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시스터스
코코 멜러스 지음, 심연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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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같은 바다를 다른 방향으로 헤엄치는 사람들이다.”


눈발이 흩날린다.

뉴욕의 겨울, 오래된 집.

세 자매가 그 안에 서 있다.

누군가는 손에 남은 먼지를 털고,

누군가는 부엌 불빛에 기대어 있다.

말은 적고, 공기만 가득하다.

집 안의 온도가 약간씩 달라지고,

그 차이만큼 각자의 마음이 어긋난다.


작년 겨울,

밤늦게 퇴근하고 돌아오던 길,

거리의 공기가 너무 차가워

그냥 숨만 쉬며 걷던 그 시간.

누군가를 미워하지도, 그리워하지도 못하고,

그냥 존재만 남아 있던 그 느낌.

그게 이 소설의 리듬이었다.

말없이 버티는 삶의 속도.


'블루 시스터스'는 거대한 사건이 없다.

그 대신, 흐름이 있다.

감정이 폭발하지 않고

눈빛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그 스침이 오히려 더 정확하다.

누군가 울기 직전의 얼굴,

손끝의 주름,

컵에 남은 물자국 같은 이미지들이

그들의 삶을 대신 말해준다.


이야기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세 자매가 남겨진 집을 정리하면서 시작된다.

그 집은 마치 시간의 잔해 같고

서로의 얼굴엔 각자의 실패가 묻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함께 식탁에 앉는다.

불편하고, 서먹하지만

결국 함께 밥을 먹는다.

그 장면이 유난히 따뜻했다.


읽으며 깨달았다.

삶은 거창한 화해나 깨달음이 아니라,

같은 공간을 다시 공유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 한마디 없이도,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은 살아진다.


커튼을 걷었다.

늦은 오후의 빛이 벽에 부딪혀

부서지듯 번졌다.

잠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때 느꼈다.

이 책은 나를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지금 어떤 온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줬다.


좋았던 점.

문장이 투명하다.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그저 빛처럼 흘러간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내 생각들이 한결 느려졌다.

삶의 장면 하나하나를 다시 보게 됐다.


아쉬운 점.

조금 더 거칠었으면 했다.

삶은 늘 정리되지 않은 채 남는데,

마지막은 약간 너무 잘 닦여 있었다.

그 미세한 불균질함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책을 덮고,

싱크대에 남은 컵을 씻으며 생각했다.

인생은 결국,

식지 않은 커피처럼

어중간한 온도를 유지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뜨겁지도, 완전히 식지도 않은 그 중간의 시간.

그 미묘한 온도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견디고,

또 견디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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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이야기 - 생물학적 기능에서 사회적 상징까지 목에 대한 모든 것
켄트 던랩 지음, 이은정 옮김 / 시공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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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목이 자주 뻣뻣하다.

몸은 컴퓨터 앞에서 고정돼 있고,

머리는 쉴 새 없이 돌아간다.

하루 종일 생각만 하고 사는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이 나의 일부가 아니라

그저 생각을 운반하는 도구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켄트 던랩의 '목 이야기'를 읽었다.

책은 제목 그대로 목의 이야기지만

사실은 인간이라는 존재 전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진화생물학자인 던랩은

이 짧은 부위를 통해 생명과 의식의 연결을 탐구한다.

목은 머리와 몸을 잇는 다리이자

생각과 감정, 숨과 목소리가 오가는 통로다.

우리가 고개를 돌릴 수 있다는 것,

하늘을 올려다보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울음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것

모두 목 덕분이다.

읽는 내내, 자꾸 내 목을 만졌다.

긴장하면 단단히 조이고,

불안하면 미세하게 떨리고,

말을 삼키면 뜨겁게 응어리진다.

목은 연약하지만, 그 연약함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하루의 피로가 왜 목으로 몰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단순히 자세의 문제만이 아니라

머리와 몸이 따로 사는 삶의 문제였다.

책을 덮고 나서,

잠깐 핸드폰을 내려두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내 생각이 몸에 닿는 느낌을 느꼈다.

'목 이야기'는 우리가 잊고 지내던 몸의 언어를 되살려준다.

몸은 늘 우리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는 걸,

생각이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걸.

요즘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내 목은 어떤 상태인가?

그 질문 하나로도

하루의 리듬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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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 협상 수업 - 복잡한 심리전에서 무조건 이기는 설득의 프레임
조슈아 와이스 지음, 김용준 옮김 / 현익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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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상대를 바꾸려 할 때, 협상은 이미 실패하고 있다.”


요즘 나는 대화를 하면 꼭 이겨야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회의에서, 가족과의 대화에서, 친구와의 의견 충돌 속에서도

결국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려고 애쓰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승리 뒤에는 항상 피로가 남았다.


‘하버드 로스쿨 협상수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이 책이 말하는 협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거래의 기술이 아니다.

그건 관계 속에서 나를 새로 이해하는 과정에 더 가까웠다.

상대를 이기는 게 아니라, 나와 상대가 함께 버티는 방법을 찾는 일.


조슈아 와이스는 협상을 대화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침묵을 선택할 줄 알고,

상대의 말 뒤에 숨은 진짜 욕구를 읽어내는 감각.

