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음과 맞서는 용기를 무엇보다 존경한다. 그런 용기에 가장 높고 꾸준한 경배를 바친다. 죽음과 맞서는 용기가 우리를 깊이 감동시키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용감할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멸을 용감하게 맞닥뜨리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자신이 상상할 수있는 가장 위대한 승리를 재연한다. 그리하여 아마도 (구체적으로) 인류의 진화가 시작된 이래로 영웅은 인간적 영예와 칭송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심지어 그 이전에도 우리의 영장류 조상은 남다른 힘과 용기를 가진 자에게 경의를 표했으며 비겁한 자를 경멸했다. 인간은 동물적 용기를 숭배 대상으로 끌어올렸다.
19세기 들어 인류학과 역사학에서도 원시시대와 고대 이후의 영웅상을 짜 맞추기 시작했다. 영웅은 영적 세계, 즉 죽음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산 채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영웅상은 죽음과 부활을 섬기는 지중해 동부의 신비주의 숭배cult에서 계승되었다. 각 숭배에서 거룩한 영웅은 죽은 자 가운데서 돌아온 자였다. - P46

한편에 있는 인간 동물은 세상에 대해 부분적으로 죽었으며, 자신의 운명을 어느 정도 잊어버리고 삶을 살아지는 대로 내버려둘때 가장 ‘존엄‘하다. 그는 주변의 힘에 안온하게 의존해 살아가고 스스로를 가장 장악하지 못했을 때 가장 ‘자유롭다. 다른 한편에 있는인간 동물은 세상에 지나치게 예민해 세상을 닫아버리지 못하며 자신의 변변찮은 힘에 의존해야 하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데 가장 덜 자유롭고 스스로를 가장 장악하지 못했을 때고 가장 비천하다. 자신을 어느 이미지와 동일시하기로 선택하는가는 대체로 자신에게 달렸다. - P65

이 실존적 역설은 유한성 속의 개별성individuality within finitude 조건이라 부를 수 있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자연과 뚜렷이 구분하는상징적 정체성이 있다. 그는 상징적 자아이고 이름과 인생사가 있는피조물이다. 그는 원자와 무한에까지 사유를 뻗을 수 있는 창조자다. 상상 속에서 우주의 어느 지점에든 갈 수 있고 자신의 행성을 고요히 사색할 수도 있다. 이 어마어마한 확장, 이 민첩성, 이 영성, 자의식은 인간에게 (르네상스 사상가들이 알고 있었듯) 말 그대로 자연 속의 작은 신이라는 지위를 부여한다 - P68

인간은 자연 바깥에 있으면서도 자연 안에 가망 없이 갇혀 있다. 인간은 이중적 존재다. 별을 우러러보면서도, 심장이 뛰고 숨을 쉬는 몸에 깃들어 있다. 이 몸은 한때 물고기에게 속하던 것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아가미 흔적이 이를 입증한다. 인간의 몸은 여러 면에서 낯선 물질적 살덩어리다. 가장 기묘하고 가장 혐오스럽게 통증을 느끼고 피를 흘리고 늙고 죽는다. 인간은 말 그대로 둘로 나뉘어 있다. 위풍당당하게 우뚝솟아 자연으로부터 돋보인다는 점에서 자신이 독보적임을 자각하면서도, 눈멀고 벙어리가 된 채 1미터 아래 땅속으로 돌아가 영영썩어 사라진다. 이것은 우리가 처한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하는 끔찍한 딜레마다. 물론 하등동물은 이런 고통스러운 모순을 겪지 않는다. 상징적 정체성과 그에 따르는 자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하등동물은 본능에 이끌리는 대로 반사적으로 행동하고 움직일 뿐이다. - P69

몽테뉴 말마따나, 세상에서 가장 높은 권좌에 올라도 정작 깔고 앉은 것은 자기 궁둥이다. 이 경구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세상을 인위적 자부심과 속물근성으로부터 되찾아 평등주의적 가치를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주장을 더 밀어붙여 인간이 궁둥이를깔고 앉았을 뿐 아니라 따끈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자신의 똥 더미 위에 앉아 있다고 말한다면 이 농담은 더는 웃기지 않다. 인간의 양면성, 그의 우스꽝스러운 상황에서 연출되는 비극이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항문과 그 불가해하고 혐오스러운 산물은몸이 결정론에 매여 있음을 나타낼 뿐 아니라 신체적인 모든 것의 운명 또한 보여준다. 그것은 노화와 죽음이다. - P76

누군가를 ‘항문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삶에서 사고와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각별히 노력하고, 자연의 신비에 승리할 확실한 수단으로서 문화의 상징을 이용하려 애쓰고, 결코 동물이 아닌 체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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