의 문제는 삶을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모든 과학은 ‘부르주아적‘이요, 관료적이다. 내 생각에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무엇을 하든 창조의, 기괴한 것의, 만물 아래에서 울리는 으스스한 웅성거림의 공포라는 체득된 진실 속에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지 않으면 거짓이다. 무엇을 성취하든 그것은 피조물의 주관적 에너지 속에서, 열정과 이상과 고통과 두려움과 슬픔을 억누르지 않고 한껏 발휘해 성취되어야 한다. - P436

랑크는 지나치게 고지식하지도, 지나치게 과격하지도않았다. 그는 인간이 언제나 자신의 몸 너머를 지향해야 하고 건강한 억압에 토대를 두어야 하며 분명한 불멸 이데올로기와 영웅적 초월의 신화를 추구해야 함을 간파했다. -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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