그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훈련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내 안의 낡은 대화 습관이 드러났다.

듣는 척하며 기다리던 내 차례,

상대의 말 속에 끼어드는 내 불안,

결국은 내가 옳지? 라고 되묻는 내 마음.


“협상이란, 네가 옳다는 증명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남는 방법의 탐색이다.”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함께 길을 찾는 일이 더 어렵지만,

결국 그게 인간다운 대화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하버드라는 이름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그 안에는 감정의 결, 말의 온도, 관계의 틈 같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협상들이 숨어 있다.


나는 이제 조금은 다르게 말하려 한다.

조금은 덜 단정하게, 조금은 더 기다리며.

이 책이 가르쳐준 건, 말로 이기는 법이 아니라 마음으로 남는 법이다.


협상이란, 결국 타인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타인을 다시 듣는 일이라는 것.


📚 《하버드 로스쿨 협상수업》

by 조슈아 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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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삶을 바꾸는 기질 심리학 - 타고난 기질과 성격으로 해석하는 당신 마음의 심리적 DNA
조연주 지음 / 북스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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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언제나 어렵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이 엇나가고、 오해는 쌓이고, 어느새 관계는 서서히 멀어진다. 나는 늘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 그러다 조연주 작가의 ‘관계와 삶을 바꾸는 기질심리학’을 읽게 됐다。제목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문장은 기질은 우리의 반응과 감정을 결정짓는 마음의 기본 언어다.였다. 마치 오래된 오해의 실타래가 한 올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심리학 이론서이지만 결코 딱딱하지 않다. 작가는 오랜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속 자동반응。 즉 타고난 기질이 어떻게 인간관계를 형성하는지를 구체적이고 따뜻하게 풀어낸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도망치듯 회피한다. 그 차이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기질의 반응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관계들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상대의 행동을 해석하는 시선이 바뀌자, 감정의 결도 함께 달라졌다.


책 속 한 구절에서 작가는 수강생들에게 강의 끝나면 어디로 가세요?라고 묻는다. 친구 만나러요, 운동하러 가요 같은 대답이 이어지면, 작가는 마지막으로 그럼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라고 되묻는다. 그때 깨닫는다. 우리는 언제나 어딘가로 향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돌아갈 마음의 집을 잊고 살아간다는 걸. 이 구절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내 마음이 자주 흔들렸던 이유는, 내가 돌아갈 집。 즉 나 자신의 기질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오랫동안 마음이 멀어졌던 친구 한 명을 떠올렸다. 늘 냉정하고 무뚝뚝한 태도에 서운함을 느꼈지만, 책에서 말하는 회피형 기질을 이해하고 나니, 그 친구의 침묵이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불안을 피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왜 저래? 대신 그럴 수 있겠다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단단하게 했다.


‘기질심리학’은 단지 사람을 분류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당신의 반응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탓하지 않도록 위로한다. 우리는 누구나 타고난 심리적 리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곧 관계의 첫걸음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책 후반부에서는 브레네 브라운과 존 볼비의 연구를 인용하며 취약성과 애착의 개념을 기질과 연결해 설명한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할 때 비로소 신뢰가 생긴다는 부분에서 나는 무심히 눌러왔던 내 감정들이 생각났다. 불안, 외로움, 두려움… 그것들은 부끄러운 약점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 ‘당신이 돌아갈 집을 찾아서’를 덮으며 나는 알게 되었다. 결국 관계의 해답은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기질을 이해하는 데 있었다. 나를 이해하는 순간,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관계는 부드럽게 흐른다. ‘관계와 삶을 바꾸는 기질심리학’은 거창한 변화 대신 이해라는 작지만 단단한 변화를 선물한다.


지금도 가끔 마음이 복잡할 때면 이 책의 문장을 떠올린다. 기질은 마음의 기본 언어다. 그렇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사랑하고, 다투고, 화해한다. 그 언어를 이해할 때, 비로소 관계는 덜 아프고 삶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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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맛
다리아 라벨 지음, 정해영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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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입맛은 산 사람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다리아 라벨, 끝맛(Aftertaste)


이 소설의 그는 죽은 사람의 가장 좋아했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래서 누군가의 마지막 한 끼를, 그 사람이 느꼈던 감정까지 그대로 느낀다.

달콤함, 짠맛, 쓴맛。 그 모든 게 기억의 언어가 된다.


읽는 동안 머릿속에 계속 부엌의 장면이 그려졌다.

불 위에서 기름이 튀고 냄비 안에서 소금이 녹아드는 순간.

그건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다리아 라벨의 문장은 섬세하다.

냄새, 온도, 식감이 살아 있고,

그 사이사이에 슬픔이 조용히 스며 있다.

이 소설은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고, 상실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사람들의 죽음을 맛으로 경험하면서,

점점 그 맛이 자신 안에도 남는다는 걸 깨닫는다.

죽은 이의 기억이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그건 기이하고 동시에 아름답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들,

그 안에도 어쩌면 누군가의 흔적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맛 하나에도, 잊었던 감정이 숨어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결국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느끼는 맛은 지금 이 순간의 것이야,

아니면 누군가의 부재가 남긴 끝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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